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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사람값 꼴값>
(김광한 2001년)
꼴값에 대하여 1
꼴이란 사물의 생김새나 됨됨이를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즉 꼴 같지 않다는 말은 꼴이 격에 어울리지 아니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꼴 같지 않게 논다라는 말은 생김새에 비해 더하거나 덜하게 논다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생김새를 비천하게 나타내는 말이 물인데 꼴은 비록 상감처럼 생겼으나 상감은 커녕 종보다 못하게 노는 자를 일컬어 '꼴값이나 하라는 말로 대신한다. 한국 사람의 물은 한국 사람에 맞춰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걸맞아야 꼴값을 할 수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외국 유학을 몇 년 갔다 왔다고 제법 외국인 행세를 하며 원어(原語) 발음을 억지로 구사하려 애쓰거나, 미국 배우처럼 흉내 내려 드는 건방 기 있는 자에게는 '꼴값 떨지 말라 는 말을 붙이고 있다.
천하게 살다가 개발덕분에 갑자기 졸부가 된 자가 옛날 생각을 못 하고 상류층이나 된 듯 거들먹거릴 때 이를 '꼴값 한다'고 말한다. 꼴값은 남자와 여자 가운데 여자가 더욱 심하게 해서 남들보다 미인처럼 행세하고 싶은 마음에 꼴을 뜯어고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를 거들어 주는 사람들이 성형외과 의사들이다. 꼴값을 높이 쳐주는데 따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웬만한 성형외과 의사는 금방 큰돈을 거머쥘 수가 있다. 그래서 미스 코리아에 출전하는 여성들이 맨 처음 찾아가는 곳이 성형외과 병원이라고 한다. 꼴을 뜯어고치기 위해서이다. 성형외과 집무실에는 여러 꼴의 모델을 붙여 두고, '어느 꼴로 만들어 드릴까요? 하고 묻는데, 그 사진들을 유심히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탤런트 누구, 영화배우 누구, 가 수 누구 등등 기본 모델이 여러 개 결려 있어서 성형외과에서는 이들을 하나의 작품(作品)으로 취급하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에게는 꼴을 들어 고쳐 줌으로써 높은 이득을 올릴 수가 있고, 볼을 뜯어고친 손님은 꼴값을 하기 위해 더욱 바빠진다. 의사에게 있어서 사람의 얼굴은 연구 대상으로 족할 뿐 그 얼굴이 갖는 인격의 가치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즉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특히 여자의 꼴은 대략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형태가 몽고 종(種)이라서 얼굴은 평면이고, 남작한 코에 쌍꺼풀이 있는 두둑한 눈매에 눈은 단춧구멍만한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꼴을 외국 영화배우「오드리 햅번」이나「마릴린 몬로」처럼 만들어 달라거나, 탤런트 누구처럼 만들어 달라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판형이 엇비슷하다면 수정작업이 힘들지 않을 텐데 판형이 워낙 먼데다가 판형 뼈다귀까지 깎아야 하니 그 작업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이 작품은 어떨까요?」
「글쎄요. 좀 천박하지 않을까요?」
「그럼 이 작품은?」
「그게 좋겠네요.」
「그런데 이 작품은 댁의 판형에 비해 워낙 동떨어져 놔서‥·.」
「그래도 전 이 작품이 맘에 들어요. 이걸로 해 주세요.」
「비용이 좀‥‥‥‥.」
「얼마나 드는데요?」
「위험부담도 있고‥‥‥‥.」
「그래도 하겠어요.」
시험장에서의 커닝도 뭔가 좀 아는 친구가 한다던데 워낙 동떨어진 원시인이나 유인원같이 생긴 얼굴을 탤런트 누구처럼 작품화시켜 달라는 데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눈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도 살가죽이 얇은 사람 같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살가죽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한두 번 칼을 대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짓이겨야 겨우 길(道)이 드러날 눈꺼풀에, 눈 크기마저 크게 만들어 달라고 하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눈동자는 새알만 한데 눈만 뻥 뚫렸으니, 그 형상은 마치 큰 접시에 달걀노른자 뜨듯 이상한 형태가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아무튼 이렇게 꼴을 뜯어고친 여자들은 이때부터 꼴값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과도한 꼴값 때문에 패가망신한 여자가 어디 하나둘인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양귀비(楊貴妃)는 그녀의 꼴값이 현종에게 높이 쳐져서 마침내 왕의 첩이 되었다. 양귀비는 원래 임금의 아들의 부인이었는데 아들의 부인을 빼앗고, 대신 다른 여자를 왕비로 삼게 해 줬다. 56세의 현종과 22세의 며느리 양귀비, 둘 사이에 는 염정이 무르익었고, 양귀비는 이틈에 육촌 오빠인 양국충을 천거, 총대장으로 임명케 했으며, 그 외 양씨 일가를 모두 입궐 시켜 정사를 문란케 했다. 마침내 안록산이란 자가 난리를 일으키자 현종과 양귀비는 궁궐을 빠져나가다가 양귀비는 결국 성난 백성들에게 돌팔매를 얻어맞아 죽게 되었다. 꼴값을 톡톡히 치룬 셈이다.
