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바라보는 성찰적 풍경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돌베개, 2016.
건축은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건축에 대한 욕망을 끊임없이 발전시켰으며 다양한 형태로 주거환경과 도시문화를 변화시켰다. 도시의 모양은 건축물에 따라 달라진다. 건축가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는 담론집이다. 저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15년 간 김수근 선생 문하를 거쳐 1989년 건축 사무소 이로재(履露齋)를 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빈자의 미학’을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삼고 있다. 수졸당(1993), 수백당(1998), 웰콤시티(2000)등으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파주출판도시의 코디네이터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 <지혜의 도시/지혜의 건축>(1999), <건축, 사유의 기호>(204), <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2012) 등이 있다.
책은 건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다. 건축을 대하는 건축가 승효상의 태도는 침묵과 공존이다. 그는 괴테의 문장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p.219)를 건축철학에 적용시킨다. 침묵하는 건축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소란스러운 건물의 예는 베이징의 현대적 상징인 CCTV사옥과 동대문 옆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들고 있다. DDP의 설계는 이라크 태생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맡았다. 그러나 승효상은 DDP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지 몰라도 “수십 년 동안 서울 시민의 격정과 환호를 뿜어내게 한 경기장이 위치했으니 수백 년의 역사적 기억이 누적된 장소”(p.165)임을 간과한 건축물이라고 비판한다. DDP는 건축물로서만 위용을 뽐내고 있으며 이용자를 배려하지 않고 주변 건물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DDP를 설계할 때 동대문경기장 일부를 남기고 지형을 복구하고 전부 개방하여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려고 했다고 전한다. 건축가 승효상은 겉치레보다 긴 호흡으로 조용하게 도시와 건축을 대한다. 그는 건축물이 침묵할 때 주변과 동화되고 인간을 배려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의 건축설계는 겸허하고 화려하지 않다. 그에게 이 원칙은 중요한 요소다.
또 하나 도시와 건축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다. 도시 안에서 건축은 특별한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건축물로서 그것은 특별한 존재이지만 도시의 다른 요소와 공존해야 한다. 그 좋은 예로 ‘서울시 세종대로 일대 역사문화 특화공간 조성사업’을 들 수 있다. 서울시는 세종로대로변에 있는 남대문 세무서 별관을 허물고 도시건축박물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한다. 공사 착수 후 별관을 허물었더니 그 뒤에 있던 1926년에 지은 성공회성당이 나타났다. 공모에 당선된 젊은 건축가들은 성공회성당을 대로변으로 이끌어낸다. 세무서를 허문 빈자리 지표면에 광장을 조성하고 지하 하부에만 도시건축전시관을 만드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성공회성당은 대로변에서 바로 보이는 효과를 얻게 되고 지나가다 단층의 박물관과 뒤로 성당, 덕수궁 돌담길, 그 너머의 풍경까지 보게 된다. 번잡한 광화문 대로를 지나갈 때 뜻밖에 만나게 되는 로마네스크 서양식 건물인 성당은 시민들에게 ‘번잡함에 지친 삶이 위안까지 받는’(p.185)효과를 자아낼 것이다. 승효상은 “서울시 속살은 대단히 아름답다.”(p.185)고 되풀이 한다. 서울시 대로변에 즐비한 고층건물 사이를 잠깐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뒷길에야말로 대로변의 소란과 비교할 수 없는 질박한 풍경이 펼쳐진다. 건축은 욕망의 대상이 아닌 삶의 공간이다.
건축물은 되도록이며 장소와 시대에 어울려야 한다. 서울과 파리에 어울리는 건축은 분명히 다르다. 1960년대 말 경제개발 명목하에 양옥건축의 바람이 불더니 ‘불란서 미니 이층집’(P.133)이 방방곡곡 지어졌다. 프랑스에는 있지도 않은 집인데 말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도시건축에 광풍이 불어선 안 되며 시민의 숨결을 반영해야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저자는 “건축가는 모름지기 그 건축이 담아야 하는 시간을 재는 지혜를, 그 풍경의 변화를 짐작하는 통찰력”(p.203)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불란서 이층집의 유행은 동네 풍경을 사라지게 했고 전통적 공동체를 붕괴시켰다.
건축은 실용성과 미학적 요소가 동반되기 때문에 건축가는 기술적 관심과 예술적 감수성이 요구된다. 건축가가 공간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은 달라진다. 승효상은 김수근 선생 밑에서 수학하며 건축을 대하는 철학을 터득한다. 그는 건축에 ‘윤리’라는 덕목을 넣는다. 건축에 윤리라는 항목을 부여할 때 부동산 투기도 아름다운 산하의 무지막지한 개발도 도시의 기괴한 풍경이 생성되지 못한다. 저자는 “윤리는 선조의 덕목이었다.”(p.117)며 건축과 인간, 자연을 동일시했다. 정부는 국토계발이라는 명목 하에 도시를 더 이상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공간을 잠시 사용하는 것일 뿐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건축의 공간을 너머 어떻게 하면 인간이 도시와 윤리적으로 공존하며 살아갈지 말해준다. 현재 살고 있는 모습을 반추하며 건축의 순기능까지 확장시킬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서평-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