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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본디 그 짧음이 格이고 맵시다
--이용우 시집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된다}의 세계
한인숙 시인
용서하시라!
李가
이 도둑놈을,
‘시인의 말’은 가히 혁명이다. 이 얼마나 정직한가? 시인은 나에게 그의 방을 한 번은 꼭 보여주고 싶다며 그의 시랑詩欴채로 초대했다. 그의 고백시 ‘춘양목 단칸방’(이번 시집에 실리지 않음)을 읽어본 대로 시인은 동생 집 추녀 끝에 판넬로 제비집 짓고 얹혀살며 청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은 2층 옥상 한 귀퉁이에 만든 두어 평 남짓 되는 방이었는데 단정하고 깔끔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손수 지었다는 방에서 풍기는 대추차 향기가 시인처럼 정갈했다. 방을 만들 당시 하 좁아 모든 걸 버렸고, 잠은 창가에 매단 조금 큰 관짝(시인의 말)에서 자며 매일 죽고 부활하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그랬다. 시인은 「잠의 꽃」에서 “잠들면/ 그곳이 관棺속이지/ 그게 죽음이고// 죽음은/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어떤 것과의 매몰찬 이움이다// 아/ 잠은 달고/ 그 얼마나/ 화려하고 무궁한가// 관보 위에 이슬처럼 내려앉는// 푸른 숨소리/ 고요하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가난했으나 자유로웠고 푸르렀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시인에게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고 어떻게 시를 쓰냐고 묻는다 했다. 그는 이순 넘어 배운 시에 대한 광기가 있다고 했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종종 자신의 머릿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차오르는 시상을 향해 제발 마실이라도 가버리라며 몸부림쳤다 하니 아. 그저 부럽지 않은가?
농약 먹고
미쳐 날뛰는,
게거품 물고
어머니가 내민 물을 벌컥대다
다리 밑 작은 동굴로 숨어 든
슬픈 짐승.
죽은 개를 묻어 준 적이 있다
저녁 잠을 청하는데
불현 듯 시상詩想이 발광한다
깊고 푸른 밤이
하얗게 죽은 아침,
그 무덤 앞에
시가 꽃다발처럼 놓였다
-⌜광기⌟전문
시인은 전에 습작한 것들 대부분 불태워 그 기록이 없다고 했다. 이 또한 충격이다.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편들은 3개월여 동안에 지은 것들이라고 했다. 「광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시인에게는 광기가 있다. 그 광기로 시를 짓는 것이다.
이용우 시인은 “詩는 본디 그 짧음이 격格이고 맵시다”라고 「나는 까막눈이다」에서 말한다. 문학계에 문외한이었던 새내기가 첫 번째 시집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된다』에서 시 형식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렸고, 이어 날밤을 하얗게 까면서라도 자신만의 시풍을 펼쳐가겠다는 야심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의 처녀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15행을 넘는 시가 없다. 간결하고 단정하며 절제된 울림이 있고 교훈적이다. 늦깎이로 시를 시작한 시인은 부지런하고 열정적이고 누구보다 노력한다. 수많은 시집을 필사하고 분석하고 시가 되는 것들의 진정성과 의미를 찾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한다. 대상에게 말을 걸고 품을 넓혀 마음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의식을 건져 올린다. 시를 통해 통증과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한다. 시인의 시 세계는 다양하고 폭이 넓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진술, 묘사, 함축을 통해 독특한 세계를 그려낸다. 다분히 상투적인 주제도 따뜻하게 만들고 호흡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용우 시인만의 상상력을 역동적으로 펼쳐 이미지를 확장하고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
칼을 주시오
명예名譽의 길
막혔다면
찢어 트고
삽을 주시오
복福 줄기
벼랑으로 흐른다면
태산을 퍼 막으리니
늙은 철학자여,
운명과는 싸우는 거외다
-⌜수상手相⌟전문
시인은 강건하다. 불우했던 가정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 때문일까 가난한 가정의 열한 자식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으나 맏이처럼 살았고 자신보다는 주변을 먼저 배려하는 법을 일찍이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에 기독교에 입문했고 젊은 한 시절에는 손수 판 토굴에서 잠을 자고 공부와 기도 생활을 하며 믿음과 의지를 굳혔다. 「수상手相」이라는 시에서 엿볼 수 있듯 “명예의 길이/ 막혔다면/ 찢어 트고” “복 줄기가/ 벼랑으로 흐른다면/ 태산을 퍼 막으리라”고 말하며 “운명과는 싸우는 거라”고 외친다. 이처럼 시인의 삶은 강하고 거침이 없으며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의지를 담은 시「대꽃」에서 시인은 “어쩌것나/ 대꽃은 백 살에 피운다 하니// 청엽靑葉의 뜻/ 절절이 펼쳐 보일 수밖에”라고 노래하고 있다.
