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터를 따라가면서
시월 첫째 금요일의 자연학교 등교는 이른 아침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서부터 걷는 일정으로 시작했다. 일전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온 이후 기온이 내려가 쌀쌀한 느낌이 든 아침이었다. 기온이 뚝 떨어져 굳이 생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도시락은 챙기지 못할 사정이라 모처럼 배낭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걸음이었다. 등산화는 밑창 수선을 의뢰해 트레킹화를 신었다.
동이 트는 즈음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천변을 따라가니 창원대학 앞 거리의 느티나무 가로수는 가을이 물드는 낌새가 보였다. 도청 뒷길에서 창원중앙역 역세권을 지나 철길 굴다리를 통과했다. 교통망이 복잡한 창원중앙역 일대에서 용추계곡 산행 들머리를 찾아가기에는 보행자 안전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당국에서는 자동차 주행과 주차난 해결할 공사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용추계곡으로 산행을 나선 이들은 볼 수 없었다. 용추정을 지날 무렵 하얀 꽃 덤불이 보여 다가갔더니 강활이 피운 꽃이었다. 산나물이면서 약초이기도 한 강활은 이즈음 구릿대와 비슷한 꽃을 피웠다. 계곡을 따라 점차 올라가니 여름에 보라색 꽃을 피웠던 맥문동은 꽃이 저문 자리에 파란 열매를 달고 있었다. 그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새들의 먹이가 될 테다.
도토리가 떨어진 계절답게 다람쥐 두 마리가 바위틈을 들락거렸다. 앙증맞고 귀여운 녀석을 피사체로 삼아 보려니 곁을 내주지 않아 사진에 담지 못하고 길섶에서 까실쑥부쟁이가 피운 꽃을 봤다. 부지깽이로도 불리는 까실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룬 북면 야산에서는 봄날에 잎줄기를 산나물도 채집해 오기도 했다. 선홍색 물봉선꽃은 모두 저물고 분홍 물봉선꽃은 아직 볼 수 있었다.
우곡사 갈림길에서 포곡정을 향해 오르니 아까 봤던 강활의 하얀 꽃은 계속 볼 수 있었다. 초가을 물봉선이 꽃을 피웠을 때 용추계곡은 찾아왔으나 가을이 깊어갈 즈음에 들리지 않았으니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야생화였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꽃은 보라색 투구꽃이었다. 용추계곡에는 투구꽃의 개체수가 많은 편이었다. 투구꽃은 맹독 물질을 함유한 독초이나 꽃은 은근히 예뻤다.
너럭바위가 있는 쉼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아직 저물지 않은 빨간 이삭여뀌꽃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늘진 습지에서는 개여뀌꽃과 며느리배꼽꽃도 한 몫 거들었다. 이고들빼기가 피운 노란 꽃과 보라색인 산박하꽃도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포곡정에서 진례산성 동문으로 올라 돌무더기 성터에 앉아 몇몇 지기들에게 용추계곡의 야생화들을 카톡으로 보내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진례선성 동문에서 북동 방향 성터를 따라 나아갔다.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식 석성인 진례산성에서 성곽의 흔적이 온전히 남은 산등선을 따라가니 제철에 피어난 야생화로는 단연 미역취가 으뜸이었다. 말린 미역처럼 결각이 진 이파리가 어긋나기로 자라 끄트머리 꽃대를 밀어 올려 노란 꽃을 피운 미역취였다. 산나물이 되겠으나 봄날에는 잎줄기 세력이 약해 나는 뜯어보질 못했다.
진례선성 성곽에는 미역취와 함께 하얀 구절초도 흔하게 피어 있었다. 둘 다 가뭄에도 잘 견뎌 물기가 적은 성터에서 잎줄기가 시들다가도 가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향기를 뿜었다. 성터에 자란 화살나무는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빨갛게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남녘 산자락에서 화살나무는 산벚나무에 이어 옻나무와 붉나무와 함께 비교적 일찍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졌다.
성터를 따라가며 바라보인 진례 들녘은 벼가 익어 황금빛이었다. 청청한 소나무 숲과 노티재 갈림길을 지나 우곡사로 내려섰다. 법당 아래 약수터의 샘물을 받아 마시고 우곡저수지의 우동 둘레길을 따라 서천마을에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따라 걸었다. 바야흐로 산과 들은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자여마을에 닿아 7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시내로 들어왔다. 22.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