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DS다.
많은사람들이 그렇게 추측했었지만 나는 계속 끝없이 부인해왔다.
결코 속이려는 마음은 없었다.
단지 조금더 준비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겁도난다.
재활의 의지도 없다.
AIDS는 결코 나을수없는 불치의 병이기에 나의 음악과 나의 영혼이 묻혀 함께 이 세상 사라지기전에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팬들과 멤버들을 속여 정말 미안하다.
늘 수많은 공연에서 수없이 죽음과 사랑을 노래했지만 아직 다 노래해내지 못했다.
끝없이 사랑과 죽음을 노래하고 싶었지만 나의 생은 유한한거 같다.
내가 태어난 고향 바쟌지라에서 지금 살고있는 런던의 생활까지 나는 나혼자의 생각만으로 살고있었다.
늘 이기적이기도 했다.그런 이유때문에 늘 외로웠었다
늘 혼자였다.
모두가 싫었다.
나를 다른백인들과 차별하는 영국인도 끝없이 나를 깍아 내리는 평론가들도 늘 지겨웠다.
이처럼 늘 나에겐 함께 해줄이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브라이언과 디컨 그리고 테일러를 만난것은 정말 내인생에 있어 최고의 만남이였다.
그리고 내가 검은문을 열고무대 밖으로 나가면 팬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줬다.
나는 무대에서는 늘 외롭지않았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음악보다도 나의 팬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혼자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나의 몰골은 점점더 외소해지고 흉해져 간다.
지금 소원이 있다면 팬들은 제발 나의 마지막 죽어가는 모습이 아닌 나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팬들을 위해서...
자신이 죽을 날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그는 자신이 죽는 날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물론 퀸의 멤버 들은 줄곧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1991년 11월 23일 비쩍 마른 모습의 프레디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인정했고, 바로 그 다음날 사망했다. 프레디가 만약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면, 그 죽음의 의미는 알았을까. 그의 죽음으로 20년 동안 멤버 변화 없 이 한결같던 퀸은 생명력을 잃었고, 그들과 그들의 음악은 ‘클래식 ’이 되어 버렸다.
퀸의 시작은 대학의 한 게시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브라이언 메이(Br ian May)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쳤던 기 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대학 친구 팀 스태펠과 함께 학교 게시판 에 ‘드러머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그 오디션에 응한 로저 테일 러(Roger Taylor). 치과의사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어지자 전공을 때 려치우고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던 그 총명한 청년은 12세 때부터 혼 자서 익힌 드럼 실력을 안고 그룹에 합류했다.
‘Smil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팀 스태펠이 그룹을 떠나게 됐고 , 그는 미술을 전공하던 자신의 친구 프레디를 소개했다. 브라이언과 로저의 음악이 맘에 들었던 프레디는 그룹명을 ‘Queen’으로 바꾸어 합류했고, 그 후 1972년 존 디콘(John Deacon)을 베이스 연주자로 맞 으며 정식 그룹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Queen’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줄까봐 걱정했 다. 우리는 영국의 제왕다운 록 그룹이 되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변함없을 것이다.”(1973년 신문 인터뷰 중)
1973년 7월 첫 앨범 ‘QUEEN’ 이후로 퀸의 음악과 그들에 대한 열기 는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강렬 한 록 사운드 속 화려한 하모니, 자유자재로 변하는 곡의 구성 등 이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하나의 장르를 만들고 있었다.
강렬하고 독특한 보컬은 으레 사람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룹 퀸을 생각하면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 번 앨범에서도 보듯 퀸은 네 멤버가 고르게 만들어간 그룹이다.
‘I want to break free’(존 디콘), ‘We will rock you’(브라이언 메이), ‘Radio ga ga’(로저 테일러) 등 20년 동안 발표한 많은 히 트곡들은 모든 멤버들의 손에서 나왔다. 80년대 들어서 멤버들은 솔 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고, 로저의 경우는 ‘The Cross’라는 다른 밴드를 조직해 활동할 정도로 멤버들은 고른 실력을 갖췄다. ‘Queen ’이라는 80년대 아이콘의 탄생에는 ‘네 멤버의 조화’라는 가장 큰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산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빛 을 발하고 있다.
“당신은 밴드의 리더인가요?”
“아니요.”
“리드 싱어는 보통….”
