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님을 좋아해서 윤대녕님의 단편소설은 10편가량 문서작업으로 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혹시 보기를 원하시는 분들 말씀하시고.. 보고 좋으시면 책을 삽시다! 아차. 책 판매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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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항아리 안에서>
첫서리가 내린 아침
나는 가을 고추처럼 얼얼한 얼굴로 은항아리 안에 앉아 있다.항아리 속에는 홍당무와 대롱 끝이 뾰족한 싱싱한 대파와 잔멸치와 껍질이 얇게 부스러져 있는 양파와, 내 여인의 이마를 닮은 마늘과 간장과 콩기름병 들이 놓여 있다.
해서 항아리 안은 지금 단풍처럼 환하게 달아오르고 있는 참이다. 여인은 멸치를 우묵한 체에 넣어 물에 흔들어 씻은 다음 가스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을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부엌칼을 거꾸로 잡고 도마에다 탁 탁 탁 마늘을 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늘 한쪽이 도마 밖으로 튀자 에고! 하며 확 붉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천천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늘을 주워 타원형의 흰 플라스틱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접시 위에는 썩이나 기울게 썰어놓은 파와 풋고추와 홍시 하나가 선연한 빛을 발하며 얌전히 놓여 있다.
여인이 체에 담겨 있던 멸치들을 프라이팬 안에 가만가만 쏟아붓자 치이 소리를 내며 금세 젖은 비린내가 번져나온다.
잠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마늘 다지는 소리.
이윽고 운두가 낮은 팬 안에서 멸치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자 여인은 타원형의 접시 안에 있는 양념 채소들을 손끝으로 살살 긁어내듯 집어넣는다. 접시에는 홍시만 덩그러니 남는다. 여인은 팬 안에 간장을 찔끔찔끔 기울여 붓고는 설탕과 깨소금과 참기름을 섞어넣고 손잡이가 긴 납작한 주걱으로 스걱스걱 휘젓는다.
“그런데 색깔이 왜 이 모양이죠? 설탕을 너무 넣었나? 이것 좀 봐요, 너무 까매.” 기우뚱 일어나 팬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아닌게아니라 좀 까만 것 같다. 여인의 눈빛이 이내 흐려진다. 짐짓 볼이 부은 얼굴로 여인은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반찬통에다 멸치볶음을 한 젓가락씩 옮겨 담는다.
그렇게 해서 일단 멸치볶음의 시간은 끝났다.
그 다음은 무 생채와 콩나물국이다. 여인은 무를 반달 모양으로 토막낸 다음 칼날을 비스듬히 세워 조심스럽게 썰어나간다. 칼날이 도마에 닿는 소리는 아직 서툴고 더디다. 그러나 두 개째의 반달 무를 썰 때부터는 제법 고른 소리가 난다. 또박, 또박, 또박. 소리만 듣고도 나는 결 고른 채가 도마에 쓰러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흠, 하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콩나물을 꺼내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고는 대가리의 미끈거리는 껍질을 벗겨낸다.
벽에 걸려 있는 원목시계가 아홉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주방 창문 안으로 햇살이 빗살무늬로 쏴아 몰려 들어온다. 그러자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질항아리 안의 국화가 노란빛으로 확 밝아진다.
오늘은 반달이 뜨는 날이다. 생채를 만들기 위해 딱 반으로 쪼개놓은 무처럼. 날이 맑았으면, 하고 나는 속엣말로 중얼거린다. 여인은 아침 여덟시에 이곳 은항아리 계곡으로 왔고 저녁 여덟시가 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하루의 딱 반이다.
“누가 여기다 은항아리란 이름을 붙여놓고 갔을까요?” 콩나물 대가리의 껍질을 벗겨내다 말고 나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올려다본다.
“옛적 웬 이름없는 과객이었겠지.”
“사람이란 참.”
사람이란 참?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린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 산을 하나 넘어가면 무드리라는 마을이 있어. 비가 오면 물이 들어오는 마을이란 뜻이지. 일제 때 놈들이 수입리(水入里)라고 바꿔놔 지금도 행정상으론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말이야. 그 옆마을 이름은 무너미이고.” “무너미요?”
