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번째 이야기 묵주기도와 대형컨테이너 트럭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결혼 후에도 묵주기도는 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 왔다.
아내와 성장한 세 아이도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며, 우리 가족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긴ㄷ.
1955년에 나는 이탈리아 산조반니 로톤도에 계시는 비오 신부님께 나의 지향을 알려 드리고 기도를 청하는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해 3월 1일에 신부님의 상급 장상께서 "비오 신부님은 형제님의 지향을 위해 기도하실 것이며 그분의 축복을 보냅니다." 라고 쓰신 짧은 편지를 보내 주셨다.
비오 신부님도 나와 마찬가지로 묵주기도를 가장 열심히 하시며 매일 바치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성 비오 신부님께서 우리 가족을 위해 지금도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나는 자주 신부님께 기도드리며 성 비오 신부님을 내 삶에 선물로 보내 주신 성모님께도 깊이 감사한다.
나는 30년 동안 URM Store(미국 북서부에 있는 소매업 협동조합)에서 대형 컨테이너 트럭을 운전했고 때로는 두 개로 연결된 화물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다.
워싱턴, 아이다호, 몬태나, 오리곤 등지를 돌며 총 388만km를 운전하면서 거의 하루 종일 묵주기도를 하곤 했다.
1970년대 초 어느 날, 나는 루이스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심한 커브가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트럭의 브레이크장치에는 공기탱크에 충분한 공기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도로를 4분의 3쯤 내려갔을 때 공기탱크에서 공기 누출이 발생 했다.
기압계가 0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트럭을 통제하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에서 뛰어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동안 트럭은 경사가 완만한 커브 길을 돌면서 천천히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다.
에어브레이크가 없는 상태로 움직이고 있는 트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핸드브레이크로 속도를 낮추는 것뿐이었다.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기자 트럭은 속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기면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님, 성모님, 도와주세요!" 그러자 트럭은 속도를 점차 낮추면서 마침내 멈추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를 때면 나는 핸드브레이크가 트럭을 멈춰 서게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핸드브레이크가 트럭을 멈춰서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ㅁ님께서 당신의 푸른 망토로 내 트럭을 감싸 주셨다. 감사합니다. 푸른 망토의 성모님!
자동차 운전에 최악의 날씨는 안개와 빙판길이다. 몬태나의 리비로 트럭을 몰던 때의 일이다.
그날은 매섭게 추운 날씨와 짙은 안개로 자동차 창에는 성에가 두껍게 끼어 있어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시속 40km로 천천히 운전을 함변서 안전한 운행을 위해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밫였다. 그렇게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데, 성에가 낀 차창너머 길 오른편에 얼핏 말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운전을 하고 가는데 안개 속 길 한복판에 서 이쓴 말 한 마리가 또 보였다.
이번에는 내 트럭과 70cm쯤 거리에서 왼쪽 차창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도로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말을 두 마리나 본 것이었다.
그 말들이 어째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일까?
마치 기적처럼 두 마리의 말이 좌우로 서로 멀리 떨어져 서 있었기 때문에 내 트럭은 그 사이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눈으로 보았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말들이 내 트럭과 너무나도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칠 뻔했다.
리비에서 돌아오는 길에 안개는 걷혀 있었다.
내가 말을 보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말 한 마리가 죽은 채 길가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 말을 치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성모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말들이 간격을 두고 있어서 내 트럭은 잔전하게 그 사이를 지나갈 수 있었다. 성모님께서 내가 지독한 안개 속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던 것이다.
1968년에 워싱턴의 트위스프로 운전을 하고 갔다가 영하의 날씨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눈보라가 치더니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던 눈이 도로에 쌓이기 시작했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집까지 오는 데 열여덟 시간이 걸렸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나는 "예수님,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올렸다.
워싱턴 윌라월라로 가는 길이었다. 오르막길을 지나 막 내려가려는 찰라 오른쪽 앞바퀴의 볼트가 헐거워지면서 바퀴가 앞뒤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몇 초 안되는 그 순간에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바퀴가 빠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퀴는 빠지지 않았다.
성모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을 몰련서 묵주기도를 바치면 좋은 점이 참으로 많았다.
하느님의 창조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산을 지나 온갖 나무가 우거진 숲을 볼 수 있고, 팔루스를 지나 월라월라로 가는 길에는 황금빛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미풍이 불고 태양이 빛날 때면 황금빛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다. 몬태나의 리비 주변과 포스오브줄라이 패스 근처의 풍광은 더욱 아름답고 몬태나에 펼쳐진 산과 강들 역시 눈을 즐겁게 해준다.
그레이트컬럼비아 강과 거기 세워진 댐, 저지대, 고지대, 돌로 뒤덮인 평지, 산쑥 드넓은 밭과 과수원, 산림지대 등등 그 모든 것을 보았으며 하느님의 창조물에 감사했다.
트리시티에서 애키모에 이르는 길에는 끝도 없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다른 여러 과일과 더불어 가장 풍미 있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오카노간 카운티를 거쳐 트위스프를 지나 웨나치로 가다보면 수많은 종류의 사과 밭이 이어진다.
웨나치에서 나는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의 수녀님들을 위해 과즙이 풍부하고 크고 아삭아삭한 레드딜리셔스 사과를 샀다.
그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정말 '아삭' 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운전을 하면서 언제나 묵주를 가지고 다녔다.
나는 고속도로와 일반도로, 좁은 길 등을 대형컨테이너트럭을 몰고 다닌 그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나를 보호해 주신 성모님께 감사할 뿐이다.
성 비오 신부님도 묵주기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나를 구해 주셨음이 틀림없다.
-워싱턴주 스포캔에서 웨인 샤틀러-
첫댓글 아~~비오신부님
사진 퍼가요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