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재학씨는 1955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198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단한 그는 시집으로 "살레시오네의 집", "푸른 빛과 싸우다"를
상자했으며 1994년 제 5회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의 시'동인
으로 활동중이다.
죽음과 폐허의 분위기로 가득한 이 세상의 극복을 자신의 시적 주제로
삼고 있는 그는 자아/타인, 세상/자연의 대립적 경계를 뛰어 넘으려는
고뇌와 열망의 힘든 과정을 섬세하고 참신한 시어와 상상력에 실어
보여준다. 시집 "얼음시집"은 그의 고뇌와 열망의 첫 결실이다.
[김형, 전라도 홍농의 서해 물빛은 어떤지요. 대구에서 소백산맥 넘어
광주 지나 이윽고 법성포 홍농에 닿으면 내 마음은 서해의 찬찬한 물길
열어 발해를 건너 다시 황하를 거슬러.............타클라마칸 사막, 그 엄청난
넓이에 기대고, 이윽고 樓蘭, 쓸쓸한 땅을 바라봅니다. 樓蘭에는
千歲不變의 미라가 모래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말라버린 호수의 흔적조차
희미해서 옛 나라는 슬프다고 누군가 노래하였지요.
그러나 樓蘭 가기 전에 이루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책상 위에는
경남 거창군의 오만분의 일 지도 - 1971년 중앙일보의 거창 사건 증언 -
수기 남부군 및 빨치산 - 소설 겨울 골짜기 - 놀이패탈의 마당극 대본 -
잡다한 사료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긁어모은 자료를 되풀이 읽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그곳에 가보았습니다. 1951년의 시점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거창 신원의 사람들과 나는 무슨 맥락으로 꿰뚫려져 있는
것인가요. 며칠간 산속 꿈을 꾸었지요.
山竹과 왕억새숲과 검은 바위와 날카로운 벼랑길로 헤매었습니다. 불길한
먹장구름과 급한 살여울 사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붉은 꽃들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詩論
김형, 언젠가 시를 왜 쓰는가 물었지요 그때 시의
이유에 대해 부끄러웠는데 김형의 끝없는 질문 탓입니다
질문을 향해 내 사유와 우수는 기다리고 의지합니다
김형이 편지를 받을 즈음 나는 죽어서 뜨거운 뼈 한줌
또는 한숨으로 강이나 들로 날리겠지요 그렇습니다
내 말의 은유는 삶을 위한 표현, 그 표현의 뜻을 날카롭게
갈아보고픈 막막한 그리움뿐입니다 그 그리움을 향하여
온몸을 눕힙니다 아직 죽고 싶지는 않지만 한번의 호흡마다
치미는 아픔은 참기 어렵군요 처음 시를 쓴 것은 우울에
기대서였지요 그때 서정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살아가는 일은 나로 하여금 시 근처에 떠돌게 합니다
누군가 울고 있는데 그 울음의 바다에 누워보지 않고,
그렇다 하더라도 깨달음이란 일관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데 울음시를 노래할 수 있을까요 김형, 이 의문의
암갈 바다를 떠올려봅니다 내 시들이 겨울의 산굽이나
바라보는 허공마다 閃閃의 칼날로 서 있다면 이 병의
죽음도 자각의 시가 되겠지요 김형, 살아서 마시는 술보다
죽어서 같이하는 술자리가 더한 번뇌인 듯합니다.
