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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성수필연구 III
선녀들의 제네시스, 다양한 아라베스크 문양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열며
-왜 부산여성수필문학인가.
수필은 일상을 소재로 해서 정서와 그를 통해 획득되는 깨달음을 유감없이 기술할 수 있는 글이다. 수필의 이러한 고유 영역과 특성을 제대로 살렸을 때 그 글은 향기를 지닐 수 있다. 수필을 인간학이라 부르는 소이도 수필의 내용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도 하는데, 부산여성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의 특징은, 한마디로 그 소재가 가정에서 사회로 확대되고, 생활문학에서 본격문학으로 심화되어 가며, 문장의 전개에 있어서도 형상화 기법을 구사하고, 정보의 처리 면에서 구체성과 보편성을 잘 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현대는 다양한 욕구가 충만해 서로 좌충우돌하지만,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눈을 돌리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는 단절과 소외로 특징지어지는 시대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필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이 문학만을 위한 작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자기 정서의 표출이라는 자기 구원만으로 수필가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 문학 외적 측면에서는 사회구조의 변모, 여성의 지위 향상에 따른 제반 상황의 발전적 변모를 암시하고, 문학 내적으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여성 의식의 확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부산여성수필문학회의 힘찬 날갯짓은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II. 펼치며
- 아라베스크 문양의 부산여성수필문학의 수필세계
▲ 하나 : 송명화, 착한 눈빛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성자처럼
전남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그녀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기성품의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 즉 어두운 세상을 낯선 인식으로 열어젖히는 열린 작가다. 송명화의 수필 세계는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조화를 그 특징으로 하며 비평의 렌즈를 번뜩이면서 작가 자신이 직접 네 거리로 뛰어나가 현대문명의 병폐와 부조리를 목이 터지게 외치는 그런 지성의 세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회의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송명화의 사회수필은 하나 같이 독자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실로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을 안겨준다. 「차마」, 「설이」,「허리」,「벽」,「하여」 다섯 편의 수필들은 이태준의 『무서록』를 읽는 듯 진정으로 맛있는 감동을 준다. 이는 그녀가 세상을 향해 눈과 귀 그리고 가슴을 열어놓고 제 물상의 발신음을 듣는 열린 마음의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수필 속에서 부드러운 감성과 예리한 지성이 교직되고 있음을 발견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같은 이중적 양자의 교직을 통해 작가는 수필 속에서 나름의 개성적 색깔을 문학적 형상화로 축성하기를 소망한다. 때로는 소시민적 일상을 수필적 제재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경우라도 결코 단순한 소품으로 그치는 경우란 드물다. 하찮은 소재라도 ‘다시 보기’를 통해 인식을 정교하게 형상화하는 데 뛰어난 작가이기 때문이다. 등단한 이래로 줄곧 주목받을 본격수필을 써왔다는 측면에서 그녀는 21세기적 수필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라 할 수 있겠다. 연암박지원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에세, 햇살 위를 걷다』에 수록된 작품은 어느 것이나 수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송명화는 같은 시대의 대다수 여성수필가들과 달리 인식을 통한 수필 쓰기가 창작의 바탕을 이루면서 탄탄한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 양지보다는 오히려 음지에 시선을 두는 따뜻한 수필가라는 평가가 잘 어울리는 작가라 하겠다.
▲ 둘 : 박영선, 습기와 밀양, 단단한 자의식 앞의 안개처럼
수필의 생명은 분위기란 말이 있다. 박영선은 확실히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다. 촉촉하고 드라이한 양면성이 안개 같이 아련한 그녀의 분위기는 우리의 정서를 돋워 마음을 휘어잡고 만다. 박영선의 수필은 한마디로 습기와 따스한 햇볕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단단한 자의식 앞의 안개처럼 그녀의 수필은 감상적이다. 등대를 바라보며,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수필은 처참한 좌절과 파멸의 순간을 접하고 인간적으로 슬퍼하는 작가의 심정이 분위기 있게 잘 묘사되어 있다. 박영선은 본격수필만을 창작하겠다는 각오로 수필을 쓰는 작가다. 핏발선 분노가, 여린 마음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선연히 보일 정도로 그 느낌을 세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아픈 만큼 성숙한 글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인간적인 심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녀의 글은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가를 느끼게 하는 데서 의의가 있다.
