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지쳤다. 왠지 쓸쓸한 마음을 이끌고 친한 선배집을 찾았다. 좁고 낡은 하숙집의 한켠엔 손때 묻은 책들이 쌓여있다. LP판에서 흘러나오는 7080 음악이 귓가에 스며들고 맥주의 칼칼함이 입 속에 퍼지면 이내 마음은 평온해진다. 굳이 재미있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옛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밤새도록 보내는 선배와의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북카페 '소설'의 첫 느낌은 이러했다. 젊은층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는 없다. 하지만 실내에서 품어져 나오는 중후함과 은은함은 여느 카페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찌보면 골동품을 전시해놓은 조그마한 박물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카페 곳곳엔 옛날 전화기와 흑백TV, 유성기, 옛 트랜지스터 라디오, 야외 전축, 녹슨 트럼펫 등 골동품 가게에서나 봄직한 물품들이 곳곳에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뿐 아니다. 여기저기 테이블 옆 책장에는 손때 묻은 책들이 단정하게 꽂혀 있다. 모두 합쳐 대략 2천 권이 넘는다. 각 벽면을 덮고 있는 사진들과 캐리커쳐 등도 방문객의 눈길을 잡기엔 충분했다. 문학·미술·음악·영화 등 문화 코드를 총망라한 인물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색다른 소품과 인테리어가 물음표를 더했다. 사장 전우태(35)씨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전씨는 이곳을 책과 음악·영화·술 등이 있는 전천후 문화공간이라 정의했다. 단순히 차나 술을 마시는 상업적인 카페 개념이 아닌 문화를 매개체로 인간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다소 난해한(?) 말과 함께.
전씨의 이력도 이 카페 만큼이나 이채롭다. 대학 다닐 때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작가 '카프카'처럼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싶었다. 카프카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것. 그렇게 시나리오 작가나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실제론 여의치 않았다. 5년 전 이 곳 문을 열기 전까지 잡지사 자유기고가와 공연기획, 공장 현장직 등 10여가지의 직업을 경험했다. "당시 소망 중에 하나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들으며 원하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죠. 거기다 대학 때부터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이 카페를 탄생시켰죠."
이곳의 각종 소품들은 전씨가 대학교 때부터 모아온 것이나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구한 것들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읽고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중고서점 다니는 걸 즐겼죠. 그러면서 인근에 있는 골동품점에 들러 오래된 소품들을 하나둘 모았고 책과 함께 개인창고에 보관해오다 활용한 거죠."
카페 문을 연 뒤에도 틈틈히 인도나 이집트 등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야시장에 들르거나 서울 청계천이나 대구 고물상에서 골동품들을 하나씩 추가해 지금에 이르렀다. 사진이나 캐리커쳐 등은 세계 여러나라의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찾아낸 것들이다.
메뉴판의 칵테일 이름이 다른 카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칵테일마다 문학가나 소설 주인공, 영화 제목으로 이뤄졌다. 전씨는 "단순히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고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bar)에서 스카치 위스키를 자주 마셨는데 그 장면에서 착안해 스카치 위스키를 '상실의 시대'라 이름지었다. 전씨가 직접 고안해낸 술도 있다. 카프카처럼 짙은 고독을 느낄 수 있는 흑맥주와 코냑을 혼합한 술을 만들어 '카프카'라 명명하기도 했다.
"혼자 오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아요. 부담 없이 와서 책을 읽고 가죠. 또 단체로 와서 여러가지 토론과 문화교류도 하죠. 수시로 사진 전시나 재즈 파티, 연극 공연 등 이벤트도 엽니다."
영업시간은 월~금 오후 6시~오전 2시, 토일 오후 3시~오전 2시. 053)423-9399.
첫댓글 여기서 호가든 먹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