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어 유학을 가고, 처음엔 1년, 그다음엔 2년 그렇게 연장하면서 10여 년을 보냈죠. 런던유학은 제 인생에 있어서 첫 반란이었습니다.”
동양인이 매퀸즈에서 매니저를 한다는 것은 희귀한 일이었다.
“원래 플로리스트로만 일하고 싶었어요. 처음 매니저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는데, 대표와 동료들의 권유에 못 이겨 3개월만 버티자 했고, 결국 끝까지 하게 되었어요.”
모든 일을 총괄해야 하는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그는 개인 시간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워커홀릭이 되었다.
“퇴근해 집에 돌아와서도 직원들에게 다음 날 일을 지시하는 문자를 다시 한 번 보내야 할 만큼 철저해야 했어요.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에게는 런던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칸까지 유럽이 모두 활동 무대였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회사원으로 일하던 그의 원래 꿈은 푸드스타일리스트였다. 푸드스타일을 공부하려면 ‘꽃’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꽃 공부에 빠져들면서 플로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문학과 예술, 인테리어와 디자인, 건축, 요리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꽃은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저는 그림 중에서도 수채화를 좋아하는데, 영국의 꽃 장식 스타일이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쓱쓱 그린 것 같아 좋아했습니다. 저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트렌디한 스타일리스트로 남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싶은 꽃을 만들고 싶지요. 영국의 플로리스트 전통은 가드닝에서 출발합니다.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식이지요.”
그가 공부한 콘스탄스 스프라이는 영국의 자존심이라 할 만큼 전통을 중시한 학교이고, 그만큼 기본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한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클래식&모던’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간혹 학생들이 그의 꽃에 대해 영국식 스타일인지 프랑스식 스타일인지 묻기도 하는데, 그는 “제 스타일이에요”라며 웃는단다. 일명 ‘조조 스타일’이다. 그의 꽃은 ‘영국 스타일을 넘어 한국적인 감성을 담은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는 굉장히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오랫동안 공부하고 일했던 런던 생활을 통해 얻은 점이 있다면 ‘두 문화를 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영국은 누구나 꽃에 대해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웨딩부케를 만들거나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꽃이라든지 요구가 구체적이고 다양합니다.”
처음엔 ‘이 사람들은 꽃 하나를 주문하면서 이렇게 말이 많을까?’ 생각했지만, 우리나라에 온 후 자신의 이야기는 없고 연예인 누가 들었던 웨딩부케를 만들어달라든가, 유행하는 스타일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이야기, 스타일이 없다면 예뻐도 영혼이 없는 꽃과 같아요. 플로리스트도 자신만의 감성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런던으로 떠날 때만 해도 한국에서 플로리스트란 직업은 생소했다.
“플로리스트란 직업이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웃음) 요즘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돌 스타를 부러워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화려해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지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꽃시장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강도 높은 일이라면서 그는 꽃을 다루는 일이라 해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우아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좋은 플로리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인문학으로 감성 채우기’를 권한다. 런던에 있을 때도 쉬는 날이면 박물관・갤러리를 다니거나 서점에서 책을 보면서 오롯이 자신을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카페에서 하루 종일 잡지를 정독하기도 했지요. 패션・건축・여행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봅니다. 세계의 트렌드를 한눈에 보는 데 잡지만큼 좋은 교재는 없다고 봐요.”
그는 유명 인사들과 얽힌 기억이 많지만, 그중 영국의 천재적인 디자이너라 일컫는 알렉산더 매퀸의 장례식에 보낸 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한다.
“그가 평소 아끼던 시그니처 꽃은 흰 장미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엔 빨간 장미를 보냈습니다.”
꽃의 생명은 짧다. 하지만 그 짧고 아름다운 시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는다. 플로리스트는 어쩌면 그 보이지 않는 기억과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