수필의 힘은 이런 비장미에서 나온다. 가슴을 치게 만드는 박영선의 메시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북소리가 되어 둥둥 울린다. 수필은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높은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존재양상에 대한 엄숙한 해답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힘든 삶 속에서 고운 무늬만을 골라 쓴 박영선의 수필은 인간적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글에는 삶을 좀더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 또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에게 용기를 주는 등 인생에 대한 신선한 반항이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 박영선이 도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부조리한 현실이다. 그녀는 수필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천부 인권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이 땅에 인간다운 삶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한다. 인간적 삶의 쟁취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기에 그녀는 끝간 데 없을 만큼 악랄해진 부패한 권력과 재벌이 저지른 인간의 죄악상에 대해 절규한다. 그녀의 수필은 문학의 당위적 진실을 구축하는 휴머니즘의 문학적 실천이 아닐 수 없다.
▲ 셋 : 김경숙, 현란한 자아, 생명력으로 출렁이는 바다처럼
수필은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흔히들 인간학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학문도 철학도 '인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김경숙의 수필을 읽으면, 생명력으로 출렁이는 바다 같은 현란한 자아의 반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아란 결국 한국적 현실 앞에 무기력하고 만다. 인간이란 '인간의 삶'을 전제로 해서 가능한 개념이다. 그녀의 수필은 '인간의 삶'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내적 필연성을 항구적으로 요구한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녀의 수필은 인간을 떠나서는 문학의 존재가 의미가 없는 것을 말해준다. 김경숙의 수필 속 모든 재료는 인간의 상관물이요, 인간 자신이 투영된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문학적 눈으로 봐서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고, 그것은 일상의 삶이 문학적으로 승화된 것이다. 김경숙 수필이 인간의 내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 본질 자체의 속성이 내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는 창조되어질 수 있는 작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행위에서 오는 창조, 다시 말해서 창조자가 자신의 창조적 행위에서 삶의 상승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는 말과 통한다. 김경숙은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삶은 자기 표현에 그 의미가 있고, 자기를 표현으로써 그 삶은 비로소 형식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보면 자기를 표현한다는 것은 일종의 창조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하겠다. 삶에 대한 표현은 본질적으로 직접적으로 자기 관찰을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김경숙의 수필과 그 문학적 표현에는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노력이 내재되어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체험과 표현 그리고 의미 부여라는 세 요소의 내적인 연관에 의해 그녀의 수필은 본격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김경숙의 수필들은 삶의 문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일종의 자성 수필들이 많다. 자성 수필이 갖는 매력은 문학적 힘에 있다. 자기 반성적 성찰의 끝에서 얻는 교훈은 수필의 독자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 잠시 동안 생활에서 벗어나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참모습을 바라볼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않고 나의 현재를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 영위되는 삶을 바탕으로 그 의미의 중요성과 가치를 견고히 구현하며, 이를 어떠한 형태로든 객관화하여 본질적 의의를 확고히 하려는 요구를 가지고 있다. 수필 창작에 있어서 일차적인 목표는 감동의 창출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이 적절한 표현으로 문예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본질적 면모를 진실 속에 담아내는 일이 관건인 것이다. 김경숙은 이런 삶의 일반적 성향과 인간의 나르시시틱한 측면을 잘 조명해 내고 있는 작가라 하겠다.
