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 신학은 잘 못된 신학입니다 !
주님의 은혜와 진리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늦은 비 신학이라는 것이 잘 못되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먼저 "물이 바다 덮음같이"라는 노래 이야기부터 해 봅시다.
성경에 이러한 말씀은 단지 두 번만 나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이사야 11장 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 11장 6절 첫머리에 "그 때에(하 욤)"에 이루어질 완전한 평화 즉 완전한 낙원에서 성취될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나 이후시대 즉 지금 이후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주님이 오시기 전 어느 시절에 무슨 늦은 비와 같은 은혜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로 한 번도 이러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더욱 이러한 평화는 이 땅에서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말씀이 우리가 사는 현실적인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11장 6절부터 9절까지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러한 사회는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하박서 2:14에 있는 말씀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자! 이 말씀은 그 당시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을 때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항의 하듯이, 마치 따지듯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던 예루살렘은 그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하여 망하게 되겠지만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바벨론도 오래지 않아서 더 크게 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바벨론은 이른바 신 바벨로니아였는데 주전 625년 느부갓네살 왕의 부친 나보폴라살이 앗수르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운동을 시작해서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 때 즉, 주전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키고 승승장구 하다가 주전 606년 여호야김 왕 3년에 예루살렘에 와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비롯하여 상당수 포로로 잡아가게 되었고 그 후 주전 597년 제2차로 여호야 긴 왕과 에스겔 선지자 등을 포로로 잡아 갔으며 그로부터 11년이 지나서 주전 586년 4월 9일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제 3차로 포로로 잡아가고 그 해 5월 7일에 솔로몬 성전이 불에 타서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바벨론, 그 큰성 바벨론도 무너지게 될 것인데 그 사건 즉 바벨론이 함락되는 대 사건으로 말미암아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하고 예언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사실 그 사건 즉 바벨론 성에 무너지게 된 것은 실로 기적 중에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 고레스를 쓰실 것 까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전 539년에 이 말씀은 문자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레스가 다니엘의 지도를 받아서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주전 538년 이른바 고레스 칙령이 발효되었는데 그 당시 온 천하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바벨론 성이 무너지게 된 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대 사건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그 후 100 년 이상 온 세상에 전파되어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은 문자대로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 내내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하여 특별한 대우 즉 페르시아 황제들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받았습니다. 고레스 시대는 물론 다리우스 히스타페스 1세 때나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 시대나, 그 다음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 시대에 유대인들은 항상 다른 민족들 보다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고 온 세상을 통치하는 페르시아 황제들이 거의 대부분 예루살렘에 그 전을 두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까 이제는 박종호 씨가 크게 불러댔던 "물이 바다 덮음 같이"라는 노래는 이상한 노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로부터 종말까지는 점점 더 타락하고 부패하고 악하여지고 게을러지고 더 음란하게 되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는 사람들과 훼방하는 사람들과 속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고 배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다른 프로그램들이 교회를 혼잡하게 할 것이며 사단의 역사를 따라 온갖 이적과 기적들이 난무하여 성도들을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며 아무리 시간을 더 연장해 주어도 회개하고 회심하여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아예 없어지게 될 것이며 타 종교에게 신자를 빼앗기고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할 것이며 온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급속히 줄어 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도 믿음을 유지할까 말까 한데 오늘날 교회에서 청년들의 하는 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미래에 무슨 영적 부흥같은 이야기는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늦은 비 신학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 신학의 기원은 성경을 그릇 해석한 사람들에 의하여 경솔하게 이른 바 "늦은 비" 교리를 만들어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 즉 인류 역사의 종말에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이 늦은 비 교리가 터무니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전체를 검색 해 보면 "늦은 비"라는 말이 총 7 번 정도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 어느 한 곳도 말세가 되어서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게 될 것을 예언으로나 약속으로 기록된 경우는 없습니다.
(욥 29:23)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 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①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잠 16:15)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②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렘 3:3)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③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렘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④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⑤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⑥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⑦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오순절 신학의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성경 구절 중에서 특별히 요엘서 2장 23절을 근거로 말세에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가르쳐 왔고 그래서 이른 바 성령운동이라는 것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요엘서 2장 23절에 있는 말씀은 전혀 말세에 성령의 늦은 비가 온다는 예언도 아니고 약속도 아닙니다.
