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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이너뷰] '고무장갑 불끈마뇨' 를 취조하다
2002.6.24.월요일
딴지 쥐재부장, 아니 취조부장
수배령 그 이후
그랬다... 본지 공개수배령이 떨어지자, 거리에서 암약하는 본지 에이전트들의 첩보가 속속 멜 박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숫자를 헤아려보니 하루에 무려 50여 통..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함께 이써써요..>, <정체를 제보함다..>, <내가 개인적으로 모은 그뇨 사진보낸다..>, <긴급수배 불끈마뇨.. 단서!>, <그뇬 저 압니다>... (이하 너무 많아 생략.)
그 가운데는 지가 그뇨 친구 오빠여서 잘 알고 있으나, 본지에겐 정체를 갈켜주지 않겠다는 '메롱~! 형' 공갈빵 제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엠뷔씨 티비에서 방금 봤다는 긴급첩보는 물론이고, 방금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다음은 어떻게 하냐며 행동지침을 달라는 거 등, PDA로 날리는 듯한 실시간 행적보고가 마구마구 들어왔다.
본지 첩보망의 위력.. 음하하..! 경찰청은 조심해라. 잘못하다간 밥 숟가락 놓게 될라. 이제부터 특별수사는 본지와 공조해야 할 판인갑다.
여하간 본지, 감시조들 활동 덕에 마뇨의 관등성명과 이멜 주소, 하는 일, 나아가 최근 경기장 출몰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체포조를 띄울려고 하던 판이었는데.., 띵 통!..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전화번호만 살짝 가렸다. 후후.. 참으시라) |
크크크.. 이쁜거.. 제 발로 자수의 뜻을 밝혀오다니.. 고무장갑 붉은 마뇨를 향해 본 취재부장, 이렇게 친절히 전화했다.
부장 : "그대가 빨강 고무장갑 불끈 마뇨, 전지영인가..? 안양예고 2학년 맞쥐?
그뇨 : 그런데요.. 어떻게 그걸 아세요? 키킥..
부장 : 본지, 변장근무 요원들로부터 정보 받고 있다. 모르는 거 빼고 다 안다. 얼렁 빨간 다라이 한 통 울러매고 본지로 와라. 그대로부터 캐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이다.
그뇨 : 예.. 그런데 빨간 다라이가 머에요?
부장 : 왜, 김치 담글 때 쓰는 붉은 색 플라스틱 통 큰 거 있잖은가.. 얼라들도 가끔씩 목욕도 하는..
그뇨 : ???.. 김치를 안 담궈봐서.. -_-..
부장 : 엄마한테 여쭤보면 아신다. 김치담글 때 쓰는 커다랗게 생긴 통 들고 내일 본지 문래 사옥으로 잧아오기 바란다.
그뇨 : 우쒸.. 알아써요... 근데, 그건 왜요?
부장 : 고무장갑 불끈 마뇨.. 본지 보기에, 응원소품으로 쓰는 그대의 빨강 고무장갑엔 빨간 다라이가 적격이다. 함께 쓰면 더 잘 어울릴 거 같아서다. 내일 사진 촬영도 본지에서 한다.. 내일 보자.. 이상! 철커덕.(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다음날 취조
케베쑤 방송을 마치고 아빠차로 본지 문래사옥을 찾아온 그뇨, 본지 안전요원의 손에 사옥 2층 집중취조실로 안내되었다. 때는 스페인과의 광주 경기를 이틀 앞에 둔 6월 20일 목요일 오후 2시. 밀착취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자, 다덜 보시라..
