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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비잔틴이 전염병만 아니였다면 로마를 다시 수복해서 팍스 로마냐를 제현할 힘이 있었을까요?
엘민스터 추천 0 조회 1,207 12.02.16 20:08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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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2.16 22:43

    첫댓글 일단 일시적으로 이탈리아 회복에 신경 쓸수 있었던게 사산조하고 휴전상태였기 때문이죠.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사산조의 침입이 있을때마다 액수를 늘려가면서까지 휴전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 여기에 불안정했던 발칸 방어선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무리였을 겁니다. 제는 제국이 11c까지 용캐도 이탈리아 남부를 가지고 있었구나 생각합니다.

  • 12.02.17 01:00

    아무래도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국 자체의 힘과 문화는 여전히 당대 유럽에서 탑 클래스에 들어갔지만(상황에 따라 들쭉날쭉 했습니다만...) 원수정 시대에 상대 민족들에 대해 누렸던 힘의 우위를 누릴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로마가 쇠퇴하면서 동서로 갈라지고 동로마만이 남는 등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 '로마 바깥세계'에 있던 민족들의 역량이 로마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스스로 커져간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시기쯤 되면 이것이 고착화되고 과거에 비해 더욱 힘의 차이가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 12.02.17 01:06

    군사적인 힘을 갖춘 것에 더해 (로마에 비해)엉성하게나마 자신들만의 정치, 행정 체계를 갖추고 나름대로 기반을 다져나가는 당시 서유럽을 보면, 로마가 일방적으로 이들을 제거하고 자신만의 일방적인 영향권을 영구히 세우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산조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댐으로써 양면 전선에 대한 부담을 짊어진 로마의 상태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 12.02.17 01:11

    사실 아랍민족의 침투와 잇다른 이슬람화가 없었다면 계속해서 지중해의 슈퍼파워로 군림했을거 같지만 이쯤되먄 판타지 영역이니 뇌내망상일뿐 (...)

  • 12.02.17 01:17

    혹시 사산조 페르시아 문제가 해결된 상태였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가혹한 현실을 감안하면 역시 어렵습니다.

  • 12.02.17 01:18

    10만이상 동원해 유럽을 자주 공략했던 오스만도 실패했죠 오스만 영토가 동로마 영토와 거의 일치하는데.........

  • 12.02.18 12:23

    오스만 10만 설은 어디서 듣었는지 모르겠는데.. 동원은 할수 있으나.. 폴란드,합스부르크,베네치아,러시아, 사파비 이란 사방이 적인데. 어딜 한곳에 10만 꼴아박습니까? 당시 유럽국가보다 동원인력은 많지만 10만은 어디서 나온 야그입니까?(비잔틴도 전성기에는 20~30만 동원력이 되는데 어디 한 전장에 그리 많은 인원을 투입했는지? 궁금하군요..)

  • 12.02.18 13:35

    10만 이상 동원한 전력이 꽤 되지 않습니까? 17세기 초반 합스부르크 전선에도 10만을 동원했고 코침 전투때도 10만 이었고 이후 17세기 중,후반 부터 지속적으로 치고박는 폴란드나 함스부르크 전선에 10만을 동원한 전력이 꽤 된다고 알고있습니다만..;ㅂ; 당시 제국의 전선은 크게는 유럽전선과 사파비 전선인데 한쪽 전선을 수세로 한쪽 전선을 공세로 하는 것이 제국의 주요 방침이었고 공세로 나아가는 전선에 동원 병력이 보통 10만정도 동원하는 면을 보이던....

  • 12.02.18 14:38

    콘스탄티노플 공성전만 예를 들어도 낮게잡아도 8만은 족히 되는데 1차 빈공방전에는 (위키에 의하면) 수십만이 한 전역에 전개된모양이고 1683년의 마지막 빈공방전때도 (역시 위키에 의하면) 150,000명이라는데요. 그 쪼그만 섬인 몰타에만 5만가량 꼬라박은 오토만입니다. 인력 갑임.

  • 12.02.18 15:58

    오스만은 합스부르크가와의 헝가리 전쟁때 20만, 폴란드 전쟁때도 20만 정도를 투입했습니다. 30년 전쟁기에는 술탄의 한마디로 한 전선에 20만의 대군을 파견할 수 있었던 국가가 바로 오스만이었죠 -_-;;

  • 12.02.18 17:04

    오스만 전성기떄에는 중양 짱꺠입니다

  • 12.02.18 23:31

    오토만 인구가 대충 2000만쯤 된다고 들었는데 2000만에서 20만명 뽑아내는거야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쳐도 저렇게 수차례에 걸쳐서 대규모 부대를 동원하는거 보면 생각보다 오스만의 행정력이나 동원력이 좋왔나보네요. 아니면 인구가 2000만이 아니었던것이가 ㄷㄷㄷ

