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지난2007년4월18일 mbc라디오 싱글벙글쇼 프로의 나의 결혼일기 코너에서 강석 김혜영의 목소리로 방송 되었던 내용입니다. 때마침 그 무렵 음반저작권법 문제로 다시듣기 써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 녹음으로 듣지 못해서 아쉽지만 원문이나마 살짝 공개 합니다.
참새와 허수아비
지금으로부터 25년전 충청도 논산고을의 어느시골마을에 논농사많기로 이름난 일부잣집 소진사댁 셋째딸이 있었으니 바로 저 소명순이었습니다.그저 순진하기만 하던 제가 여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도 하지않고 집안일을 돕느라고 시골에서 연애한번 못해보고 처녀귀신으로 늙는것이 아닌가 살며시 심통이 났던 이유는 뒷집 분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자친구를 알게되어 엊그제 부모님께 인사하러 다녀갔고 앞집 숙이는 가을에 결혼식을 한다고 법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옆구리가 허전한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뒷동산엔 진달래가 황홀한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 오고 이 봄 처녀는'백마탄 나의 왕자님은 도대체 언제나 나타나는거야?'하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그래도 시간은흘러 모내기철이 되었습니다.우리집 논 중에서 가장 큰 논의 모내기를 하는날이었습니다.
이웃마을에서 아주머니들이 모내기를 하러왔습니다.모내기하는 아주머니들이 스무명정도 되었는데 그중 홍일점으로 눈에띄는 젊은 남자가 한명있었습니다.몇일전 군에서 제대를 했다는데 사람이 모자란다고 인력모집책이었던 형수님손에 이끌려 왔다는겁니다.모내기 총감독이신 우리 아버지의 지시대로 저와 그남자가 못줄을 잡게 되었습니다.
못줄을 잡으려면 서로 큰 소리를내서 신호를 해야 되는데 저는 숙스러워서 목소리를 못내고 준비한 호르라기로 호르륵!호르륵!하면서 신호를 보내고 그남자는 어이!어이!하고 큰 소리로 신호를 보내며 그런대로 손발이 척척 맞아 순조롭게 모내기를 하였습니다.쉴 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봐 젊은이 이리와 내 술한잔 받게나 아주 착실해 보이구먼그랴 일도 아주 잘하구말여 요즘 보기드문 젊은이여" 하면서 막걸리 한대접을 따라 주었습니다.그남자 "고맙습니다" 하면서 넙죽 잘도 받아 마시더군요.얼마나 지났을까 감독님 우리아버지께서 저에게 다른일을 하라고 명령을하면서 나는 모내기대열에서 퇴장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남자는 "호르라기는 이리 달라고요" 하면서 내가 물고있던 호르라기를 낚아채 얼른 자기입에 물었습니다.
저는 혼잣말로 "어머나 어머나 무슨사람이 저래 나를 언제 봤다고 내가 물고있던 호르라기를 닦지도않고 그냥 자기입에 무나그래?"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어 초가을이 되었고 들판에는 새보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소형 라디오를 들으며 매일 매일 참새와 "훠이!훠이!" 하며 숨바꼭질을 하였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고 내 사연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누군지 모를 미래의 연인과 듣고싶다고 희망곡은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를 적어보냈습니다 그렇게 인간 허수아비직무에 충실하던 어느날 이었습니다.그날의 참새 한마리는 크기도 하더군요.나를 향해 걸어오고있는 그 참새는 멋쩍은 미소까지 날리고 있었습니다.알고보니 모내기할때 못줄을 같이잡던 그 남자였습니다.순간 놀랍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총각"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하는것이었습니다.
저는 더듬적거리는 말로 "예 예 안녕하세유" 하고는 혼잣말로'혹시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백마탄 왕자님이 바로 이사람?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절대로 아니라구 나의 진짜 왕자님은 이 참새보다 훨씬더 잘 생기고 멋있는 사람일거야' 나는 억지로 부정을 하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한껏 도도한 억양으로 "저 지금 새보기 근무중이거든유 제 업무방해 하지말고유 우리 호랑이 아버지 오시기 전에 가시랑께유" 했더니 그사람 "오늘저녁 여덣시에 느티나무 아래로 나오시라고요 다른뜻이 있는게 아니라 포도를 같이 먹고 싶다고요. 쪼께 껄쩍지근하면 친구랑 같이 나와도 되구요" 하고는그 참새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흥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할줄아나?나오란다고 나가게?'하고는 바로 정상업무에 돌입했습니다.그런데 이상하죠? 참새도 안보이고 라디오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어느새 오늘저녁에 나갈까 말까 갈등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한나절 고민을 한끝에 친구와 같이 나가서 귀한 포도맛이나 보고 오리라 결론지었습니다.그날밤 유일하게 동네에 있던 친구 미자를 포도를 미끼로 꼬디겨서 같이 나갔습니다.
