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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음녀가 받을 심판(36)
말씀: 계 17:1-5 2025년 2월 9일 오후 2시
오늘 말씀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입니다.
계시록 17,18장은 큰 음녀와 큰 바빌론에 관한 장으로 17장은 큰 바빌론의 영적, 종교적 문제를 다루고 18장은 정치적, 상업적인 도시에 관해서 다룹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클라린스 라킨 목사님은 17장을 로마 캐톨릭의 종교 체계, 18장은 실제 이라크 지역에 세워질 바빌론으로 해석했습니다. 17장과 18장의 바빌론을 두 개의 바빌론으로 본 것입니다. 이 두 개는 전혀 다른 도시란 것입니다.
이와 달리 많은 신학자들, 설교자들은 17, 18장은 동일한 도시이고 둘 다 로마 캐톨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미국의 많은 개신교도들은 이런 해석에 익숙하며 교황이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직접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지칭했습니다. 큰 음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넘치지만 사실 전혀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성경 본문에 모든 해석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나옵니다.
12장에 나오는 “해로 옷 입고 있는 한 여인”은 이스라엘입니다.
17,18장에 나오는 큰 음녀는 큰 바빌론인데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주석서나 신학자들의 도움이나 해석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원어를 공부할 필요도 없고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나 풍습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고 정의합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계17:5). 그녀의 이마에 그녀의 신원을 밝혀 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5)입니다.
성경에서 야발은 ‘가축을 소유한 자들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의 형제 유발은 ‘하프와 관악기를 다루는 모든 자들의 조상’(창4:20,21)라고 말합니다. 이는 목축업의 아버지요, 음악의 아버지란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자, 그럼 모든 산 자의 어미는 누구입니까? 하와(이브)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인들의 어미는 누구입니까? 사라입니다(벧전3:6). 성경은 무엇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밝혀 두는데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4:26)고 말합니다.
땅에 있는 큰 바빌론은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5)라고 합니다.
바빌론은 예루살렘과 짝을 이루는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빌론의 포로 기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방인의 때를 여는 시대이며 마태복음에서도 바빌론 포로기를 기준으로 시대를 나눕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모든 세대가 열네 세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까지 열네 세대가 있으며 바빌론으로 끌려간 때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세대세대가 있느니라.](마1:17)고 말씀합니다. 바빌론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너무나 치욕적인 이름이지만 결코 잊을 수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바빌론은 바벨탑을 쌓은 창세기 10, 11장에 나오는 ‘바벨’에서 유래한 도시의 이름입니다.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예언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도시이자 왕국입니다. 바빌론은 다니엘이 해석한 금 신상의 금 머리에 해당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 형상에서 금이었고 그의 왕국이 금 머리였습니다. 마지막 날들에 대한 예언의 출발점, 지상에 펼쳐질 이방 제국의 시작점이 바빌론 왕국입니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가 누구인지 성경의 해석을 보십시오.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저 큰 도시니라, 하더라.](계17:18). 요한이 광야에서 본 여자의 정확한 정체가 나옵니다.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저 큰 도시니라.”(18). 5절과 18절을 통해 여자는 큰 바빌론이란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나 민족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아닙니다. 도시를 인격화 하였습니다. 큰 환란 때 어느 나라나 민족이 아니라 어떤 도시가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한다는 것입니다. 이 도시의 이름이 큰 바빌론입니다.
큰 환란 때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도시는 미국의 워싱턴이나 러시아의 모스크바, 중국의 베이징,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이나 한국의 서울과 같은 도시가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의 강국이라고 뻐기고 자랑하는 어떤 도시도 이 여자와 관련이 없습니다.
요한이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큰 도시로서 바빌론입니다. 큰 환란 때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계11:8)라고 합니다. 큰 바빌론은 큰 환란 때 지구촌의 수도이며 땅의 왕들을 통제하고 다스립니다.
여기서 성경 해석의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성경은 바빌론이라고 기록하고 그렇게 말하는데 오늘날 주석가들, 설교자들, 신학자들은 하나같이 바빌론을 ‘로마’라고 읽고 그렇게 이해합니다. 마치 요즘 애들이 축구 선수를 흔히 하는 말로 ‘메시라 쓰고 축구의 신이라 읽는다.’라고 하듯 합니다. 성경을 읽는데 “바빌론이라 쓰고 ‘로마’로 읽는다.”라고 하는 식입니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면서도 이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바빌론은 바빌론이 아니고 로마란 것입니다. 요한은 바빌론과 로마란 도시를 헷갈릴 정도로 바보가 아닙니다. 바빌론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도시입니다. 로마 역시 그러합니다. 로마는 도시 이름이며 동시에 제국의 이름입니다.
로마는 유대를 식민 통치한 나라이며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고 크리스천들을 박해한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요한이 로마의 눈치를 보느라 도저히 “로마”로 직접 언급하지 못하고 “바빌론”이라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요한을 하나님보다 로마의 눈치를 보는 자로 만드는 웃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변명과 핑계는 싹 무시하기로 하고 본문을 기록된 그대로 읽고 믿고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 17:1-19:6절까지 요한은 세 가지 환상을 봅니다.
첫째는 여자와 짐승(17:1-18)입니다.
둘째는 그 이후에 본 것으로 큰 도시의 멸망입니다(18:1-24).
셋째는 그 이후에 들은 것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는 찬송입니다(19:1-5).
17장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큰 바빌론의 정체(1-6), 큰 바빌론에 대한 설명(7-15), 큰 바빌론의 멸망(16-18)입니다. 다음으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19:6-10)가 나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또 일곱 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나와 이야기하며 내게 이르되, 이리 오라. 많은 물들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계17:1).
