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2.土. 맑음
05월27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며칠 전 강북 상계동을 다녀왔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상계동 인제백병원을 다녀왔습니다. 밤중에 하천너머 아파트 단지위로 떠올랐던 달이 둥글했던 것으로 봐서 음력 열엿새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보름날은 하안거 결재일이었으니 아마 그 다음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쪽 동네 이름들이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이라 재미는 있지만 어찌 생각하면 마구 지어놓은 이름 같아서 그리 고급스러운 동네 분위기는 나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듭니다. 같은 서울이고 나도 이제 서울에서 살아온 지가 45년이 훌쩍 지나가는데도 도봉구나 노원구, 은평구는 사실 다른 지역이나 고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낯이 선 장소들입니다. 서울이 그만큼 넓기도 하려니와 생활의 범위가 자기가 사는 집과 일하는 곳 주변을 잘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상계동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있어서 ‘74년도엔가 생도 면회를 하러 몇 차례 가본 적이 있고 ’76년도엔가는 서울여대에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는 구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볼일을 마치고 났더니 저녁8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상계동 밤거리를 한번 거닐어보고 이왕이면 저녁식사도 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저녁식사로 무얼 먹어야하나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서서히 걸었습니다. 이래서 집밥이 좋습니다. 나는 특별한 미식가美食家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달리 입이 짧아 음식을 이것저것 가리는 편식가偏食家도 아니라서 있는 대로 차려주면 주는 대로 뚝딱 맛나게 먹고 나면 그뿐인데 밖에서 먹으려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집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머릿속이 고단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짬뽕집도 보이고, 김치찌개도 보이고, 고추장 삼겹살집도 보입니다. 밤중이라 네온이 화려한 피자헛도 보이고, 맥도날드도 보이고, 죽파는 집도 보입니다. 그래서 시끄럽고 번화한 대로변 말고 한 칸 이면도로로 들어가 봅니다. 수요일이면 평상일인데 밤8시 넘어서 상계동 사람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상계上溪에서 중계中溪를 거쳐 하계下溪까지 경치 수려한 계곡을 따라서 밤 마실 돌아다녔던 선주민들의 유전자가 활성화되어있기 때문일 테지요.
아파트 단지 앞의 기다란 상가건물 일층에 수많은 음식점들이 불을 밝혀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천순대라는 노란 바탕에 빨간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대국이나 한 그릇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인 송파구 신천역 부근 새마을 시장에도 순대국을 파는 집이 몇 군데 있어서 이따금 가서 먹기는 합니다만 서울보살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어쩌다 귀갓길에 전철역에서 나와 나 혼자 먹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보살님들이 순대국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순대의 생김새나 텁텁한 국물 맛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낡아빠진 순대국집 실내 인테리어와 왠지 미덥지 않은 청결성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이지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에 청결 산뜻한 주방에서 우리들 입맛이 원하고 있는 순대국이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역시 병천순대를 주 메뉴로 홍보하고 있는 이곳 순대국집도 사랑하는 보살님들이 싫어할만한 조건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1970년대 풍경의 순대국집이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누런 비닐장판 깔린 방안으로 올라섰더니 우연이겠지만 세 식탁에 남자들만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순대국집에 들어가서 그냥 순대국을 시켜서 먹고 난 뒤에는 카드를 꺼내들고 계산을 하고 나오면 그만일 텐데 그래도 주문을 하기 전에 꼭 벽에 붙어있는 차림표를 위아래로 쓰윽~ 한번 훑어보게 됩니다. 흐응, 순대국이 70,00원이고 순대국(특)이 90,00원이었습니다. 요즘 한 끼 식사비용이 많이 올랐다는 뉴스는 들어보았는데 실제로 보니 많이 오른 것 같았습니다. 상계동 순대국 특이 90,00원이면 아마 우리 동네는 기를 쓰고 10,000원은 받으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았더니 동네 순대국집에 가본 지가 꽤 되었나봅니다. 내 기억으로는 80,00원짜리 순대국(특)을 먹어보았던 것이 가장 최근의 입맛 추억이었으니까요. 예전에는 순대국(특)을 짜장면 곱빼기처럼 양을 많이 주어서 시켜 먹었는데 요즘에는 양은 비슷한데 내용물이 약간 다른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나봅니다. 그래봤자 막상 순대국에 둥근 순대는 두어 개 들어 있을둥 말둥이고 나머지는 죄다 돼지 머리고기 일색입니다. 보통 순대국집 식탁위에 반찬은 몇 가지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깍두기에, 생 양파에, 묵은 김치에, 새우젓 정도이지만 여기는 맛나게 보이는 부추나물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순대국집 사장님과 주방 사이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는데, 사장님 말씀이 오늘 부추가격이 한 단에 1,000원이라 값이 하도 좋아서 엄청 많이 사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추나물 리필을 요구하는 나도 자연 태도가 당당해졌을 것입니다. 나처럼 혼자서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손님은 나보다 조금 늦게 순대국집에 들어와 순대국에 소주를 한 벙 시켜놓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자 소주병은 깨끗하게 비웠는데 순대국은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늦게 들어와 나보다 먼저 나가면서 술만 마시고 순대국밥은 먹는 시늉만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키에 마른 체격인데 한창 저 나이에 저렇게 먹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9시가 넘어서자 뒤를 따라 들어오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순대국집에서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백병원을 끼고 산책을 하는데 백병원 옆으로 한국성서대학교라는 커다란 네온간판이 보였습니다. ‘Korean Bible University’ 말 그대로 ‘한국성서대학교’ 였습니다. 개교 원래의 취지는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대학 교육기관이었겠지만 이제는 신학부부터 간호학부, 사회복지학, 선교학, 영유아보육학부까지 다양하게 교세가 늘어나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교명이 성서대학이라니 내게는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800년이나 된 마당에 한국불경대학교는 있는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만약 그런 대학 교육기관이 있었다면 그 명칭은 불경대학이 아니라 경經·율律·론論을 통합한 ‘한국 삼장三藏대학교’ 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수십 개의 신학대학교 가운데 개교이념이 불교사상인 대학교는 동국대학교 하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보듯이 불자佛者인 우리들이 불교를 어떻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전법을 하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캠퍼스는 그다지 넓지 않아 몇 개의 건물과 사이길인 통로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교내를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강의동과 도서관을 들고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자 반팔 아래로 드러난 어깨와 팔등이 약간 쌀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 딱 기분 좋은 날씨야. 했던 것이 이제는 어, 이러다 감기 걸릴지도 몰라.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었습니다. 중랑천의 지류쯤 되는 하천너머 아파트 단지위로 낮게 떠있는 둥근 달이 띠 같은 구름을 가슴에 두르고 은은하게 은밀하게 뽀샤뽀샤 쟁반 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