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네개의 엄숙한 노래(Vier ernste Gesänge, Op.121)
1. Denn es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 (Salomo, Kap.3) 인간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04:47]
2. Ich wandte mich und sahe an(Salomo, Kap.4) 내가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03:42]
3.O Tod, o tod, wie bitter bist du(Sirach, Kap.41) 오,죽음이여 고통스런 죽음....[03:47]
4. Wenn ich mit Menschemzungen(Korinther I, Kap.13)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05:08]
이 4개의 가곡은 브람스 최후의 가곡으로 엄숙하고, 진지하며 장엄함을 풍기는 브람스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이다. 이 가곡들에서 브람스는 그 때까지의 가곡에서 보이던 낭만주의적 감성을 누르고 바로크풍의 따뜻한 양식으로 들어가 새로운 절대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생애의 끝을 느끼고 또 깊이 사모하고 있던 클라라 슈만의 최후를 예견하여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죽음을 축복하며 사랑에 의한 해탈을 노래한 것으로 가곡의 역사 중 최고의 보물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가사는 모두 성서에 취해졌다는 것이 특이할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 전서 제13장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유명한 구절을 브람스가 마지막 곡에서 가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하며,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곡과 한번 비교해보자).
이 가곡들은 1896년, 즉 브람스가 죽기 전년인 5월7일(브람스의 생일날)에 비인에서 작곡되어 같은 해 베를린의 짐록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그리고 곡들은 당대의 미술가인 막스 클링거(Max Klinger, 1857-1920)에게 헌정되었다.
제1곡'인간에게 임히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Denn es gehet dem Menschen)
전도서 제3장 19절에 있는 성구를 가사로 하고 장엄한 안단테와 단호한 확 신적인 알레그로를 교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허망함을 노래한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내소견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 그 신후사를 보게 하려고 저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제2곡 '내가 모든 학대를 보았다'(Ich wandte mich und sahe an)
전도서 제4장 1절에서 가사를 취하였다. 이 곡 역시 안단테이며 죽음의 행복에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듯 어둡고 수수하고 그 위에 엄숙한 노래로 되어 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도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제3곡'오 죽음이며, 고통스런 죽음이여!'(O Tod, wie bitter bist du)
이 곡의 가사는 '구약성서 속편(아포클리파)'의 '벤실라'의 지혜, 즉 예수 시 라크서의 제41장에서 얻었다. 시라크는 예수의 아버지인데, 이 서는 보통의 성 서에는 나와 있지 않고 가톨릭의 성서에는 들어 있다. 그라베의 묵직한 곡이며, 죽음의 비통함을 노래하며 시작하고, 후반에 이르러 위로하듯 죽음은 모든 번뇌 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죽음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반주의 장중한 움직임이 바 로 바로크풍이다.
"오 죽음이여, 너를 상기하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사람이 그 평화로 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안락하게 만사가 잘 되고 있을 때, 그리고 한참 영화를 누릴 때, 오 죽음이여 선고가 얼마나 너의 즐거운 것이냐."
제4곡'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suzngen)
고린도 전서 제13장에서 가사를 취하고 있다.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영원성 을 노래하고 그 중에서도 귀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설득한다. 선율은 크게 요동 하고 아름다운 효과를 낸다. 속도는 중간부에 이르러 아다지오로 떨어지고, 흐르는 듯한 반주 위에 온화한 선율이 실려 있다. 말하자면 전4곡의 클라이맥스를 만드는데, 그 클라이맥스는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장엄하기조차 하다.
4.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suzngen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꽹과리 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 하며, 성내지 아니하며,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리라,
사랑은 언제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리라"
브람스의 마지막 생애
클라라를 생각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 물론 긴 인생 가운데 어슴푸레한 연정의 향기를 풍겼던 여성도 없지 않았지만 , 결국 어떤 개성도 클라라가 될 수는 없었다. 클라라만의 브람스의 마음 속에 평생토록 계속 존재했던 여성이었다.