“비가 오면 물이 넘쳐 들어오는 마을이라고 하더군. 북한강과 남한강이 겹치는 곳이니 그런 마을 이름들이 생겼을 법도 하지. 양수리도 원래는 두무골이라 불렀다지 아마?” 여인은 두무골, 무너미, 무드리, 하고 웅얼웅얼 되받으며 바가지 안에다 무채를 옮겨담고 깨소금, 고춧가루, 잘게 썰어놓은 파, 다져놓은 마늘, 찻숟가락으로 반쯤 되는 조미료를 뿌려넣고 살살 버무린다. 그러고 나서 양념이 묻은 손으로 몇 가닥 집어 간을 본 다음 싸리 무늬가 박혀 있는 사기그릇에 담아놓는다. 다른 소리가 없는 걸로 봐서 이번에는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밥통에서 쉭쉭 김이 올라오고 국그릇 안에서는 콩나물이 푹 익고 있다.
나는 국그릇 뚜껑을 열어 고춧가루를 넣고 왕소금을 넣는다.
“자꾸 열어보지 말아요. 콩나물국은 익기 전에 열어보면 비린내가 나니까요.” 나는 세번째 국그릇 뚜껑을 연 참이다. 하지만 더이상 그럴 일은 없다.
“아 참,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
나는 그제서야 콩나물 껍데기가 묻은 손을 수도꼭지에 대고 게으르게 씻는다.
“가는 길에 호박도 사왔으면 좋겠어요. 곤봉처럼 길쭉하게 생긴 작은 거요.” 나는 신발을 꿰신고 문을 열고 나와 채소가게로 간다. 호박과 두부, 두부와 호박, 하고 되뇌이며.
시월 초에 나는 타클라마칸 사막 안에 있는 미란이란 곳으로 가려다 이곳 은항아리 계곡으로 왔다. 왜 불쑥 길을 바꾸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일까? 이번에 또 사막으로 가게 되면 돌아나오기 힘들 거란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목탁을 들고 사막 한중간에 앉아 인계(印契)에서 불똥이 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을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혹은 나를 사막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생긴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누군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한다. 지쳐서가 아니다. 매양 헛것에 쫓겨 기어이 떠나게 돼도 거기서 또다른 곳으로 떠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더욱 낯설고 시막이 아득했다.
올 여름에 나는 웬 낯모르는 여자가 노르드 곶에서 부쳐온 사진엽서를 받았다. 노르드 곶. 아주 추운 곳이다. 그녀는 내게 세상의 끝에 와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라고 써보냈다. 허나 나는 내가 늘 없음의 있음에 홀려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른네 살이 돼 가본 사막에서 그걸 깨달았다.
“식탁이 창문 옆에 놓여 있어서 좋아요. 환하잖아요. 이제부터 식사는 밝은 데서 하는 습관을 들여요. 더군다나 혼자일 때는 말예요.” 한겨울 밤에 캄캄한 방에 혼자 앉아 솥 바닥을 긁어먹던 때가 있었다. 삭망의 밤에 바위산에 숨어 사람의 뼈를 갉아대는 원숭이처럼. 부러 그랬을 리는 없다. 혼자서 환해봐야 더욱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식탁 위에는 금방 만든 생채와 두부조림과 멸치볶음과 김과 콩나물국과 아직도 뚝배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들이 있다. 또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이 있다. 나는 노릿하게 구워진 꽁치의 칼집에다 젓가락을 대 속살을 집어낸다. 아직 녹지 않은 소금 알갱이가 이빨에 씹힌다.
얼음장 아래 붉은 집들
설거지를 끝내고 녹차를 마신 다음 여인과 나는 오목한 지붕테를 올려다보며 은항아리 안을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저수지로 올라가는 산문의 전나무숲에 까치떼가 내려앉고 있다. 어지러워요, 하며 여인은 가는 숨을 토해내며 내 팔소매를 붙든다. 안 그래도 빈혈기가 있는 여자다. 까치떼가 내려앉은 전나무숲 아래로 장닭 몇 마리가 바람에 쫓겨 허둥지둥 뛰어가고 있다. 아주 잠깐 시막이 흔들린다. 다시금 여인이 묻는다.
