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한 복싱 챔피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개를 숙였다. 지난 5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최요삼 WBO 라이트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의 영결식 자리에서였다. 권투인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말이 없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모인 챔피언들의 겉모습에선 그들의 삶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하나의 정점(頂點)을 지나온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65㎝의 작은 키에 선한 눈빛. 복싱선수와 거리가 먼 인상이지만 유명우는 세계 최고의 주먹이었다. 링 위에서 그는 냉정했다. 상대선수에게 소나기 펀치를 퍼부으며 승리를 챙겼다. 복싱팬들은 이런 그를 '귀여운 악마'라고 불렀다. 1980년대 WBA 라이트플라이급을 지배한 유명우(44)는 수원에서 오리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권투인으로 받은 것을 권투인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강펀치로 이름을 날린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46)은 건설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변정일 WBC 밴텀급 TV해설가·에이전트·프로모터… “복싱 발전하려면 팬들에 볼거리 줘야”
변씨는 케이블 방송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한국 복싱 경기의 중계권을 알선하는 에이전트로도 일한다. 복싱 체육관과 여자 프로 복싱 프로모터 일도 한다. 변씨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복싱을 만들겠다"며 뛰고 있다. 그는 "권투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변화해야 한다"며 "권투도 K-1 같은 이종격투기처럼 볼거리가 많은 엔터테인먼트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0년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정확히 1979년 3월부터 1980년 5월까지 국내 프로복싱 최고 스타는 박찬희(50, SBS복싱 해설위원)였다. 박찬희는 1979년 3월 18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미겔 칸토(멕시코)를 상대로 WBC 플라이급 챔피언에 도전했다. 도전자 박찬희의 나이는 22살, 챔피언 칸토는 31살의 노련한 복서였다. 키는 162cm의 박찬희가 칸토보다 7cm가 컸다. 젊음을 앞세웠지만 예상은 박찬희가 불리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챔피언의 명성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권투 흥행을 위해 50대에 링 위에 오른 이도 있다. 전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염동균(55)은 지난해 12월 23일 충북 음성체육관에 마련된 링 위에 쓰러졌다. 발이 꼬여 넘어진 슬립다운. 그를 내려다본 상대 선수는 IFBA(국제여성복싱협회)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 우지혜(19). 경기는 주먹에 힘을 싣지 않고 기술만을 겨루는 '메서드 복싱(method boxing)'이었다. 염씨의 현재 직함은 극동서부복싱프로모션 대표다. 문성길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철판볶음밥 체인점 네 곳 운영 “맞아가며 번 돈, 허투루 쓸 순 없지”
전 WBA 밴텀급,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돌주먹' 문성길(44)씨는 "챔피언도 은퇴하면 원칙을 따르는 평범한 사회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서울 가락동 집 거실에는 '원칙자(原則者)는 불이익(不利益)이 없다'고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 철판볶음밥 체인점 4곳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된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치면서부터 억울한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유제두 WBC 주니어 미들급 4층 건물 올려 복싱체육관 운영 “권투밖에 몰라… 그래도 난 행복해”
유씨는 서울 독산동에 있는 자기 소유 4층 건물의 4층에 살고 있다. 지하에는 그가 직접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이 있고, 1층부터 3층까지는 세를 주고 있다. 1979년 은퇴한 그는 1983년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파이트 머니로 이 건물을 지었다. 유씨는 "시골 고등학교에서 복싱을 배워 65년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하고 살아왔다"며 "복싱을 시작한 이래로 아예 다른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158cm의 작은 키에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콧수염을 휘날리며 거침없이 상대를 몰아 붙이던 파이터가 있었다. '작은 탱크', '라이터 돌'이란 별명처럼 한번 찬스를 잡으면 그의 펀치를 베겨낼 장사는 없었다. 현재 김 관장은 20여명의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시합이 있을 때는 보름에서 한 달 가량을 집에서 합숙을 함께 할 정도로 후배 양성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후배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장정구 WBC 라이트플라이급 “운동 너무 힘들어 은퇴후 조깅도 안해 담배도 못 끊겠고… 거의 매일 술 마셔”
'짱구' 장정구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44)는 여전히 '짱구'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숱이 줄어 현역시절처럼 동그란 모양은 아니었지만 파마머리는 그대로였다. 그는 "요삼이가 갔으니 이제 내가 복싱계에서 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요삼이 소속된 용프로모션의 대표로 이름을 걸고 있었다.
복싱 프로모션 대표를 제외하면 지금 장씨가 가지고 있는 직함은 두 개. 건설회사 사장과 한나라당의 자원봉사단체 단장이다.
