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대 환난의 의미
말세에 대 환난이 일어난다.
세가지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요16: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환난은 심판이다. 연단하신다. 대 추수작업이다. 물가가 폭등한 우크라이나이다.
러시아에 있는 선교사를 도와야 한다. 어렵더라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람들보다 더 힘들겠는가? 돕은 일에 힘써야 한다. 지금 가난하고 힘들 때 추수 때이다.
이 때 복음이 잘 전도가 된다. 전쟁은 전 세계가 고난을 당한다.
대 환난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마지막 때는 불로 심판하신다. 불 중의 가장 무서운 불이 핵폭탄이다. 일본의 후크라이나 재앙은 지금도 혹독한 심판이 계속 있다.
마지막 때가 되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죄: 도덕적 타락이다. 음란이다. 지식적인 타락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타락이다. 학문은 자유이지만, 미국은 창조론을 가르치면 쫒겨난다. 과학지식은 발달하였지만, 진리의 타락이 오고 있다.
영적인 타락이 왔다. 세상의 빛이 되어 할 사람들 교회가 소금 노릇을 못하여 뷔페하여 졌다.
마지막 때 환난을 대비하여 준비하여야 한다.
연단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금강석은 용광로에 넣어서 순금과 찌꺼기를 갈라낸다.
철광석도 용광로에 넣어서 찌꺼기를 걸려낸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은 연단, 또는 정교함이 있다. 불속에 넣어주신다. 하나님께서 큰 환난을 주시는 것은 연단을 위해서이다.
순수한 믿음으로 자라나게 한다.
대 추수작업이다. 이 세상 살면서 회개를 잘해야 한다. 연단을 기쁨으로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십자가를 잘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환난 당한 사람을 찾아가 전도하여야 한다.
우리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77. 말세 교회에 오신 예수님: 계 2장 7곱 교회 이다.
계시록 요한에서 장차 임하실 예수님을 보여주셨다. 요한에서 일곱교회 보내는 편지를 보여주셨다. 소 아시아지바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일곱교회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도 다 주셨다. 세상의 교회 중 일곱종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도교 2000년의 역사에서 일곱시대로 나누어 가진다;
초대교회 (첫 번째 교회):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고 있을 때 100년 까지를 에베소 교회라고 해석한다. 콘스탄틴황제가 교회에 자유를 준다. 박해받던 시기를 서머나 교회이다.
선교의 자유가 생기고 교회가 자유가 생기는 시대 버가모교회이다.
진짜가 어려워진 시대가 온다. 그러면서 세상과 짝짓기를 한다. 밀라노 착령에 의하여 교회의 자유가 생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정통신앙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혼란이 생긴다.
니케아에서 교회의 교리를 통일하게 된다. 이것이 니케아 신경이다. 사도신경이 성령에 대하여 설명이 없다. 니케아에서 성령에 대하여 넣었다. 기독교선교가 자유롭게 되었던 시기에 교회는 세속화 되어 갔다. 국교가 되었던 시기이다. 380년이다. 교회의 우두머리가 성공회이다.
왕이 왕권과 교권을 가지게 된다. 기독교는 로마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된다. 527년에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교황의 왕이 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를 암혹시대라고 한다.
초대교회는 100년, 박해 빌라노 칙령이 일어나기전 200년 순수한 교회, 급속하게 세상과 가까워지는 538년에 교황이 정권을 가지게 된다. 두아디아 교회이다. 이세벨을 연합하는 시기이다. 1517년 개신교가 탄생한다. 루터에 99개항 조항에 의해서이다. 교황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하였다. 사데교회는 종교개혁시대이다. 살았으나 죽은 자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로시아의 정교회에서는 사제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 우리 한국은 존경심이 없다.
루터가 가르친 믿음은 만인사제원칙, 성경, 순종이다. 루터가 가르친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앞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만인사제 원칙이다. 사데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없다. 결국 기독교의 싸구리 복음이 되었다.
타락이 생겨났다. 죄에 대한 감각이 무더졌다.
