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벌의 옷 하인혜 어쩌다가 입게 된 맏며느리라는 옷은 처음부터 되알지고 엉성 궂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이제는 내 몸에서 낡아버린 듯하다. 분가한 살림 규모야 단출하지만 기제일과 명절 그리고 집안 대소사에는 대가족이 모인다. 편한 대로 살아가는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며 중심터를 넓혀야 함이 번거롭다. 그럼에도 나의 게으른 태생에서 비롯된 산만한 주변은 매양 사번스럽다. 철마다 옷장 정리를 하는 것조차 버겁기만 하여 옷걸이 위치를 바꿔놓으며, 고작 환기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장롱 서랍에 담겨 있는 자그마한 상자의 자리를 확인한다.
이곳에는 크기가 같은 배냇저고리 두 점이 담겨 있다. 사람의 나이로 환갑이 넘은, 그야말로 연세 지긋한 아기 옷이다. 남편의 나이에 한 살을 더해 저고리의 나이를 헤아린 것인데, 지금 내 시어머니의 작품이다. 스무 네댓 꽃다운 나이에 혼인하여 첫아이 수태 후 지어낸 옷이다. 그 아이가 남편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앙증맞은 생김새가 영락없이 인형 옷 같다.
아무리 아기라지만 이토록 쪼그만 옷에 사람의 몸이 담기다니, 볼 때마다 이리저리 살피면서 슬며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베어 물기도 한다. 옷감은 부드러운 면과 용의 이중직으로 당시의 상황을 추측건대, 욕심을 냈던 게 아닌가 싶다. 제법 좋은 원단을 고르고 마름질했을 새댁의 극진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태동을 느끼며 점차 불러오는 복부 위에 몇 번씩이나 대어보며 한 땀씩 손바느질로 옷을 지었음은, 머잖아 세상에 나올 아기와의 만남을 위한 태교 역할도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 배냇저고리는 남편의 핏줄인 내 아들의 몸을 맞이했다. 그리고 남편의 동생들이 혼인 후, 순례하듯 그들의 아이들과 첫 만남을 거듭했다. 물론 귀동냥으로 담아 들었던 이야기의 말마디가 남아 있다. 남편과 그의 형제들이 상급학교 진학시험을 본다든지, 인생의 통과제의를 치러야 하는 중요한 관문에, 당사자 가슴 언저리에 배냇저고리를 넣었던 시어머니의 손길이 늘 함께했다.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앞섶의 여밈 부분에 땋은 무명실 타래를 덧대어 꿰맨 흔적은 훗날 어머니의 꼼꼼한 솜씨로 복원된 것이다. 아프지 말고 장수하라는 뜻의 기원이 담겼다. 그렇게 지금은 우리 집 서랍장 안에서 장손(長孫)의 핏줄로 찾아올 새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옷을 입힌 손길을 갓난둥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겉모습과 몸속 오장육부가 커갔을 것이고, 나날이 자라는 아이의 수많은 옷은 길이가 줄었거나 품이 좁아질 때면 아우에게 물려주면서 알뜰하게 쓸모를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냇저고리는 손아래 동기간들이 장성하여 일가(一家)를 이루고,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맞이하는 그 여정의 첫 만남에 늘 함께했다.
나는 배냇저고리를 꺼내어 뒤적거리다가, 떠오르는 그림 같은 장면을 펼쳐본다. 어머니는 꽤 오래전 찾아올 윤년을 손꼽아 기다려 그 해 윤달에 당신의 수의 준비해 놓으셨다. 최고의 국산 삼베를 고르기 위해 산지까지 방문하여 꼼꼼하게 살폈다. 이에 따라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고운 명주 등 옷감의 가격이 결코 만만찮은 비용임에도 정성을 다해 마련해두신 것이다. 세상 떠나는 날의 옷차림에 예(禮)를 갖춘다는 것. 그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니 자연스러우면서도 숙연하게 동의할 일이다.
삼복더위가 누그러지고 가을 초입의 햇살에 소슬한 바람결이 스치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당신의 수의를 꺼내 놓으신다. 나는 오래된 비디오를 재생하듯 기억의 서사에 따라 당신의 자그마한 몸짓이 빚어내는 동선을 지켜본다. 오동나무 상자 속에 고이 개어놓은 옷을 펼쳐놓고 혹시 변질되지 않았는지, 돋보기안경 너머로 찬찬히 살피시는 어머니 눈길은 적요하다. 포장만 남은 약 봉지를 새것으로 바꾸어 넣으며, 거풍을 위해 바람 좋은 별자리를 찾는다.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애틋한 손길이 닿으면, 삼베 결의 성긴 올 사이로 스며든 촘촘한 햇살은 이별의 편지를 받아쓰는 것 같다.
아울러 이제는 고인이 된 친정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할 때의 소회를 반추해본다. 가족과의 사별은 회한을 삭여야 하는 강요된 단절이기에 황망함과 비감이 교차하는 애도의 현장은 낯설고 남루하다. 그러나 장막 너머에서 일정한 속도로 집중하며 염을 하는 이의 손길은 자못 경건했다. 다양한 세목으로 몇 겹을 두른 다음에 완결된 옷차림으로 내어 보여준 망자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가뿐하고 황홀했다. 곁을 지키던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치오르는 그 무엇으로 뻐근한 숨을 고르며 내쉬어야 했다.
사람의 일생에서 오직 한 번 입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바라본다. 처음의 옷과 마지막 옷을 결코 자신의 손길로 여미지 못하는 필멸(必滅)의 인간, 그 유한성을 사무치게 느끼며 만남과 이별의 연결고리를 이어본다. 누구나 부모라는 육친의 인연으로 태어나, 처음의 손길이 닿은 옷을 입고 세상과 만남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감쌌던 많은 옷을 정리하지만, 자신에게 마지막 옷을 입혀줄 손길은 정녕 알지 못한다. 지상 여정이 끝나는 그날, 숨이 떠난 내 육신은 어떠할까를 헤아리는 상념이 조찰하다. - 2022 <에세이 문학>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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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가 소개
1998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동시)
2021 에세이문학 등단(수필)
분꽃과 어머니(시집), 엄마의 엽서. 지금이 젤 좋아(동시집) 출간
대전문협 회원
잘 읽었습니다.
배냇 저고리와 수의.
발상과 묘사력도 대단하려니와 낯선 단어들이 글맛을 더해 줍니다.
좋은 글 읽는 즐거움울 갖습니다,
최중호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문장력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