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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1 회개는 구원을 이루어가는 시작이다
롬3:23-24 빌2:12-13 히9:27-28
지난 한주동안에는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대학은 초등학교 입학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마지막 대학교를 졸업하므로 대학교 졸업식은 어느 학교졸업식 보다 의미가 큽니다. 이제 대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관문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학교생활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입학식을 거쳐서 일정한 과정을 마치면 졸업식을 하는데 입학보다는 졸업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입학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졸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학업을 성취하여야만 졸업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을 학교의 입학과 졸업으로 비유할 수도 있는데 입학은 예수님믿고 회개한 것이라 생각하며 졸업은 인생을 마치는 구원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보통사람들이야 죽으면 그만이지 살아 있을 때 잘 먹고 잘 사는게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 귀한 순간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죽은 이후에는 내가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갈 수 있는지 아니면 불타는 지옥갈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히브리서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나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9:27). 위와 같은 말씀은 죽음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멀리하라는 지혜로운 말씀이라고 봅니다. 죽음도 쉽지 않은 것이지만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런 심판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교회 다니니까 또는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별개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지만, 예수님 믿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말이 나왔으니 죽음과 관련된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저자인 류마티스 내과 김현아 교수는 건강할 때 유언장 쓰기를 권한다고 합니다. 죽음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사건인데,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 한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든 신체 기능이 멎는 시점에 와서야 죽음을 준비한다. 아니,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김현아 교수는 '웰다잉'이라는 말이 마치 죽음을 좋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첫걸음인 '유언장 쓰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유언장에는 내게 중요한 물건들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의료 행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어디에서 죽을 것인지, 죽은 후에는 화장을 할 건지 매장을 할 건지 등이 포함되는 게 좋다고 한다. 이렇게 유언장을 쓴 후에는 가족들 입회하에 공증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한다. 2018년 연명의료법이 시행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제도화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의료의 힘으로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길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 이 의향서이다.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는 피할 수 있겠지만 생애말기에 오는 노화도 병으로 간주하고 치료에 집착하는 관행으로 병원은 삶의 마지막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 현주소이다. 그래서 죽음의 장소를 결정하는 것도 유언장 내용의 하나가 된다. 죽음을 앞두고 큰 병원으로 실려 가는 것을 보면 이런 육신의 죽음도 준비 안 하는데 영혼에 대해서는 더더욱 준비하지 않다는 것이다.
창세 이후 지금처럼 편리한 삶을 살았던 시대는 없었다. 편리한 아파트와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웬만한 집이면 승용차도 있다. 정말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편리해졌으나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더욱 침체되어 가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교회학교가 소멸되고 노인들 위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활의 편리함을 근거로 자살자만 하루 35명꼴이라 한다. 특히 한국의 높은 노인 자살률에 대해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보다 소득이 낮거나 비슷한 나라들의 자살률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이를 ‘한국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자살 원인에 대해서70%-80%는 우울증의 결과로 추산되고 있다. 우울증이란 마음의 질병인데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인데 이런 우울증을 치료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신앙생활을 하면 의외로 쉽게 고쳐질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쉽게 치료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자살로 죽든 병들어 죽든 인간에 있어서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 천하보다 더 귀한 인생이 지금도 하루 24만명이 죽어간다고 하는데 인간이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서 있을까? 지옥에서 있을까? 빛과 어두움이 있듯이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은 살아서는 갔다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으면 천국도 갈 수 있고 지옥도 갈 수 있다. 성경 66권 책을 넉자로 압축한다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믿으면 천국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이다. 교회 십자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것을 상징하는 것인데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을까? 그것은 지옥 갈 인생들을 구원해내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요? 인간이 예수님을 믿어 그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진리는 없습니다.