▲ 넷 : 박성숙, 조용한 열정, 그리움을 뚫고 달리는 기차처럼
수필은 절실한 그리움과 인생의 하모니에서 써지는 글임을 박성숙은 다섯 편의 수필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간절한 그리움인 꿈이 있어 이 지상은 아름답다. 결핍이 있어 인생은 그리운 것이요, 고해가 아닌가. 영어 단어 명사형 'want'의 뜻은 ‘결핍’이고, 동사형 ‘want'의 의미는 ‘원하다’이다. ‘결핍’이나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실히 ‘원하는’ 것이다. 박성숙의 수필세계는 그리움을 뚫고 달리는 기차가 내는 풍금소리만큼이나 아름답다. 이 세상은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로 꽉 차 있다. 그녀의 수필은 체험의 고백이라는 특성으로 해서 현실에서 완성된 꿈을 발견하고 창조하려는 리얼리티를 갖는다. 모든 박성숙의 글은 목마름에서 시작되듯이 수필도 꿈이 있어, 가슴에 늘 조용한 열정인 푸른 바람이 일렁인다. 간결한 묘사와 섬세한 느낌을 발단으로 해서 자신의 체험담을 반드시 전개부에 배치하고 결말에 가서 주제를 의미화하는 박성숙의 성숙된 수필관은 자신의 수필적 가치를 본격수필로 끌어 올린다. 수필의 내용은 가장 수필적인 특성을 겨냥하고 있고, 수필의 형식 역시 본격수필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담담한 수필을 써내는 작가다. 내용은 수수하지만, 수필의 작법과 형상화 과정을 작가가 잘 이해하고 있기에 평범한 소재를 훌륭한 수필로 멋지게 빚어낼 수 있었다.
박성숙의 수필은 스냅사진이 아니라 증명사진이다. 추상화가 아니라 정물화다. ‘글은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수필을 쓰는, 박성숙은 투명한 작가다. ‘좀 부족한 사람이 여기 있소. 하지만 열심히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오.’라는 자기 확인을 통해 한결 더 성숙한 삶의 모형을 추구하는 작가이기에 그녀에게는 에세이문예 작가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상이 사람의 격과 위상을 높여주는 걸까. 수상 이후 박성숙의 수필은 확실히 달라졌다. 속이 꽉 차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듯한, 열정을 품격으로 삭인 듯한, 약해 보이면서도 강한, 수다가 아니라 대화로, 부정이 아니라 긍정으로, 질시가 아니라 이해로 갈등 요인을 찾아 그 접점을 찾아가는 용해의 삶을 살기에 그녀의 삶은 언제나 수필적 삶이다. 수필적 삶 속에서 빚어지는 수필은 그대로 감동을 주는 수필이 될 수밖에 없다. 박성숙을 닮은 글, 영혼의 흥얼거림에서 자연스럽게 써진 글, 한마디로 그녀의 수필은 가을 같은 무게와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글이다.
▲ 다섯 : 오귀옥, 팽만한 에너지, 풀잎 끝에 매달린 바람처럼
인간이 다다라야 할 곳은 순수다. 오귀옥 작가는 코스모스 작가로 통한다. 청초함을 통해 인간의 희망과 그리움을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것보다도 희생과 겸손으로 주위를 밝히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오귀옥의 글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팽만한 에너지다. 그녀의 글에서 풀잎 끝에 매달린 바람처럼 강인성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오귀옥은 수필에서 외유내강의 미학을 구축해내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연약한 자태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자연의 순수다. 순수한 마음으로 평온한 삶을 구가하기에 작가는 싱싱한 삶을 영위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시대ㆍ공간에 살고 있다. 오귀옥의 수필을 통해서 우리는 개개의 자연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표정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귀옥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눈앞에 그리움이 펼쳐지면서 동시에 마음까지도 순수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수필을 바탕으로 좀 더 겸손한 인간, 주변을 환히 밝히는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것은 오귀옥 수필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오귀옥은 문예창작 전공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추출해내는 작가다. 그녀는 거기에서 인간의 순수함이 갖는 중요성도 발견한다. 이는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힘을 주는 활력소와 같다. 인간은 누구나 정서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한 그 뿌리가 한 인간의 견고한 심성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인식적 차원으로 가치 있는 발견이다. 순수에 대한 작가의 동경은 다시 만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녀의 수필들은 희망을 붙잡기 위한 작가의 순박한 소망을 피력한 것이다.