요엘 선지자가 한 말은 요엘이 살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도 않고 죄악에 빠져서 악을 행할 때 여러 예언자들을 통하여 책망해 오다가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은 대게 세 가지 양상으로 임했습니다.
첫째 심한 한재 즉 가뭄이 계속되어 들에는 푸른 풀이 없었고 모든 식물들 즉 곡식과 과일이 결실하지 못하였고 들에는 푸른 풀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둘째, 메뚜기 팟종이 늣과 황충이 온 세상에 나머지 푸른 풀과 나무 겁대기까지 다 갉아 먹어서 나무 가지가 다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고
셋째,들에서는 들불이 나서 마른 풀과 나무까지 다 타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 먹을 음식도 음료도 구할 수가 없고 소떼나 양떼가 풀이 없어서 새끼를 낳아도 내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쳐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간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엘2:18)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용서하실 것이라는 것과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정상화 되면 사람과 땅 즉 인간 세상과 자연이 다시 관계가 회복되어 밀과 보리씨를 뿌릴 때 내리는 이른 비와 결실기 즉 3월이나 4월에 내리는 늦은 비가 다시 회복되어 타작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주와 감람유가 넘쳐 흐르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전혀 인류역사 종말에 영적인 대 부흥이 있을 것을 예언한 것이 아닙니다. 요엘서를 가지고 엉터리 해석 즉 영적인 해석을 한다고하는 분들이 그런 터무니 없는 해석을 하다가 마침내 "늦은비 신학"이라는 이상한 신학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초기에 오순절 교리의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을 잘 못 해석하여 오해를 초래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오해할 수 있는 용어였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말세"는 유대 역사의 말세를 지칭하고 있고 그 말세는 다시 몇 가지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첫 째,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가는 말세를 말할 수 있고 둘 째, 말라기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셋 째,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는 주후 70년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한편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베드로의 설교에 나오는 말세라는 말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일주일만에 성령이 강림하셨던 그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말세라는 말에도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육체가 되어 세상에 오셨던 것이 말세라는 입장입니다.
(고전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말하는 말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박해시대를 말씀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상학적으로 보면 정말 종국사적인 종말, 즉 말세지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末世)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야고보서가 말하는 "말세"라는 말도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약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末世)에 재물을 쌓았도다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서 말하는 "말세"도 주님께서 오셨던 때로부터 주님의 재림까지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末世)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末世)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러나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는 "말세"라는 말은 인류 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에 있을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벧후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末世)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말세(The time of the end)라는 말은 세상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말로써 성서에는 말세에 대해 많은 것이 기록되고 있고,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는데, 따라서 번역도 여러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보면 [정한 때의 끝](단 8:17,19), [마지막 때](단 11:35,40,12:4,9), [말일](호 3:5기타)등이 보여져, 종말론적 최후의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약에도 여러 가지의 번역이 있는데, [말세](행2:17,딤후 3:1,약 5:3,벧후 3:3). [마지막 때](히 1:2,I요 2:18, 유 1:18), [세상 끝](마 24:3기타), [끝](마 24:6)으로서,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한 세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마 24:11,12에도 계시되어 있는 대로, 이 세계가 점점 진보되어 황금시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도리어 큰 환란의 시대가 올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아울러 사도들의 종말관이었습니다(마 24:21,29,벧후3:7,계 7:14), 특히 마 24장에서는 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하고 두 가지의 것을 예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마 24:3). 그것은 성전 파괴의 일과 세상 끝에 있는 재림(종말)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예수께서 는 먼저 답으로는 성전 파괴의 일,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6)고 하시면서 몇 가지의 일어날 말세의 징조를 보여 주셨습니다. 1. 스스로 그리스도라 하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5). 2. 난리(전쟁)와 난리의 소문(6,7). 3. 처처에 기근 (7). 4. 지진 (7). 5. 교회에 대한 박해 (9). 6. 교회 내에서의 배교와 타락 (10-12). 7. 전 세계에의 복음 전파 (14).