연산군의 애첩 장록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록수의 꼴이 마음에 들어 정사는 젖혀두고 주흥에 빠지다 보니 임금이란 자가 제정신이 들 리가 없었다. 끝내는 중종반정에 연산군은 강화도로 쫒겨 가고, 장록수는 요부(娛婦)로 낙인찍혀 역시 성난 군중에게 돌팔매를 얻어맞고 죽었다.
여자의 꼴이란 오만과 탐욕의 상징과 같다. 역사상 꼴 때문 에 비극을 초래한 여자가 어디 하나둘인가. 요즘도 이 꼴 때 문에 신세 망치는 여자가 많다. 남편이 부정직하게 벌어들인 돈으로 학교를 뻔질나게 찾아다니며 머리 나쁜 자식을 두고 반장을 시켜 달라거나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 달라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여자,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것이 부(富)의 잣대처럼 생각하며 툭하면 아파트 경비원 모가지를 떼는 여자, 그리고 결혼을 밥 먹듯이 하며, 마치 외국 여배우 흉내를 내는 탤런트, 이 모두가 꼴값을 잘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옛날 송도(松都)의 삼절(三絶)이라고 불리던 황진이는 꼴이 아름다웠지만 결코 꼴값을 하지 않았다. 진주의 촉석루에서 왜장의 몸을 부둥켜안고 남강에 빠져 죽은 논개(論介)는 꼴이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극하였다. 그 나라 위하는 충성심이 갸륵해서 후세인들은 그 물을 사모하기보다는 그 거룩 한 마음을 사모하지 않는가.
꼴이란 시기성(時期性)이고, 시간이 지나면 꼴로 변해 버려 흉측해지지만 꼴 안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마음은 영원히 남는 것이다. 일책이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분들은 꼴도 아름다웠지만 이에 못지않게 마음이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들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사모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목적으로 인당수에 빠져 죽은 심청이나 변사또의 으름장에도 굽히지 않고 정조를 지킨 성춘향 역시 꼴보다 더한 마음의 지주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인들은 그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떤가. 지성이란 손톱만치도 없으면서 꼴만 다듬고, 뜯어 고쳐서 꼴값을 하고 다니는 아녀자가 얼마나 많은가. 꼴값을 높이 평가받기 위해서는 내면에 들어 있는 마음의 아름다움을 더욱 키워야 할 텐데 꼴 안에 들어 있은 교만, 허세, 사치, 건방기 등 온갖 못된 잡동사니 같은 것들만 키워 꼴값을 하고 다니니 참으로 한심하지 않다 하겠는가. 꼴값을 유난히 하고 다니는 여자 중에 가정생활에 충실한 여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고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꼴값에 대하여 2
꼴값의 뜻은 이미 전 장(前章)에서 언급한바 있어 다시 논의 하지 않기로 한다.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수성가한 사람 가운데는 유난히 자신의 성공을 과신하고 성공하지 못한 남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성공이란 우선 돈을 나보다 많이 벌어 좋은 집에 사는 것이 기준인데 이렇게 되지 못한 남들은 모두 실패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일제시대 친일민족반역자로 왜놈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그들에게 혜택을 받은 자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돈을 버는데 있어서는 장사가 우선이라고 하는 데, 그 장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원자재를 구입해서, 그것을 가공해 만들어 파는 일이 있고, 남이 만들어 놓은 물건을 큰 가격에 내다 파는 유통업 등등이 있다.
