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시청률로 안방극장을 강타하고 있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실존인물 김두한(1918∼1972)의 마지막 여인이 서울에 살고 있다. 명성고교 영어교사였던 박정인씨(69). 그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김두한의 사생활을 털어놓았다.
김두한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두목이 너무 드러나면 신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자세히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후계자' 조일환씨와 '마지막 여인' 박씨야말로 인간 김두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꼽는다. 특히 박씨는 김두한과 14년간 동고동락하며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21일부터 얼굴을 내밀고 있다. 김두한과 '숙명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는 박인애(정소영 분)라는 이름의 인텔리 여성이 바로 박씨다.
박씨는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중식당에서 본지 기자를 만나 김두한의 취미와 감춰진 또 다른 인간미를 밝혔다. 그가 말한 김두한의 취미는 영화와 독서였다. 박씨는 "그분은 1주일에 2번 꼴로 극장을 찾을 만큼 영화감상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박씨에 따르면 김두한은 배우 중 특히 율 브리너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대장 부리바>를 본 후 '율 브리너'의 남성미 넘치는 연기에 반했기 때문이다. 또 박씨는 "그분은 음치지만 노래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분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감상적인 드리고의 '세레나데'였다"고 한다. 박씨에 따르면 노래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음치라 부르는 것은 삼갔다. 슬프고 분위기가 처지는 노래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침에 슬픈 노래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면 방송국에 즉각 전화를 해 "아침부터 무슨 장송곡이냐"고 여러차례 항의한 적도 있다.
박씨는 "그분이 초등학교 중퇴라 '무식하다'고 말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말했다. 학벌은 낮지만 독서량은 대단했다. 특히 역사책이나 영웅전은 몽땅 읽었다. 자랑할 만큼 많지는 않지만 서가에 꽂힌 책만도 수백권이었다.
박씨는 "그분에게도 꿈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씨에 따르면 그의 꿈은 당대 최고의 협객이 아니었다. 큰 정치인이 꿈이었다. 김두한의 소속당인 한독당의 '삼균주의', 즉 경제균등·교육균등·정치균등이 그의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무산대중'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또 다른 꿈도 있었다. 잔디가 깔린 아늑한 농장에서 가족이 자신을 기다리는 가정을 꿈꾸곤 했다. 말년을 그렇게 보내고 싶어했다.
김두한은 해외라고는 가본 적이 없었다. 박씨는 "'우리가 떳떳하게 그들과 맞설 수 있을 때까지 외국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 그분의 마음가짐이었다"고 밝혔다. 김두한의 생활습관 역시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다. 찻집 같은 데서 네모반듯한 탁자의 가장자리 선에 맞춰 똑바로 담뱃갑을 얹어 놓곤 했다. 어쩌다가 그것이 비뚤어지게 되면 큰일난 듯이 고쳐 놓고는 씩 웃었다.
박씨는 "그분은 가정과 외부를 엄격히 구별하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약주라도 드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오늘 한잔 했수다'라고 애교를 떨어 집에 웃음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이 가을, 그분이 정말 그립습니다. 미치도록…. 그분이 내게 남긴 것은 가난과 눈물뿐이지만 그래도 뵙고 싶습니다. 고희가 눈앞인데도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