이 중에서 특히 예수께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은 [거짓 그리스도] 및 [거짓 선지자]의 미혹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여 미혹하는 자가 있었습니다(살후 2:2). 근대에도,전세기에 죠셉 스미스(Joseph Smith 1805-44)라는 사람이 예언자로서 계시를 받고, [몰몬경]을 쓴 데서, 몰몬교, 즉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1914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주장에서 [여호와의 증인](Watch tower)이라는 이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할 것은, 외부에서의 박해와 내부에서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교는 결코 정지되는 일 없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증거를 듣는 때, 끝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 복음선교도 종말의 징조의 하나지만 그렇다고 종말에 무슨 큰 영적이 부흥이 일어나서 온 세상 사람이 다 주님을 믿게 되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말세야말로 [고난의 시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딤후 3:1) 그것은 특히 신앙이 동요되는 때, 키질되는 시련의 때로서, 이하의 19종의 악행이 행해지는 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역사의 흐름이 전 인류의 향상 발전으로 지향해 간다는 그러나 헛된 환상을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계몽되고, 계발되어 가면, 드디어 유토피아적 세계가 실현된다는 이상주의는, 19세기적인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성서는 인간의 본성을 용서없이 도려 내어, 폭로하고, [말세]에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전 인류의 배교와 타락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일람표로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자기를 사랑한다(딤후 3:2). 자기애이다. (2) 돈을 사랑한다(2). 탐욕이다. (3) 자긍한다(2). (4) 교만하다(2). (5) 훼방한다(2). (6) 부모를 거역한다(2). (7) 감사치 아니한다(2). (8) 거룩하지 아니하다(2). (9) 부정하다(3). (10)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3). (11) 참소한다(3). (12) 절제하지 못한다(3). (13) 사나웁다(3). (14)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3). (15) 배반한다(4). (16) 판다(4). (17) 조급하다(4). (18) 자고한다(4). (19)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 이 악덕표, 죄표는, 바울이 다른 곳에도 쓰고 있는 것으로(롬 1:28-31과의 유사점은 크다), 이것을 낭독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새기게끔 해주려 한 것입니다(딤전 1:9이하, 롬 1:28이하). 말세가 되어 신앙을 잃고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인데, 그러므로 성서의 진리에 거해야 할 것도 말해 주고 있습니다(딤후 3:16). 이 말세의 때는 이미 시작되어 있고(딤후 3:1,히 1:2,벧전 1:20), 이 때는 고난의 때이며,신앙의 시련을 경험하는 때인데(막 13:11), 그러나 마지막 때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로 되고 있습니다(벧전 1:5,7,20, 벧후 3:10-13). 그 [마지막 날]에는 (요 12:48), 신자는 심판을 넘어, 구원의 소망을 얻는다.[말세]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신 31:29의 [아하리스 야-밈]의 역에 있어서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받을 이스라엘의 재난에 대해 모세의 노래 중에 인용되어진 것으로서 창 49:1,민 24:14에서는 후일로, 신 4:30에서는 끝 날로 번역하고 있는 말입니다.
구약에 있어서는 말세가 거의 [마지막 때]로 번역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헬라어 [하이 에스카타이 헤-메라이](행 2:17,딤후 3:1,약 5:3,벧후 3:3), [에스카토스 호 크로노스](벧전 1:20), [텔로스](고전 10:11)가 말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 끝에 보여지는 헬라어 [텔로스]와 마 13:39, 24:3, 28:20의 [세상 끝날]까지로 번역 된 헬라어 명사 순텔레이아 와 다른 점을 든다면, [텔로스]는 궁극적인 최후의 때를 말하는 것이고, [순텔레이아]는 어떤 시간적인 내용을 가진 기간적인 끝의 시대입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이 되면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린다고 말씀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불법은 성하고 사랑은 식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악해지고 죄악이 관영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며 사탄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7: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24: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막 13: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눅 6:26)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고후 11: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살후 2: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계 19: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20: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앞으로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은 기대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계시록 6장 12절 이하에는 별이 떨어지는 큰 충격에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천사들로부터 인을 맞게 되는 이야기가 계시록 7장으로 이어지는 데 그 때에 무슨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교회들이 물질주의 향락주의에 잠들어 갈 때 교회를 깨우시기 위하여 취해진 그 엄청난 충격에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세속에 빠져 잠들었던 영혼들이 회개하고 각성하자마자 곧 바로 이어지는 큰 환난을 인하여 온 세상이 고통과 재앙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의 환란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대 환란이 될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마침내 생태계가 삼분지 일이 파괴 되고 전 인류는 거의 절반이나 사망하게 되는 가운데 거짓 선지자 즉 음녀는 온갖 이적과 표적으로 성도드을 미혹하는 가운데 할 수만 있다면 택한 백성까지 미혹하려 합니다. 