  • 12.02.19 11:38

    오스만은 절대군주정을 수립한 그당시 거의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때문에 장기전으로 갈 수록 어떤 전쟁이던 오스만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버리죠..(이 공식은 15c ~ 16c)

  • 12.02.19 14:35

    http://en.wikipedia.org/wiki/Military_of_the_Ottoman_Empire#Ottoman_Army_Strength.2C_1299.E2.80.931826

    위키 백과의 설명을 참고하면, 오스만 제국이 한 전선에 20만 들이 붓는다는건 엄청난 모험 같은데요;; 과장이 아닐까요. 모하치 전투 항목을 보면, 술레이만 대제의 군대가 고작(?) 55,000명 가량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고.

  • 12.02.19 18:10

    아뇨, 실제로 헝가리 13년전쟁에서 투입된 술탄의 친정군만 해도 15만에 육박했고, 30년 전쟁기의 폴란드 원정에는 20만의 대군이 투입된 적이있었습니다(결국 이는 예니체리의 불복종으로 실패하지만요)

  • 12.02.17 01:59

    개인적으로는 영구적으로는 몰라도 상당히 장기간 유지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다만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되는데 1)사산조와의 전선이 7c의 캐삭빵까지 커지지 않을 것 2)그 이후 이슬람처럼 장기적으로 교세를 유지하는 3세력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먼저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의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 로마 제국은 서방 원정에 그렇게 막대한 전력을 쏟아붇지 않았습니다. 사산조와의 전선에서 주력부대를 빼내서 원정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남는 힘을 투입했음에도 이탈리아와 카르타고, 스페인 남부를 수복했고
    특히 스페인에는 극히 일부의 전력만 주둔했음에도 오랫동안 통치력을 유지합니다.

  • 12.02.17 22:46

    캐삭빵이 뭔가했는데 찾아보니 정말 적절한 비유군요 한참 웃었네요

  • 12.02.17 02:14

    이게 고무적인게 그렇게 큰 역병 크리를 맞고도 로마 제국은 최소한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카르타고, 스페인의 전선을 유지할 역량이 있었다는 것과, 그 대부분의 영토는 7세기의 대전쟁 후 국력이 극도로 소모된 상태에서 이슬람에게 뺏겼다는 점이고, 그 와중에도 이탈리아와 카르타고는 꽤 오랫동안 점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최소한 카르타고의 점유는 제국에게 이득이었습니다. 카르타고의 경제력은 원수정 시대를 초과한 상태였고 실제로 헤라클리우스는 카르타고에서 제권에 도모할 정도로 충실한 후방기지가 되었다는 점,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역병으로 인해 로마 제국의 팽창과 통치가 일시적으로

  • 12.02.17 02:08

    멈추지 않았다면 카르타고와 이탈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꽤 공고히 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특히 페스트로 인한 세수와 인구 감소, 유스티니아누스 본인도 페스트에 걸려 사업 추진력 자체가 떨어지고 한 때 제위 승계 이야기까지 나왔던것을 보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장기간 통치권을 굳힌 로마 제국이 역병이 없었다면 더욱 빨리, 강고하게 지배권을 확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온 수익은 그대로 국방이나 외교 강화로 이어졌겠죠.

    문제는 캐삭빵 매치인데 이탈리아와 카르타고, 스페인의 점유가 이후 7C의 대전쟁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극히 일부만 따지자면

  • 12.02.17 02:12

    재정상태가 그나마 풍족했다면 발칸 전선의 유지가 쉬워졌을테고, 그로인해 마우리키우스가 반란에 살해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좀 길게 보면 캐삭빵 매치가 양쪽 모두 등골 뽑아먹을 정도로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메카나 메디나가 실크로드의 무역 거점으로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무함마드는 그냥 사막 소수종교 선지자로 끝났을 수도 있고...뭐, if가 너무 많이 붙기는 합니다만 유스티니아누스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로마가 다시 슈퍼파워의 지위를 회복하고 사산조와의 관계가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크로스 카운터 맞는 지경까지는 안갔을지도 모르죠.
    물론 가장 희망적인 가정입니다만.

  • 12.02.17 02:21

    만약 대제의 의지되로 진행되었다면 로마군과 몽골군이 맞붙는 진귀한 장면도 볼수있었을란지도 모르겠군여 ㄲㄲ

  • 12.02.17 02:30

    그걸 제대로 로망화한 작품이 비잔티움의 첩자 아니겠습니까 ㅋㅋ

  • 12.02.17 02:31

    오오오 남자의 피가 끓어오르는구나

  • 12.02.17 15:47

    로마 vs 몽골이라니..오오오 ! !

  • 12.02.17 18:19

    뭐 피가 끓어오르고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SF+ 에스피오나지물.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2.02.18 10:35

    그러나 야만족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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