“어째서 하필 은항아리 계곡일까요?”
“조금 더 올라가면 저수지가 있어. 항아리처럼 생긴 산봉우리 아래를 두 갈래의 물줄기가 둥그렇게 싸안고 내려와 생긴 작은 호수지.” 여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단풍이 타고 있는 산을 휘황한 낯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은항아리는 아니잖아요.”
“아니, 달이 밝은 밤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항아리 둘레를 싸안아 흐르는 물줄기가 은빛으로 반짝여. 그래서 봄에는 연둣빛이 스민, 여름에는 푸른빛이 도는, 가을에는 단풍에 물든, 그리고 겨울에는 투명하고 차디찬 은빛 항아리가 되는 거지.” 여인은 아, 하고 희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래서 저수지엔 삼백육십오 일 은항아리가 거꾸로 처박혀 있다고들 해.”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저수지 둑께로 올라오자 염소떼가 흑두 같은 똥을 마구 떨어뜨리며 불쑥 나타난 사람 남녀 한 쌍을 피해 달아난다. 여인은 이런 말을 또 혼자 중얼거린다.
“염소떼를 보니 뜬눈으로 태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태몽.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둑 끝에 서 있는 노인네에게 아득히 눈길을 던진다. 그는 한 손에 낫을 들고 꼼짝도 않고 저수지를 향해 서 있다.
“저 노인네는 무얼 저렇게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여인이 어디요? 하면서 내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린다.
“정말 서서 죽은 사람처럼 보이네요.”
나는 여인의 손을 잡고 저수지 둑을 완만하게 지나쳐 계곡 안으로 올라간다. 옆얼굴이 점점 밝아진다. 그제서야 나는 낫을 든 노인네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여인은 벌써 숨이 차 발걸음이 더뎌진다. 신발이 큰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밖으로 양파 같은 뒤꿈치가 다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곤 한다. 나는 게눈을 뜨고 저수지 안을 흘끗거리다 무심코 얼음장 아래 붉은 집들, 하고 뇌까린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얼음장 아래 뭐요?”
“붉은 집들.”
“그게 뭔데요?”
나는 여인의 어깨를 돌려세워 저수지 안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 항아리 안을 보게 한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단풍의 무리가 물살마저 죽은 저수지 안에 적막한 빛으로 떨어져 있다. 단풍은 엊그제 급기야 산의 아랫도리까지를 다 먹어 내려와 그야말로 절정인 상태다. 실눈을 뜨고 보면 물에 비친 단풍은 마치 바다 속의 산호숲 같다. 아니라면 붉은 갈대들이 수면을 찌르고 무성히 뻗쳐올라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간 숨소리를 참고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여인의 몸이 한순간 기우뚱, 하고 앞으로 기운다. 나는 얼른 여인의 어깨를 가슴으로 바투 끌어당긴다. 여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의 촉촉한 식은땀을 닦아낸다.
“무섭네요, 한참을 보고 있으니 꼭 안으로 빠져들어갈 거 같아요. 지금 물 속에 있는 고기들은 기분이 어떨까요?” 저수지 둘레에는 단풍에 취한 물고기를 낚으려는 사람들이 점점이 떨어져 앉아 길게 휘어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얼핏 돌아보니 낫을 든 노인네는 아직도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
“아홉 살 때던가, 한겨울의 어느 날 나는 할아버지와 종친회에 갔다가 저물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지. 내가 살던 마을에도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어. 어떤 해이던가는 사람만한 가물치가 물가로 나와 동네 청년 하나가 사냥총으로 그걸 쏘아 잡은 적도 있었지.” 사람만한 가물치, 하고 여인은 내게 몸을 기울여 귀를 활짝 연다.
“그날 얼음 언 저수지에 노을이 붉게 떨어져 있었어. 앞서 둑길을 걸어가던 할아버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저수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군. 그러더니 홀연히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거야. 영문을 몰라 나는 그냥 둑 위에 혼자 떨고 서 있었지. 조부는 얼음 위를 걸어 저수지 한가운데로 가더니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는 거야. 나를 돌아보는일도 없이 말이야. 나는 차츰 무서워지기 시작했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의 뒤를 좇아갔지. 노을이 참으로 붉었어. 얼음 위를 걷고 있으니 얼굴이 숯불처럼 온통 벌게지는 거야. 할아버지 옆에 서서 나는 그가 이렇게 귀신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 “뭐라구요, 얼음장 아래 붉은 집들이라구요?”
