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남’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꼬였을까요? 차분하고 수줍기도 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아버지도 다소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아들 오베는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주었습니다. 평소 말이 없다가도 자동차 이야기만 나오면 이야기가 봇물처럼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량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이 대단합니다. 오베가 자라서 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그 성적표를 들고 아버지 일터로 찾아옵니다. 성적표를 받아든 아버지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동료들에게 자랑합니다. 그 기쁨에 도취되어 잠시 주의를 잃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기관차에 들이받힙니다. 자신의 일터에서. 그렇게 아버지와도 일찍 이별을 합니다.
어렵던 시절 아빠의 후광으로 그 일터에 취직을 합니다. 바닥부터 일하지요. 그렇게 43년입니다. 아버지처럼 그곳에서 평생을 바칩니다. 이제 나이 60에 이릅니다. 때도 되었지만 기업의 구조조정에 첫 번째 표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옵니다. 얼마 전 평생 함께 하며 사랑하던 아내가 먼저 떠났습니다. 이제 직장까지 떠납니다. 아무 것도 미련이 없습니다. 아내를 만나러 빨리 떠나고 싶을 뿐입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조용한 빈집이 더욱 아내를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떠났어도 아직 할 일이 있기에 매일 출근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지요. 아내도 할 일도 없습니다.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갓 스물을 바라보는 젊은 청년, 그나마 있던 집마저 지역 재정비 사업에 걸려 없어집니다. 주민의 입장보다 서류행정에만 눈이 벌게지고 자기네 실적에만 몰두하는 족속들, 공무원에 대한 오베의 생각입니다. 기차에서 잠을 자다 깨어나 만나게 된 여자, 동정인지 관심인지 아무튼 찻삯을 신세집니다. 그 후 어렵게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데이트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가난뱅이 청년을 좋아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래서 포기하려 합니다. 그 솔직함에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가난해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은 그대로 천국이고 행복입니다. 그리고 아이까지 잉태합니다.
아기를 갖게 되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전에 어렵지만 함께 여행 한 번 하자. 저렴하게 여행하려고 먼 길 관광버스를 택합니다. 여행은 잘 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귀가 길에 사고를 당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소냐는 휠체어 신세가 되고 아기는 잃습니다. 그래도 살아남아 감사합니다. 아내는 불굴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베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온몸을 다해 헌신하지요. 소냐는 공부하여 학교 교사 자격증을 얻게 되고 어렵게 직장을 얻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입니다. 장애인 교사를 받아줄 만한 곳이 그곳뿐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출퇴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오베가 나서서 만들어주었습니다.
조용하고 말이 적은 오베에게 또 하나의 친구가 있다면 이웃에 있는 루네입니다. 비교적 죽이 잘 맞아 친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수처럼 벌어집니다. 이유는 참 우습지요. 자기네 승용차 때문입니다. 서로 비교하는 겁니다. 자기 것과 친구 것을 말입니다. 알량한 자존심 대결로 비약하지요. 남정네들, 하는 짓이 그렇습니다. 세월이 지나 루네가 먼저 전신마비 불구로 휠체어에서 살게 되지만 세상은 오베가 먼저 하직합니다. 병이 들든 말든 가고 오는 것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렇게 떠나기를 발버둥 쳤건만 혼자 떠나는 것을 용서하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편안히 떠날 수 있었으니 말이지요.
아내 잃지요, 직장 잃지요, 아마도 스트레스 지수가 짧은 시간 내에 엄청 높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고득점을 불과 반년 사이에 둘을 얻었으니 살아남는 게 기적과도 같습니다. 하기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멏 번이나 시도합니다. 그런데 살기보다 죽기가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 오고 가는 일이 우리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요. 하기는 그것도 까칠한 성격 덕분이기는 합니다. 얼굴 잔뜩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그 연기 하나 끝내줍니다. 분명 문제가 숨어있는 겁니다. 그냥 나 몰라라 팽개쳐둘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자꾸 가까이 다가가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심술이란 것이 결국은 관심 결핍에서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정 붙일 만한 대상이 없다고 생각하니 심술이 생깁니다. 그것을 이겨내고 다가가면 못이기는 척하며 끌려오게 되지요.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을 마다할 만큼 부자도 없고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습니다. 이웃을 살리고 죽이는 일, 바로 이웃의 관심입니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