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9)
2009-11-02 16:24:05
267차 인왕산-북악산 연계산행
2009. 11. 2. / 산강 박광용
산행일 : 2009. 11. 1. (일), 흐림
산행길 : 독립문역-인왕산-자화문-돌고래바위-북악산-곡장-촛대바위-숙정문-와룡공원-혜화동
산동무 : 광용, 상국, 문수, 은수, 정호, 규홍, 상욱. (총 7명)
오래 전부터 공지에 올랐건만 삼악산엘 가야 할지 망설였다. 5공 대장과 상의하니 굳이 삼악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언질에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인왕-북악 연계산행을 생각해냈다. 600년 전 한양성의 성곽을 따라 한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과, 최근 정치인들에게 인기 있는 복고풍의 일례로 성곽복원사업이 한창이라 어떻게 복원하고 있는지도 한 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길은 그 동안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박정희 시절 김신조 사건 이후 완전히 폐쇄, 성곽 밖으로 휴전선 같은 철책까지 설치하여 민간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왔던 길이다.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에 인왕산 길은 김영삼 정부 때 개방됐고, 북악산의 일부 길은 노무현 정부에서 개방했다. 이후 지금의 한성판윤은 4대문을 전부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일제 때 전차를 가설하면서 없애버린 돈의문(서대문)까지 복원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의문(서소문)만 복원하게 된다면 한양성의 4대문과 4소문이 모두 제 모습을 갖게 되는가 보다.
여기 더하여 성곽까지 복원할 수 있다면 한양성의 제 모습을 찾게 되는 모양새다. 이런 계획이 가능이나 한 것일까? 개발의 논리에 밀려 항상 실행계획의 뒷전에 밀려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 계획이 최근 하나씩 제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 대문과 소문을 있는 성곽은 이미 개발된 도로나 빌딩에 점령당한 지 오래라 그 완전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하더라도, 산이나 둔덕에 남아있는 석조물의 복원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제대로 축성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왕산> 하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옛 추억 하나. 그 유명한 재경삼공회 회장님이었던 솔고님의 사진 두 장! 여기에 산지기가 덧붙인 명 해설이 당시 <후라30>을 벌겋게 달구었다. <아래서는 회장님이지만 산에서는 쫄도 못 되는 우리의 회장님>이란 제목의 글이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 아니 전우주적으로 히트 쳤다는 거 아이가…… ㅋㅋㅋ 그 추억을 반추하고자 주인공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참석 못해 죄송’이란 답이 전화기에 뜨고 끝내 나타나지는 않더라.
이런저런 생각에 공지를 올렸건만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비 온 뒤 추워질 거라니 마음 한구석 걱정이다. 너무 낮은 산이라 실망한 건지 뒤풀이에 ‘핏짜 한 판’이라는 문구가 거슬렸는지 참석자도 많지 않다. 결국에는 ‘핏짜 한 판’ 뒤풀이가 못마땅한 산지기와 나라선사는 ‘돌문어가 돌았다’느니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느니, 출발도 하기 전부터 난리 아닌 난리다. 쿠데타를 당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던데,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전날 전화 속의 나라 선사님은 완전히 맛이 갔더라. 혹시 신종플루 같은 거는 아이겠제? 여기서 특별공지 하나, 신종플루의 예방/치료약은 산행이라는 거 알고 있제?
일요일 아침 0855 독립문역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주변을 서성이고 있으니 하나 둘 나타난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로 인사하고, 처음 보는 얼굴이 은수와 함께 나타난다. 이상욱이란다. 지난 북한산 산행에서도 온다며 굳게 약속했다며 산행대장 장사님이 애타게 찾았던 바로 그 인물이다.
지난주 고시 합격했다는 산지기는 얼굴은 좀 야위어 보이지만 입가에는 연신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규홍이도 오랜만에 보고, 정호가 조금 늦게 도착하자 0920 산행 시작이다.
길가 표지판 따라 인왕사로 오른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산길, 감각적으로 올라간다.