오귀옥의 이같은 다짐과 사랑에의 의지를 다섯 편의 수필에서 재삼 확인하게 된다. 이는 그녀의 사유적 세계가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투명함에서 이루어진 것인가를 말해준다. 희망의 씨를 뿌리는 일은 열정을 키우는 일이다. 자신의 세계에 대해 열정이 없는 사람은 간절함이 없다. 언어로 관념을 추상화하는 문학의 세계에서 간절함이 없이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다. 오귀옥이 우리에게 보여준 개성은 자신의 다짐처럼 열정으로 표면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열정 대신에 담담한 관조 정신이 그녀의 문장 행간에 스미어 그녀의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귀옥 수필의 가치는 사물에 대한 남다른 시선이 남긴 의미의 발견이다. 오귀옥은 연약한 내면이 시선에 포착되면 그것을 깨달음의 문제로 연결시킨 다. 인간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는 대자연의 원리를 그대로 배우고 닮아가는 일이 아닐까. 일상에서는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인간의 내면적 모습에다 인간 세계의 원리를 대입하고, 여기에 자신의 의지를 투입함으로써 오귀옥의 깨달음은 한결 깊이를 더한다고 하겠다.
▲ 여섯 : 홍영순, 인생을 칼칼하게 씻어낸 눈부신 희망처럼
홍영순의 수필세계는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인정을 찾고, 그 인정으로부터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그녀의 수필에 그려진 인생은 칼칼하게 씻어낸 듯 눈부신 희망처럼 빛나고 있다. 그녀는 잘 익은 배 같은 여인이다. 이들 다섯 작품들은 그녀가 인간에게 쏟는 정이 얼마나 지극한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조용한 사색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고, 그 관조를 통해 인정의 따스함을 찾고 수필로 승화시키는 것을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한다. 홍영순은 수필의 소재를 언제나 생활 속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활용해 이야기로 직조하고, 주제의식을 씨로 뿌려 한 편의 멋진 열매를 수확해 내는 수법이 그녀만의 칼라다. 그녀의 수필은 한마디로 서정정신이 서사 속에 피어난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수필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인정이 강물같이 흐르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수필의 생명은 인생의 무게를 담는 중후함에 있다. 경박스럽거나 허둥대는 모습이 아닌, 진지함에 그 가치가 있다. 홍영순은 삶을 희생적 안목으로 응시하고, 정을 흘리면서 산다. 그런 자세는 그녀의 수필이 건강한 생명력을 지니게 하는 바탕이 된다. 다섯 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자신을 위요한 세계에 대한 관심과 느낌이 남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삶을 둘러싼 일에 방관자적인 사람은 수필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홍영순 수필의 존재 가치는 현실에 대한 관심과 신선한 안목에서 나온다. 다섯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주변을 스치는 사람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무심히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상사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세심한 응집력은 수필의 신선한 소재로 다가선다. 그녀가 그려내는 사람은 모두 우리의 정다운 이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누구나 그녀에게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는 마음을 열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단절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작가의 열린 가슴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았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언어에는 현란한 수식도 분식도 없다. 문학작품이 주어야 할 교훈성은 수필 속에 나오는 인물의 말을 옮겨 놓음으로써 가볍게 해결한다. 부모로서 모범을 보이는 삶의 실천을 삽화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가 수필적 삶의 원형이다. 맛을 내는 천연 조미료가 아닐 수 없다.
홍영순의 수필 쓰기는 남다르다. 지금까지 발표한 신작 수필이 모두 그러했거니와 그녀는 항상 수필의 세계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뭔가를 말하기보다는, 자기 눈에 비친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예리하게 포착해서 당위적 진실, 즉 '있어야 할' 인생을 보여 주려한다. 다섯 편의 수필에서 본 바와 같이 홍영순의 수필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런 사람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웃 사람이라 생각하고, 접근하여 문제를 파악해서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려고 한다는 데서 그녀의 천사적 이미지가 우리들의 이기적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자매애를 바탕으로 우리 생활과 사고에 쌓인 벽을 허물고자 하는 작가의 삶에서 묻어나는 인도주의는 글 속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드러난다. 작품 속 언술에 나타나 있듯이 그녀는 휴머니티의 심화를 통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아파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씨의 환원이 우리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임을 수필을 통해 그녀는 보여주고자 한다고 하겠다.
