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성과상여금 균등분배 실패와 성찰!!
2010년 성과상여금 균등분배 실패!
예로부터 동 ․ 서양을 막론하고 빈부가 극단을 이루면 갈등이 유발된다고 했다. 서양의 오래된 사상들 가운데 사회의 성원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도덕과 아름다움(美)에 대해 균형과 조화를 위해 애쓴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균등은 친구와 친구, 도시와 도시, 동맹국과 동맹국을 맺어준다”고 역설하는가 하면 “인간의 자연적 법칙은 균등”하므로 인간의 행위도 균등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과상여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공무원노조에서는 온갖 문제와 갈등이 지속될 것을 예상하며, 이것이 종국에는 우리의 자리를 옥죌 것이라고 주장1)을 끊임없이 펼치며 고쳐 나가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수원시지부의 조합원(후원회원 포함 : 1,700명)을 고려할 때, 엄청난 미동의(대략 29%)로 인해 실패하고 만 것이다. 실질적으로 어떠한 강제 수단조차 없는 상황에서 조합원이나 직원들을 탓하기엔 무리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애초 지부에서 설문 결과(88% 동의)를 통해 진행한 균등화 작업이었지만, 역시 ‘이성이 아닌 감정적 측면이 강하게 개입’됨으로서 실패한 것으로 자체 분석되고 있다. 이는 지부 운영위 2010년도 성과상여금 균등분배(안) 결정단계에서 조합원들의 ‘감정적 측면’을 더욱 고려해야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이 어렵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인식케 한다.
규칙적이지 않고 예측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관성도 결여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18세기 철학자인 흄도 ‘동정심(sympathy)’이라는 개념을 도덕이론의 근본원리로 삼아, 이를 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다가 결국 단념한 것을 보면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그는 ‘존재’는 ‘당위’를 함축하지 않는다고 피력했는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지’하기 때문에 사업을 수행하는데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상여금 균등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 차선책으로 수당화 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단체에서 균등분배를 한다면 정부의 정책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초기 plus sum 방식에서 zero sum 방식으로 확실히 제도가 변모했음을 인식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성과상여금 제도는 결국 연봉제로 가는 수순임을 알 수 있다. 연봉제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최고의 제도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란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공직사회가 늘 개혁의 대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개가 연못에 빠지는 것도 한 번 정도다. 시간이 지나 두 번 세 번 빠지게 되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세상이다. 사정이 녹록치 않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개와 다수의 학생들 그리고 못말려 교수의 공리주장!
어느 날, 못말려 교수는 윤리학 강의가 있는 걸 모르고 연구에 몰두하다가 늦었음을 알고 후다닥 강의실로 향했다. “아이고 이거 윤리학 시간인데, 늦으면 안 되는 데” 중얼거리며 윤리학 강의실이 있는 건물로 뛰어갔다. 그런데 도중에 연못에 빠져 신음소리를 내며 탈출하고자 바동거리는 개 한마리가 있었다. 못말려 교수는 연못에 빠져있는 개를 보고 그냥 갈수 없어 개를 구출해서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켜 먹을 것까지 주고 강의실로 달려갔다.
강의시간이 한참 지났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했다. 강의 첫 시간부터 늦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못말려 교수는 사과와 함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화가 풀린 학생들을 향해 “이 시간이 윤리학 시간이니 만큼, 실천윤리학 측면에서 못말려 교수의 행위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비록 교수의 강의를 듣지 못한 만큼 손해가 있었지만 개를 구한 행위는 정말 잘한 일”이라고 동의했다.
그런데 다음주에도 강의실을 향하고 있는데, 그 개가 연못에 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정이 많은 못말려 교수는 이번에도 구출해 주고 강의실을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생들이 지난주처럼 전폭적으로 양해를 해주지 않고, “그 개가 알아서 살아 나오든지 말든지 내버려 둬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절반이상 나왔다. “어떻게 한 번 빠졌으면 두 번 다시 빠지지 말아야지, 매번 빠지고 그러냐”며 비난하는 학생까지 나왔다.
강의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그 다음주, 못말려 교수는 강의실을 향하다가 또 다시 그 개가 그 곳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형편이 더욱 궁색한 표정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강의실 분위기가 많이 악화된 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 못말려 교수는 “아, 안돼! 강의시간이 또 늦어지면 안된단 말이야” 하며, 그냥 지나쳤다. 그러면서 인근의 산책하는 사람에게 개가 연못에 빠져 있으니 구출해 줄 것을 부탁하고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에 도착하여 학생들에게 도중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학생들은 “아주 잘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못말려 교수를 칭찬하는 게 아닌가. 개가 처한 위험이 수많은 학생들의 수업권과 비교, 상쇄시킬 만큼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일 게다. 이에 못말려 교수는 “이게 바로 공리주의다. 모든 도덕적 가치판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물론 개의 구출을 부탁받은 사람이 연못에 도착했을 때, 개는 익사하고 말았다.
1. 개는 누구를 상징하며 어떻게 볼 것인가?
2. 학생들은 누구를 의미하며, 그들의 행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3. 그렇다면 못말려 교수의 공리주의 주장은 어떤가?
1) 막막한 들판에서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참 달아나다가 그는 한 언덕에 있는 우물을 발견했다. 마침 우물 안쪽으로 등(藤)나무 덩굴이 뻗어 있어 그 덩굴을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내려가다 우물 밑을 자세히 보니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룡(毒龍)이 입을 쫙 벌리고 있고, 우물 중턱의 곳곳에는 독사(毒蛇)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놀란 이 사람은 꼼짝도 못하고 덩굴에 매달린 채 위를 바라보았다. 우물 밖에서는 여전히 코끼리가 지키고 있었다. 그 때 등나무 덩굴에 마침 벌집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입을 벌려 받아먹기 시작했다. 어느 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꿀맛에 도취되고 말았다. 때 마침 흰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등나무 덩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런 광경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달콤한 꿀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이야기는 불경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다. 우물의 등나무 덩굴에 매달려 꿀물을 받아먹는 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은 바로 우매한 중생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꿀물’은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권력이나 재물’을 의미하고, ‘덩굴을 갉아 먹는다’는 것은 ‘세월이 흘러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에서 성과상여금은 어떤 의미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