200년 지난 후 교회의 타락으로 반전이 일어난다. 경건주의, 모라비안이 일어난다.
요한 웨슬 리가 메소미스트의 운동이 일어난다. 세속화되어가는 그 속에 부흥이 이러난다. 18세기이다. 대각성운동이다. 무디의 부흥이 일어난다. 미국을 새롭게 해나간다.
웨슬리시대 끝나가고 19세기에 영국에서 큰 부흥이 일어난다.
동시에 영국이 식민지에 복음을 전한다. 19세기를 빌라데이나 교회이다
그 후 자유주의가 들어온다. 이 때 세계 1차, 2차전쟁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선교운동이 일어난다. 빌라데이아 교회이다.
20세기에는 자유주의와 오순절운동이 일어난다. 예수님을 세 가지로 표현하였다.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이다. 첫 번째: 진실로, 진리가 없은 시대이다.
두 번째: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다. 가짜가 많은 시대이다. 세 번째: 예수님의 모습은 창조의 근본이시다. 마지막 때는 창조를 부인한다. 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려고 세웠던 사립학교이다.
라오디아계 교회는 창조의 근원을 부인한다.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이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토하여 내치리라 마지막 시대의 신앙은 미지근한 신앙이다.
한나의 기도에서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는 것은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어려움은 나에게 유익이다. 고난속에 연단시켜 세워주시는 하나님. 다니엘과 요셉도 고난과 연단을 받았다.
찌꺼기는 버리고 정금을 가진 순수함이다.
흰옷을 사서 입ㅇ으라 안약을 사서 발라는 것이다. 문재인과 추미애을 통해 윤석열을 만들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라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문밖에서 계신 하나님, 식탁에 함께 마주앉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식사를 같이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오늘도 식탁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순수한 믿음으로 나아가자 너 나와 함께 식사하자. 의식주를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모든일에서 선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78. 인류역사의 종말은? 인류역사는 어떻게 될것인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어도 두려움이 생긴다.
주변의 사람에 대하여 의심을 하게 된다. 공포속에서 두려움에 빠진다. 자리를 지키려고 애쓴다. 높아지면 불행해 진다. 두려움, 허무함이 생긴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온다.
느브갓네살을 보면 알수 있다. 꿈은 내가 꾸지만, 해결사는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세 친구와 함께 기도한다. 왕의 꾼 꿈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가르치실 것을 믿었던 것이다.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시다.
욥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장차 될것인가에 대한 위구심이 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많이 나온다. 채석당에서 돌을 뜬다고 말한다.
용도에 맞게 의탁을 받은 대로 돌을 뜬다. 다니엘서 잘 다듬어 진 돌이다. 이 돌이 신상을 넘어뜨린다. 다니엘도 몰랐을 것이다. 이 세상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안다.
야벳족속이 창대하여 진다. 로마의 세력이 인류의 역사를 지배하여 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신다. 로마가 창대하여지다가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다. 하나님이 하셨다. 인간세상을 새롭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이 온다. 지금 우리는 로마 시대에 살고 있다. 돌과 흙이 합쳐진 시대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워 종족들간의 합쳐지게 한다. 종교통합뿐만아니다. 좌파의운동도 인정하고 합해지려고 한다.
문재인은 통합을 원했으나 오히려 분열이 되었다. 윤석열이도 통합을 원한다.
교회에서도 분열이 생기고 있는 시대이다. 통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러시아의 침공은 얼마나 갈가? 러시아를 배반한 중국의 시진핑이다.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통합이 이루어진다. wwc도 통합이 안되었다.
나 자신부터, 그리고 나의 자식도 잘 키워야 한다. 바르게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형식적인 아닌 의롭심이 강하고 불의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내 생명이 주안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하하나님이 세우신다. 진실하게 계7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부흥된다. 머릿돌이 태산을 이루리라
79. 하나님의 어린양 요1: 29-34절
핵심은 29절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린양의 설명에 대해 깊이 깨달아야 한다. 구약에서 이삭(모리아산에서 제사에 올라간 양)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죽은 어린양, 아사셀 양이다. 여호와를 위한 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모리아산에서 죽은 어린양이다. 예수님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이삭 대신에 죽으셨다? 우리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이삭을 살려내고 대신 죽으셨다. 내가 죽어야 할 나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셨다.