1. 죄 값은 사망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3:23)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므로 전 인류는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죄악중에서 잉태되었고 죄중에서 태어났으며 살아가면서도 죄를 짓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는 숨쉬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께서는 죄 값에 대해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죄짓는 행위가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죄짓는 것을 전혀 두려워할 줄 모른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 무서운 죄에서 벗어날려고 나름대로 회개를 하면서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성경은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얼뜻 맞는 말 같지만 회개는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지 죄의 삯이 아닙니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겠습니까? 어떤 강도짓을 한 사람이 재판장 앞에서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그 죄가 그냥 용서가 되겠습니까?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돌이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회개했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회개하는 것과 그 죄에 대하여 벌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그가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죄 값을 치르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하여 해방을 받으려면 자기의 죄 값을 치르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는데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회개입니까? 선행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그렇게 할 때 죄 값이 치러집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 값을 할인하려 하지 마십시오. 죄에 대한 판결은 죄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사망 이외에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노력을 멈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조상 아담에게 선포하시기를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느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신 것은 아담이후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므로 전 인류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피하고 싶어도 죽는 것입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 서적을 불사르고 수많은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와 만리장성으로 한때 세상을 제패하며 온 세상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여 서복을 보내어 동해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지만 보내심을 받은 자가 오기도 전 그의 정권도 붕괴되었습니다. 스탈린 역시 죽는 것이 두려워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적인 방법으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다. 백살이 넘은 노인들을 불러다가 실험하다가 노인들 중에는 실험에 의해 죽는 사람도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각종 식물 약제로 장수의 방법을 발명해 내기도 전에 스탈린은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느 누구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즉 나사로가 죽은 지 4일 만에 다시 살러내는 부활의 현장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요11:25-26) 25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죽음 이후에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부활의 소망을 보여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던 인류역사의 최초의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2.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는 길이 있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이 죄값을 사함받는 길을 예수님을 통해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죽어야 했습니까? 성경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고자 죽으셨는데 대속물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어주는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죽어야 할 그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 즉 죄인이 의로와지는 비결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으면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은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던 것은 우리들이 죽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네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식사 후 나올 때 그 중 한 사람이 식대를 지불하였을 때 다른 세 사람도 역시 식대를 지불한 것이나 같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다른 세 사람은 식대를 지불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낸 것과 같이 당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죄 값으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에게서 당신 죄 값은 지불되었다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다는 것은 "다 갚았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무 죄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삯은 이미 지불되었으니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전부는 주님이 날 위해 죽으셨던 것을 믿고 주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로 저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신 것에 감사드리면 됩니다". 확실한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구속 즉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합니다.
(골1:14)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은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준엄한 말씀을 모르고 일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마음대로 살겠지만, 죽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받는 심판이란 무슨 말인가?
3.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둘째 사망을 받는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셨는데 심판 받을 대상이 계시록 21:8에 나와 있습니다.
(계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심판자 앞에는 행위들을 기록한 책들과 구원받은 자들을 기록한 생명책이 있는데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죽음에서 최초로 살아나신 분이시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어서 생명의 씨가 있다면 몸은 죽어도 영은 죽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씨가 없이 죽은 자는 것은 죽은 후에는 지옥이라는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까?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이 주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을 하셨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난후 바로 죽었을까요? 아니올시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도 90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산자와 죽은 자의 개념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생명의 말씀으로 사는 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배를 위해서 사는 불신자들이 있다.
여기서 몸도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은 이 육신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그 부활의 몸으로 영생한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는 장수하고 곧 죽어서는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이 무엇이고 목숨이 무엇입니까? 생명은 영원한 것이요, 목숨은 숨을 쉬고 있는 우리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모공경하면 이 땅에서도 장수하지만 죽은 이후에는 영생을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진리입니다. 그렇게 정해 놓았으면 병이 걸려서 죽든 사고로 죽든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을 우리들이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살고 조금 일찍 죽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구원을 내가 이루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 하신다면 어차피 죽을 생명을 굳이 연장 시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성도는 한번 죽는 것을 안타까와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째 사망을 당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문제는 구원받는 과정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가장 가볍게 생각되는 것 하나가 구원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구원받았으니까 구원이란 것이 자기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은 자기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다 해도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처음 믿었던 과거는 죄사함을 통해 의로와졌다고 하지만 그 후 지금까지 내가 주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날마다 성화를 경험해야 하여야 하고 이 말은 날마다 회개를 하여야 죄를 용서받아야만 그 때부터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죽은 후에도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한다는 삶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 구원여부는 죽을 때에야 비로소 판가름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일생을 거쳐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것은 겨우 구원을 향한 시작일 뿐입니다. 마치 결혼식이 결혼생활의 출발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만으로 결혼생활이 끝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화라는 과정을 무시한 채 바로 천국으로 점프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일단 회개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과정을 한번 살펴봅시다.
