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골에서 생활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초가집의 지붕은 매년 농사를 마치고 추수한 후 늦가을 쯤에서부터 볏단을 엮어서 차례차례 아래쪽부터 켜켜이 겹치게 쌓아올리면 초가지붕은 해마다 새 옷을 입게 된다. 이렇게 새 옷을 입어야만 겨울을 따뜻하게 나고 봄부터 다음 가을까지 비바람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두막 초가집의 한쪽부분 위쪽에는 감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가을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또 초가지붕 모퉁이 쪽엔 장독대가 놓여 있다.
지붕갈이 기술자 어른들은 초가지붕 옷갈이 작업을 할 때 그들만이 사용하는 사다리를 이용하여 지붕에 올라간다. 하지만 위 기술자가 아닌 어린이들은 절대로 사다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저 사다리를 이용하여 지붕에 올라갈 수만 있다면 지붕 위에 뻗친 감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홍시를 따먹을 수 있는데, 그것을 못하게 하니 답답하고 한편으로 화가 치민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은 고육책으로 맛있는 감을 따먹기 위하여 주변에 있는 돌을 가지고 감나무 가지를 향해 던져 감이 떨어지기를 시도한다. 그런데, 감보다는 그 건너편에 있는 장독대에 돌이 떨어져 그 장독대가 깨지곤 한다.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 아이들에게 지붕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해주었다면 장독대를 보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사다리가 문제이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의하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계층이동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20%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경제적 빈부의 차가 커지면서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잘 살 수 있다.’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적어지고 비관적 전망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단서이다.
위와 같은 장조는 젊은 연령대로 갈수록 심각하여 내 집 마련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자녀의 양육비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취업의 기회에 있어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돌파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부모의 지위나 재산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하는 운명론이 우세 함에 따라서 수저계급론이 널리 퍼져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풍자스런 인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발전은 커녕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 곳곳에 ‘희망의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부족한 곳이 있으면 새로 만들어 제도화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순간에도 고시 준비생이 모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시법시험 존치 구호를 외치면서 사법시험 존치에 반대하는 입장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실 내년부터는 로스쿨 졸업자만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사법시험은 폐지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종래 사법시험만 준비한 사람은 법조계에 진출할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이웃 일본만해도 로스쿨에 진학 할 수 없는 경제적 취약자나 회사원, 가정주부 등을 위한 우회도로인 ‘예비시험’이 마련되어 있다. 로스쿨에 입학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위 ‘예비시험’이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가진 고시준비생이 추운날씨에 사다리 역할을 하는 입법을 해달라고 국회의원실 앞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최근 촛불시위에 종래에 볼 수 없었던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가 젊은 중·고등학생이 많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사람의 딸이 너무 쉽게 부적절하게 명문대에 입학한 사실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통학생들은 피 땀 어린 노력을 기울여도 명문 대학진학이 어려운 실정인데 실력자의 딸이라고 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간 것을 보고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돈 없고 힘 없는 수많은 보통서민 학생들이 공정한 평가에 의하여 계층이동 할 수 있는 교육제도의 사다리 건설에 매진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흔히들 우리나라 모든 영역 중 정치가 가장 낙후되었다고들 한다.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공천제도 이다.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망 받고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정치신인들이 제도권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정 정치계파에 끈이 연결되어 있거나 맹목적 충성을 할 수 있는 끼리끼리 사람들만이 공천을 독점하고, 국민들로서는 기존 소수 정당이 공천한 자만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 때문에 정치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측면이 있다. 정당공천에도 기회의 사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선 공공적인 분야에서 기회의 사다리 제도를 확고히 하여 점차 사적인 분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의 사다리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면, 장독대가 돌에 맞아 깨어지는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중부일보에서 발췌)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德川 위철환 前대한변협회장님께서 法學者답게 논리정연하게 내용을 전개하셨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중부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德川 변호사님의 재가를 받아서 BAND에 올립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분으로 문제제기가 아니라 정책대안을 항상 제시하는 慧眼을 지니신 분으로 조명합니다.
어릴적 옛추억에서 부터 현재의 낙후된 정치실상을 지적한 좋은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입술에 상처가 있으시네요...뭐좀 바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