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asaninst.org/contents/%ec%8b%9c%eb%a6%ac%ec%95%84-%ec%84%b8%ec%8a%b5%eb%8f%85%ec%9e%ac-%ec%a0%95%ea%b6%8c%ec%9d%98-%ec%83%9d%ec%a1%b4%ea%b3%bc-%eb%8b%a4%ec%a2%85%ed%8c%8c-%ec%97%98%eb%a6%ac%ed%8a%b8-%ec%97%b0%ed%95%a9/
아사드 정권이 반독재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 하면서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 직후 아사드 정권은 수도 다마스커스를 제외한 영토 대부분의 통제권을 잃어 붕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영토 70% 이상을 장악해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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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아버지 하페즈 아사드(Hafez Assad)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해 추진한 다수파 끌어안기 전략이 주효했다. 아사드 가문은 시아파 소수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했고 하페즈 아사드는 수니파 군·경제 엘리트를 포용하는 다종파 정권 엘리트 연합을 구축했다. 2000년 아들 바샤르 아사드의 세습 이후 지금까지 아사드 가문 측근의 알라위파·수니파 엘리트 연합은 강한 결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샤르 아사드 시기에도 수니파 엘리트 포용 정책은 적극 추진됐고 엘리트 연합의 아들 세대까지 충성과 보상의 교환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결국 아사드 정권의 다종파 엘리트 연합은 내전 기간 중 별다른 이탈자 없이 내구성을 다졌고 정권 수호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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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페즈 아사드는 아사드 정권의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범종파·범민족 엘리트 연합을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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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세습과 함께 알라위파·수니파 정권 엘리트 연합도 아들 세대로 대부분 세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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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전의 장기화에도 아사드 정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군부의 결연한 정권 수호 의지 때문이었다. 평화 시위대 무력 진압으로 시작된 내전에서 바샤르 아사드가 자국민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 행위를 단호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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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전이 시작되자 군부 내 고위 장성급의 자율권을 철저히 보장했다. 세습 정권의 젊은 독재자가 군부의 독립성을 인정하자 군 지도부 전체의 직업정신과 사기가 올라갔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집단적 평가 역시 높아졌다. 1970년 이래 50여년 간 아사드 가문의 부자세습 이외엔 다른 방식의 지도자 선출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권 엘리트는 불확실한 미래 대신 현상유지를 택했다. 바샤르 아사드의 주변에는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고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해 고도로 훈련 받은 소수정예 친위부대가 상주했고 내전 기간 내내 이들의 충성심은 강고했다. 고위 장성급과 최정예 부대는 물론 일반 장교단 급에서도 이탈자는 극히 적었다. 일반 사병 가운데 수니파 출신이 무리 지어 이탈한 경우만 가끔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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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사드 세습독재 정권의 특징은 독재자 세습과 함께 정권의 측근 엘리트 역시 아들 세대로 안정적인 세습을 이뤘다는 것이다. 아들 엘리트 세대는 주로 경제 분야에 안착했다. 바샤르 아사드는 아들 세대로 이어진 경제 엘리트 연합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시리아의 ‘권력의 아들’ 세습 엘리트 대부분은 내전 기간 내내 정부군에게 자금을 댔고 민병대를 조직했다.
강조는 본햏 소행입니다. :)
역시 왕조를 유지하는 왕도는, 1)선군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2)왕조를 지탱할 핵심계층의 양성 3)대를 이어 충성하자...인가 봅니다.
첫댓글 이집트의 경우 무바라크가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지만 군부가 '니 아들이 뭔데'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