4. 회개를 시작으로 성화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말은 회개없이는 죄를 사함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은혜를 주셨으므로 회개하여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회개를 하려면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라는 부탁이었습니다(행1:5).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시고 우리를 진리로 거듭나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회개란 방향전환"입니다. 사도들이 말한 회개란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고(행8:22)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는 것이고(행20:21) 마음과 행동의 철저한 변화를 일으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삶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입니다(행26:20). 좀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면 회개는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 무너뜨리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새 옷감을 헌 옷에 깁는 것이 아니라, 새 옷감으로 새 옷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즉 회개한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러한 생명얻는 회개는 우리의 힘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개의 은혜를 주셔야만 가능한 현상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회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참된 회개는 반드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회개의 은혜를 부어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반드시 회개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사탄 마귀가 거짓 회개들을 만들어 놓고 교활한 방법으로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셨으니 우리는 단지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구원파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사탄 마귀의 속임수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회개한 이후 성화과정이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십자가에서 전부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의 길로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요.
(마18: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회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요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참된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 구원하신다면 그것은 그 분의 진리와 모순되는 것입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요3:7).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이런 말씀은 참된 회개를 하고 성령으로 변화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는 생명얻는 것이고(행11:18)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고(고후7:10)하였으며, 베드로는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언급했습니다(행2:38). 즉, 회개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회개를 가리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살후2:13)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회개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는 것이며(엡2:1)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하는 원동력입니다(고후5:17).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라(행3:19).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즉, 먼저 회개하고 믿으라는 것이므로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회개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고, 회개없이는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 시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습니다(마4:17).
분명한 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날마다 성령충만을 얻도록 살면 되는 것이며, 회개한 후에도 죄를 지었으며 날마다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5 구원은 마지막 날까지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예수님을 믿었으니 천국은 당연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 때문에 예수님 믿고 더 타락합니다. 기독교신앙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있는데도 구원의 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구원받은 자 다운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만큼 무지하고 마귀적인 바상도 없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말씀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위의 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나 여기에도 모순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썼던 당시는 기독교 박해시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하면 곧바로 순교를 당하던 시대이어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믿음은 참된 회개가 수반된 순교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날 편하고 안일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신다는 뜻은 예수님이 내 삶의 주관자 나의 왕이 되시어 나를 전적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절대로 이와같이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즉 가벼운 입술로 주여주여 한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분 뜻대로 행하여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데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행위는 단지 상급에 불과하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믿음 없이 선한행위나 공로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참 그리스도인은 행함있는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분의 계명을 지키고 기꺼이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침례받는 것이 곧 회개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죄에서 떠나지 않고(딤후2:19) 하나님을 시인하면서 행위로는 부인하는(딛1:16)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회개한 자들이라고 구원해 주실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또 침례받는 것이 곧 회개와 중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침례받은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다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마7: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마22:14)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침례만 받고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해괴한 모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고전6:9-10).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죄에서 돌아서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죄의 용서를 구하여 마음을 항상 청결케 유지하고, 행악을 버리고 선행 즉 이웃사랑을 하여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을 떠나서 계속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의 끝은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회개의 의미를 알아야 예수님께 회개의 은혜를 간구하여 성령을 받아 회개하고 거듭나 마침내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으로 참된 회개를 한 자에게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 뚜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죄를 멀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이 예수님께로 끌려진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라면 멀어지는데 죄가 단지 미운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그 사람의 소망입니다. 습관적인 죄는 모두 다 끊어 버리고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믿음과 행함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알게 모르게 지었던 죄를 회개하여 죄 사함을 구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예수님 없이는 한 순간도 못 살 것 같고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다. 