“그래, 붉은 집들. 그러고 나서 이제 그곳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고 하더군.” “얼음장 아래로요?”
“그래, 그러더니 뜬금없이 얘야, 세상은 춥다. 그러니 옷을 두껍게 입고 살아야 한다, 라고 하더군.” “……”
“얼음 위를 지나 둑으로 올라가며 할아버지는 얼음장 아래엔 붉은 잉어들이 산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그날 할아버지는 잉어들이 사는 집을 보고 있었던 거야.” “잉어가 사는 집이라뇨.”
“왜 성씨들마다 탄생 설화라는 게 있잖아. 우리 집안의 시조는 잉어거든. 할아버지는 아마 그런 뜻의 얘기를 했던 것 같아. 아무튼 이듬해 봄이 와서 저수지의 얼음이 풀릴 때 할아버지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지.” “……”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도 내 눈에는 늘 얼음 속의 붉은 집들이 어른거려. 그러다 작년에 사막에 가서 예기치 않게도 저 무의 지평선 끝에서 불타는 집들의 환영을 보게 된 거야.” 여인은 목에 쿡 가시가 박힌 소리로 대꾸한다.
“그러니 당신은 아무 때나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인 거예요. 붉은 집들인가 뭔가에 홀려서 말예요. 항상 그랬듯이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구실을 잡고 말예요.” 그래, 언젠가 나는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너에게로 가기 위해 다시 너를 떠나련다, 라고. 그리고 돌아오고 나면 옆에 있던 이는 매번 미당의 시 "신부(新婦)"에 나오는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싹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았습니다”처럼 변해 말을 건넬 수조차 없었다.
나는 꾹 입을 다문 채 산호숲과 붉은 갈대들만 번갈아보고 있다.
“당신은 바람을 너무 타서 까만 염소처럼 돼버린 사람이고 그것도 모자라 꽁지에다가는 빈 수레까지 달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빈 수레를 끌고 다니는 까만 염소. 어쩌다 잉어가 염소가 됐을까.
“혹시 떠나게 되면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를 입은 신부와 함께 가도 좋겠지.” “아뇨, 저는 가지 않아요. 저는 단단한 도마와 대파처럼 파란 부엌칼만 한 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여자예요. 그리고 얼굴이 하얀 아이 하나. 그런데 아이를 들쳐업고 손에 도마와 부엌칼을 들고 하필이면 모래뿐인 사막을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은항아리 안에 무를 토막내는 칼질 소리가 들려온다.
여인과 나는 그새 항아리 안을 반쯤 비껴돌고 있다.
배추밭의 닭들
계곡 안쪽에는 십여 가구쯤 되는 마을이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의 눈을 본 적이 있어요. 너무나 순하고 맑아서 어쩐지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눈이었어요. 초식동물들의 눈은 왜 한결같이 그런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여인과 나는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동물원에 간 적이 있다. 리프트를 타고 동물원에 내려 해가 질 때까지 우리에 갇힌 짐승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여인은 누(Nue)라는 초식동물을 보며 그런 말을 말했다. 또한 하마와 기린을 보면서도. 하마도 초식동물인가, 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나는 여인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백과사전부터 찾아보았다. 하마는 분명 초식동물이었다. 하지만 눈이 맑아서 어쩐지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하마? 배추밭에 이른다. 여인은 길가다 우연히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환한 얼굴로 배추밭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여인의 뒤꿈치에서 청개구리 한 마리가 탁 튄다.