그 중에서도 바드이슈에서 쓴 말년의 음악 속에 흐르는 아름다운 정감, 그 속에서 작곡가가 조용하게 말해주는 부드러운 '브람스적인' 분위기를 맛볼 때 청년 시절의 동경이 선율에 어우러져 아름답게 수놓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역시 클라라의 존재 없이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896년 브람스는 봄볕 따스한 바드이슐에서 클라라가 뇌졸증 발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많은 친구들을 통해 죽음 뒤에 전해진 이 소식은 브람스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을 주었다. 인간 마음의 변천, 인 생의 갖가지 문제를 어떤 모양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걸어갔는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죽음에 의하여 명확하게 나타난다. 창작가로서 브람스는 죽음에 앞서서 성경 말씀에 의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Vier ernste Gesänge Op.121)」를 쓰기 시작하여 그의 생일인 5월7일 완성하였다.
클라라의 죽음을 안 것은 그 날부터 13일 후의 일이었다. 이듬해 4월 3일 대작곡가는 64세를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따라갔다. 20세에 서 64세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태반을 지내는 동안 브람스의 마음을 차지했던 것은 클라라의 존재였다. 거기서, 생겨나는 힘의 모든 것 에너지의 전부를 창작에 쏟았다.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인생을 서투르게 살 수 없었던 그의 인생몽상은 작품 속에서만 실현되었고, 개인을 초원한 능력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감명과 감화를 주고 있다. 브람스 마음 궤적은 클라라 슈만을 축으로 삼고, 사랑에서 출발하여 성경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닐 샤프란 (Daniil Shafran 1923~1997)
다닐 샤프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첼리스트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이었던 아버지 보리스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14세 때(1937년) 전 소비에트 연방 바이올린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그 상으로 1630년제인 아마티를 받아 그 이후 평생 사용하였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을 겨쳐(1940년) 모스크바 음악원(1943년)에서 첼로를 연마하고, 부다페스트 평화우호축제 음악 콩쿠르(1949년) 및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1950년)에서 로스트로포비치와 공동 우승, 공동우승한 이래 클래식 애호가들은 다닐 샤프란을 로스트로포비치와 즐겨 비교해서 거론하게 되였다.
그후 런던을 비롯해서 서구 여러 나라와 미국 순회 공연 등등....위와 같은 간단한 그의 경력만 살펴봐도 그가 러시아 최고의 첼리스트로 평가받을 만한 초석을 다져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른바 纛慣茱撞에는 끼어 본 적이 없다.
잘알려진 동세대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와는 달리 망명하지않고 계속 러시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거장이다.
걸핏하면 요란하게 법석을 떠는 나팔수(언론 및 평론가, 기자)들이 그에 관해서는 잠잠했던 탓이다. 그것은 그가 나팔수들의 눈높이 보다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치솟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결코 청중에 영합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쇼맨쉽이라는 천한 의상으로 시선을 끌려고 하는 대신 고고(孤高)한 곳에 표표히 서 있다. 그는 가슴 속 깊은 곳에 타오르는 불꽃을 묻어두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내연(內燃)의 불꽃을 분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5번 D장조에서 지축을 진동하면서 끓어오르다가 드높고 찬란하게 비상하는 그 불꽃의 열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그는 어느 첼리스트보다도 더 깊이 침잠하여 그 세계의 무한한 대해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타오르는 불꽃은 미진처럼 우리 가슴에 울려오지만, 그 진동의 밀도는 이를 데 없이 짙고 드높다.
다닐 샤프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첼리스트 가운데 하나이며, 여전히 신비의 첼리스트로 남아 있다. 언젠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만약 당신이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면 샤프란의 연주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시오"...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첼리스트가 러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완벽한 기교에 우수어린 선율미가 특징인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를 만나본 국내 한 연주인의 글에 의하면 첼로의 대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검소한 생활과 멀리 유학온 젊은 음악도에게까지 아주 겸손하게 대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다음은 오스트리아에 유학 갔던 어느 첼리스트의 글에서 읽은 일화입니다 그 학생이 캠퍼스의 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네가 그에게 다가와 첼로를 배우냐며 친근한 어투로 말을 걸어와 첼로 애호가인가보다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그런데 이튿날 특별강연회에 가서 보니 그 노인네가 바로 다닐 샤프란이어서 너무나 놀랐다고 합니다.
음악의 고고한 영혼을 지켰던 고독한 파수꾼, 다닐 샤프란!...인생과 음악, 음악과 진실 사이의 영원한 조화를 추구했던 샤프란의 음악 정신, 연주뿐만 아니라 인격까지도 위대했던 다닐 샤프란의 연주를 들으시면서 좋은 하루 보내시길.....
글출처: 하늘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