바울이 핏대를 세워가며 힘써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고 호소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믿었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 두려움에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말은 현재가 아니라 인생 마지막 날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순종 즉 복종하라는 말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쉽게 말한다면 빌1:5-11절에서 말한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항상 기뻐하며 기도하는 것이고 성도들간 교제 하는 것이며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동안 의의 열매들이 맺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며 두렵고 떨리는 사람으로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향해 천국을 침노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려면 나의 옛 생명이 죽어야 예수님 생명이 나의 몸 가운데 열매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고후4:10-11) 10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 안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안에 예수님을 갈망하는 소원을 부어주셔서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 기쁨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이 힘들다고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축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다는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스스로 기쁘게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나 상쾌하고 몸도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축구에 대한 소원이 있기 때문에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에 가는 이유도 자신이 기뻐하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산하고 싶은 소원이 그렇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 소원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한 평생 걸리지만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도행전 7:2말씀대로 앞으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창대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앞에 험한 십자가가 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생을 약속받았다면 그리스도의 날까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인데 그 길은 만만치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혹과 정욕과 쾌락을 통과해야 하는 말 그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야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사탄의 기만입니다. "믿습니다" 한마디로 구원받는다면 왜 예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라는 말씀을 하셨겠는가? 구원은 억지로 자신의 욕구를 누르고 금욕주의자나 율법을 지킨 바리새인들 같은 자들도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거듭나서 참 기쁨과 참 감사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한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공로는 하나도 없도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며 구원은 자기 힘으로 받은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자랑치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착각속에 빠져 있는 가짜 기독교인들이여! 진짜로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들의 삶을 보기 원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가볍고 쉽고 자유함이 있다고 말하였건만
왜 구원받았다고 하는 당신은 자유함은 고사하고 믿기전보다 더 율법의 사슬에 매여 종노릇하듯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닌지요? 거기에 대해
(요1서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고 말하였건만 왜 당신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매일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살아갑니까!02
LJKMNM NNJ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1서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했건만 왜 당신은 매일 세상에 굴복하고서는 난 왜 이리 믿음이 없을까 고민합니까!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구원받았다고 하는 당신의 신앙이란
1. 당신이 아직도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고
2. 그래서 성령님이 계시지 아니하며
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그 믿음이란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당신 스스로가 말하면서도 당신은 주일날 교회에 다닌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복음이란 모든 나는 죄인이며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으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천국에 가고 싶다는 것은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이것은 행위를 통한 구원을 말함이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진 자는 자연히 행동이 뒷따름을 말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이 땅에서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네 맘속에 있느니라고 하셨던 말씀은 진실하게 죄인임을 고백하면 자신의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천국이 마음에 이루어져야 죽음 이후에 실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죽은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결정난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려면 죄나 고난에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때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영혼이 평화를 누리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천국인이라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회개와 믿음은 불가분의 관계로써 둘 중에 하나만 있어도 구원반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와 믿음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성령님을 통해 일생동안 천국문을 향해 나아가야 마침내 천국으로 입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회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양들에게 회개의 중요성과 죄의 심각성에 대해서 강한 톤으로 설교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회개를 강조하지 않으니 천국도 버렸습니다. 그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값싼 은혜, 싸구려 복음이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으니 이를 보시는 예수님이 어찌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아멘 주 예수여 우리 모두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소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말 중 하나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리라. 나는 내가 육체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면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생활화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러한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질서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선물을 주시지 않습니다. 인간이 복음을 믿어야 할 이유는 모든 인간은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사람이 천국/지옥을 논한다는 것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가 죽음을 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성경의 핵심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이신데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 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 이외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필요성을 깨달은 자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깨달음도, 회개도 경험하지 못했다면 천국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죄때문에 지옥갈 자신의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도 없다면 천국은 불가한 것입니다. 먼저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만 알아도 구원은 반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실한 신앙인들이란 이런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믿은 사람은 절대로 전과 같은 죄악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고의로 범죄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안에 계신 성령이 절대로 그런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보천치가 아니고서야 어찌 다시 지옥갈 죄를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회개케 하고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도무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말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나같이 자기 힘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믿습니다만 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줄 착각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으며 누구든지 세상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하나님을 따르려거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그분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직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성령을 받는 자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리 율법의 행위를 다 지킨다고 해도 자신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사람의 의지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율법을 온전히 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정으로 자신이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만이 마음으로부터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으며 마음속에 임하신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스스로 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거짓이며 얼마나 복음이 왜곡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받아야 할 존귀한 존재입니다 문제는 자기만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나만 구원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며 당신의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구원해 주신 그분의 사랑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으므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주여! 내 소원 오직 이것뿐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당신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그 사랑 때문에 설령 나에게 죽음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당신을 부인하지 않는 이 소망이 천국가는 그날까지 변치말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