“땅에 심어진 배추는 정말 오래간만에 봐요. 암만 그래도 이렇게 잎이 싱싱하고 속이 꽉꽉 여물다니요. 부엌칼로 잘라 노란 속을 봤으면.” 여인은 고랑 한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배추를 아기처럼 끌어안고 있다. 여인도 초식동물인가보다. 아니, 여인은 지금 태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까 집에서 생채를 만들 때 맡았던 깨 냄새가 코끝에 묻어나 눈을 들어보니 머리에 수건을 쓴 아낙네 하나가 배추밭 뒤에서 막대기를 들고 들깨를 털고 있다. 그러다 끄응 허리를 펴고 길게 산바라기를 한다. 아낙이 서 있는 깨밭둑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로 시냇물 차게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배추밭에 있던 여인이 아낙에게로 다가가 말을 건넨다. 나는 시냇물 소리에 잔뜩 귀를 팔고 있는 중이다. 여인과 아낙은 생면부지로 만나 무슨 말을 저리 나누고 있는 걸까. 여인은 마치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다니러 온 딸처럼 보인다. 여인은 낯선 사람에게는 좀처럼 말을 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여인이 배추밭 고랑을 가로질러 돌아온다. 아낙이 뽑아준 배추 한 포기를 가슴에 안고. 길 옆으로 수탉 한 마리가 땅바닥을 부리로 쪼며 지나가고 있다. 그저 한 마리 수탉이었으면 싶은 때가 있었다. 저 자태만은 영예롭게 보이는. 무참히 외로웠던 스무 살들의 날들에, 제 몸의 상처를 부리로 쪼며 살던 그때. 그리하여 내세엔 수탉으로 태어나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곱씹기도 했다.
그때엔 나도 까만 염소의 형물에서, 빈 수레에서 놓여나게 되리라.
여인이 건네준 배추를 얼결에 건네받으며 나는 아낙과 무슨 얘기를 그리 주고받았는지 물어본다. 배추가 고추장 독처럼 제법 무겁다.
“얘기는 무슨 얘기요, 그냥 배추 한 포기를 달라고 했을 뿐예요.”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쑥 뽑아주든가?”
“이쁘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그냥 가져가래요. 아닌게아니라 이렇게 속이 꽉꽉 여문 배추 같았으면요. 이렇게 야무지게 일생을 살다 서리가 내릴 때를 알고 속으로 꼭 입다물 줄 알았으면요.”
은항아리 안에는 그렇게 배추밭이 있고 지금 막 고랑으로 내려가 모이를 뒤지고 다니는 닭들이 있다.
논바닥의 거미줄
산곡의 해는 짧아서 오후 네시쯤인데 벌써 서쪽 산자락이 앎둑앎둑해지고 있다. 하루를 밝게 태우고 난 햇살이 건너편 산에 마지막 불을 싸질러대고 있다. 여인과 나는 은항아리 안을 삼분의 이쯤 돌아 추수가 끝나가는 논배미에 다다른다. 여인은 오늘따라 허리가 아프다며 논두렁에 풀썩 주저앉는다.
여인과 나는 북쪽을 향해 앉아 있고 그리하여 햇살의 기울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낮게낮게 쓸려가고 있는 중이다. 시나브로 논바닥에 사위어가는 햇살을 바라보며 내내 입다물고 있던 여인이 저것 좀 봐요, 하며 내 어깨를 잡아 흔든다.
나는 여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가져간다. 몰랐는데, 햇빛에 젖은 거미줄들이 논바닥을 가로로 온통 뒤덮고 있다. 거미줄들이 햇빛에 젖어 명주 그물처럼 흔들리고 있다.
“거미줄이라구요?”
그래, 틀림없는 거미줄이다.
“놀라워라, 어쩌면 저렇게 길게길게 줄들을 쳐놓았을까요?” “……저것들도 살기 위해서겠지.”
“그렇죠? 저리 줄을 쳐놓고 있으면 피도 안 마른 살점들이 드문드문 묻어나겠죠?. 그걸 위해 종일 꽁무니에서 줄을 뽑아내고 있는 거예요.” “그렇겠지.”
“눈물겹네요. 사람들 사랑하고 사는 일처럼 말예요.” “그래, 저 아슬아슬한 줄에 닭이나 황소처럼 덩치 큰 것들이 걸려든다 해도 좀처럼 빠져나가기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하지만 그것들은 또 줄에 걸려서도 나름대로 태몽을 꾸고 열심히 새끼들을 낳아 기르며 살겠죠?” “그렇겠군, 저마다 제 몸이 가두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다 곧 잡아먹히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게 또 우리네 산다는 일 아녜요?”
