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씨편 9장과 연관지어 설명한다면 上知는 ‘生而知之’이고 下愚는 ‘困而不學’에 해당하며, 앞 장의 ‘性相近也 習相遠也(타고난 성품은 서로 가까우나 후천적으로 익힘은 서로 멀다)’와 연계하여 보면 ‘上知’와 ‘下愚’는 처음에는 ‘性近’이었으나 ‘習遠’으로 인해 나중에는 ‘毫釐之差 千里之謬(호리지차 천리지유:털끝만한 차이가 천 리로 어긋난다.)’가 되어 서로를 옮기려 해도 옮기지 못한다.
곧 ‘上知’는 ‘下愚’로 옮기지 못하며, ‘下愚’ 역시 ‘上知’로 옮기지 못하는데, 예를 들면 요순(堯舜)이 걸주(桀紂)가 되지 못하고 걸주가 요순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천하의 악한인 도척(盜跖)이 천하의 賢者인 유하혜(柳下惠, 도척의 兄)를 두고도 교화되지 않는 것과 같다.
주자
此는 承上章而言人之氣質이 相近之中에 又有美惡一定하여 而非習之所能移者라 或이 曰此與上章은 當合爲一하니 子曰二字는 蓋衍文耳라
이것은 윗장(2장)을 이어서 사람의 기질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에 또한 아름다움과 악함의 일정함이 있어 익힌다고 능히 옮길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혹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윗장과 더불어 마땅히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니, ‘자왈’ 두 글자는 대개 연문일 뿐이라.
程子
人性이 本善이니 有不可移者는 何也오 語其性則皆善也나 語其才則有下愚之不移라 所謂下愚에 有二焉하니 自暴自棄也라 人苟以善自治면 則無不可移니 雖昏愚之至라도 皆可漸磨而進也어니와 惟自暴者는 拒之以不信하고 自棄者는 絶之以不爲하나니 雖聖人與居라도 不能化而入也니 仲尼之所謂下愚也라 然이나 其質은 非必昏且愚也오 往往强戾而才力이 有過人者하니 商辛이 是也라 聖人이 以其自絶於善을 謂之下愚라 然이나 考其歸則誠愚也라
사람의 성품이 본래 선하니, 옮길 수 없다는 것은 어째서인고? 그 성품으로 말한다면 다 선이나, 그 재질을 말한다면 ‘下愚’는 옮기지 못함이 있음을 말함이라. 이른바 ‘下愚’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자포와 자기라(自暴自棄는 맹자 이루상편 10장의 말).
사람이 진실로 선으로써 스스로 다스리면 곧 가히 옮기지 못함이 없으니 비록 어둡고 어리석음이 지극하더라도 모두 점차로 갈아서(닦아서) 나아거니와, 오직 스스로 해치는(自暴) 자는 거부하여서 믿지 아니하고, 스스로 버리는(自棄) 자는 끊어서 하지 아니하니, 비록 聖人이 더불어 거처하더라도 능히 화하여 들어가지 못하니, 중니의 이른바 ‘下愚’라.
그러나 그 바탕은 반드시 어둡고 또한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이따금 억세고 거슬려 재주와 힘이 남보다 지나친 자가 있으니 상나라의 신(辛:폭군 紂의 이름)이 이것이라. 聖人이 이로써 그 스스로 善을 끊는 것을 ‘下愚’라 이르니라. 그러나 살펴서 그 돌아간다면 진실로 어리석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