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공의회 문헌과 교황 문헌에 나타난 성체성사
제6장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ia de Eucharistia vivit, 2003년)
(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갑니다, 2003)
6. 제5장 '성찬례' 거행의 품위
47항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던 저녁에 이 위대한 성사를 소박하고 '장엄하게' 제정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과월절 음식을 나누는 데 필요한 '큰 이층방'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48항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여인처럼, 교회는 '낭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바쳐 '성찬례'라는 탁월한 선물 앞에서 놀라움과 흠숭을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큰 이층방'을 준비할 임무를 맡은 최초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수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문화들과 만나면서 참으로 위대한 신비에 걸맞은 환경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성찬의 잔치는 참으로 '거룩한' 잔치입니다. '성찬례'에서는 표징의 단순함이 하느님의 심오한 거룩함을 감추고 있습니다. '오 그리스도를 모시는 거룩한 잔치여! O sacrum convivium. in quo Christus sumitur!' 제대에서 쪼개져 이 세상길을 따라 걷는 나그네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빵은 천상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마태 8.8: 루카 7.6) 한 복음서의 백인대장의 겸손을 지니지 않는다면 이 빵을 먹을 수 없습니다.
49항 그리스도교의 신비로 고취된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등은 직접, 간접으로 '성찬례'를 위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성당 안의 제대와 감실의 설계는 흔히 예술적 영감뿐만 아니라 신비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영감을 받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과 미사의 전례서를 올바로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던 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을 생각해 보면 교회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훌륭한 장인의 솜씨에서부터 '성찬례' 거행에 사용되는 성당 기물과 전례복 등 진정한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그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성찬례'는 교회와 교회의 정신을 형성함과 동시에 '문화' 특히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52항 이 모든 것은 특히 '성찬례' 거행에 대한 사제들의 막중한 책임을 명확 하게 해줍니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찬례'를 거행하고, 거기에 직접 참여하는 공동체뿐만 아니라 모든 '성찬례'의 한 부분인 보편교회를 위해서도 친교를 증언하고 친교에 봉사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이 뒤따랐던 시기에 창의성과 적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던 수많은 남용이 있었음은 애석한 일입니다. 이는 '형식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특히 일부 지역의 신자들은 교회의 위대한 전례 전통과 교도권이 정한 형식들을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 부적절한 독단적 쇄신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찬례' 거행의 전례 규범을 매우 충실히 준수할 것을 간절히 호소할 의무를 느낍니다.
전례는 전례의 집전자나 신비가 거행되는 공동체 그 어느 쪽의 사적 소유가 아닙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성찬례' 거행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 분파와 당파를 초래한 코린토 공동체를 질책합니다(1코린 11.17-34 참조). 우리 시대에도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현존하는 하나이며 보편된 교회에 대한 성찰과 증언으로서 전례 규범에 대한 인식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전례 규범에 따라 충실히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들과 그 규범을 따르는 공동체들은 교회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말없이 그러나 설득력 있게 증언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맡겨진 신비를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성찬례'는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볍게 다루거나 그 거룩함과 보편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