대신 죽으시고 내가 살아났다. 이삭의 질문은 어린양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더 대단하였다. 하나님이 예비하였을 것이다. 산에 올라갔어도 어린양이 보이지 않았다.
양을 찾지 못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여 올려놓고 칼을 들었다. 그러하실 때 하나님이 부르신다. 그 때에 숫풀에 걸려있는 어린양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어린양을 준비하여 놓으셨다. 그것이 언제 보이냐는 것이다. 안보이니깐 불안한 것이다.
항상 보이는 것도 아니요, 아무 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삭처럼 자기를 드려질 때 보인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마음의 감동이 생긴다. 안보이니까 걱정을 한다. 이는 믿음이 부족이다. 하나님앞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유월절 어린양: 마지막 재앙 10번째 재앙이다. 1년된 수컷을 13일날 해지기 전에 시각에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양을 잡게 하셨다. 피는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다. 살코기는 가족이 먹게 하셨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우리도 각자의 마음에 피를 바른다. 양을 잡아서 먹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았다. 나의 죄도 지고 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피를 나의 마음에 발라놓는다.
그러면 재앙과 죽음이 우리를 피해간다. 주님의 보혈의 피는 우리를 구원하신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아맛돈 전쟁이다. 러시아가 이 땅을 가지고 싶었다.
이 땅은 러시아와 중국, 구라파 세력이 겹치는 곳이다. 전쟁의 서막이 울린 것이다.
아사셀의 양이다. 대속죄의 날에 드리는 날이다. 정월 14일, 7월 14일이다.
대 속죄의 날에 아사셀양이 필요하였다. 지성소로 들어간다. 두 마리의 염소를 택한다.
여호와를 위한 양, 아사셀양이다. 여호와를 위한 양은 죽인다. 그 피를 단 뿔에 바른다. 속죄의 기도를 드린다. 아사셀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어로는 도피하는 염소이다.
버려진 장소를 가리켜 아사셀이라 한다? 마귀가 아닐가? 하나는 여호와께, 하나는 마귀에게 바친다?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제사로 갈라진 아벨과 가인이다. 가인은 살아났다. 쫒겨난 가인이 광야로 쫒겨갔다. 그렇다면 아사셀을 의미하는 것인가? 고생을 당해야 하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 악한 자들이 수없이 많다. 오히려 악인들이 잘 되어가게 만든다.
두 마리의 양중에서 아벨처럼 죽고, 가인처럼 죄를 짊어지고 광야에서 살게 된다.
위험한 곳에서 평생을 산다. 내 버린 가인처럼 고전 5:13절에서 아사셀을 사단으로 말하고 있다. 죄지은 자를 교회에서 쫒아낸다. 드디어 회개하고 돌아온다. 사단도 죄지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한다.
악인들은 죽을 고생을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머리털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아사셀은 고통과 불의와 죄를 짊어지고 살게 된다. 이스라엘의 전체 죄를 짊어지고 산다.
아사셀에게 던져준바 된 양은 오늘 날 세상 사람들이다. 성도가 되어야 죄를 깨닫게 된다.
이 나라, 민족의 죄를 지고 고생한다. 여호와를 위한 양인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사는 양으로 뽑혔다. 고생하면서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있다. 십자가 사건에서 죽임당한 예수님. 놓임을 받은 강도 바라바이다. 두 예수가 있다. 두 염소가 있다. 재물로 바쳐진 염소, 사단에게 내준바 된 염소가 있다. 바라바는 민란과 살인자로 사형수였다. 민란으로 인하여 잡힌 사람이다.
바라바는 놓인 받은 염소이다. 구약의 이야기가 신약에서 해석이 되고 이루어졌다.
주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도 내 목슴을 주님앞에 내놓아야 한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시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