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총림 통도사에 율원을 개원하며
혜남 스님(통도사 전계사)
통도사는 지금으로부터 1359년 전에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로서 나라의 큰 절(國之大刹)이고 불교 집안의 종갓집(佛之宗家)이다. 나라의 큰 절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사격(寺格)이 높다는 의미이고 불지종가(佛之宗家)라고 한 것은 수많은 불상이 있고 탑이 있지만 그 가운데 통도사가 종가 집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와 ≪통도사 사적기≫ 등에 의하면 '이 절을 창건하신 자장율사께서 중국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기도를 드리니 꿈속에 인도 스님이 나타나 게송을 알려 주었다. 자장 스님이 비록 그 내용을 외웠으나 뜻을 알지 못했다. 이튿날 꿈속에서 본 스님이 오셔서 그 게송의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주었다.
일체의 법이 자성이 없는 줄 알라.
이와 같이 법성(法性)을 알면 곧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
자장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깨치자 인도스님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와 가사(袈裟) 등 유물을 주면서 이것을 갖고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거기에 봉안하면 나라가 크게 흥할 것이고 경주의 서남쪽 백여 리에 있는 늪을 메우고 절을 짓고 금강계단을 세워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모시고 승니(僧尼)를 여법하게 득도시키면 불법이 크게 흥하리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심지법문을 듣고 도를 깨친 다음에 그 계법을 전수(傳受)하였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문수보살로부터 심지(心地) 계법(戒法)을 받고 당나라 태종황제를 뵈오니 황제께서는 승광별원에 머물게 하고 융숭한 대접을 하니 자장 스님의 처소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하루는 도적이 들었다가 자장 스님의 인격에 감화되어 참회하고 오계를 받았으며 또 하루는 장님이 자장 스님의 오계(五戒) 법문을 듣고 눈을 뜨게 되자 이 소문이 널리 퍼져 매일 천명이 넘는 사람이 자장 스님에게 계를 받았다. 자장 스님이 번거로움을 피하여 종남산 운제사에서 수도하시다가 선덕여왕의 요청으로 귀국할 무렵에는 태종 황제께서 식건전으로 자장 스님을 초청하여 계를 받았다. (於是皇帝 請于式乾殿受戒)
문수보살로부터 부촉 받은 부처님 사리와 당나라 태종으로부터 받은 대장경(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여 온 대장경임)을 갖고 신라에 돌아와서는 분황사에서 보살계를 설하여 보살계 정신을 널리 선양(宣揚)하고 영축산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설립하여 승려가 되는 사람은 모두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수계(受戒)하도록 하였다. 금강계단이라는 말은 한번 계를 받으면 그 계체(戒體)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은 불성종자를 이룸을 표함이니 현상적으로 계단을 만들 적에도 어떠한 화재(火災)나 풍재(風災), 수재(水災)에도 파괴되지 않은 금강과 같은 견고한 돌로서 만들어진 계단임을 말한다. 중국 오대산의 벽산사에는 푸른 옥으로 만든 계단이 있는데 이를 불러 벽옥(碧玉) 계단이라 하고 죽림사에는 백옥으로 계단을 세워 백옥(白玉) 계단이라고 하였다. 통도사(通度寺)라는 말은 통도사의 의지처(依支處)인 영축산이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通印度)는 뜻이 있으며 온갖 법을 통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通達萬法 度諸衆生)라는 뜻이 있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천하에 승려가 되려는 사람을 통틀어 득도시킨다(天下爲僧者 通而度之)라는 뜻이 있다고 하니 통도사 금강계단의 위상을 알만하다. 도선율사가 지은 ≪속고승전≫에는.
자장 스님이 황룡사에서 보살 계본을 강의하니 7일 7야(夜)에 하늘에서 감로를 내리고 상서로운 구름이 강당을 덮으니 사부대중이 감탄하고 성망(聲望)이 멀리 퍼져 마지막 회향하는 날, 계(戒)를 받으려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이로 인하여 생활을 혁신 하는 사람이 열 집에 아홉이었다. 자장은 이러한 가운(佳運)을 만나자 더욱 용기를 내어 소유하고 있던 옷과 자산을 보시하고 두타행을 일삼았다. 바로 이 무렵 신라에 불법이 전한지 백년이 되었으나 아직 정착하기에는 수행하는 방법과 부처님을 받드는 법이 모두 모자라는 것이 많았다. 이에 모든 대신들이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의론하여 모든 것을 대국통에게 맡기자고 하였다. 자장이 승니 오부로 하여금 각각 이전부터 익히던 것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고 다시 규율을 바로잡는 사람 즉 일종의 승관을 두어 감찰토록 하고 보름마다 계를 설하여 계율(戒律)에 의지하여 업장을 참회하게 하며 봄과 겨울에 총괄적으로 시험하여 계율 지키는 법을 알게 하였다. 또 순사(巡使)를 두어 여러 절을 편력하면서 설법으로 경계하고 격려하며 불상을 장엄하게 꾸미고 대중이 하여야 할일을 경영하고 다스리기를 제도화하여 상례로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말한다면 호법보살(護法菩薩)이란 바로 이 사람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장이 문수보살로부터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듣고 큰 깨침을 이룬 뒤에 보살계 정신을 드날려 국가의 풍속을 혁신하고 승려의 기강을 바로 잡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율사인 도선으로부터 호법 보살이란 칭호를 받은, 자장 스님이 설립한 통도사 금강계단에 율원을 개원하여 "계(戒)로서 스승을 삼으라."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지키고 "계율을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한 몸으로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겠다"는 자장 스님의 계율정신을 천양할 수 있게 되었음은 비단 한국불교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만연하여 도덕적으로 해이하여진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적인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