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랑끝에 서다 ( 53회 )

제 53장,   혜선은 일을 하면서도 은서가 자신의 실력을 충분하게 발휘해서 실패가 없는 시험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설사 낙방이 된다 하더라도 후회 없는 도전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면서 모든 시간을 은서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은서가 없는 집은 그야말로 휑하니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시간이 나면 은서의 방문을 열고 은서가 늘 치던 은서의 손길과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려본다.   “은서야! 최선을 다해서 잘 할 수 있지?“ 혜선은 일을 하면서도 은서를 생각한다.   잠시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이 영원한 시간처럼 너무 길게 느껴진다.   “아, 내가 이러고 어떻게 우리 은서를 그 긴 세월 유학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혜선은 자신의 마음이 나약함을 스스로 꾸짖는다.   그렇게 매사에 은서를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혜선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중년의 중후한 남성이다.   “저.......한혜선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만.....”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한혜선입니다만........... 이쪽으로 오십시오.“   혜선은 말을 하면서 그를 작은 사무실로 안내하면서 들어간다.   소파에 앉기를 권하고 나서 혜선은 전기포트의 찻물을 준비한다.   “차를 무엇으로 하실까요? 커피, 녹차뿐이기는 하지만요.”   “네, 감사합니다. 커피로 주셨으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혜선이 차를 준비하는 모습을 남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지켜본다.   찻잔을 그 남자의 앞에 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찻잔을 들고 혜선은 남자의 맞은편에 앉는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실례를 범한 것은 아닌지요?”   “상관없습니다. 헌데, 제게 무슨 일이신지요?“ 그제야 남자는 자신의 윗저고리에서 명함을 꺼내어 혜선에게 준다.   “실은 김정환 선배님으로부터 소개를 받았습니다. 두어 번 전화를 드렸으나 더 이상의 주문은 받지 않으시기에 이렇게 실례를 범하는 것인 줄 생각하면서 찾아왔습니다.“   혜선은 남자의 명함을 들여다본다.   K대 영어 영문학 교수님의 직함이다.   K대라면 둘째 아주버님의 모교인 것이다.   “제 시숙님을 잘 아시나요?” “네, 저의 선배님이십니다. 우연한 기회에 선배님께 지금의 한사장님의 김치를 얻어먹게 되었지요. 어찌나 김치 맛이 제 입에 잘 맞는지 두어 번을 더 얻어먹고 나서는 형수님께 달려가 한 통을 담아 달라고 졸랐습니다.“   “.........................”   혜선으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심형자로부터 그런 남편의 후배가 있다는 언질도 받지 못했었다.   “형수님의 말씀이 이 명함을 주시면서 주문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나 더 이상 주문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만 하시기에 이렇게 직접 부딪쳐보고자 찾아왔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 워낙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보니 많은 물량을 주문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실 것이 아니라 제 형님께서 전화를 주셨더라면 이런 수고를 하시지 않으셔도 되실 것을 고생하셨습니다.“ ”한사장님! 저도 고객 명단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백지혁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사정을 한다.   “백교수님! 이러지 않으셔도 충분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워낙에 밀려드는 고객을 모두 받지 못함이 제일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제 고집이 자동화 기계시설을 설치해서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제 손맛으로 정성을 다해서 고객 분들의 입맛을 맞추어드리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네, 그래서 제가 그 맛에 반한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찾아오게 만드신 한사장님의 솜씨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백지혁은 조용한 음성이었으나 그 음성 또한 참으로 듣기 좋은 음성이라고 혜선은 생각하며 그를 바라본다.   “백교수님!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이곳에 주소를 적어 주십시오.“ 백지혁은 주소와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는다.   “혼자 살고 있기에 많은 주문을 하지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아닙니다. 물량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주문을 하신다면 아마 받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든지 전화만 주시면 바로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배추김치와 나박김치 그리고 총각김치로 이렇게 제일 작은 포장으로 해서 주십시오. 제 차로 바로 가지고 가겠습니다.“ 혜선은 백지혁을 사무실에 두고 자신이 직접 포장을 한다.   "승용차의 번호와 키를 주십시오. 차에 실어드리겠습니다.“ 혜선은 백지현의 차키를 가지고 나가 아줌마를 시킨다.   “한사장님! 이렇게 흔쾌히 수락을 해주시어 정말 감사드립니다. 행여 거절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지요. 제가 워낙에 김치를 좋아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김치만 입에 맞으면 다른 반찬은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습관이 있답니다.“   “네, 그러시군요.”   “한사장님의 김치 맛을 본 뒤로는 식사 때가 되면 항상 생각이 나서 염치불구하고 형수님을 찾아가게 만들더라고요.”   “제 형님하고도 자주 내왕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네, 전에는........집사람이 살아 있을 젊었을 때는 형수님과도 곧 잘 어울리고는 했지요.”   “...............................” 혜선은 그가 상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듣고는 무심한 척 한다.   “혼자 지내다 보니.....그보다 이제는 그럴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아마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선배님과 형수님을 자주 뵙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만 김치로 인해 형수님을 찾게 되었지요.“   백지혁은 심형자와도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터였다.   심형자는 그런 백지혁에게 김치를 내어주는 대신에 혜선의 명함과 장소를 말해 주었다.   