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어 가다 꽃샘추위가 온 이른 아침이었다. 교육과정운영 일정에 전 학년이 체험활동으로 잡혔던 날이었다. 1학년은 남해로, 3학년으로 거제로 수련활동을 떠나고 2학년은 중부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2학년 담임의 한 사람이라 수학여행 인솔교사로 동행하였다. 사흘간 집을 떠나 교실을 벗어나게 된 십대들의 밝은 얼굴에서 꿈에 부푼 날이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남쪽에서 중부내륙을 달려 청원휴게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수원 화성으로 향했다. 대부분 아이들도 처음이었겠지만 나한테도 수원은 낯선 고장이었다. 수원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한국인의 우성유전인자인 효를 관광 상품으로 만든 도시였다. 효가 도시 상징이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장조로 추존된 아버지 사도세자 능침을 수원으로 이장시켜 수시로 행차할 때 머문 왕의 임시 거소였다.
일제 강점기 때 행궁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최근 다시 복원했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행궁 구석구석까지 다 살피고 수원성곽까지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쉬움이 좀 남았다. 행궁의 정전은 봉수당(奉壽堂)이었고 삼수문(三壽門)도 있었다. 왜 석 삼에, 목숨 수일까 궁금했다.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께서 일 십 백까지 장수하십사는 뜻으로 붙여준 이름일거라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수원을 떠나 서울로 들어갔다. 한남대교를 지나니 바로 남산터널이었다. 남대문과 동대문 상가를 지나 복원된 청계천 어느 다리를 하나 건넜다. 세종로에서 우리가 탄 버스는 청와대 앞길을 한 바퀴 돌아 경복궁 주차장에 닿았다. 광화문은 복원공사를 하느라 가림막이 쳐 있었다.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서 왕실 수문장 교대의식을 시연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였다.
근정전에서 목을 빼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좌 뒤 일월오악도와 천정 칠조룡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나는 이어 경회루가 앞으로 가보았다. 여러 조경수들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산수유와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었다. 소나무야 사철 푸름을 간직했다만 능수버들에도 물이 올라 파릇해져갔다. 나는 문득 병자호란 두 인물이 생각났다. 김상헌은 소나무에다, 최명길은 능수버들에 비유해 보았다.
신무문에서 청와대 뜰을 넘어다보고 향원정 연못 뒤 최근 복원한 건청궁에 들렸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곤녕합 뜰에서 아픈 근대사의 한 쪽을 넘겼다. 시간이 부족해 민속박물관까지는 찾지는 못하고 동궁 터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대를 이을 세자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같아서 처소를 동쪽에다 정했던 것이다. 정철이 관찰사 교지를 받고 임지로 떠나면서 나섰던 건춘문이 가까이 있었다.
고궁관람을 끝내고 한강변을 거슬러 가다 두물머리에서 갈라져 양평 한화콘도에 짐을 풀었다. 콘도에서 저녁과 아침밥을 해결하고 이튿날 다시 서진하여 과천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로 새로 지은 국립과천과학관을 찾아갔다. 학생들에겐 아주 유익한 이동학습 공간이었다. 교실에서 서너 달 걸려 배운 과학지식보다 그곳에서 반나절 보낸 학습효과가 크지 싶었다.
우리는 다시 한남대교를 건너 이태원 근처에서 아이들은 좋아해도 나는 별로였던 쇠고기 전골로 점심 식사를 했다. 식후는 아이들 수학여행 일정에서 가장 꿈에 부푼 시간으로 롯데월드를 찾아갔다. 오후 세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맘껏 놀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짰다. 저녁식사도 롯데월드 안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동료교사도 놀이기구에 관심이 있었다만 나는 관심종목이 아니었다.
나는 밝은 조명과 경쾌한 음악이 갑갑했다. 출구를 찾아 혼자 헤매다 겨우 바깥으로 나왔다. 우선 주변 지형지물을 익히려고 호텔에서 백화점까지 빙글 걸어 돌았다. 그러고 나서 석촌호수로 갔다. 이야기만 들었던 서울 도심의 아주 큰 호수공원이었다. 석촌호수길을 사이에 두고 동호와 서호로 나누어진 쌍둥이 호수였다. 호수주변은 생태공원을 꾸며 여러 수목과 화초가 심겨져 있었다.
롯데월드 뒤안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니 서울놀이마당이 나왔다. 중요무형문화재 46호인 송파산대놀이와 서울무형문화재 3호인 송파다리밟기가 전수되어 오는 현장이었다. 우리의 전통예술이 서울에서도 자랑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송파산대놀이는 봉산탈춤, 하회탈춤과 함께 대표적인 가면극이다. 조선시대 송파나루는 삼남지방 물류가 한양으로 모여든 수운의 종착지로 큰 장터였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화사하고 볕바른 자리 조팝나무도 하얗게 피기 시작했다. 벚꽃은 망울이 도톰해져 가고 있었다. 아직 잎이 돋지 않았지만 감나무도 보였다. 수양버들은 연초록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서호에서 동호 호숫가로 한 바퀴 돌고나서 도로변에서 호수를 굽어보면서 한 바퀴 더 걸었다. 호수를 산책하면서 한전 본사 설계팀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동기에게 전화를 넣어 보았다.
회의를 앞두고 있다는 친구는 참석했다가 곧바로 나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목소리만으로도 반가웠는데 친구는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했다. 나는 그 사이 롯데월드 안으로 들어가 동료와 짧은 시간 생태관찰 코너를 둘러보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친구와는 젊은 날 교류가 있다가 오래전 헤어졌다. 친구는 사무실과 사는 집이 롯데월드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젊은 날 나는 밀양 산골학교 근무했고 친구는 울진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있었다. 그때 내가 동해 바닷가로 가서 친구를 가끔 만나곤 했다. 이후 친구가 한전 본사로 옮겨가면서 우린 만나진 못했다. 곱상한 얼굴에 마음 여린 친구지만 건축설계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사원이 되었다. 서로는 장가 들 때도 멀리 떨어져 연락하지 못했다. 둘은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서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롯데월드에서 가까운 송파구청 인근 횟집에서 마주 앉아 그간 흐른 세월의 간격을 가늠해 보았다. 어른 모시고 아이들 키워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 우리는 만나지는 않았지만 전자우편으로 서로의 안부는 나누고 있었다. 친구는 나와 헤어지면서 동료들과 자리 하라면서 위스키를 한 병 사서 건네주어 고맙게 받았다. 친구는 나를 롯데월드 문 앞까지 배웅해 주고 되돌아갔다.
동료와 합류하여 아이들을 살펴 양평 숙소로 돌아오니 밤 열시가 넘었다. 사흘째는 아래로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죽령터널을 지나 부석사에 먼저 들렸다. 가을이 아니었기에 노란 은행잎도, 빨간 사과를 볼 수 없었지만 부석사에 올 때마다 의상대사와 선묘아가씨에 얽힌 창건설화가 아련히 떠올랐다. 무량수부처님을 뵙고 내려오다 추운 날 길가에서 할머니가 파는 쑥과 원추리를 조금 사주었다.
부석사를 내려와 소수서원과 금성대군신당이 가까이 있는 순흥 선비촌에 들렸다. 나는 버스 안에서 조카와 아우를 죽여 가면서까지 왕의 자리에 오른 수양대군과 권력의 비정함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소수서원에서 순흥 안씨 성을 가진 아이가 내 곁에 동행하고 있어 아득한 때 함자가 ‘향’인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던지 일깨워주었다. 물 맑은 죽계와 푸른 솔숲을 빠져나와 남녘으로 향했다. 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