하지만 그는 "모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며 "은퇴한 이후 나 혼자서 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12살 때부터 복싱만 해온 사람"이라며 "링에서 주먹 쓰는 일 말고 한 게 없으니 사회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은퇴한 이후로 조금도 운동을 하지 않는다. 권투는커녕 골프도, 테니스도 안 하고, 조깅조차 안 한다고 한다. 그는 "운동할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운동이 싫어졌다"며 "1980년에 프로 데뷔해서, 경기할 때마다 10㎏씩 살을 뺐으니 싫을 만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현재 체중은 62㎏. 그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고 했고, 말하는 내내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꺽고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 밸트를 차지했다.
이때 그가 유행시킨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한국 최초로 두 체급에서 세계챔피언을 지낸 그는 1980년 12월 염동균과의 라이벌전을 끝으로 링을 떠났다.
홍씨는 두번이나 세계타이틀(74,77년)을 차지했지만 두번 다 2차방어전에서 무너져 단명으로 끝났다.
1974년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과 1977년 세계권투협회(WBA) 주니어 패더급 챔피언에 오르며, 한국 최초의 2체급 제패한 4전 5기 정신의 홍수완
홍수환 "진정한 챔피언은 링 아닌 인생의 챔피언"
열아홉의 나이에 권투선수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스물네 살 때 밴텀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3년 뒤, 스물일곱에 주니어 페더급 세계 타이틀을 석권하였습니다. 한국 권투의 대표 브랜드 홍수환(58) 전 WBA 밴텀급,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은 지난해 12월 29일 권투인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혔다. 협의회는 고 최요삼 선수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전 챔피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복서들의 단체다. 1997년 한국 최초의 세계챔피언 김기수씨가 별세한 이후, 홍씨는 한국 복서들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박종팔 IBF·WBA 슈퍼미들급 “술집 차려 큰돈도 만져봤지만… 이젠 건설업으로 새출발 할 작정”
'링 위의 호랑이' 박종팔 시계바늘을 약 30년 전으로 돌린 1977년 신인왕전. 역대 많은 복싱 스타를 배출한 신인왕전은 그 해도 어김없이 한국복싱계, 특히 중량급에 길이남을 대스타를 탄생시켰다. 주인공은 바로 국제복싱연맹(IBF) 슈퍼미들급과 세계복싱협회(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에 빛나는 '링 위의 호랑이' 박종팔이다.
중량급으로 80년대를 호령했던 박종팔(48) 전 IBF·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은 은퇴를 '사회라는 새로운 사각 링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을 인생 3라운드가 시작되는 해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식 WBA 플라이급 갈빗집·당구장·커피숍… 하는 족족 안풀려 “챔피언 키우겠다” 25년만에 복싱으로 U턴
WBA밴텀급 챔프 ‘돌주먹’ 김태식 왕년의 돌주먹 김태식(50)씨. 20전 17승(13KO승) 3패가 말해주듯 일발필도의 펀치로 1980년대 초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그의 복싱 경력은 짧지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홍수환 전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챔피언을 키운 명트레이너 김준호씨에 의해 1977년 입문했다. 데뷔 2년여만인 80년 2월 WBA 플라이급 챔피언 파나마의 루이스 이바라를 2회 1분11초만에 KO로 눕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내리찍는 오른손 주먹이 강렬했던 전 WBA 플라이급 챔피언 '독일병정' 김태식(50)은 지난해 5월 경기도 부천에 체육관을 열었다. 김씨는 "남을 잘 믿은 게 평생의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했던 갈빗집도, 당구장도, 커피숍도, 오퍼상도 모두 다 '아는 사람'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1980년 한 해에만 4억을 넘게 벌었던 그도 몇 번이고 사기를 당하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25년 만에 권투로 귀향(歸鄕)했다. 그는 "25년이나 기다렸으니 '큰일' 한번 쳐보겠다"며 "복싱을 외면하는 방송사가 모두 달려들 만한 제대로 된 챔피언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조인주 WBC 슈퍼플라이급 “선수 되겠다는 관원 키우고 싶은데 요즘엔 좀 세게 다그치면 다 그만둬”
전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39)씨는 '생활 권투 체육관'을 내세우는 변씨와는 반대로 서울 용산구에서 '정통 권투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진짜 선수가 되겠다는 관원을 키우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선수'를 키우겠다는 그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각박하다. 수강생 중 선수가 될 재질이 있는 사람은 10명에 1명꼴. 조씨는 "조금만 강하게 다그치면 체육관에 안 나온다"고 한숨지었다. |
출처: 해송 원문보기 글쓴이: 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