제발로 자수한 불끈 마뇨와 칭구 악마. |
부장 : 자 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을 줄 안다. 근데, 친구는 이름이 뭐고, 안 불렀는데 왜 왔는가? 친구 : 오현석이요. 그뇨 : 예는 친군데, 오늘 케베쑤 나갈 때 실수할까봐.. 함께.. 부장 : 그래 오늘 거기선 어땠는가? 그뇨 : 원래 제가 무대체질이라.. 친구 : 전 아니구요. 부장 : 같은 고등학교? 자, 쉬운 거부터 알아보자. 현재 안양예고 연극영화과 2학년 전지영 맞쥐? 그뇨 : 네. 부장 : 딴지일보는 잘 보시는가? 그뇨 : 아뇨. 경기장에서 사진찍어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이 딴지일보에서 수배령 내렸다면서 가보래요.. 그래서.. 사실 첨이에요. 부장 : 요즘 여기저기 언론사에 불려다니는 거 같은데, 으떠신가? 그뇨 : 울 나라 방송은 다 했고, 외국계 CNN 등도 이너뷰했어요. 되게 많았어요. 부장 : 영어가 안 될 텐테..? 그래, 갸들은 뭐를 묻던가? 그뇨 : 한국말로 했죠.. 의상, 응원 등에 대해서.. 부장 : 우리도 그런 거부터 물어보자. 의상 직접 만든 건가? 그뇨 : 등판 번호는 홍명보 선수 번호예요. 영문 이니셜은 제 이름이고요. 뿔은 제가 직접 만들었죠. 머리띠를 이용해서요. 악마면 뿔이 있어야지 한 거죠. 미국전 때는 이쁠 거 같아서 날개도 만들었고요.
부장 : 손재주 좋다. 총제작비는? 그뇨 : 가발이 2만원, 날개는 약 5만원.. 다해서 10만원쯤 안 되요. |
거듭되는 언론사 이너뷰에 적응해서인가, 아님, 원래 부끄럼이 없어서인가.. 본지 취조에 스스럼없는 답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긴.. 하고 싶은 일, 재미있겠다 생각해서 하는 일,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놀이를 말하는 바에야..
엉겁결에 따라온 친구는 본을 떠다가 옷을 밤새워 손수 바느질해서 만들어 입었단다.
부장 : 자, 불끈 마뇨에게 묻겠다. 왜 고무장갑 끼고 뿔달고 그렇게 한 건가? 좀 튀어볼라꼬? 순수한 응원? 그뇨 : 응원도 좋고, 저도 알리고 싶고... 시민들이 좋아하니까, 축제니까 좀더 즐겨볼라구.. 가발과 뿔은 프랑스전 때부터, 고무장갑은 폴란드 전 때부터 끼기 시작했죠. 친구 : 저희가 원래 팀이 있어요. 전국적으로. FS85년라고. 붉은 악마 모임이에요. 85년도 생. 판타지85란 모임이에요. 개네들도 튀는 애들이에요. 부장 : 고무장갑은 누구 아이디언가? 친구 : 우리 FS85의 상징이에요. 학생들이라 돈이 없잖아요. 걸개같은 건 할 수 없고. 프랑스 전 때 처음 썼는데, 땀이 많이 차잖아요. 그래서 다른애들은 포기했는데, 얘만 유독 끈질기게.. 그뇨 : ... 근데요.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많이 끼기 시작했어요. 부장 : 뿔보다는 그게 인상적이었다. 붉은 다라이는 가져왔는가? 그뇨 : 아뇨. 집에 그게 없어서.. 부장 : 고무장갑엔 빨간 다라이가 하모니를 이루는데.. 아쉽다. 붉은 다라이를 모르는 세대인 건 본 부장도 이제 알았다. |
이번 월드컵 열기로, 강남과 광화문에는 축구 룰은 조또 모르면서 그냥 분위기에 편승해 '대~한민국' 떠드는 얼치기 서포터가 많다는 첩보가 본지에 쇄도했드랬다. 특히 뇨자들이 그들중 많더라는 건데..
뇨자들이 남친들 하는 이야기 중 싫어하는 게 세 가지 있다면, 그중 세번째는 군대 이야기고, 둘째는 축구 이야기, 첫째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지 않던가..
