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로 자신의 몸을 때리면서
야간 이동하는 들오리 떼 바라보며
길고 어두운 밤 보낸 후
봄앓이 끝에 피어난
제비꽃 파란 눈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
다시 마주하는 이 시간
나는 기도한다
"고마워요,
빛을 다 쓴 반딧불처럼 부서진 나를
온전히 빛나게 해 줘서."
신이 말한다
"너는 부서진 적 없어.
언제나 온전한 반딧불이였어."
- 시집〈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수오서재 / 2022 -
사진 〈Pinterest〉
내가 좋아하는 사람
류 시 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 시집〈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수오서재 / 2022 -
사진 〈Pinterest〉
눈물꽃이 나에게 읽어 주는 시
류 시 화
너의 걸작은
너 자신
자주 무너졌으나
그 무너짐의 한가운데로부터
무너지지 않는 혼이 솟아났다
무수히 흔들렸으나
그 흔들림의 외재율에서
흔들림 없는 내재율이 생겨났다
다가감에 두려워했으나
그 두려움의 근원에서
두려움 없는 자아가 미소 지었다
너는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너 자신이 봄이다
너 자신이
너의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