백세수 어머니가 운명을 맞고 있었다
자손들과의 작별 인사,
감긴 눈에서 눈물이 귓가로 흘러내렸고
마지막 긴 호흡과 함께 눈을 뜨신
어머니가 두리번거리셨다
팔순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누가 또 보고 싶으세요?’
소녀의 부끄러운 눈망울로 말씀하셨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가...’
-⌜어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으셨다⌟ 전문
젊던 늙었던 자녀에게 있어 모든 어머니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절대자이며 애틋한 존재이다. 어머니는 존귀하고 아름답고 그 품은 위대한 우주이기도 하다. 운명을 맞고 있는 백세수 어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은 인륜을 넘어 천륜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많은 작품 속에서 어머니를 그려냈다. “문살 위에/ 햇살 내려 앉고/ 꽃잎이 넌짓 스며들면/ 피마자로 멋 낸 어미의 쪽진머리/ 은비녀에 가을이 피어나다”(갈꽃, 문살에 피다」), “꽃, 꽃은요/ 다 알아요// 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엄마 손 같은 비가 필요하다는 걸”(「꽃. 꽃은요」), “늙어/ 분홍 팬티가 부끄러운/ 어머니도/한 때는/ 꽃이었다는 것을,’ (「꽃의 귀뜸」), ”새끼들 잘되라/ 시장 바닥에서 팔만 번 머리 숙이던/ 어머니의 잠언을 깨쳤기 때문이다“(「겸손」), ”아, 어머니/ 나의 달빛이었고 /빗방울이었고/ 파도였고/ 봄이었습니다“(「사모곡」)... 이처럼 시인은 늙어서 분홍 팬티를 부끄러워하던 어머니를, 자식들 잘되라 팔만 번 머리 숙이던, 나의 달빛이고 빗방울이고 파도였고 봄이었던 어머니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펼쳐내고 있다.
뭐 눈에는
똥만 보이고,
뭐 눈에는
황금만 보이나
뭐 눈에는
詩만 보여야 하리라
황금을 봐도
똥으로 보는 깨끗한 눈이여
똥을 봐도
詩로 보이는,
詩가 밥이 되는
그대 이름은 시인이라
--⌜똥만 보이는,⌟전문
‘예술은 무보상의 활동이며 목적 없는 목적성의 소산인 것이고 보상을 전제로 할 때 세속적인 상품에 지나지 않지만 보상을 무시할 때 예술은 창조성이 빛을 발하게 된다.’는 칸트의 이론을 상기해 본다. 무릇 시인의 눈에는 詩만 보여야 하고, 똥을 봐도 詩로 보이는, 하여 詩가 밥이 되는 시인을 꿈꾸고 있다. 詩가 밥이 되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여기서 이용우 시인의 결기를 엿볼 수 있다. 詩가 종교이고 詩가 생활이고 詩가 전부이길 열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똥을 봐도 詩로 보이겠는가? “나의 시는// 똥줄 타/냄새 고약한// 한 덩이/ 똥이거나// 똥구녘의/ 쓰라림이거나”(「똥줄」)에서는 시인의 고뇌를 이처럼 해학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해내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나짐 히크메트의 말을 인용하여 시에 대한 열망의 불꽃을 사른다. ‘세상에 가장 좋은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쩌엉 쩡...
겨우내 배를 부풀리더니
자궁이 수축을 시작한다
태아의 마지막 몸짓이 시작되자
분홍빛 이슬이 맺히고
초보 엄마의 배가 으르릉대며
수중 분만 중이다
쩌엉 쩡,
기괴한 비명에
허리 꺾인 갈대는 파들대고
하늘이 잠시 노래지더니
산야에 봄을 싸질러 놓았다
몸 푼 강은
바다를 향해 뒤척거리고
--⌜해빙⌟전문
평택강과 마주하고 사는 시인은 겨울 강가를 서성이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겨우내 배를 부풀리기 위해 쩌엉 쩡 울어대는 강의 소리에 밤을 지샜을 것이고 우는 강을 때리는 바람의 폭력에 조바심도 냈을 것이다. 만삭으로 치닫던 강이 분만을 시작하고 산야에 봄을 싸질러 놓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적 인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구체성 있는 필치로 사물의 보이지 않는 특성을 살피듯 혹독한 겨울 끝에 오는 봄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태아의 마지막 몸짓이 시작되자 분홍빛 이슬이 맺히고’ 라고 진술함으로써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내면의 고통을 에둘러 표현했으리라.
