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나는 갑질(?)했다>/구연식
현대사회는 촌락의 오손도손한 공동체 의식은 옛이야기가 되었고, 도시화와 산업화의 가속화 속에서 이익사회 의식이 팽배해졌다. 약육강식의 경쟁의식이 새벽의 눈꺼풀을 꼬집으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일거수일투족에 비용 편익(便益) 분석으로 행동하기를 등을 떠 밀어 내쫓는다. 참으로 인정머리 없고 경제 동물들이 득실거리는 사회가 되었다.
이 나이 들도록 개인주택에서만 살다가 10여 년 전에 손자 돌보는 일 때문에 아들과 동은 같고 라인만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시골이나 개인주택으로 이사를 할 때는 으레 이웃에게 울타리 너머 이사 떡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라인은 40 가구가 산다. 시골에서 이 정도는 큰 마을에 속한다. 아내와 나는 떡집에서 이사 떡을 주문하여 도표에 호수 표시를 해 놓고 3번 정도 시차별 방문하여 경비실까지 거의 돌렸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혹자는 무슨 장사꾼 아니면, 선거 의식을 하는 눈초리도 느꼈다. 그래도 이제는 시골 이웃처럼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철문을 철석 닫고 들어가 버리면 외로운 콘크리트 성에서 홀로 사는 기분이다.
요사이는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려 물을 퍼붓는다. 조금 뜸한 시간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려니 아내가 재활용 수거 실에 페트병을 가져 다 놓으란다. 며칠 전에 장애인 리프트 출입로를 새롭게 페인트칠해 놓았다. 일반 계단과 장애인 리프트 쪽 입구 바닥에 빗물은 살얼음처럼 낮게 깔려 내려가고 있다. 두껍게 바른 페인트는 약간 미끈거리고 그 위에 물은 감마제가 되어 순간 미끄러짐을 느꼈다. 양손에 잡고 있는 우산과 페트병을 충격보호대로 활용했지만, 왼쪽 무릎과 오른쪽 팔꿈치에 약간의 타박상을 입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절버덕 주저앉았다. 순간 창피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어느 아주머니가 자기도 넘어졌다고 하면서 큰일 날 뻔했다 한다.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라 다행이지 아침 출근 시간 여러 사람이 집중적 이용 시간이라면 안전사고는 불 보듯 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경비실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출입구에 진입 금지 또는 안내판 표시 설치를 건의했다. 그랬더니 경비실에서는 몇 동 몇 호에 사느냐의 인적 사항을 묻는다. 순간 허위신고자 인가 의심받는 마음이 들어 CCTV 확인과 상처 부위를 보여주며 인적 사항 없이 별것도 아니니 그냥 접수를 재차 말해도 신고자 인적 사항 확인이 접수 필수사항이라 말한다.
순간 조금은 화가 치밀어 온다. 인적 사항과 상처 부위 확인 후 전화로 관리사무소로 상황을 보고하는 것 같다. 시내에서 1시간 정도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아무 조치의 흔적은 없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조금 있으면 인근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어린이들이 천방지축으로 걸어오다가 안전사고가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서 인근에 있는 모래주머니와 방화수 통으로 출입구에 막아 놓고 집으로 올라왔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1시간 전에 출입구 안전사고 신고를 했는데 지금까지 조치가 없냐고 물으니, 황당하게도 신고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경비실에 신고했더니 바로 관리사무소로 신고하는 것을 봤다고 하니, 아마도 관리사무소가 아닌 현장 순찰자에게 통보하여 응급조치 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답한다. 현재 상황을 말하고 내가 현장에서 응급조치 했다고 볼멘소리로 말하니, 그때 서야 상황을 인식하고 바로 조치하겠다고 한다. 창문을 열고 아래를 살펴보니 관리인이 출입 금지 테이프를 쳐서 임시 안전조치를 하고 있었다. 순간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며 반성을 해 본다.
그런데 모든 장애인 출입 리프트 구역은 모두 다 보강 공사를 했을 것인데, 다른 곳은 아무 이상 없는데 나와 그 아주머니만 넘어졌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참을성 없는 갑질 신고가 미안했다. 그래서 우연히 다른 동 아파트 출입구를 살펴보니, 다른 곳은 아직 수리 흔적이 없었고, 우리 동만 우선 보수 공사를 하고 장마가 끝나면 나머지는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책성을 가졌던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장마가 소강상태가 되니 공사업자들이 와서 미끄럼틀이 되어버린 바닥공사를 다시 하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다가 인부들에게 공사 다시 하냐고 물으니, 예하고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리고 나의 다리 상처를 보더니 ‘선생님이 넘어졌어요?’라고 되묻는다. 이것 때문에 아파트가 시끌벅적했는가 보다. 안전사고를 갑질(?) 신고한 나와 공사를 다시 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은 서로 반대 적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치부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공익을 위한 일이라도 여러 번 생각하고 당하는 자는 갑질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내가 참고 견디는 미덕도 좋고, 남몰래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무명의 봉사자도 생각하며 느슨함과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살아가야겠다. (2024.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