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 맞선 앤 허친슨
요즘 조계종 총무원장의 권력다툼이 말이 아니다. 보수기독교의 구습과 막상막하다. 지금이야말로 기존 종교의 권력에 대해 반대해야 할 때가 아닐까?
임제가 말했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나는 이 말이 똑같이 기독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사를 만나면 목사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여라.’
나는 교사를 만나면 교사를 죽이라고 말한다.
선생이 공부를 방해하듯, 목사가 성경을 통해 예수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
여기 17세기 남성목사들의 권위에 도전했던 앤 허친슨의 이야기를 보라.
종교와 정치권력은 그녀를 인디언과의 분쟁지역으로 추방해 죽게 했지만, 그녀야말로 진리를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서 옮긴 것이다.
앤 허친슨은 13명의 아이의 어머니로서 약초를 이용한 치료법에 식견이 있는 신앙심이 깊은 여성이었다. 허친슨은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초기에 자신을 비롯한 보통 사람들도 성경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목사에게 도전했다. 훌륭한 연설가였던 허친슨은 모임을 열었는데 점점 더 많은 여성(과 심지어 몇몇 남성)이 참가하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 목사들에 대한 그녀의 비판을 듣기 위해 60여 명이 보스턴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총독 존 윈스럽은 허친슨을 “오만하고 사나운 태도에 빈틈없는 재치와 적극적인 정신, 매우 유창한 입심을 가진 여성으로, 이해력과 판단력에 있어서는 많은 여자들보다 못하다고 하더라도 남자보다 훨씬 대담한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앤 허친슨은 두 번의 재판을 받았는데 한 번은 교회가 이단이라며 고발했고, 또 한 번은 정부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민사재판을 받는 동안 허친슨은 임신 중인데다가 병든 상태였지만, 법정은 그녀가 거의 주저앉을 때까지 자리에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종교재판에서는 몇 주일 동안 심문을 받아 병이 재발했지만, 성경에 대한 전문가적 지식과 탁월한 언변으로 심문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허친슨이 서면으로 회개를 표했지만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표정을 보건대 허친슨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민지에서 추방된 허친슨이 1638년에 로드아일랜드를 향해 떠났을 때 35세대가 그 뒤를 따랐다. 뒤이어 롱아일앤드의 해안지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속임수에 속아 땅을 빼앗겼던 인디언들이 허친슨을 적으로 생각하고는 그녀와 가족을 살해했다.
- 『미국민중사』하워드 진,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