직업과 무관하지 않은데, 대략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만들어 팔면 무게만큼 이득이 많고, 무게가 적은 잡물(雜物)을 만들어 팔면 그 이득도 별것이 아니다. 땅 장사나 고철(古鐵)을 가공해 새 철을 만들어 파는 장사가 이득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일이다.
여기에 비하면 대학교수나 소설가, 문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입으로 치자면 실패한 인생이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을 놓고 성공과 실패를 논한다면 일찍이 진(晋)나라 시대의 졸부(猝富) 왕개와 석숭(石崇)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미녀(美女)를 화장실에 배치해 똥 누고 일어서는 사람의 항문을 미녀가 닦아주고, 실수로 분진(똥찌꺼기)이 남아 있으면 가차 없이 목을 베 죽이던 석숭이란 자의 포악성이 끝내 파멸을 부르고 말았다는 것은 역사책에 기록된바 그대로이다
그런데 요즘도 이런 자들이 간혹 있어 정직 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골 마을에서 공부하다가 싫어서 무작정 가출, 상경해서 철공장의 심부름꾼에서부터 출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된 P씨가 있다(이런 사람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P씨를 대표로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
P씨가 조금 깨달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쯤은 이해하고 후덕한 마음을 갖게 되련만, 자신의 출세(?)에 도취되어서 그런지 툭하면 직원들의 목을 날리고, 퇴직금도 핑계를 대고 주지 않고, 퇴직금 주기가 싫어서 1년쯤 되면 아예 약점을 잡아 직장을 그만 두게 하는 전형적인 악덕 기업인이다. 문자(文字)에 무식해서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P씨가 성공을 거둔 것은 철저히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논리를 내세운 결과이다.
그는 추석이나 명절 때가 되면 백화점에 가서 상품권을 비롯해 값비싼 선물을 한 차 사놓고 경찰서나 세무서 등 관공서의 담당자를 찾아가 인사치레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원 청 업자를 찾아가 나이 아래인 업자에게 세배까지 하는 등 그 로비가 대단하다. 이에 비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묵묵히 기름때를 묻히며 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오히려 트집을 잡고 월급마저 깎기 일쑤이다. 몇 년 전 IMF에 시달릴 때, P씨는 아예 몇 달씩이나 급료를 압류하는 등 전횡을 일삼기도 했다.
「IMF가 뭔지 아십니까?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했으면 이런 위 기상황은 안 일어났을 겁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을 해야 살아남습니다. 제 말에 불만이 있으면 그만 두세요.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원칙이지 않습니까?」
하며 겁을 주고는 급료를 압수(?)해 그 돈으로 몇 년째 타고 다 니던 자동차를 신 모델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골프채를 들고 골프장을 찾아 인생을 즐겼다.
P씨의 집은 1백여 평이 넘는 정원에 모의 골프장까지 갖추고 있어서 아침에 필자가 집에서 내려다보면 머리가 홀랑 까진 P씨의 골프 연습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골프채를 들고 샷을 하는지 메뚜기 폼을 잡으며 손톱만한 공을 노려보는 그 폼이 아름답기보다 꼴값하는 것 같아서 외면을 하는데 이렇게 꼴값하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여자는 얼굴의 생김새를 갖고 꼴값을 하는데 비해 남자는 소유한 부(富)를 갖고 꼴값을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꼴값이나 저 꼴값이나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국제적인 원성을 사기도 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좀 벌려고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를 부려먹고,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을 잡아 아예 임금을 주지 않기도 한다. 경기도 부천 일대의 공장 밀집지대에는 한국인과 얼굴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요일이면 떼 지어 거리를 활보한다. 이들은 한국인이 싫어하는 이른바 3D 업종에 취업,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때로는 불구가 되면서도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악랄한 업주는 트집을 잡아 월급을 떼어먹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룸살룽이나 고급 술집에 들어가 호기 있게 술을 마시면서 젊은 여자들을 희롱 하는데 여간 역겹지가 않다.