일곱 : 최순덕, 생광하게 빛나는 삶, 갈참나무 잎새처럼
마치 생광하게 빛나는 갈참나무 잎새처럼 그녀의 수필은 윤기가 흐른다. 교육자로서 절실한 교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온 인생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어 그녀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정이 많기로 시골의 우물이 있는 집의 주인 같다. 받으려고 하는 마음보다 언제나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다. ‘수필’이라는 언어 형태가 문학성 또는 예술성을 지니기 위해서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표현되어야 한다. 설명하는 경우에는 마치 보고서처럼 개념의 전달에 그치지만, 표현하는 경우는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뤄져서 실감을 자아낸다. 작가의 사상 감정이 막연한 개념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이면서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최순덕 작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수필 쓰기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의의가 살아난다. 그러나 일상의 현상을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단순히 수용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비판을 통해 개선을 모색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 수필은 작가의 안목에 비친 세상의 해석이다. 안목이란 현실 세계에 상응하는 작가의 자세가 아닌가. 작가는, 현실인식이나 작가의식의 차원에서 문학을 활용한다. 조용한 침묵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녀의 수필은 언제나 생명력이 넘친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가족애도 물결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최순덕의 작품은 책장을 잘 넘어가게 하는 수필이다. 인간 사회 숨겨진 진실과 나상을 보여주는 주제의식을 이 작가처럼 참신한 관조로 끄집어내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고 볼 때, 본격수필은 다스림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순덕 수필은 예지와 성찰이 내재되어 있어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겸허를 위한 의도적인 자기 숨김이 아니라 참다운 자기 생활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독자의 곁으로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접하는 사물들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들의 이면에 있는 본질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다만 감각될 뿐이다. 수없이 마주치고 스쳐도 그것들의 지배적 인상은 구체적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억의 잔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뇌리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가 최순덕의 눈은 사물의 내면으로 향하기 때문에 시선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고 사물의 본질로 향한다. 그래서 다양한 제재 속에 숨어있는 인생사의 진리를 발견해내는 데 성공한다. 한 편을 수필을 창조하는 데는 내적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 삶의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글을 읽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제재의 이미지에 현실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는 그녀의 전략은 늘 성공한다.
III. 나오며
- 프리즘의 눈으로 반짝이는 보석 같은 글들
여기 다스림 1기 소속 여성 수필가들은 전통적 여성관과 현대적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시대를 보는 자신의 생각과 변화되어가는 내면 풍경을 과감하게 문학적으로 드러내어 새 시대에 적응하려는 의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시대적, 문학적 요구를 바로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크다. 뿐만 아니라 부산여성수필 연구는 여성이 어떻게 삶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있다. 7인의 수필가가 강한 휴머니티를 가지고 날개를 이용해서 세상을 멀리 보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가슴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인의 날개3』은 사람이면 가져야 할 인간적인 자세가 어떤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해서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예술성까지 확보하고 있으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다스림 1기 여성수필가들은 모두 프리즘의 눈으로 반짝이는 사물들을 선택하여 훌륭하게 모자이크하는 재주를 타고났다. 이들은 마음을 다스려 수필의 경지를 본격의 고지에까지 올려놓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들이다. 선녀란 애칭으로 불리어져온 그녀들은 지난한 세월 속에서도 인연이 재산이라는 신념으로 인간적 의리를 지켜왔다. 마음 가득한 신심으로 1기라는 인연을 탄탄한 동아줄로 매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들은 또 다스림의 선두 주자이며 오늘의 다스림을 지탱케 한 여성작가로 멋과 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녀들의 수필세계 또한 가을의 들판처럼 풍부하다. 청아한 빗소리처럼 감성을 불러내는 철학이 있다. 평자는 그녀들이 끝없는 수필의 샘물을 길어 올리듯, 언제나 참신하게 반짝이는 소재를 다듬는 조각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함과 아울러 냉철한 사회의식도 가다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작가로서, 한 여인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한 스승을 따르는 제자로서, 언젠가 부산수필 문단에 본격수필의 한 전형을 제시한 작가로 자리매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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