백지혁이 돌아가고 나서 혜선은 심형자에게 전화를 하려다 그만둔다.   별 일도 아닌 것을 공연히 전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선은 새로운 고객으로 백지혁의 이름을 올린다.   은서는 시험을 끝내고 나서 귀국한다.   은서를 마중나간 혜선은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초조하다.   전화로서는 무척이나 담담했던 은서의 음성이었다.   비행기는 연착을 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을 한다.   혜선은 초조한 마음으로 출구를 보면서 딸의 모습을 찾는다.   한 달을 안 보는 시간이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아! 은서야!” 혜선은 은서의 모습을 보자 은서를 부르며 뛰어간다.   “엄마!”   모녀는 마치 이산가족의 수십 년만의 만남처럼 서로 부둥켜안는다.   “건강하지? 응 어디 아픈 곳은 없는 거지?“ 혜선은 은서의 얼굴을 만지며 몸을 살핀다.   “엄마! 내가 왜 아파? 난 괜찮아요.“ 혜선은 잠시 그렇게 은서의 모습을 살피고 나서야 곁에 계시는 은서의 레슨교수님을 보면서 인사를 드린다.   “정말 교수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은서가 모든 것을 너무 잘 해 내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모두가 교수님께서 지도를 잘 해주신 덕분입니다.“ 혜선은 은서의 손을 잡고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간다.   은서의 표정이 밝고 명랑했다.   은서는 생각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허가서를 받는다.   이제 본격적인 은서의 유학준비를 해야 한다.   “은서야! 정말 너 혼자 몇 년씩 잘 지낼 수 있겠어?“ 혜선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묻고 또 묻는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더구나 교수님께서 소개를 해 주신 집이 하숙생들을 위한 집이 아니고 오스트리아의 평범한 가정이에요. 그 집에 나하고 비슷한 딸들이 둘이 있는데 그동안 많이 친해졌고요.“ 은서는 시험을 보러 간 한 달 동안 그 집에서 머물면서 그 가족들과 친숙해진 것이다.   은서 역시 그곳에 있는 동안 오스트리아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은 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vienna).   빈(wien/vienna)은 오스트라의 수도로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다.   인구 약 157만 명   면적 415㎢, 지중해 기후와 내륙 기후의 경계지점으로 중부 유럽의 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다.   빈은 베토벤(Beethoven)과 모차르트(Mozart)등 유명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고,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꼽히는 슈테판 성당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던 쇤부른 궁전, 빈 공원 등이 유명하다고 하는 것과 그 집의 두 딸들과 잠시 가 보기도 했다.   중부 유럽을 동서 방향으로 달리면서 민족·기후·식생 등의 경계를 이루는 알프스·카르파티아 산맥을 관류하고 있는 도나우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도나우 강은 북서 유럽과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교통의 동맥이며, 13세기 이래 빈 남서쪽 70km 지점에 있는 젬메링 고개의 개통에 따라 빈은 동 알프스 및 이탈리아와의 교통이 용이하게 되었 다.   예전의 파노니엔 호(湖)와 옛 도나우 강의 유로가 시가지 서쪽 변두리의 ‘빈의 숲’이라고 불리는 산지와 그것에 이어지는 토지에 명확한 단구(段丘)를 이루어 놓았다. 빈의 숲의 작은 골짜기는 계단 모양을 이루는 산지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주변지역을 포함한 시역(市域)은 1,215km로 슬로바키아와의 국경을 이루는 마르히강까지 펼쳐지는 광대한 마루히 평원에서 반원형으로 높아진 단구 면을 포함하여 빈의 숲까지를 가리킨다.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는 빈의 숲은 건축 등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05년 그린벨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25km2를 차지하는 이 구역은 주로 사암(砂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프스·카르파티아 산맥이 끊어지는 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북서쪽의 중부 유럽 기후에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우며 강수량도 비교적 적은 동쪽의 대륙성 기후로 옮겨지는 점이지역(漸移地域)에 해당한다.   1월 평균기온은 0.4℃, 7월은 19℃이며 한낮에는 24℃가 된다.   연강수량은 691mm 내외이며 여름에 다소 많이 내린다.   식생도 기후를 반영하여 서쪽의 발틱 식물구와 동쪽의 파노니엔 식물구의 점이지대를 이룬다.   빈의 숲 서쪽은 너도밤나무의 숲이 무성하다. 동쪽과 남쪽은 떡갈나무와 흑송 숲이 무성하여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은서는 그동안 그 집의 두 딸들에게 오스트리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여러 가지를 보았다.   해마다 2월이면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비엔나 오페라 볼’(The Vienna Opera)이 열린다는 것을 이야기 듣는다.   비엔나 오페라 볼은 세계적인 무도회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 무도회 입장을 위해 저축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는 말도 그녀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그녀들의 저축도 볼 수 있다.   비엔나 오페라 볼은 일종의 왈츠 축제다.   오스트리아의 정관계 인사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유명인이 찾는다. 5000명이 넘는 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입장해 행사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 무도회의 도시’인 빈을 홍보하는 효과가 크다.   세계인들의 가슴 속에 무도회 시즌에 낭만적인 빈의 모습이 각인되는 효과도 만만치 않다.   빈 시청은 무도회 시즌 동안 6700만 유로의 수입을 올리는 등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은서는 그동안 자신이 듣고 보았던 이러한 말들을 엄마와 함께 하면서 유학준비를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낸다.   혜선은 그 짧은 시간동안 은서가 보고 배운 것들을 이야기 들으면서 은서를 위해서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을 잘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혜선은 바쁜 김장철의 모든 주문들을 끝내는 십이월 말에 은서와 함께 오스트리로 출발할 예정이다.   그런 혜선은 위해서 덕희와 정일은 은비만 혼자 남겨진 집으로 올라온다.   정일은 혜선과 은비와 은서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다.   글:   일향     이봉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