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갈매기 그리고 인간의 생존법 / 이은희 (2024. 09.)
바닷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갯벌이 드러났다. 모난 돌 세모난 돌 삐죽빼죽한 돌들은 본연의 개성은 잃지 않았지만, 물살과 씨름하고 타협하면서 둥글게 심성을 닦아가고 있다. 갯벌엔 게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멀리 지나가는 통통배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시끌벅적 적막을 깨뜨린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바다, 울타리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경.
양식장에서 우럭을 건져 큰 바구니에 담고 쉬고 있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노란 바구니 모서리에 앉아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바구니 속을 탐색 중이다. 쏜살같이 생선 한 마리를 입으로 물어다 상판 위에 놓고 빠르게 생선의 내장을 쪼아 먹는다. 어디서 왔는지 왜가리도 합세하여 까마귀 눈치를 본다. 까마귀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긴 목과 긴 다리로 행동을 주시하며 관심 없는 척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까마귀 먹이를 채어가 버렸다. 바다에서는 먹이를 두고 까마귀와 갈매기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까마귀는 갈매기 하는 행동을 그냥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바다의 거친 바람과 파도에 맞서며 단련된 갈매기 체격은 까마귀와 비슷할지 몰라도 스피드와 힘에서 적수가 못 된다. 그걸 알기에 까마귀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능은 까마귀가 더 높다고 한다. 까마귀 지능은 5~7세 아이들 수준이며 숫자도 1에서 4까지 셀 수도 있다고 하니 다른 조류보다 지능이 높다고 한다. 까악까악 또는 꽈리를 부는 듯한 다양한 울음소리로 소통하며 먹이 쟁취 능력에 정확도는 100%에 가까울 만큼 높다고 한다. 배 위에 음식물이나 벽돌 밑에 있는 먹이도 부리나 발톱을 이용해 기어이 차지하고 만다. 뗏목에 양식장 사료를 숨겨두어도 소용없다. 돌아가는 기계 안에 있는 사료도 쪼아낸다. 인간도 머리가 좋지만, 머리 좋은 것은 장단점이 있다. 문제해결 능력은 높지만 편한 쪽을 찾아가려고 머리를 굴린다는 것이다. 까마귀는 그 좋은 머리로 아파트 쓰레기통이라는 단골식당을 찾는다.
갈매기는 사람들 그림 배경에 간혹 출현하여 사람과의 친숙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로 바닷가나 습한 곳 등 다양하게 서식한다. 육식동물이며 먹이사슬에서는 상위에 속한다고 한다. 부패한 동물이든 음식쓰레기는 닥치는 대로 먹지만 그건 새끼를 키우기 위해 육지에 머무르는 동안이다. 갈매기 주 서식처는 먼바다다. 높은 곳에서도 바닷속 물고기를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졌으며 부리는 매처럼 강하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부드러운 모습과는 다르게 생존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갈매기는 일 년 중 절반은 먼바다에서 생활한다. 육지로 돌아오는 것은 산란기 때다. 우리가 해안가에서 보는 것과는 삶의 풍경이 다르다. 멀게는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생활하며 쉴 때도 바다 수면 위에 오리처럼 떠서 휴식한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쳐도 파도를 타면서 생활한다. 갈매기가 수면으로 내리꽂히며 물고기를 물어 올리면 다른 갈매기가 뺏으려 달려들면서 공중에서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강인한 체력과 투쟁력이 갖춰진다. 감히 대적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까마귀는 이미 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 까마귀는 산이나 들에 살아야 하고 갈매기는 바다에서 먹이를 구해야 맞지만 둘 다 요즘 도시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공통점은 힘들게 먹이를 직접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버린 음식 찌꺼기나 장난스럽게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탐하며 편하게 먹이를 취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먹이활동이 게으른 탓인지 아니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먹이사슬 터전을 잃은 환경 탓인지…. 인간이나 새들이나 삶의 환경은 점점 더 척박해져만 간다.
길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아파트 내 재활용 봉투를 찍어서 난장판으로 만드는 까마귀를 보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먼저 드는 생각은 이놈들이 왜 사람 사는 동네까지 와서 환경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까이다. 또 하나는 인간이 자연의 환경을 망쳐놓지 않았더라면 새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시의 회색 공간을 날아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조류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인간이 자신들의 생태계에 밀고 들어와 아파트 재활용 봉투 헤집듯이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우가 좋고 편한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힘든 자리, 위험스러운 곳에서는 일하지 않으려고 한다. 험한 곳은 외국 노동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생존본능이 강한 외국 노동자들에게는 그런 자리조차도 꿈의 직장인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3D 업종 일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필요할 때만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신풍속도도 이 시대의 우울한 단면이다.
갈매기는 새끼들이 자라는 동안은 육지에 머물지만 다 자라면 결국 먼바다로 돌아간다. 간혹 육지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머리 좋은 까마귀는 여전히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갈매기인가 까마귀인가.
첫댓글 이은희 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