「P사장, 이번에 차를 갈았다지?」
「글쎄, 아무래도 국산 차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연비 면에 서도 그렇고, 엔진도 국산은 어쩐지‥‥‥.」
「내 생각도 그래요. 그만큼 우리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많이 있지요.」
저희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면 가히 국제적이다.
「이번에 모처럼 이탈리아를 갔는데 바다가재 맛이 옛날 맛 같지 못해요. 역시 전통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가게 주인이 바뀌었거든요. 맥시코인들은 민족의 한계성이 있어요.」
아마도 옛날에 이탈리아를 한 번 갔는데 거기서 가재 맛을 보니 그럴 듯 했고,다시 거길 가서 가재 맛을 보니 그렇지 않더란 이야기이다.
「K사장의 입맛은 알아줘야 한단 말이야. 나 역시 입맛이 까다롭다고 하는데 말이야‥‥‥ 나도 이번에 영국에 가서 보니 역시 우리나라 요리사는 어림도 없어요.」
「그래서 엽전이라고 했잖소. 엽전 이야기가 달리 나왔겠습니까? 나도 한국인이지만 반성할 점이 많이 있어요.」
중소기업체의 사장들이란 자들 몇이 모여서 그들의 여행담을 다투어 이야기하는 과정이 가관이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최첨단의 생각을 갖고 있는 성공한 한국인이라는 교만함이 마음속에 가득 배어 있었다. 급료를 툭하면 떼어먹고, 그 돈으로 차를 바꿔 타고 다니는 주제에 뭐가 잘났는지 모르나 좀더 자신을 반성하는 자세가 아쉽다.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골프 회원권을 소유하고 70여 평이 넘는 아파트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인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인간적인 면이 전혀 깃들여져 있지 않아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가「디오게네스는 통나무집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어느 날 어떤 졸부(猝富)가 집으로 초대를 했다 졸부의 집에 가 보니 가구가 온통 금(金)으로 만들어졌는데, 화장실의 변기마저 금이었다. 디오게네스는 가래침을 뱉을 곳을 찾다가 마땅한 장소가 없자 그 졸부의 넓적하고 피둥피둥 살이 편 얼굴에 뱉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그 돈을 인간적인데 쓰고 인간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게 행동한다면 그것이 곧 꼴값이라는 것, 여러분들도 잘 알아두길 바란다.
이 시대 살아있는 지성인(知性人)의 양심
꼴값을 쓴 김광한에 대하여
해설: 한승연
프랑스근대 소설의 창시자로 평가 받은 소설가 스탕달(stendlhal)이' 소설은 거울이다'라고 했던 주장은 우리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쳐진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고 그 거울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샤르트르는 말했다.
이 말은 그 작가의 글 속에 뛰어 들어가 인간의 삶 속에서 버려야 할것과 진실로 찾아 추구함으로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일께다. 그것이 인간 실체인 영혼의 양식을 얻어내는 일이다. 인간의 실체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라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 작업을 일찌기 성현들이나 현자들이 해왔고, 또한 이 땅에 그 발자취를 크게 남기고간 위대한 작가들이 그 비슷한 작업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물질적인 부(富)를 떠나 이 세상에서는 그렇듯 가난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에 얽매여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듯한 주택이나 값진 장신구, 또는 세상이 주는 육체적인 향락을 쫓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인간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글로서 그 메시지를 남겨 주었기 때문에 가난한 영혼에 위로가 되고, 또 양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사자는 세상에서 처절한 고독을 질겅이며 외로운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다.
