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20190615(내 강아지 쌀, 보리가 귀엽다.)
거창에서 온 내 강아지 보리와 쌀은 나의 유일한 한 식구다. 내가 밥을 먹을 때는 이놈들을 챙긴다. 식구여서 그렇다. 이 놈들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이 놈 둘이 나를 보면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을 핥는다. 나는 강아지들이 핥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서 핥는 것을 소름끼치게 싫어했다. 지금은 그렇게 까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내 강아지들이 표현하는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조금씩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인다.
오늘은 오후 내내 2시간 이상 만져주고 쓰다듬어 주고 눈을 맞추며 시간을 함께 나누다 방에 들어왔다. 강아지들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에 익숙해 가고 있다. 나는 고향 집 시골에서 키우던 개에 대한 어린 시절 경험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냥 개는 개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개가 사람의 영역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 후 93년 첫 부임지 고흥 성당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제관 개는 늘 함께 하는 식구로 살았다.진도 팽목항에 있을 때는 팽이와 목이라는 진돗개가 있어다. 내가 개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은 첫 부임지 고흥에서다.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개가 다리를 다쳐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왔다. 부러진 다리를 가축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하고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한 두 달이 되자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웃집 개와 싸움을 하고 돌아온 개는 그 다친 다리를 다시 물려 돌아온 것이다.
개들은 힘겨루기로 서열 결정에서 치명적인 타격은 입은 것이다. 이들은 힘겨루기에서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굴복시킨다. 인간의 경쟁사회가 이들 세계와 닮았다. 경쟁사회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짐승의식이 적용된다. 건강한 시민사회는 그 반대다. 오히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사회야 말로 고귀한 영성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다.
무엇이든 잘도 먹는 내 강아지 보리와 쌀 그 배설물 담당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내 몫이다. 나는 이른 아침에 마당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배설물을 치운다. 요즘 그 양이 상당하다. 나는 이놈들의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늘 부러운 생각이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대장 절제수술 이후 정상적인 배설이 안 되는 사람이다. 뭐 그러거니 하며 당연하게 여기며 살기는 하지만 어쩌거나 보리와 쌀의 건강한 똥이 부럽다.
이놈 들은 내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볼이며 할 것 없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쓰윽, 쓱 핥는다. 그 혀로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 달게 핥아 먹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맛있게 내 밥을 먹어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저렇게 먹음직스럽게 먹어 보았나.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는 모양이다.
어제는 이웃 집 할머니가 심어보라 주신 마늘을 텃밭에 심고 있는데 보리와 쌀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이 놈들이 마당에 납작하게 턱을 괴고 바라보는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냥 내 생각이지만 그 눈은 분명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 다정한 눈빛이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하얀 털을 곤두세운 쌀과 야무진 누렁이 보리는 매일 장난을 치며 잘 논다. 어디선가 꽃 냄새가 나는지 까맣고 작은 코로 무엇인가를 찾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언제 보아도 강아지들은 행복해 보인다. 이놈들은 늘 지금 이대로 현제를 즐길 줄 안다.
낮에는 석류 꽃그늘 담벼락 아래 보리와 쌀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개 팔자 상팔자다. 꽃잎 하나 나풀나풀 나비 되어 강아지 머리 위로 앉는다. 바람아 불지 마라 석류 꽃잎 떨어진다. 곤히 잠자는 강아지 일어난다. 바람아 불지 마라 고운 꽃잎 나비 되어 사라진다. 잠자는 강아지가 깨어 일어나자마자 새털처럼 가벼이 뛰어 다닌다.
나는 요즘 하늘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일 없이 하늘을 쳐다본다. 나 예전에도 하늘을 보긴 했다. 그러나 대게 어이없는 일이 생기면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세상에서 풀리지 않는 답답한 가슴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하늘을 보는 일이 즐겁다.
지금은 눈만 뜨면 하늘을 본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니 땅에 있는 것들이 더 잘 보인다. 땅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춤을 춘다. 하늘 땅 물 벗 온 산천의 생명축제 볼 것이 참 많다. 우리 집 강아지도 나처럼 가끔 하늘을 본다. 이들의 눈동자에 담기는 평화로 운 오후. 부풀어 오른 개의 동공 위로 물결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 한 마리 강아지 낮잠 속에서 나풀나풀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평온, 여기가 바로 거기다. 내 전화를 받는 동안 내 옆에 납죽 엎드려 왕방울만 한 눈알 휘둥그렇게 뜨고 통화 내용 또박또박 짚어내고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더니 신을 물어다 감추고 시치미 뚝 떼며 식구들 눈치 하나하나 살핀다. 괜찮다.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