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온누리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승수 목사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나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언제나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창세기 4장 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삶이 없는 예배자, 죄가 지배하는 삶
오늘 말씀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3절에서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아주셨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과 그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 까닭을 가인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분하여하고 안색이 변합니다.
이러한 가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그의 태도가 온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제사는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예배입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만족스러웠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느냐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예배의 목적은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온전한 예배자였다면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았을 때,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온전하지 않았던 모습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오히려 그것을 분하게 여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인의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7절 말씀입니다.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어지는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인을 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지 못할 때 죄악의 욕심이 즉시 나를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죄악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하나님 한 분만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한 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까닭은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내 인생의 왕으로 임하실 때 그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 한 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죄악의 욕심을 다스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죄악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다시 가인을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9절 말씀입니다.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보셨을 때,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모르셔서 물어보신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오히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까?' 라고 하며 반발합니다.
그러자 이어지는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가인이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 앞에서 가인이 드디어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치르게 될 대가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악한 죄악을 저질렀던 가인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그에게 한 표를 주셔서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비록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표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런 자격 없이 조건 없이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가인을 보호해 주었던 이 표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받게 된 놀라운 구원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우리도 가인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자격 없이 조건 없이 오직 은혜로 구원의 길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모든 죄악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던 삶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 안의 분노가 더 큰 죄악을 낳지 않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모시고 모든 죄악을 다스리게 하소서
오늘도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은혜로만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