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작은 수반 위에 검은 산수경석이 놓여 있습니다. 깎아지른 봉우리와 깊게 패인 골짜기, 그 침묵의 결이 오랜 인내의 연대기를 품고 있습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단단해진 저 돌의 표면은, 세월의 파고를 견디며 늙어가는 인간의 몸과 어딘가 닮아 보입니다. 돌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의 결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래된 고통의 음영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몸에 새겨진 고통의 지형을 더듬어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삶과 죽음을 서로를 향해 검은 선을 긋는 두 개의 극점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삶을 백주의 광장이라 부르고 죽음을 칠흑의 밤에 비유하며, 그 긴장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은 듯 말합니다. 그러나 내 몸에 새겨진 감각이 내게 들려주는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넓고 깊은 강이 흐르고, 그 강의 이름은 아마도 ‘병’일 것입니다. 삶은 병을 경험하고, 병은 죽음을 예고합니다. 이 세 개의 흐름은 마치 동일한 강물의 세 줄기 같아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정확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삶이 질병의 과정이라면, 노화는 그 병의 느린 진행 방향일 뿐입니다. 어쩌면 늙어간다는 시간의 경사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 만성적인 병력의 기록인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죽음은 삶을 모르고, 삶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내 안을 가로지르는 이 고통만은 두 세계의 비밀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고통은 병의 얼굴입니다. 병이 말을 걸 때 사용하는 언어이며,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방식입니다. 병은 곧 고통이고, 태어난 순간의 울음부터 시작해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떨림까지 헤아려본다면 삶 전체가 하나의 질병이라는 명제는 그리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현명하다고 불리던 이들은 죽음을 해명하면 삶이 풀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느낍니다. 삶의 방정식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고 말이지요. 죽음은 복잡한 수식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칠판지우개에 가까울 뿐입니다. 고통이 삶을 드러낸다고 하여 고통을 이해하는 열쇠가 삶을 지탱한다지만, 그 열쇠가 손에 쥐어지지 않을 때 죽음은 유일한 비상구처럼 반짝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희망과 기쁨과 사랑을 허락했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 고통의 노역勞役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마취제였을 것입니다. 삶이라는 감방에서 조금이라도 숨을 고르게 해주는 환각들. 그중에서 실재에 가장 가까운 것은 언제나 아픔이고, 나머지는 그 고통의 울음을 덮기 위해 마련된 임시 가면들 같습니다. 마취가 풀리면 통증이 되돌아오듯, 기쁨의 잔상 뒤에는 더 깊어진 고통이 따라옵니다.
그러니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고통을 연장하는 행위가 윤리라 불리고, 고통을 멈추는 시도는 죄악의 그림자를 뒤집어써야 하는가.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은 오히려 그 문 앞에 이르기까지 지나야 하는 긴 복도, 그 복도 바닥에 촘촘히 박혀있는 가시들입니다. 만약 스스로 문을 여는 행위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라면, 나는 결국 이 고통을 연료 삼아 끝까지 호흡해야만 하는 건지, 잘 죽기 위해서조차 더 많은 고통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건지, 때때로 혼란스러워집니다.
삶이라는 감방의 형기는 태어난 순간 이미 선고되어 있습니다.
세상 감옥의 형벌은 시간이 갈수록 형량이 줄어들고, 출소의 날이 가까워지면 마음이라도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삶의 형벌은 정반대입니다. 출소라 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노역’의 강도는 더 거세집니다. 우리병원에 오는 할매, 할배들이 그렇습니다. 늙음이라는 이름으로, 병이라는 이름으로, 육체는 더 묵직한 족쇄를 차고 천천히 수축합니다. 형기가 줄어들수록 고통은 깊어지는 이 기이한 법칙. 이것이 태어날 때 이미 건네받은 판결문이었단 말입니까.
나는 이 감옥에서 더 머무는 일 자체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끝없는 고통의 부역(賦役)만은 면제되기를, 언젠가 조용히 풀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죽지도 못하게 붙들어두고, 타는 살 속에서 억지로 눈을 뜨게 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면 그 힘은 때로 너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탄원합니다. 저에게 특별사면을 내려 달라고.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고사처럼, 혹은 잠들 듯 스르르 심장이 닫히는 기적처럼, 고통 없이 이 감옥의 담장을 넘게 해 달라고. 육체의 통증이 걷히는 단 한 순간, 삶이라는 질병이 완치되는 바로 그때를, 가장 깨끗한 형태로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것만이 이 부당한 형벌을 끝내는 유일한 자비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