섬 1
-편지
아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고등 2년 때 가출한 그를 찾으러
갈꽃 피는 여수 남쪽 섬을 간 적이 있었다
흙바람 가득한 섬은 아우의 행방보다 더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도 그를 보면
흙바람 같다
아우는 밤에 홀로
思考한다고 썼다
그리고 편지 끝에 원서 비용으로
6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시골 관청의 8급 주사보이고
점심은 사무실에서 시켜먹고 화투를 쳤고 가끔
여자들이 도시에서 찾아왔다
밤에는 그러나 혼자 잠들고팠다
안개는 무시로 깔려와,
내 기관지는 자주자주 다치더니
나는 며칠의 病暇를 내고 버스를 탔다
아우는 지방 대학의
철학과와 신축도서관에 묻혀 지냈다
어느 날 그의 흙바람내 나는 서랍을 뒤져보았다
스스로 고독한 차르라 칭한 아우의 비망록
악필이었던 글씨는 여전했고
끝없는 단상과 부호같은 일기
반년 전부터 복용하는
아이나와 에탐부톨이 칼로 자른 넋처럼
하얗게 빛났다
결재 파일과 대차대조표를 뒤적이다가
봉화 영양 안동 예천으로 출장을 떠나며
나는 혼자일 때는 머나먼 섬까지의 뱃시간을 베끼고
문득문득 아우가 보낸 편지가 왔다
아우는 회의주의 학파의 색인을 정리하고
나는 시를 쓰다 관두다 했다
사흘마다 숙직실에서 밤을 새웠다
유리창은 늘 두껍게 서리 끼고
연탄 가스는 조금조금 스몄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 도장을 찍고
1,300원의 숙직비로 점심을 때우거나
겨울 문예지를 샀다
아우는 19세기 러시아 지성사를 번역해갔다
나는 섬의 외로움으로 깊어진 밤에
이윽고 술을 마실 뿐
아우는 읽던 책을 건네준다
나는 사람과 싸우며 며칠을 끙끙거리고
아우는 아침마다 스터디 그룹에 나갔다
아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밤에 스피노자를 읽으면
집 근처 신기료 사내는 마치
우리들 보행의 자유를 위해 신발을 고치는
도시의 스피노자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편지 끝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싸늘한 숙직실 유리창에
서리 흔적으로 섬이라고 써보았다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갈았다.
섬 2
-病
아우는 긴 괴로움 사이로 눈물을 밀어 놓았다. 새벽 물
빛 같은 투명한 손바닥을 잡았을 때 내 정신은 오랜 기
침처럼 무거웠다 아우의 밝은 귀는 알았을 것이다, 그의
편지 행간에 기대었던 내 쓸쓸함을, 어제 내린 겨울비는
병실을 흐리게 하더니 알코올과 섞여 납냄새를 피웠다
죽음은 아우의 얼굴에는 없고 시간을 지키는 내 슬픔에
있을 뿐 그는 차거운 바깥을 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번
쩍이는 물굽이 사이에서 피어나는 안개인가 섬의 외로움
인가 아우는 돌아누웠고 나는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
우리를 베어오던 날카로운 메스는 아우의 상처를 가로질러
회랑에 긴 그림자를 남겼다 고통의 처음이 섬광처럼
파고들 때 아우는 어떤 하느님께 매달릴까 구랍 신문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며 病의 밤은 지나간다 지난 시절
그의 허무를 거쳐나오던 이념의 밤과는 다르게
樓蘭에의 기억
땅의 이름은 누란이다, 사막 가운데 세월을 거쳐온
강물 흐르고 검은 부리 새들이 종일 탑을 쪼으며
호수는 꿈같은 푸른 비단을 펼쳤다 사람들은 양을
몰거나 모래 소금을 찾고 은고기를 잡았다 아이는
서쪽의 파미르 고원에 널린 노을 바라보며, 이윽고
늙은이는 굽은 등 펴고 모래에 묻힌다 오랜 바람
짧은 노래는 그 땅의 물이나 소금이다 지는 노을
검은 거울 품으며 여인은 죽어도 지아비의 머리칼에
드러눕는다 죽음은 전쟁과 일식으로도 오지만 누란에서
죽음은 노래가 되는 것, 혹은 독풀을 머금고 사치한
비단을 두를 때 자신은 누란의 운명에 보태어진다는
가열함이 있다 지금 모래무덤 파면 누란은 琥珀이나
옛 노래 몇 절로 고여 있다 사람들이 善땅으로 옮긴
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땅이란 뜻에서 누란의 슬픔이
있다, 그 땅의 이름은 누란이다
청동 얼굴
-지주 위의 남자 얼굴, 1947년,
석고 채색, 61cm, 자코메티
청동 구울 돈이 없어서 그냥 석고에 붉은 채색을 입
힌 얼굴,* 삶과 죽음이 뒤섞인 얼굴을 보았다. 수백만
사람의 얼굴이 겹쳐서 청동보다 더 무겁고 어두운......
