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남긴 감사의 글을 기자분이 보시곤
아들 담임선생님을 스승의날 존경하는 인물로 촬영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소년조선일보에 기사가 났습니다.
아들의 은사님을 자랑하려고
훌륭한 선생님을 알리려고 글 올립니다.
이글에서 정태건이 제 아들입니다. 예쁘고도 마음 저린 아들입니다.
김순진 청주맹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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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수업 시작! 선생님 들어갈게요!"
지난 13일 청주맹학교 6학년 교실. 담임 김순진(55세) 선생님이 'ㅁ'자 형태로 배열된 아이들의 책상 가운데로 회전의자를 쭉 밀어 넣는다. 넓은 교단 대신 비좁은 책상 틈에 앉아 회전의자를 빙그르르 돌려가며 일일이 공부를 가르친다.
"희라야, '정금통'이 아니라 '저금통'이지. 정현이는 이 부분을 지우고 다시 해보렴. 우와, 태건이는 바둑알 옮기는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현서는 바른 자세로 앉아요. 고개 들고! 옳지! 우리 정명이는 오늘 너무 잘한다. 하이파이브!"
뇌병변 장애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태건 군, 태어날 때부터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조현서 군, 시각장애와 함께 학습장애를 가진 이정명·이정현·채희라 군. 장애 정도도 학습 능력도 제각각이지만 '회전의자 수업'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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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자 형태로 배열된 아이들의 책상 속에서 수업하는 김순진 청주맹학교 선생님(사진 가운데). 맹영재(34세·맨뒤 왼쪽) 특수교육실무원 선생님도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 청주=이신영 기자
점심 시간은 수업 시간보다 더 정신없다. 태건이는 도움 없이 식사를 하지 못한다. 이날 메뉴는 비빔밥. 김 교사는 가위로 비빔밥 재료를 잘게 잘라 곱게 만든 뒤 한 숟가락씩 천천히 떠먹였다. 행여 체할까 가슴을 톡톡 두드려주기도 했다.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건이는 입에 밥을 넣고 좀처럼 씹으려 하지 않았다. 태건이가 어느 정도 밥을 먹은 뒤에야 선생님도 식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일등, 선생님은 꼴등.' 그의 오랜 교육 철학이다.
김 교사는 34년을 특수교육에 몸담았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성당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체에 들어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충주성모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책도 읽어주고 편지도 대신 써주면서 스스럼없이 어울렸어요." 그는 1980년 성모학교 교장의 권유로 특수학교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으로서 처음으로 서울대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호(42)씨도 그의 제자다. 김씨는 문서를 음성으로 변환시키는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을 개발한 인물로 이 프로그램 덕에 시각장애인 최초 판사인 최영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우연히 정호를 만났는데 제 목소리를 듣더니 반가워하면서 '선생님이 예전에 신문도 참 많이 읽어주고 동화책도 많이 읽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정말 목이 아플 정도로 책이며 신문이며 읽어준 것 같아요. 점자책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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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회전의자를 돌려가며 맞춤형 수업을 하는 김순진 선생님. 2 태건이의 점심 식사를 돕고 이를 닦아주는 선생님의 모습. 3 피아노 치는 현서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선생님.
1990년 청주맹학교로 온 뒤에는 시각 장애에 다른 장애가 겹친 중복장애아들을 지도해왔다.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현서는 입학 당시만 해도 전혀 말을 못했어요. 현서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박자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북을 두드리며 '엄마' '아빠'를 가르쳤어요. 그렇게 천천히 단어를 가르쳤지요. 피아노 소리에도 반응하길래 버리는 피아노를 주워다 교실에 가져다 놨어요. 지금은 피아노로 동요를 칠 정도로 실력이 늘었지요."
한 발자국 떼는 것도 힘에 겨워했던 태건이는 교실에서 식당까지 스스로 걸어갈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라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정명이의 얼굴에는 해바라기처럼 밝은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명이를 우리 집에 데려가 재우고 있어요. 엄마 아빠 사랑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아이라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돈가스도 먹고 마트에 가서 물건도 사고 잠도 같이 잤어요." 정명이는 5월 22일 '선생님 집에 가는 날'만을 동그라미 쳐놓고 기다리고 있다.
교실 벽에 걸린 급훈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기쁘고 행복하게'. 김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 이름을 잊어도 예전에 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때 참 재밌었고 행복했다고 기억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순진 선생님이요? 엄청 좋아요. 언제 고마웠냐면, 어제도 고마웠고 그 전날도 고마웠고…. 잘 모르겠어요. 아침 되면 빨리 선생님 만나고 싶어서 전화해요."(이정현 군)
"우리 선생님은 좋은 분. 스승의 날에 선생님 꽃 사드릴 거예요. 편지도 쓸 거예요. '공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요."(채희라 군)
느릿느릿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아이들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