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34)
낫날 커피
장인수(1968~ )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다루어도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익은 참깨가 우수수 떨어진다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살살 베느라
낫질을 하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털푸덕 주저앉아 쉰다
꼭두서니 빛 노을이 시뻘겋게 타오른다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생애를 언젠가 가져갈 별들이 뜨겠지
밭고랑에서 믹스커피를 탄다
콧등의 땀방울이 후두둑 커피에 섞인다
낫날로 커피를 휘젓는다
깻대 하단부를 싹둑 베던 쇠맛이
혀끝에 배어든다
베인 듯 핏빛 영혼 흘러나와
커피를 물들인다
장인수 시인
충북 진천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수학. 2003년 <시인세계>에 「돼지머리」 외 4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 소리 질러!』, 『적멸에 앉다』, 『천방지축 똥꼬발랄』, 산문집으로 『창의적 질문법』,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야』, 『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 등이 있다. 28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34번째 시는 장인수 시인의 “낫날 커피”입니다.
시골내기들이라면 모내기, 벼나 보리베기, 이삭줍기 등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벼베기 중간에 새참으로 나온 국수를 말아먹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콩타작과 깨타작은 또 어떻습니까. 마당 한복판에 멍석을 깔고 잘 마른 콩다발을 도리깨로 후려질 때 콩콩콩, 하고 튀는 콩은 아기의 함박웃음처럼 가볍고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참깨타작만큼 어려운 것이 참깨베기였습니다. “아기 다르듯 조심조심 다루어도/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익은 참깨가 우수수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참깨 냄새가 온 지구를 채우고도 남을 듯했습니다.
“노을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시간이군요. 때를 놓친 산매미 두어 마리가 울고 있을 듯도 합니다. 새참으로는 막걸리 대신 “믹스커피”입니다. 커피가 잘 섞어지도록 저어줄 스틱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참깨대를 베던 “낫날”로 “커피를 휘”저어 줍니다.
아뿔사, 이때 느끼는 “쇠맛”! 이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흘러나”온 “핏빛 영혼”은 “노을”이 되어 커피잔 속으로 투영됩니다.
“낫날”이 주는 “쇠맛”이 시골 풍광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낫날 커피”입니다.
【이완근(시인, 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뷰티라이프>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