얼굴, 우리는 정글 같은 지하 아트리에에서, 嘔吐 아래,
수세기 아래, 술을 마셨다
*콩고강 전투에서 그 해골같은 사내를 처음 만났다. 흰 궐련을
줄이어 피우며 밤에는 위스키를 털어야 잠드는 사내. 그와 정찰
조가 되어 정글을 헤매기도 했다. 방울뱀에 물린 그의 허벅지를
째고 독을 빨았을 때 자신을 셈족이라고 밝혔다. 그가 중기관총
을 그어 표적을 날릴 때의 절망과 노여움의 시선! 우리는 의미
없는 전쟁을 온몸으로 받았다. 용병의 삶이 그렇듯 그는 돈에
집착하고 인간과 꿈에 증오했다. 열 번의 전투가 반년의 아프리
카 시간을 지탱했다. 방탄복과 달빛, 말라리아와 용수림에 미련
없이 나는 떠나왔다. 그는 어느 전투에선가 행방불명되었다. 팔
레스타인 사내의 유품은 미화 2,000불 목제 조각 팔레스타인
史...... 몇 년 지나 파리에서 살아 있는 그를 만났다. 다리 절뚝
이며 조각 수업을 한다는, 그의 지하방에서 나는 보일러 소리와
무더위와 진흙 위의 소리나는 얼굴 조각을 보았다.
입암 땅 긴 세월
........아우에게 이런 편지 하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물론 아버지의 참담함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아버지가 잠적하고
일년간 마을에서 받은 수모와 굴욕은......
그분의 우유부단과 기회주의로 마을 어른
열 분이 공비들로부터 죽창에 찔리고.......
결국 당신으로 인해 어머니는 매질과 홧병으로
어린 나를 추스렸네........사이공에서 형이 쓴다
자양에서 입암까지 사십 리 길
내내 걸었습니다
입암 근처 산길조차 가풀막지면서
잔설 날리고
멀리 큰재 아래 갈래길은
바람결 따라 뻗는데, 떠나온 길로
산판 트럭이 자주 지나갑니다
산 한켠에 침엽수 베어 넘기는 소리
껄껄 웃는 소리 휘파람 소리
길게 자빠지는데
이월 한기는 뼈를 저밉니다
마른 자양천이 서너 마장 이어지다가
끝나는 땅, 얼어붙은 미루나무 사이
저녁 이내 자욱한
입암 마을이 보입니다
종형의 삭신은 이미 옹글었습니다 병들고 지친 사람
의 몸피로 나를 외면하더군요 짧은 저녁 햇발은 금방
끝나 늙은 감나무 후려치는 구암산 바람만이 쩡쩡할 뿐
언제나 결기 돋은 목소리 지키던 냉랭한 사람이 일 년
병치레로 이렇듯 허물어지다니 목화같이 센 머리칼과
삭정이 팔다리를 보며 나는 뒷산 억새숲이 와라락 우는
소리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어느 땐 그 분의 기억을 죄
다 뇌수로부터 들어내고픈 심정이다
..........어머니의 죽음도 나를 괴롭혔지만
..........푸른 죽창의 섬뜩한 날(刃)은 슬픔으로 자랐네
.........한번 아버지가 소식을 보냈지
.........스스로조차 미웠다
.........잊어버릴 수도 있네만
.........아버지의 피가 내 몸 속에 흐른다는 두려움,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한탄.........전쟁의 땅, 월남에 간
것도 어둠의 마을을 잊거나 피의 뜻을 더 새기고픈 탓이지
......얼음 속 화톳불처럼 내 몸은 식었다가도 금방 이
글거린다
눈 부상으로 제대 후 종형은 처가 고향인 입안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어쩌다 찾아보는 종형은 울분을 무지렁
이 농투성이짓으로 삭여나가는 듯 밤에는 늘 육자배기
경기잡가 따위에 귀 열거나 는개 철철 내리는 들 에움길
돌아오거나 멀리 보현산 쪽을 외눈박이로 말없이 바라
보곤 했지요 그 무렵 숙부님이 이십 년 상거로 돌아왔습
니다 어디서 자신을 학대했는지 폐결핵을 묻힌 숙부의
온몸에는 역마살 티가 역력했고 얼핏 목도꾼이나 도부
장수 노구쟁이 허렁뱅이 한세월에 목슴을 흘려버린 듯
했습니다 숙부는 육개월 더 골골거리다 한 됫박 피를 쏟
고 숨을 거두었는데 그 동안 나는 입암을 열댓 번 찾아
다녔습니다 종형은 숙부의 장례 때도 안 보였는데 보현
산 숙모의 묘 옆자락 쓰는 것도 고개 젓고 나중엔 어딘
