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선(二禪) 삼선(三禪) 사선(四禪)
이 각(覺, 거친 마음의 관찰)과 관(觀, 미세한 마음의 관찰)의 두 사안은 선정의 마음을 혼란시키며, 마치 물이 맑고 고요한데, 파도가 일렁이면 흐려지는 것과 같다. 수행자가 이와 같이 이미 안으로 한마음인데도 각과 관으로 번민하게 된다. 지극하여 휴식을 얻는 것과 같고 잠을 자서 편안함을 얻는 것과 같으며, 이 때 점차 각도 없고 관도 없어서 청정한 선정을 일으키고 '내정(內淨), 희(喜), 낙(樂), 정(定)' 네 가지 마음작용에 따라서 이선(二禪)에 들어갈 수 있다.14) 마음은 고요하고 묵연(?然)해서 본래 얻지 못하여, 이제 이 기쁨(喜)을 얻고, 이 때 마음의 관(觀)은 기쁨으로써 근심을 삼는 것이 앞에서 말한 각과 관이 같다.
기쁨이 없는 법(無喜法)을 행하고, 곧 기쁨의 경지를 여읜 성현들이 말씀하신 바의 즐거움(樂)을 얻으며, 한마음으로 진리를 알고 생각하고 보호하여 삼선(三禪)에 들어갈 수 있다. 이미 기쁨을 버렸기 때문에 진리를 알아서 즐거움을 지키려는 알음알이(念)를 기억한다. 성인은 평온(念)하여 즐겁다고 말하고 범인은 평온(捨)을 즐겁지 않다고 말한다.
즐거움 중에 첫째가 이렇게 지나가면 다시 즐거움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성인은 일체의 깨끗한 땅에서 자애를 최고의 즐거움이라 설하였다. 즐거움(樂)은 곧 근심이다. 왜 그러한가? 제일선(第一禪) 중에서는 마음이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으며, 무사(無事)하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있으면 곧 변화가 있으며, 변화가 있으면 곧 괴로움이 생긴다. 그러므로 삼선(三禪)에서는 즐거움으로써 근심을 삼는다. 또한 선묘(善妙)로써 이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버린다. 먼저 근심과 기쁨을 버리고 괴로움과 즐거움의 마음을 없애며, 청정함을 호념(護念)하여 제사선(第四禪)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하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챙김이 있는〔不苦不樂護淸淨念〕한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평온하여 최고로 청정한 것을 제사선(第四禪)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삼선(第三禪)은 즐거움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하여 괴로움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선(四禪)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제거하여 없애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 곳(不動處)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