“아, 네. 보통 그렇죠.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죠. …결코 프레디 머 큐리와 그의 반주 밴드가 아니에요. 우리 네 명은 모든 작업을 함께 합니다. 멤버가 각자 25%의 역할을 하는 거죠. 전 맨 앞줄에서 눈에 띄는 것뿐입니다. 그게 다예요.” (1981년 프레디 머큐리 인터뷰 중)
첫댓글프레디가 정말 저렇게 유서를 남긴게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너무 슬프네요.. 늘 외로웠다는것과 다른 백인들과 다르게 차별했다는 점...프레디 걱정하지마세욤! 당신의 모습, 당신의 음악, 당신이 남기고 간 모든것들을 사랑한답니다!! 그리고 세기에 다시 없을 훌륭한 보컬이란것도~
무슨 글이 커트코베인유서같노??? 프레디는 이뉴엔도앨범에서도 알수있듯이 자신이 죽어도 쇼는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그건 긍정적인말입니다. 내가 프레디라면 가진것 다가져보고 해보고싶은거 다해보고 죽는건데 뭐가 억울하겠습니까?단지 프레디가 안타까워한 이유는 노랠 더이상 부를수 없다는사실에 안타까워했을뿐
첫댓글 프레디가 정말 저렇게 유서를 남긴게 사실인가요?? 그렇다면, 너무 슬프네요.. 늘 외로웠다는것과 다른 백인들과 다르게 차별했다는 점...프레디 걱정하지마세욤! 당신의 모습, 당신의 음악, 당신이 남기고 간 모든것들을 사랑한답니다!! 그리고 세기에 다시 없을 훌륭한 보컬이란것도~
프레디의 유서는 처음보는대,,, 있다는 것도 못들어봤고. 이게 사실이라면.. ㅠ.ㅠ 정말 외로운 사람이였군요
퀸 헤븐에서 봤는데 이거 가짜라네요-_-;;
저 위에 유서는 진짜라는 근거가 없다더군요. 하지만 아래 인터뷰는 사실인것 같습니다. 정말로 자신을 리더라고 하는것을 꺼려했었답니다..
프레디 유서 없습니다-_-
이런것도 뻥이있다니ㅋㅋㅋ
;; 인터뷰는 사실이나;; 유서라니 ;;
이거 완전 구라다.. 유서는 물론 인터뷰도 없었는데...
어쩐지....이상하다 했어..프레디가 저렇게 말을 할리가 없어...
그럼 그렇지~ 유서 얘기 첨 들었네...
유서돌아다닌지 한참 됬는데..인터뷰얘기는 사실맞는거 같아요
구라.
저도 원서를 찾을 수가 없어서 퍼온것이니 거짓 여부를 떠나서 그냥 보세요 ~ ^ ^;
프레디 인간성이 좋앗나요?
성적으로 문란하고 사치스런것 빼고는 인간대 인간으로 봤을때 엄청 쿨한사람임에 틀림없음.ㅎ
프레디 머큐리는... 자기가 사고싶은건 멋지게 질러댔죠...지름신의 화신이 아닌가 생각됨...사치스럽다 할수도있겠고 ㅋㅋ 멋진 인생이었음...그러므로 저런 슬픈 유서는 무효
사고싶은걸 멋지게 질렀다라... 참으로 멋진인생관...
아...아직 해산안했잖아요 그런데 해산은 무슨 해산-_-;
무슨 글이 커트코베인유서같노??? 프레디는 이뉴엔도앨범에서도 알수있듯이 자신이 죽어도 쇼는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그건 긍정적인말입니다. 내가 프레디라면 가진것 다가져보고 해보고싶은거 다해보고 죽는건데 뭐가 억울하겠습니까?단지 프레디가 안타까워한 이유는 노랠 더이상 부를수 없다는사실에 안타까워했을뿐
↑님말 동의~!! The Show Must Go On
아 아무튼 프레디 대단 에이즈 발표 하고 하루만에 가다니 킁
맨위 유서는 아마도 그냥 팬이 지은듯 하구요..밑에내용은 어디서봤던기사들이네요.근데모 솔직히프레디죽기전 저런맘을 가지지 않았을까라는..원문보니 비슷하던...에이즈투쟁을 동참해달라면서..동참하기전에죽어서참;
정말 멋지네요...확실히 Queen은 프레디와 나머지멤버가 아니라 네명이라는게 가장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