“……”
이윽고 해가 서쪽으로 다 떨어져버리자 거미줄도 눈에서 사라진다. 해도 여인은 논바닥에서 눈을 거두지 못한 채 오래오래 앉아 있다.
은항아리 안에 거침없이 늦가을 땅거미가 진다.
하루살이떼
여인과 나는 배추 한 포기를 가슴에 안고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여인은 자주 돌부리를 걷어차며 그때마다 에고! 하며 몸을 기우뚱거린다. 염소떼와 까치떼와 닭들도 이미 집으로 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한데, 어디선가 모래알 같은 것들이 면상으로 사정없이 날아오고 있다.
“이건 또 뭐죠? 뭐가 이렇게 얼굴로 쳐들어오는 거죠?” 쳐들어온다, 란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부연 어둠 속에서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하루살이떼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빈틈없이 날아드는 하루살이떼는 나도 본 적이 없다. 여인은 머리 위로 손을 휘휘 내두르며 캑캑 밭은기침까지 해댄다.
“지독해요, 눈을 뜨기가 힘들어요.”
나는 허리를 낮게 구부린 채 여인의 팔을 잡고 발걸음을 서두른다. 자칫 길을 잃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위가 먼지 구덩이처럼 탁하다. 여인은 멈칫멈칫 끌려오느라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저수지야.”
여인과 나는 은항아리 안을 얼추 다 돈 것이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낮의 풍경들이 꿈처럼 죄 지워지며 가슴 안짝으로 찬바람이 우 몰려든다. 눈에 보이는 것은 끝없이 몰려오는 하루살이떼뿐. 무심결에 사막의 먼지, 하고 내뱉다. 나는 다시금 저 무의 지평선 끝에서 불타고 있는 집들의 환영을 목도한다. 내가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여인이 이런 말을 숨가쁘게 토해낸다.
“우리도 이 하루살이떼 중의 하나란 걸 알아요.”
“그건 내남없이 다들 마찬가지지.”
“그래요, 우리는 다만 조금 긴 하루를 살다가는 존재들인데요, 당신은 어째서 하루의 반나절도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없는 거죠?” “당신은 배추같이 속이 꽉 찬 여자지만 나는 텅 빈 영혼을 가진 사내라서 그래.” “그렇다면 저를 마당에 들여놓지 말았어야죠. 당신은 이미 한 여자를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놨어요.” “돌아가지 말아! 나도 마당에 거미줄을 치고 살아볼 작정이니까.” “하지만 당신 그거 못 하잖아요.”
거기서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분분한 하루살이떼 속에서 와락 여인의 등을 끌어안는다. 그때 여인의 어깨 너머로 저수지 둑에 낫을 들고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성큼 잡혀든다.
저 노인네는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 저기 서 있는 걸까.
은항아리 안에 먹물이 들어찬다.
먹물 한가운데를 비집고 손톱만한 반달이 돋아난다.
여인이 잠든 시간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의 사랑. 오늘 너와 나는 그런 사랑을 했다. 둘이 뜬눈으로 이런 꿈을 꾸기도 했다. 대문 밖의 텃밭을 일궈 무 배추를 심고 염소떼를 본 날 태몽을 꿔 열 달 후에는 유난히 이마가 흰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는 온갖 양념을 한데 버무려 살점 같은 끼니를 준비하며 산다.
여인의 몸은 오늘 그믐이다. 계곡에서 돌아와 여인은 쌀쌀한 배를 문지르며 건넌방에 들어가 누워 있다. 나는 『동명일기(東溟日記)』에 나온다는 구절 하나를 책상의자에 앉아 뜻없이 웅얼거리고 있다.
진홍(眞紅) 같은 것이 차차 나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빛 같더라.
여인은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아침 여덟시에 왔다가 저녁 여덟시에 돌아가는, 하루살이도 안 되는 한갓 반나절의 사랑. 하지만 오늘 그대가 돌아가더라도 이내 또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그동안에 나는 사막에 가기도 하고 세상의 끝을 보러 떠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내 반나절 안에는 그대 곁으로 속히 돌아오리란 것을 믿는다. 다만 하루 사이에 이토록 사무친 너와 내가 서로 얼굴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지금은 깊이 잠들어 있거라. 늦가을 배추처럼 속이 단단해지는 꿈을 꾸며. 그동안 나는 너로 하여 떠나지 않는 법을 배우련다.