물론 오늘날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간 말초 신경이나 자극하여 판매 부수를 늘리고 그리하여 배를 불리는 상업 작가들도 많다. 그들 역시도 인간 삶의 일면 출 문자화 시키는 글쟁이로 그래서 작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김광한 작가의 글과, 그들이 문자화 시키는 글과는 그 작업이 본질적으로 확연히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말초 신경이나 자극하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로부터 멀리 떠나 날카로운 인간 심리 분석과 사회비판 소설의 전통을 이어가는 김광한 작가의 작업은 그렇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처럼 물질만능 시대에 던져주는 그의 고독한 작업의 목소리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고급 독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그의 해맑은 영혼의 이름만큼이나 고급스럽게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자(壯者)가 친구였던 혜자(惠子)와 어느 날 주고받았다는 한토 막의 이야기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고답적이어서 현실적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네"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무엇 이 쓸모 있는가를 이야기 할 수가 있다. 땅은 넓고 크지만 사람에게 소용되는 것은 발이 놓여 있는 얼마 안 되는 땅뙈기다. 그렇다고 발의 크기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땅속까지 파헤쳐 버린다면 그래도 그 땅은 사람에게 쓸모가 있을 것인가?'
혜자가 대답했다.
"그래서는 아무 쓸모가 없지"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 같은 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긴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것이다. 서양의 편리해진 문명의 이기가 동방예의지국 (東方禮義之國)이라던 이 땅에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걸 맞는 조상이 물려준 도덕성마저 황폐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버려진 것들 속에서 잃어서는 안 될 것들을 김광한 작가는 오늘도 줏어 올려 담는 고단한 손놀림의 작업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시대에 내팽개쳐진 양심을 건져 일깨우게 하는 작업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작업은 끝없이 외면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단할 수 밖 에 없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하늘이 그의 몫으로 내려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가난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의 미소(微笑) 속에는 그렇기 때문에 선과 악, 그리고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다 함께 포용하는 하늘같은 넉넉함이 들어 있어 그와 만날 때면 참으로 그 해맑은 미소 속에서 신선한 사람 냄새, 그 체취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고나 할까?
그는 깨어진 유리조각, 찢어진 종이 나부랭이, 그리고 어느덧 저버린 꽃잎과 버려진 여자와 버려진 남자,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다고 버려진 것들을 다독이며, 또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소중하게 챙기며 그것들을 참다웁게 활용하는 용도를 그의 글속에서 제시해 주고 있다.
내가 그를 문우(文友)로서 알고 지내온 것은 벌써 십 수 년이 지났다. 그는 중앙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 굵직한 월간지 기자로서 출발 하여 마침내 편집주간으로서 그 자리를 굳혀 나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마침내 이 시대의 양심의 목소리를 크게 한번 펴내야겠다는 의지(意志) 하나로 그 품값 기대할 수 없는 고단한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야말로 누구보다도 가난이 주는 고통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며 살아온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고통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가장으로서 책임, 그것을 다하지 못했을 때 가족들이 함께 감당해야했던 가난이 주는 수모, 그래서 가끔은 '대한민국 무능의 대표'로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빛을 대할 때, 그것이 더없이 고통이었고 민망했다고 말하는 그는, 그래서 지금껏 그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해 온 아내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커다란 짐과 빛을진것 같아 가슴 아프다는 말로 그 생활의 일면을 일축해 말하기도 했다. 그처럼 적당하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외골수적인 청빈한 선비 정신이 오늘 그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작가(作家)의 사명(使命)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김광한 작가, 그래서 그의 글은 가난을 극복하기 어려워하고 가진 자들의 물질적인 횡포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연연하게 살아가는 그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의 순수 문학 작업이야말로 제멋대로 양심을 외면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피폐한 영혼들을 보다 현명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살찌워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이 시대에 살아있는 지성인(知性人)의 양심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면서 그 붓끝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6일 방배동 집필실에서
麗海 한승연
첫댓글 일송정님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
명절 잘 지내시고 계시지요?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엔퀸 공주도 올해 건강하시고 애국활동 열심히 하세요
@일송정 감사합니다^^
일송정님
새해에도 많은 가르침을 주소서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