인왕사 뒤편으로 돌아 오르면 좀 험상궂게 생긴 바위가 하나 서 있는데, ‘선바위’인 듯한 바위를 비둘기는 자기네 집으로 여기나 보다.
거무튀튀한 빛깔에 구멍이 숭숭 나있는 바위가 문화재라는데 뭔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위로는 성곽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뭔가 길이 분명치 않더니,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이쪽으로는 인왕산 꼭대기에 갈 수 없단다.
성곽보수공사 중이라, 저쪽 아래로 내려가서 성곽을 뚫린 곳을 넘어 편안한 등로로 올라가라 한다.
이왕 공사할 거라면 갈 수 있는 길은 우회로로 내주면서 공사하면 더 좋은 소리 들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나만의 생각인가?
(모자바위...나는 광용이가 이 바위땜시 이 길을 강행한 줄로 오해했다...ㅎㅎㅎ)
(얼굴바위란다....) 이 길로 광용이는 올라가삐고 우리는 기다리다가 내려와서 성벽 옆길로 우회했다...
어쩌고저쩌고 하여 나와 잠시 헤어진 일행은 인왕산 바로 아래 소나무(추억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다. 뒤에서 내 흉보는 소리 많이 했제?
잠시 사과, 귤 한 조각으로 땀을 식히면서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는 솔고님에 대한 추억이다. ㅎㅎ 이제 인왕산 정상으로 이동한다. 북으로는 북한산 문수봉 보현봉이 구름을 이고 있고, 비 올 것 같지는 않지만 저 먹구름이 밀려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 조아린다. 여기는 성곽 안으로 들어온 것이니 동으로 ‘푸른 기와 집’이 또렷하다. 그 앞으로는 600년 전 천하를 호령했을 해동육룡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고, 보수중인 광화문은 차양에 가려있다. 그 왼편 넘어 오르막에는 가야 할 북악산이 우뚝하고 그 능선 따라 성곽이 또렷이 눈에 띈다. 남으로는 사직공원 쪽에서 시작하는 성곽이 하얗게 눈에 띄게 보이는데, 최근 다시 성곽보수공사를 마친 모양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바위 위에서 단체 사진 하나 남기고 출발이다.
잠시 나아가면 갈림길이다. 북으로 한양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이 세검정의 홍지문을 지나 북한산 향로봉으로 이어진 길이고, 동으로는 600년 전 실제의 한양성이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북악산 정상으로 갈 것이다. 내림 길에서 희한한 소나무를 하나 발견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키 작은 소나무가 자신의 뿌리를 바위 위로 길게 드리우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줄기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삶도 참으로 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군사보호시설이라 성곽을 따라 곧이 나아가지 못하고 인왕산길(스카이웨이)로 내려서서 5분을 나아가면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자하문)이다.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온통 인공구조물이다. 그 구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하문 고갯길을 건너 올라가면 창의문이 반듯하게 서있다. 북소문에 해당하는데도 누각을 올려뒀다. 북한산성, 남한산성의 경우 대문에만 올려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나름의 연유가 있을 게다. 출입통제소에 신고, 표찰을 목에 걸고 급한 계단 길을 올라간다. 여기서 오르는 길이 급한 경사다. 온통 목재계단을 만들어 뒀다. 좀 싫다.
돌고래바위에서 잠시 쉬어가고 마지막 급한 경사를 올라치면 북악마루다.
정상에는 <백악산>이란 정상석이 놓여있고, 남으로 내려다보려고 하나 앞에는 소나무가 가득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하기야 여기서 ‘푸른기와집’을 볼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건가?
일곱 산우들이 앉을만한 장소를 물색하지만 용이치 않아 펜스 끝까지 가보는데 경계근무중인 사복차림의 병사가 다가와서 소리치며 중앙부분으로 올라오란다. 갱상도 목청에 발동이 걸렸다.
“이 사람아, 그러면 펜스를 위로 설치하든지 해야지 갈 수 있는 곳에 가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묻는데 지시사항이란 말 밖엔 다른 말이 없다. 지휘장교의 지시사항으로 육안식별이 가능하도록 관람객을 통제하라는 명을 받은 모양이다. 이런 거는 아직 개방되지 못했나 보다.