그마만큼 뇨자들에게는 축구가 비인기종목이었고, 그래서 룰을 모르는 건 당연하기조차했는데.. 혹시, 마뇨는 그런 축에 끼면서 용모 하나로 우연히 튄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부장 : 축구 룰은 잘 아나? 그리고, 좋아하는 축구선수는? 그뇨 : 웬만큼은 알아요. 뭐가 오프사이드인지, 경기 규칙을 알아요. 이동국 선수를 좋아해요. 친구 : 이동국 선수는 바람둥이라고 하던데.. 부장 : 친구는 열받나봐. 친구 : 아녜요. 칫.. 부장 : 근데, 왜 이동국 좋아해? 친구 : 잘 생겼다는 거겠죠. 그뇨 : 첨엔 고종수였는데, 이동국도 괜찮네.. 생각들더군요. 포항수틸러스 서포터에 가입하면서 알게 됐죠. 엠티도 같이 가고, 일전에 파주 훈련장에서는 이동국 선수가 콜택시도 잡아주고 해서..
부장 : 언제부터 붉은악마였는가? 그뇨 : 저는 2001년부터요. 부장 : 붉은 악마 활동에 대한 학교 친구들의 반응은? 학교에서는 유명해졌겠네? 친구 : 학교 애들은 "너희들, 너무 오바하지 말라고.."란 식이이요. 학교 때 모습과 경기장 갈 때 모습은 너무 틀리니까.. 부장 : 평소 모습을 담은 사진 있나? 그뇨 : 프로필 사진이 있죠. 영연과니까.. 그래서 그것도 평소 모습은 아니죠.
친구 : 근데요..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불안한 게.. 경기가 끝나면 우리 생명도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뇨 : 그런데, 제가요 TV에서 반응이 있어요? 우리가 뜨긴 뜬 건가요? 부장 : 그건 우리도 몰러.. |
이제 어쩌면 이땅에서는 다시는 살아서 느껴볼 수 없는 재미와 열정.. 감격과 환희.. 그래서 더욱 전국민이 즐기는 축제.. 월드컵은 그런 거였다.
불끈마뇨와 친구는 이제 고2. 불과 세 살 때 1987년도 민주화를 위한 시민대항쟁을 기저기 차고 들었을 나이. 실로 이 나라가 어둠의 긴 터널을 조금씩 빠져나오던 때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거다. 그래서 그네들은 자기 욕망과 권리, 개성에 강하다.
예로부터 울 나라 10년은 외국 100년에 버금갈 만큼, 변화가 빠른 게 이곳 특징 아이던가.. 이들이 레드 세대건 뭐라 이름붙이건 상관없다. 우찌되었든, 이들은 할 말은 하고, 즐길 건 즐길줄 안다.
부장 : 다른 나라 서포터들과 만나서 벌어졌던 재미있는 일들이 있나? 그뇨 : 폴란드 서포터들의 머플러와 유니폼을 바꾸자고 했는데.. 이게 어디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정되어 있잖아요. 응원도 계속해야잖아요. 그래서 안 바꿨죠. 부장 : 혹시, 백의천사라고 들어봤는가? 그네들과 응원하면서 마주친 적이 있는가? 혹시 충돌이나 갈등이 있진 않았나? 그뇨 : 저는 없어요. 친구 : 한번 만나봤는데.. 연락을 해 오길래 싫다고 했죠.. 그쪽은 뭐, 기독교쪽인가봐요. 부장 : 월드컵 때문에 학교 공부는 거의 못할 거 같은데.. 어떤가? 그뇨 : 중간고사 끝났어요. 중간고사를 잘 봐가지고.. 기말고사는 7월 1일부터 시작하고요. 부장 : 중간고사 잘 봤다는 건 뭘 의미하는가? 그뇨 : 경기를 볼 수 있단 말이죠. 부장 : ..??.. 반에서의 등수는? 한 반이 몇 명인가? 그뇨 : 45명인데, 전, 반에서 5등해요. 부장 : 우와... (일동 놀람) 부장 : 자자,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그뇨 : 원래 고향은 강릉인데요.. 지금은 안양에서 아빠와 자취해요. 춘천에서 대학다니는 언니와 남자동생이 있죠. 엄마는 언니랑 함께 있구요. 부장 : 진짜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없나? 그뇨 : 전 남자 관심없어요. 진짜 관심있는 건 연극. 연극많이 보러다녀요. 친구 : 얜 그런 거 관심없어요.. 부장 : 영연과면, 좋아하는 배우가 있을 텐데.. 그뇨 : 박정자 선생님이요. 부장 : 카리스마 넘치는 양반?