저녁 일곱시 반. 나는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잠든 여인의 이마 옆에 앉는다. 여인은 오늘 은항아리 계곡으로 오기 위해 서리가 내리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길을 나섰다. 튤립 모양의 스탠드 옆에 배추 한 포기가 화분처럼 놓여 있다. 여인은 홍시 같은 얼굴에 진땀을 흘리며 이불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 그믐의 몸으로 계곡을 한 바퀴 다 도느라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려 하자 여인은 간신히 눈을 비벼 뜬다. 그러더니 대뜸 묻는다.
“여기가 어디예요?”
항아리 안이야, 라고 나는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아, 은항아리 안.”
그러고 나서 여인은 허리를 틀어 몸을 일으킨다. 겨우 몸을 일으키다 덥썩 내 목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운다.
“몸 구석구석에 죄 서리가 내린 것처럼 추워요.”
밤에 깨게 되면 그게 어떤 잠이든 온 마음과 온 몸이 추운 법이다. 하지만 여인은 지금 그 때문에 울고 있는 것만은 아니리라. 살다보면 때로 깨소금도 매울 때가 있나니, 이렇듯 서로를 완강하게 끌어안고 있어도 겨울 밤 식은 국을 혼자 먹을 때처럼 마음이 확 쓸쓸해질 때가 있나니, 저 도마에 난 칼자국들처럼 가슴 안짝이 다 팰 때까지 우린 또 얼마나 긴긴 날들을 외롭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상기는 배추 한 포기가 은항아리 안에서 울고 있다.
반달
여인과 나는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 있다. 바람 잔 하늘에 별들이 무수히 몰려와 박혀 있다.
“정류장 앞에 나무들이 보여서 좋아요. 게다가 저기 반달도 떴네요.” 정류장 앞산의 나무들. 서리가 두어 번 더 내리고 나면 마침내 너희 단풍들도 멸치볶음처럼 까매질 테지. 그후 눈발 흩날리는 날들이 또 급히 찾아올 것이다. 나는 여인이 혼자인 듯 읊조리고 있는 노래를 무심한 척, 귀 기울여 듣고 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아기도 잘도 잔다
서쪽 나라로
서울로 가는 버스가 와서 발 앞에 멎는다. 버스 지붕 위에 반달이 비스듬히 걸린다. 아침 도마 위에 놓여 있던 무토막 모양으로.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자 차창 가에 앉아 나를 내다보는 여인의 얼굴이 따박따박 칼질 소리를 내며 차츰 깎여나간다.
버스가 가고 하늘을 보니 달이 없다.
매양 그랬듯이 내일 밤 새벽에도 여인은 또 꿈에 쫓기다 까마득한 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나는 흔들리지 않게 지렁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몸을 움직여 집으로 돌아온다. 어린 날, 노을이 타는 얼음 위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저녁처럼.
한데 침침한 눈에 다시금 얼음장 아래의 붉은 집들이 보인다. 나는 짐짓 고개를 흔든다.
물이 넘어 들어오는 밤, 나는 은항아리 속에 누워 있다. 밤이 깊어도 여인에게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 배추 한 포기만 옆에 덩그러니 엎어져 있을 뿐이다.
빨래판 무늬로 여인이 그리워진다. 뚜껑 없는 항아리 위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흘러가고 견우성 직녀성이 흘러가고 그리고 내가 까마득하게 흘러간다.
항아리 안이 무섭도록 고요해진다. 먼 데서 단풍든 물이 넘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항아리 안에 숨죽이고 있던 낮의 짐승들이 밖으로 하나씩 기어나가기 시작한다. 청개구리가 기어나가고 닭들이 기어나가고 소 돼지와 염소떼가 꾸물꾸물 줄지어 기어나가고 마침내 하루살이떼까지 죄 밤하늘로 날아가버린다.
은항아리 안이 명주빛 거미줄만 남고 텅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