그쪽에서도 포도밭집 아들인 쫑이와 같이 나왔더라구요 쫑이라는 친구는 야간 포도밭 지킴이 였습니다.넷이서는 오래된 친구처럼 금새 친해졌습니다.밤이면 밤마다 만나면서 죄없는 쫑이네 포도만 많이 희생이 되었습니다.이남자 가끔씩 이상 야릇한 눈빛을 저에게 쏘아 날려 보내대요 이도령 춘향이가 있으면 방자와 향단이가 있는것 아닙니까? 쫑이가 내친구 미자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때쯤이었습니다.
이남자 "친구야 너네 포도 많이 축냈응께 이번에는 내가 읍내에 나가서 생맥주 한잔 쏠것이랑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속한날 내친구 미자가 하필이면 언니네집에 가게 되었습니다.이게왠일 쫑이라는 친구도 아버지가 무슨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포도 지킴이직을 박탈하는 한편 외출금지령까지 내려졌다고 했습니다.
이 남자는 "우리둘이라도 가자구요 오히려 잘됐다고요" 생맥주집이름 ~해운대~게심심한 어두운 조명에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은 조용필노래 정이란 무엇일까~ 주는걸까 받는걸까~ 분위기 죽이대요. 이남자 "명순씨 처음 보았을때부터 한번도 명순씨를잊어본적이 없다고요.내년부터는 우리논에서 같이 못줄을 잡자고요" 오잉~~~뾰요요요요요요용~~~~이것이 바로 그 프로포즈라는 것인가? 저요 그날 발목 제대로 꽉~ 잡혔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저의 새보기 근무지는 데이트 장소가 돼버렸습니다.순진덩어리 저는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습니다.사람변하는거 순간이대요. 꿈에 그리던 진짜나의 왕자님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고 그저 아무이유없이 그 남자에게 푹 빠져버렸습니다.
추석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사람 우리집에 인사드리러 온다고 하대요 어색한 양복까지 쫙 빼입고 인삼주에 통닭까지 사들고왔습니다.그사람 우리 아버지께 넙쭉 절을 올리고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습니다."저~정대식입니다 아버님 저 명순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내기 때와는 180도 달라지신 우리아버지 "뭐여? 무슨 개 풀뜯어먹는소리 자고로 처가집하고 뒷간은 멀어야하는 법이여 그리고 나는 우리딸 농사짓는 시골로는 절대로 안 보낼것이여 그러니 썩 돌아가!돌아 가라구!" 이남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명순씨를 참말로 사랑합니다 저 명순씨 마음고생 절대로 안시킬 자신 있습니다"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리 아버지 점잖은 목소리로 나는 같은말 반복하기 싫응게 어서 돌아가라구! 하셨습니다.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제가 한마디 한말은 아버지 우리는 벌써 볼장 다 봤어유......어이가 없어진 우리아버지 잠시의 썰렁한 침묵을 보내더니 모든걸 채념한듯 하시는 말씀, "날(결혼날짜) 잡어! 날 잡으라구!!!!!!!!!!!"
그해 겨울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
뒷간과 처갓집은 멀어야 한다던 우리 친정아버지 지금은 가까이에 살고있는 막내딸 막내사위를 기둥처럼 의지하고 사십니다.
첫댓글 막상 올려놓으니 낯 뜨거워집니다. 하지만 청취율 높다는 싱글벙글쇼에도 나왔는데......^^ ^^
아참 멋진 사연의 글이기전에 결혼전의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리하야 지금의 바위돌님이 백마탄 왕자님이 되셨군요? 그거이 바로 연분입니다.
와~ 진짜 좋으시겠어요 오래오래행복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오래 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알콩달콩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