무근, 뒤틀린 뿌리가 되어
꽃을 피우다
뼛대 배긴 이파리
무청도 될 수 없는
하얀 절망으로
땡볕 똬리를 틀어 이고
끝내 씨앗을 품는다
나비와 춤을 추는
오월 남새의 날개여,
뙈기밭 한 이랑 내어준
노을빛 가난으로
아낙의 해거름이 뜨겁다
-⌜장다리꽃⌟전문
시인의 시적 대상과의 교감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예리하다. 장다리꽃을 통해 한 여인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대상의 슬픔을 장다리꽃의 이미지로 포착하여 심리적 교감을 이끌어낸다. “뼛대 배긴 이파리/ 무청도 될 수 없는” 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아픔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견뎌내야 하는 삶의 구조이지만 끝내 씨앗을 품음으로써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노을빛 가난으로/ 아낙의 해거름이 뜨겁다”고 말한 대목에서 시인의 내면적 감성과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대상과 은밀하게 내통하며 자신의 시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은근짜 같은
여자
살포시
안아보고 싶다
--⌜낮에 핀 달맞이꽃⌟전문
‘은근짜’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몰래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달맞이꽃은 낮엔 오므려져 있다가 밤이 되면 활짝 꽃문을 열며 수정을 거치지 않고 정세포 혼자 배를 만드는 단위생식으로 번식하는 꽃이다. 안쓰럽게 낮에 핀 달맞이꽃을 살포시 안아보고 싶은 시인은 얼마나 설레였을까? 시인은 ‘은근짜’ 라는 단어를 찾아내고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했다. 4행의 짧은 시에서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시편이고 많은 여운이 남겨지는 시이다. 이용우 시인만의 능력이고 통찰력이다.
나 늙거든,
시멘트 처 먹이고
주삿바늘
꽂지 마라
그냥
내명대로 살란다
-⌜나무의 유언⌟전문
몇백 년 수령의 고목이 깁스하고 목발 짚고 수액 꽂고 얼마간의 이파리를 피워내면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안쓰럽고 때론 위대하다. 살아 있으니 살리려는 것인지, 살리려고 노력하니 살아 있는 것인지 힘겨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다. 나무의 유언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유언이고 우리들의 유언에 대한 은유이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다. 중환자실에서 호스 몇 개씩 매달고 연명하기보다는 타고난 명만큼 살겠다는 의지다. 나무를 통해서 자기 내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존재를 응시한다.
“그대는/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허리춤을 풀고 오줌을 누웠다// 노루귀가 뱅긋 웃었다’ (「봄이 왔다」)의 현상과 이미지를 통해 사물을 직시하고 내면의 회상과 기억을 꺼내 창조적 기원으로 삼는다. ”연못 터지도록 내뻗는/ 새파란 욕망// 두렵다// 저 꽃/ 꼬리가 아홉이다“의 「연꽃」에서 보여주는 시인의 시선은 날 선 도끼처럼 예민하고 날카롭다. 연이 번식하는 곳에서는 다른 식물들이 살 수 없음을 알아챈 시인은 연의 탐욕을 빗대어 꼬리가 아홉인 두려운 식물이라고 일갈하며 시인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
참새 한 마리가
여물을 얻어먹고는
소머리 위로 사뿐 올라앉아
조동아리를 나불댔다
‘내 고기 한 점이 네 고기 한 근보다 낫다’
그날 저녁,
소등 타던 이 집 소년은
참새구이를 아작댔고
외양간 소는 이 일을 곱씹었다
-⌜입방정⌟전문
은유는 단호해야 하고 폭발력이 있어야 하고 날카로워야 한다.「입방정」이 그렇다. 참새와 소의 우화를 통해서 언어의 가벼움이 어떤 화를 불러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교훈적 작품이다. ‘내 고기 한 점이 네 고기 한 근보다 낫다’는 일상의 한정된 주제를 확장시켜 상상의 유동성을 가동함으로써 시적 사고량을 확장하며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라는 것을 증명한다. “외양간 소는 이 일을 곱씹었다” 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개성적 화법과 표현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너와 내가
마주 바라볼 때
너의 왼쪽 눈은
나의 오른쪽 눈을 본다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되고
그 사이에 섬이 있다지
너에게 슬픔의 달이 떠오르면
나에게 있는 해의 밝음을
전해주려니
내 은빛 그리움도
물이랑 따라
야자수 해변으로 가리라
너는
어느 봄꽃으로 마중할까?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된다⌟전문
너와 내가 주제에 헌신적으로 개입하면서 상상의 울림이 증폭되고 있다. “너와 내가/ 마주 바라볼 때/ 너의 왼쪽 눈은/ 나의 오른쪽 눈을 본다” 처럼 대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서로의 관계를 소통시킬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되고// 그 사이에 섬이 있다지”라고 시인의 내밀한 고백이 시각적 회화성을 통해서 사랑을 노래한다. 섬이라는 절묘한 배치로 낯선 것을 익숙하게 그려내며 시인의 철학이 저공 비행하고 있다.
