안녕하십니까? 간만에 올라온 다비드입니다. 하루 사이에 날씨가 차가워 졌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어제밤에 문 열어두고 자다가 감기 기운이 도는군요. 기침도 나고 즐겨피우던 담배도 하루동안 못 피웠습니다.
시벨리우스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은 총 여덟 곡인가요? 아니면 일곱 곡인가요? 그의 초기작인 쿨레르보 교향곡을 교향곡으로 봐야할지 말아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전 일곱곡으로 보고 있습니다. 흠... 심하게 엇갈리는 의견도 있겠군요.
쿨레르보 교향곡은 악곡 전개가 다른 일곱곡에 비해서 다른 점이 참 많습니다. 일단 초기작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상당히 긴 길이에 내용을 담을 서사성이 있다는 것도 그렇군요.
그런데 그의 교향곡이 일곱이냐 여덟이냐, 그것은 절대 주요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들리는 대로 들으면 그만이기에...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5번을 무척이나 선호하는 편입니다. 찾아보면 참 재미있어요. 베토벤의 5번부터 시작해서 차이코프스키의 5번 쇼스타코비치의 5번 하다못해 말러의 5번에다가 시벨리우스의 5번까지.
다들 공통점이 어둠에서 광명으로인것 같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고 찬란한 기쁨을 맞이한다는 것에서 악상이 공통적이지 않나 모르겠어요. 시벨리우스의 이 곡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919년 판, 최종본에는 1, 2악장이 하나로 통합되고 세 악장 구성으로 완결된 곡입니다. 생각보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참 멋진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3악장의 싸늘한 찬가는 더욱 그렇습니다. 비스 레이블의 오스모 벤스카의 음반은 이전판과 수정판을 한 장에 빼곡히 수록해 놓았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면 그 차이가 참 재미있습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근원적인 해석은 40년대의 비첨이나 토스카니니로부터 시발된다고 생각됩니다. 이상하게도 발터나 푸르트벵글러는 시벨리우스를 다루지 않았더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작곡가 나운영 선생님도 너무나 아쉬운 점이라고 언급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비첨의 경우는 구경은 많이 했지만 들어본 적은 없고 토스카니니는 불세출의 음반 한 장이 염가판으로 요즈음 발매되고 있습니다. 낙소스 히스토리컬에서 2번 교향곡이 포효올라의 딸, 핀란디아 등과 더불어서 염가로 나와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시벨리우스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음반이었습니다. 그리고 뮤직엔 아츠에서 4번이 나와 있습니다. 이 역시 간과하기 어려운 음반입니다. 토스카니니, 이 지휘자가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시벨리우스를 전곡 녹음했더라면 참 멋진 전집이 되었을 텐데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50년대에 괄목할 녹음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식스텐 얼링의 스톡홀롬 필하모니의 연주입니다. 음질이 열악해서 그렇지 요즈음의 우우죽순처럼 등장하는 시벨리우스보다 훨씬 좋습니다. 엄격한 템포에 서늘하게 드러나는 그 열정이나 일체의 낭만적인 상념을 배제한 현대적인 시벨리우스였습니다. 이 녹음이 최초의 시벨리우스 전집이 됩니다.
핀란디아 레이블에서 중가 석장으로 나와 있습니다.
50년대 말과 60년대에는 두 명의 지휘자에 의한 활동이 눈에 보입니다. 바로 폰 카라얀과 유진 오먼디. 둘 다 작곡자 자신에게 칭찬을 들었던 인물입니다. 유진 오먼디의 시벨리우스는 소니와 RCA에서 나왔는데, 요즈음은 둘다 보기 힘든 음반입니다. 소니판에서나 그 이후의 판에서나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먼디, 이 지휘자 다시 평가되어야 할 지휘자 1호입니다. 헝가리 태생의 지휘자로 근대곡이나 현대곡까지 뭐 하나 아쉽지 않게 그릴 줄 알던 지휘자였던만, 그의 사후에 필라델피아 사운드 운운하면서 오먼디를 가정음악회의 단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카라얀의 음반은 3번을 제외하고는 다 출반되어 있습니다만 1, 2번은 EMI, 4-7번은 그라모폰에서 각각 나와 있습니다. 특히 그라모폰은 염가로 나와 있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구입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카라얀의 특징이 선을 가늘면서도 유려하게 잘려나가는데에 있다면 일견 시벨리우스와 어울릴듯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음반에서도 믿을만 합니다.
70년대 들어서 비로소 시벨리우스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종종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파보 베르글룬드와 본머드 심포니와의 전곡 녹음이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적이라 해야 하나요? 전집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고 1, 2, 5번만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후 80년대의 전집이 이 녹음보다 더 본질에 접근한 연주를 펼쳐보이는 듯 합니다. 헬싱키 필하모니와의 연주이지요. 그렇지만 이 음반은 제법 표정이 무뚝뚝하기도 합니다. 물론 좋지 않은 녹음 탓도 작용합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럽 쳄버와의 전집 녹음으로 탁월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음반을 남깁니다. 이 음반이야 아까 하늘색님이 말씀하신 것 같아 더 언금할 필요 없을 듯 하지만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이 연주에서 베르글룬드는 전곡을 하나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는 듯 합니다. 따로 2번을 듣는다면 언듯 이해가 어렵기도 하다만 일곱곡의 전체적인 조감을 통하자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베르글룬드, 다른 것은 몰라도 정말 시벨리우스는 잘 하는 지휘자인 것 같습니다.
8,90년대 들어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은 정말 많이 출반되었습니다. 유카페카 사라스테라는 지휘자는 젊은 나이에 두 번의 전집을 남겼고, 오스모 벤스카 역시 라티 교향악단과 더불어서 탁월한 전집을 녹음했습니다. (이 녹음이 기가 막힙니다만 가격이 장난이 아닙니다.) 콜린 데이비스는 정말 재미없는 전집을 두 번이나 남겼으며(두 번째의 녹음은 좀 낫지만 그나마 재미가 없습니다.), 할레 교향악단과 존 바비롤리는 아직도 시벨리우스 교향곡사에서 성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로린 마젤 역시 두 번의 전집을 남겼지만 전의 녹음은 스케일 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알맹이를 느끼기 어려운 연주였으며 이번의 피츠버그와의 연주는 들어보지 못해서 어떻게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사이먼 레틀역시 전 곡을 녹음하여 EMI에서 출반했건만 먼 타산 지석같은 연주요, 그나마 평균 이상의 호연을 들려주는 아쉬케나지의 녹음이 염가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간만에 좋아하는 곡들 나오니 말이 많아졌습니다. 영양가 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