가 떠나버려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군요
입암 겨울은 햇빛 고른 낮 동안이지만
따사롭습니다
다랑이논에 등 굽은 황소 몰고 얼갈이하는
들일 널리고 마른 잔디 사이 가끔 파리한 풀잎 속 보
입니다
雨水 지나 종형과
술상을 마주했습니다
이월 끝머리에 싸리울 따라
문득 새순 돋우는 산수유 보며
종형이 숙부님의 移葬을 말하더군요
삽짝 너머 청송 가는 길로
시외버스 떠나고
자양천 얼음장은 이제 녹는지
내가 사람 사는 일에 길눈 틔운 이래,
종형이 나직이 운 띄우는데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아,
스스로의 용서나 증오가 부질없다고 끝맺었습니다
종형이 숙부님의 이장을 생각한 것은 오래 전으로 보
입니다 그 절차와 비용 날짜까지 세세히 말하고 얼추 십
년 안쪽이라 완전히 육탈되진 않았을 것이니 맞춤한 춘
양목 관을 부타가더군요 그리고 멍하니 기와집꼴 보현
산을 바라봅니다 저 묵묵부답의 보현산이야말로 종형의
한평생을 가둔 천라지망이 아닌 만상 고요한 밤, 산을
바라보며 얼굴색 변해가던 종형의 한때 어둠을 떠올립
니다 고통에 침잠하다가 응어리에 울대 돋우고 다시 자
학으로 이어가던, 스스로의 꿈조차 꾸어보지 못했던 한
남자의 필생이 저 첩첩적막 보현산 어딘가 바위덩이로
박혀 있습니다 숙부님이 돌아가시기 전 한 달간의 거식
증을 말하자 종형은 미간을 모으고 끙하니 오금을 사렸
습니다
자양 땅 숙부님 묘에 破墓際를 지낸 것은 삼월 경칩
이었습니다 흙이 좋질 않아 몇 번이나 혀를 차던 산역꾼
들의 말마따나 시신은 육탈은 고사하고 추깃물 자락에
감겨 어렵게 새로 염을 해서 관을 거두었습니다 보현산
으로 옮겨 平土際가 끝난 것은 그날 해가 완전히 꼭지
떨어져서지요 종형은 사나흘 전부터 굴신 못 할 정도로
부기가 올라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추리해진 몰골로 그는
한숨 쉬었습니다
닷새 지나 종형은 나와 함께
산으로 갔습니다
낮은 울음으로 흐느끼는 그 깊은 속내가
울울한 잡목숲에 고이고 멧새떼 산중에
종형은 한없이 엎드린 채입니다
이제 그는
좀 자유로웠으면 생각되지만
아픔은 아마 종형이 끝 모르게
울고 삭였으므로 자양천이 금호강으로 다시 낙동강
지나
남쪽 바다로 사철 흐르는 양
흘렀는지도 모릅니다
물방울 되돌아내리는 비처럼
보현산 어둠도 떠돌 것인데
종형은 어디서 어둠에 묻힐지,
저녁 이내 자욱한 산골짜기 햇살은 더욱 짧은데
먼길 5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눈물 보이진 않으셨지만 사립
문에서 뒤뜰까지 너무나 조용했다
석남꽃은 터져 붉은 잇몸 드러내었다 뒷산 나무 베는
소리 들리고 아버지는 머리칼 깊숙이 손가락 쑤셨다
갈치 반찬이 올라간 점심마저 밀어내시고 아버지는
낫을 갈았다 흰 상여가 입타령도 없이 들 너머 묻혔다
서쪽 하늘의 먹장구름 律里를 덮고 낫의 푸른 날은 점점
맑아졌다 율리천 물은 곧 말라 갈라진 강바닥과 죽은 고
기를 드러낼 것이다 비린 풀냄새가 났다 무더위와 고요
위에 유월 소나기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어머니는 고추밭에 계시는지,
뒷산 벌목장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생목 더미의 휘파
람 소리가 떠돌았다 한낮인데도 세상은 어두워지고, 온
몸 젖으며 아버지, 떠나셨다 어머니는 보릿단 지펴 한
그릇의 쌀밥을 지으시고 남은 불로 방을 덥혔다 집 안에
연기는 빠져나가질 않았다 뒷산 새울음이 여우비 뚫고
어머니 눈물 근처 여위어갔다
금방 산으로 따라갔어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셨다
산모롱이 흰 길로 햇빛이 눈부시고, 아버지의 나라는 저
햇빛 속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