그뇨 : 대머리 여가수 보러 갔었는데.. 진짜 좋았어요. 목소리 진짜 끝내주죠? 끝나고 대기실에 가서 만나뵜는데.. 사인도 받았어요. 진짜 카리스마 넘쳐요. 제가 진짜 존경하는 분이지요. 그분처럼 되는 게 제 꿈이에요. 부장 : 월드컵 끝나면 어떻하나? 마뇨 : 프로축구 응원해야죠. 올스타전 때도 이렇게 입고 할 거예요. 중부팀, 남부팀 서포팅 할거 잖아요. 전 남부고, 중앙에서.. 정말 문제인건 월드컵 끝나면 프로축구가 있는데, 사람들이 안 오는 거예요. 정말 축구를 사랑하면 프로축구를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부장 : 왜 축구가 그리 좋은가? 마뇨 : 저는 재미있는 거라면 진짜 다 좋아해요. 다른 스포츠도 다 좋아요. 축구는 그중에 조금 더 좋은 거예요. |
뜨거운 월드컵 열풍을 깜찍하고 귀여븐 모습으로 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가운데, 본지 수배령에 냅다 하룻만에 자수해뻐린 고무장갑 불끈 마뇨.. 집중취조를 마치고 사진촬영하고 돌아서는 길에, 동행한 아빠에게 본 부장 스리슬쩍 물었다.
불끈마뇨와 불끈악마로 변신해서 찰칵! |
부장 : 어떠세요? 지영이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축구 서포터에, 특이한 응원복장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아빠 : 걔가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해서, 서포터 하라고 밀어주는 거죠.. 학교공부를 등한히 한다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 축구가 결승전까지 간다면 요코하마에까지 갈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에요. 허허..
울 나라 부모마음..
월드컵 축제로 세상이 붉게 물들어도, 추측컨대, 통일이 되는 순간 아님 다시는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할지라도, 약체 한국이 강팀으로 변신해서 꿈을 이룰지라도, 역시 '아이들 = 공부'라는 공식은 끈덕지게 붙어있었다..
개성있는 연극인으로 성장하고픈 예고 2학년, 전지영. 붉은 마뇨로 서포팅 하다가 중계 화면에 클로즈업되고, 붉은 고무장갑을 끼고 응원해서 더욱 눈에 띈 월드컵 응원 소녀..
울 나라에서는 잘 놀 수 있으려면 아직도 그느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철책선이 그어져 있다. 취미를 당당히 즐길 자신감이 꼭 공부를 잘 하는데서 오는 건 아닌데..
아무튼..
남덜은 땀이 차서 다 냅던지는데도 끝끝내 끼고 응원하는 끈기와 열정을 지니고, 귀엽고 이쁘장한 자기 이미지완 달리 개성분명하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를 흠모하는 미래의 연극인은 그래서, 오늘도 중간고사를 잘 본 덕에 아빠의 지원 속에서 자신감 있는 태도로 응원에 나서고 있었다...
취조 끝.
귀여븐 거뜰만 골라 만나는
취재부장(djjang@ddanzi.com)
칭구있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