이제 또 내려가자! 올라갈 일은 없어진 셈이다. 성곽을 따라 곡장이란 데를 지난다. 아마도 창고로 쓰였을 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조금은 늦어졌음을 느낀 선두는 촛대바위도 그냥 지나가고, 숙정문, 말바위도 그냥 지나쳐나간 모양이다. 뒤따라 가느라 힘만 드네. 말바위 구간에서 성 밖으로 나가고 오솔길을 따라 와룡공원으로 내려간다. 호젓한 오솔길, 와룡동 성북동 주민들은 덩굴이 얽혀있는 이런 옛 성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겠다. 직진하면 삼청공원이라는데 와룡공원 쪽이 빠를 것 같아 왼쪽으로 내려선다.
나와바리를 주장하는 규홍이의 의견에 따라 성북동 방향으로 가서 버스 타려던 계획은 그 버스의 배차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냥 걷기로 한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점을 통과하며 온갖 비방을 무릅쓰고 혜화동 대학로까지 걸어간다. ‘오늘 대장 진짜 미친 거 아이가?’ ‘저거 미버 죽겠는데 우째뿌꼬?’ ‘진짜 말 안 듣네!’ 이 정도는 감미로운 음악이다. ㅎㅎㅎㅎㅎㅎ
20분을 걷고 걸어서 더디어 도착한 핏짜집! (혜화역 1번 출구 나와서 건널목 건너면 정면에 보임)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좁은 공간에 손님이 제법 많다. 구석진 자리에 일곱의 섬머스마들이 자리하고 맥주와 핏짜를 주문한다. 문수 은수는 수긍하는데 상욱이는 영 내키지 않아 하고, 상국이는 오랜만에 산에 나오면서 마나님이 점심을 싸주더라나? 이 밥 남겨가면 큰일 나는 거다. 김치 꺼내 핏짜에 얹어 먹으니 이 또한 먹을만하다. 쥔장이 옆을 지나면서
“이도 저도 아이고 그 무슨 맛입니까??”
내가 굳이 이 핏짜집으로 우리 산우들을 불러들인 이유는,,,,,,
1) 주인장 아줌마가 예쁘고,
2) 산을 억수로 잘 타고 적어도 북한산은 빠꿈이며,
3) 이에 따라 내 북한산 산행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고,
4)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북한산 알림이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혹시 관심 있는 산우들은 <신기루> 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good7882/)를 한 번 방문해 볼 일이다. 아울러 한 사람 더 소개하면, <산001> 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san001/)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블로그에는 북한산 산행기만 270편이 넘게 실려 있다. 하나하나 자신의 발로 뛰어 직접 작성한 산행기이니 과히 북한산 논문이라 해도 될 성 싶다. 참고로 이 분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상욱, 이번에 처음으로 산우회를 접했다. 지난주 장사님한테 산행 참석을 굳게 약속했는데, 그 놈의 술이 원수인지, 그만 참석치 못하게 되었단다. 이번에는 아예 약속하지 않으면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블로그 공지사항만 보고 나타난 거다. ‘핏짜 한판’이란 공지사항을 보고 딸래미가 ‘아빠 친구 멋쟁이’라 했다는데, 그 딸래미도 멋쟁이 아가씨임에 틀림 없을 것 같다. 상욱이 풀어놓는 이야기 보따리가 무궁무진이다. 지나간 얘기에서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친구들의 이름도 거론된다. 지진홍, 장용성, 등등,,,,,, 앞으로 자주 등장하여 그 얘기 끝을 한 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상욱아, 자주 나온나. 자주 보자.
모두들 대장의 억지 산행에 동참해줘서 고맙다. 당구? 또 졌다……
상욱이가 첫 산행 신고식을 치뤘는데.... 삼겹살 잘 무웄다.
초창기에는 처음 신고하는 산우에게는 당일 회비도 면제해주고 그랬는데....
세월도 많이 팍팍해졌다.
다음주, 경부합동 가을 소풍이라는데, 많은 산우님들, 동기분들, 참석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