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엇그제 주말이 지났는데 어느새 또 다가온다. 달라진건 사람마다 밭갈이 나선 소처럼 입마개를 둘렀다는 점이다.
소에게 입마개를 둘리는 아유는 밭을 갈다 눈에 보이는 풀에 관심을 갖지 말고 일에 전념하라는 의미의 장치이다. 이쯤해선 사람들도 다른 것들에 쓸데없는 관심을 삼가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것일게다.
이른바 장마철에 접어들어 연일 날씨가 흐리다. 그나마 산행을 함에 있어서 무덥지 않아서 좋다.
어머니가 서울에 가신터에 그 방을 잠시 쓰면서 평소 보지 않았던 TV를 보았다.
나이나 습관탓인지 마땅히 볼거리 없다. 우리 이웃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그곳 백련리가 고향이라는 노래 잘하는 정동원이 나오는 미스트트롯도 그렇고...(동원이 또래 조숙한 그들의 의식수준이 대한민국 전체 세대를 평균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십년 전에 유행했던 노래에 심취되어 헤벌레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나, 색상 바랜 화면의 드라마를 보며 눈을 깜빡대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고작 20여년 전에 보았던 '전원일기' '서울의 달'이나 최근의 '나는 자연인이다'정도 재방송 프로의 영상으로나마 바깥 공기를 마신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고전적인들을 선호해서가 아니다. 도서관의 신간코너만 보아도 요즘은 다수의 소시민들이 아닌, 능력과 환경마져도 차별을 금기시하는 광기(?)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점령 당하고 말아 새로운 것에 흥미를 잃었다.
때론 어린애처럼 떼쓰면 일순간 통할 순간은 있지만, 오래 지탱하기엔 좁은 지구촌 냉정한 인심이 좋게 보지는 않을 것같다.
그중 실제로 내게 흥미가 있는 것은 자연인 프로이다. 자연인의 경우 그들이 산을 선택한 이유는 대략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였거나, 중병이 걸려 마지막 치유를 위한 사람들로 세상과 동떨어진 고립된 생활에 있었다.
그들의 생활상은 쌀과 직접 기른 채소가 주이고, 간혹 키우는 닭이나 웅덩이의 물고기 등 별식의 재료로 식생활을 하며, 거기에다 산삼이나 기타 약초 등을 재배하거나 자연에서 채취하였다.
영상을 보면 정말 한자리 끼고 싶은 한적하고 부러운 환경에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고, 아무렇게 꾸밈없는 자연스런 거처를 마련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 자연인이란 타이틀에 부합하려면 민가와 멀리 떨어진 산속에 위치하는 것이 맞는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는 마을의 농토가 끝나는 지점에다 집을 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건 최소한의 자연의 혜택만 유지하며 사는 것이 취지에 맞을 것이지만, 많은 경우가 산림과 토지를 소유하고, 차를 이용하여 시중의 건축 자재를 들여와서 집을 지었다.
산양삼과 약초를 심고, 자급자족을 넘어서는 과일나무를 재배하는 영농인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모습에서 그냥 우리가 생각하기엔 생활의 여유가 있어 조건이 좋은 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우리들도 갖고싶은 삶을 산다는 부러운 생각에 그쳤다.
실제 자연인의 프로그램에 나왔던 사람에 의하면, 동네 가까운 산에 사는데 별로 보여줄 꺼리도 없이 정해진 방송분량을 소화하는데 잔뜩 부담만 있더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렇다고 자연인의 프로에 카메라에 잡힌 그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 그들 스스로 "나는 자연인이다" 라고 대놓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속은 자보다 속인 자(연출 자)가 더 나쁘다.
흔히 접하는 음식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분야에도 제작자들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뻔한 내용의 연출을 시도한다고 하였다. 내가 다녀본 웬만한 면단위 시골식당에도 방송촬영의 흔적이 많았다.
그러나 자연인들에 관한 내용은 흥미가 아니라, 실제로 도회에서 심신이 피로해진 사람들에겐 삶의 도피나 마지막 위안을 삼고자하는 목적이있으므로 좀더 진솔해졌으면 좋겠다.
흔히 일반인들의 출입을 불허하는 통제된 산이나 무인도에서 귀한 약초를 캐면서, 사전에 허가받은 것이라는 자막을 화면에 내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솔직히 개인의 사유지라면 거론할 대상은 못되겠지만, 그러하지 않은 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보존한 귀한 자원을 누군가는 손쉽게 독점해 버린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폄하한다거나 비위가 뒤틀려서가 아니고, 나 자신도 그러한 생활에 관심이 있기에 좀더 실제 상황과 근접히는 내용을 방영함으로써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데 있다.
그런데 며칠전 방송을 통하여 모처럼 진짜 자연인을 보았다. 사업을 하다 마지막엔 어려움을 겪은 후 산으로 들어온 자연인이었다.
그는 집주변에다 채소를 심어놓고 잡초도 뽑지 않았다. 수확물은 적어도 자연 그대로의 생활에 다가서고 싶다는 의지에서란다.
매일 산을 오르면서 눈앞에 보이는 약초나 버섯채취도 하지 않았다. 병든 몸이 아닌 자신이 그것들을 채취해 버리면, 더이상의 번식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사람들의 몫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어느 누구보다도 그가 진정한 자연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더불어 생존하는...사연들이야 어째든 나는 자연인 그들의 삶에 응원을 보내고 부러움을 느낀다.
손수 자연속에서 담근 묵은 된장에 산야초 썰어넣고, 귀한 버섯 넣어 요리한 구수한 된장국 올려 먹는 쌈밥과 진행자 이승윤과 윤택이가 삼산을 통째로 먹는장면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내가 자연인들을 진정으로 부러워 하는건 산삼이나 더덕을 캐는 횡재에 있지않고, 무한히 노력하며 자신의 먹거리를 마음껏 조절하는데 있다.
일반적 장소에서는 안되느냐고? 탐욕이 깃든 음식은 때론 몸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도회를 비켜난 바람이 그립다. 그것이 내가 젊은 시절부터 자주 산으로 달려간 이유이다. 그런 곳에서의 작은 공동체 생활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늙으막에 삶에 변화를 갖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두꺼비는 벌이 쏘는 맛으로 잡아 먹는다는 애기도 있긴 하였다. 산다는게 뭔지...
첫댓글 자연인이 부러운 실질적 이유 중의 하나는 급변하는 사회가 두려워 어디엔가 은둔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
아마도 엄청난 변화가 와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할 것같다. 그 변화가 싫은 것이다.
거대한 상어에게 몸둥이가 먹혀가는 느낌...먼 나라로 떠날 형편은 못되고, 왜 진작 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나 하는 후회도 든다.
그래서 몇차례 대상지를 알아보기도 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