날 저물면
고향 가고 없다
둥근 멍석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얘기꽃 피우다
날새니
타향이구나
-⌜꿈에 간 고향⌟ 전문
시인의 고향은 예산이다. 어릴 적 뛰어넘던 지지랑물이 생각난다고 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지만 꿈에서도 그리는 고향이다. 서정의 바탕 위에 그려진 고향은 향수다. “날 저물면/ 고향 가고 없다”며 꿈속 여행을 시작했던 시인은 “얘기꽃 피우다/ 날새니 /타향이구나 ‘ 라며 꿈에서 깬 것을 아쉬워한다. 독백적 화법이 몽환적으로 그려지면서 고향에서의 옛 추억을 되짚어 보고 싶어 하는 시인의 간절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한 알의 도토리,
그 안에
떡갈나무
서
있다
-⌜떡갈나무⌟전문
한 알의 도토리를 통해서 나무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시력을 읽는다. 떡갈나무에서 후드득 떨어져 산짐승의 먹이가 되고 숲이 되고 오전의 그림자를 오후로 넘기며 기록했을 숲의 내력을 상상해 보는 일, 한 알의 도토리에 담긴 새의 노래와 구름의 전언과 숲의 수런거림을 동글동글 굴려 보았을 시인, 도토리 안에 떡갈나무 서 있다는 이미지 변환과 이야기 변환이 함께 어울어지면서 나무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사물적 감각이 확보되고 공상적인 풍부함이 시의 풍미를 더한다.
사내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까지
(툭 던지는 여자의 예감...)
순간,
한 눈 팔아
외도外道를 해도
풀치는 목소리
그녀의 앙탈에 헛심도 빼지만
맵시도 내주며
믿고 동행하는 건
작은 것을 고집하지 않는
조강지처여서라나
뜨막한 터치에도
까르르 넘어가 험한 길 헤쳐가고
끝내는 사내의 발치에
후드득 지는 여인아
-⌜레비게이션⌟전문
이야기에 맵시가 있다. 레비게이션은 길 안내자이다. 더러는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게도 하지만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시인의 레비게이션은 조강지처다. 그녀는 한눈을 팔아 외도를 해도 봐주고, 뜨막한 터치에도 까르르 넘어가 험한 길 헤쳐가고 끝내는 사내의 발치에 후드득 지는 여자다. 시인의 가슴을 통과한 말들이 아내의 이야기를 은근슬쩍 레비게이션으로 풀어낸 것이다.
詩의 이정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길 위에서 시인은 많은 것을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시인의 말들은 순수하고 맑다. 풀치는 목소리와 같이 순우리말을 작품 곳곳에서 만나게 되고 절제된 언어와 문장으로 시를 짓고 있다. 시집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의식 속에 울림의 힘이 있고 수사의 정확성과 마주하게 된다. 문장이 단순 묘사로만 사용된 부분이 없고 수사 자체가 주제로 동화되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가 직선으로 흐르면서 집중력이 있고 언어의 근육질이 단단하다, 문패도 없는 시인이라고 말하는 그가 흘러가는 평택 강물처럼 쏟아낸 주옥 같은 시편들 중 「너에게」를 옮겨 적으며 시평을 마친다.
그대
떠난 날
달보고
울다
낮달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