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만 보면 그 적응력에 상처내고 싶어
약 4억만 년 전에 출몰해
지독히 장수해 온 종족이라기에
더욱 박멸을 결심하고 인정사정없이 뭉개보지만
간단히 갈색 분비물만 사정해 버릴 뿐
그 모습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는, 저 망할
놈에게는 보드라운 속살이란 게 없나봐
그러다 그만 그 생각을 하고 말았네
속,살,에,대,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쩌면 속살을 보여 준 만큼
노출 면적만큼 상처 받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속살이 없는 곤충이란 놈
수억수만 년 동안
종족보존에 성공했나 봐
원유웅덩이에서 화산천에서
심지어 다른 종족의 살 속을 뚫고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내는 놈들 이라니
이 지상에 십억의 열배 쯤 된다는 곤충
인류 전체 무게의 열두 배나 된다는 곤충
지구가 멸망해도
잿더미에서 검은 더듬이를 흔들며
유유히 한 세기를 탈피해버릴 곤충들
속살이 많은 공룡이란 놈
바보처럼 몸피만 커다래서
한꺼번에 상처받고
일찌감치 모습을 감췄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성충으로 진화할수록
말랑말랑한 속살은 퇴화돼 버린다는 걸
저 곤충들은 알고 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이유 없이 비만해져 가는
내 속살의 비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