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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지지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입구를 점령하고, 건물에 들어가려는 시민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사상 검증을 하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현직 대통령의 12·3 계엄 이후 한국 사회가 극단적인 분열로 흘러가는 안타까운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웃을 적으로 몰아가고, 기존에 존재했던 지역 간, 세대 간, 그리고 성별 간 갈등들이 기묘하게 뒤섞인 분열의 시대를 맞이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변호’가 아닌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단언하며 상대방 입장을 매도하는 것은 논리의 다툼이라기보다 감정 싸움으로 보일 뿐이었다.
이러한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탄핵정국 속에 양극화 현상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돌봄 공백,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역대 최고치의 자영업자 폐업 같은 사회적 문제들의 해결책을 찾는 노력은 줄어든 것이 아닌가?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 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 담긴 귀한 가르침이 되새겨진다.
‘유럽 최고의 지성’이란 애칭을 가졌던 요셉 알로이시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그의 첫 번째 회칙이 어떤 내용일지 세상의 관심은 높았다. 이미 24년 동안 가톨릭교회 신학을 책임지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생명윤리·동성애·해방신학·신자유주의 등에 대한 교회 입장을 정리했던 신학자가 교황으로서 반포할 첫 회칙 내용이 무엇일지 궁금증이 컸다.
답은 바로 ‘사랑(caritas)’이었다. 교황은 전쟁과 테러, 각종 폭력과 경제 양극화, 지구환경문제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하고도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엽적이며 현상학적이 아니라, 근본적 차원의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근본적 접근은 바로 우리가 ‘사랑의 본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다. 제1부 ‘창조와 구원 역사에서 사랑의 일치’와 제2부 ‘카리타스 :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랑 실천’으로 구성된 이 회칙에서는 교회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참된 의미부터 교회 공동체의 조직적 사랑 실천을 위해 필요한 내용까지 명료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교회의 조직적인 사랑 실천은 이웃에게 직접적 자선을 베푸는 차원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사회복지가 미시적인 영역에서부터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거시적 영역까지를 실천 대상으로 삼고 있듯이 교회의 조직적인 사랑 실천 또한 미시에서 거시적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 특히 회칙 28항 이하의 내용에서 ‘정의를 위한 투신’과 ‘사랑의 봉사’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정치의 핵심 임무인 정의로운 사회 구현과 가장 정의로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랑의 활동을 위한 교회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인도한다.
분열과 혼란의 대한민국에서 교회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회칙도 분명히 밝히듯 사회정의 실현은 정치의 목적이며 직접적 의무다. 그리고 교회는 사랑의 활동과 사랑의 증거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의 이성을 정화하고, 오직 정의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자리를 채워야 한다.
탄핵 시국에서 대한민국은 거대한 두 패로 나뉘어 서로의 ‘옳음’을 주장한다. 서로의 옳고 그름을 맹렬히 주장하는 모습이 더욱 격하게 치달으면서 깊은 골이 생기고 있다. 단순히 정의만으로는 깊게 팬 골을 메우고, 우리나라를 다시 하나로 일치시킬 수 없다. 우리들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성우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