적그리스도 즉 큰성 바벨론의 괴수 짐승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혹독하게 박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교회의 영적인 부흥이나 황금시대 같은 것은 호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처음 출반되었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중동 지방의 기독교는 99 %가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그들의 회개는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절반은 이미 로만 카톨릭, 즉 만국종교 혼합주의에 물들어서 회개는 커녕 오히려 지금 기독교를 변질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필 화해와 일치를 외치면서 머저리같은 신학자들과 분별력 없는 정치 목사들을 향하여 추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국교회는 이미 잠들었거나 묻을 닫고 있으며 루터교는 이미 죽은 것이냐 다름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힘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무신론, 유물론, 공산주의, 진화론, 공산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허무주의,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프리메이슨, 뉴 에이지, 다빈치 코드 같은 마귀적인 사상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회들 중에 몇 개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해마다 기독교를 떠나서 다른 종교로 넘어가거나 아예 종교를 떠나서 무신론자로 전락하는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세요 ! 권위도 없고 품위도 없이 경박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세속주의에 빠져버린 교회에는 경건의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의 모양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신학대학에서 자행되는 학설들을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들으면 아마도 혼절하게 될 것입니다.
샬 롬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7 장은 약간 어려운 문장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들여다 본 자기 내면에는 선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악한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자기 안에 들어 있는 그 죄성이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기와 함께 내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깨달은 것은 범죄 행위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자기 안에서 자기의 연역한 양심을 이기고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악한 죄성을 본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죄성이 자기의 연약한 양심을 항상 이기고 있어서 스스로 선을 알고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악을 행하고 마는 비참한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죄의 세력이 어찌나 큰지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노력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고 이길 수도 없는 자신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어떻게든지 그 죄와 결별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죄가 악한 남편처럼 군림하면서 절대로 이혼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오직 한 가지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한편이 죽으면 자동으로 이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지옥을 가게 되니까 죽을 수도 없고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 다시 절규 하다가 거기서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결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육신으로 실행에 옮겨질 때 보면 꼭 육신의 법을 따라 이기적으로 육신의 사욕을 쫓아 행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결론은 몸의 사욕 즉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살면 그는 언제나 죄를 짓게 되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그가 로마서 8장에서는 육신을 쫓아 살지 않고 영을 쫓아 살아야만 육신 속에 있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서 살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 로마서는 반드시 1장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해야 하는데 특별히 로마서 7장을 알기 위해서는 6장을 먼저 정밀하게 읽고 나서 8장까지 연결해서 읽어야 원만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어와 개념이 어려우시면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샬 롬
에스라하우스 |
첫댓글 에스라하우스에서 늦은비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오순절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참 어처구니없고 통탄할 노릇입니다.
말세에 사단의 역사가 강하면 강할수록 늦은비 성령의 역사는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오순절 성령의 사역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까지 계속될 것이며.. 성령의 계시는 계속될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 인류역사 6천년은 3기로 나누어 볼 때.. 예수님 이후 부터가 말세가 되는 것이며, 지금은 그야말로 말세지말인 것입니다. 요엘을 통해 약속한 말세의 늦은비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로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며, 성령의 사역의 마무리는 주님 재림때 까지인 것입니다.
늦은비 성령의 역사는 어렵게풀 것이 아니라 늦은비가 갖는 역활이 알곡만드는 역할이기에모든 추수를 마감하기위한 필수적 현상이요알곡은 타작마당에서 갈리는 역사가 종말이요 심판이요 마지막인데 그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늦은비를 비유로 드는 것입니다 엘리야 다음 엘리사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거죠
에덴은 뱀으로 신약은 독사로 계시록은 용으로 대응 수위가 다르듯 우리도 바뀌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