16:17에서 “다 이루어졌도다.”라고 선포했지만 계시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계시된 내용들을 설명하고 세부 사항들을 더 알려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의 하나가 요한에게 와서 “이리 오라.”(1)고 말합니다. 일곱 번째 병 재앙을 공중에 쏟아 부은 천사입니다. 그가 병을 쏟아 부었을 때 큰 바빌론이 파멸했기 때문입니다.
[그 큰 도시가 세 부분으로 갈라지고 민족들의 도시들도 무너지며 또 큰 바빌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그분께서 그녀에게 자신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잔을 주시니라.](계16:19). 이미 “저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14:8) 했고 16:19절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었고, 18:10,21절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병 재앙을 가진 천사는 요한에게 큰 바빌론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말해 주고자 “....이리 오라. 많은 물들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1)고 한 것입니다.
1-6절은 보여 준 것이고 7-18절은 보여 준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잠깐 본문의 구조를 살펴보면 요한이 본 것과 천사의 설명입니다. 요한은 큰 음녀와 여자를 보았고(1,3). 천사는 말하기를, 이 여자는 ‘큰 도시’라고 말합니다(18). 요한은 많은 물들 위에 앉은 여자를 보았습니다(1). 천사는 말하기를 물들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라고 합니다(15). 성경이 본문을 스스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짐승 위에 탄 여자를 보았는데(3). 천사는 말하기를 이 짐승은 끝없이 깊은 구덩이에서 올라온 짐승이라고 말합니다(8). 요한은 일곱 머리를 보았고(3,7). 천사는 말하기를, “그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이니라(9), 산들은 땅의 왕들이라고 말합니다(10).
요한은 열 개의 뿔을 보았는데(7). 천사는 말하기를, 열 뿔은 열 왕이라고 말합니다(12). 계시록은 묵시 문학이나 비유니 상징이니 해석 불가한 책이니 두려운 책이 아니라 성경 스스로 본문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제공해 줍니다. 고로 우리는 본문에 대해 추측하거나 상상하거나 이런 저런 사람들의 해석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1절입니다. 일곱 천사 중의 하나는 큰 바빌론을 일컬어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신비의 상징이나 문학적 비유나 묵시가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이런 표현은 일상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찬 물을 끼얹는다, 소금 뿌린다.”는 표현은 서민들이 일상에서 쓰는 쉽고도 흔한 표현이지 이런 것을 비밀의 상징이니 은유니 하지 않습니다. 물들은 백성들, 민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음녀란 표현 역시 일상적으로 흔한 표현이며 우상을 숭배하고 이교도들과 연합할 때 쓰는 말입니다. “많은 물들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란 말은 “많은 민족들 위에 군림하는 큰 도시”를 말합니다. 이는 18절에서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해석되어 있기에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의 침례교회들,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 중에도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할 때는 로마 캐톨릭 교회의 멸망이라고 단정합니다. 바빌론은 바빌론이고 로마는 로마입니다. 큰 바빌론은 큰 환란 때 이 땅에 다시 세워질 도시입니다. 로마 캐톨릭의 본부는 바빌론이 아니라 ‘바티칸’입니다. 성경은 지금 큰 바티칸, 큰 로마라고 하지 않고 큰 바빌론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해석보다 본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어야 합니다. 현실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성경에 맞추어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계시록에서 왕들, 왕국이란 말을 반복해서 봅니다. 왕들은 왕들이지 대통령이나 수상이나 총통이나 주석이 아닙니다.
왕국은 왕국이지 교회나 공화국이 아닙니다. 지금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화국이란 이유로 거기에 맞추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큰 환란 때는 이 세상이 왕국의 정치 형태에 왕이 다스리는 그런 시대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른 해석입니다.
큰 바빌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라크의 수도는 바그다드입니다. 바빌론은 바그다드에서 80 km 떨어진 남쪽 지역에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성전에 자기를 세우고 하나님으로 보이며 동시에 바빌론을 재건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가장 크고 강력한 도시를 건설했듯이 큰 환란 때 적그리스도는 두라 평지에 거대한 도시를 세워 ‘큰 바빌론’이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앞으로 있게 될 미래의 역사를 미리 공부하는 것입니다.
큰 바빌론이 어떤 도시인지 보십시오. 17,18장을 읽어 보면 이 도시의 특징이 잘 나옵니다. 부정하고 가증한 도시오, 술에 취한 도시, 음행하는 도시, 크고 막강한 도시이며 부유하고 상업적인 도시입니다. 성도들의 피에 취한 도시오,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마시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 대한 기록은 어느 것 하나 선하 것이 없습니다.
일곱 천사 중의 하나는 요한을 불러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1)고 합니다. 고로 17장은 큰 바빌론의 심판에 대한 장입니다. 큰 바빌론은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큰 도시이며(18) 일곱 산 위에 세워져 있고(9), 백성들과 무리들과 언어들을 다스립니다(15). 특징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도시)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가진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17:3).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계12:3)이 하늘에서 나타났습니다. 성경에서 이 큰 붉은 용은 사탄입니다. 우리는 이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용에게 자리와 권능을 받은 짐승(13:2), 짐승의 형상, 짐승의 수, 짐승의 자리 등 온통 짐승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았습니다(계13).
큰 바빌론이란 도시의 바탕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어린양의 도시가 예루살렘이라면 짐승의 도시는 바빌론입니다. 이 여자는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있는데 “금 잔”을 상징으로 사용하며 그 여자가 마시는 잔에는 가증한 것들과 음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계17:3-4).
다시 1절입니다. [또 일곱 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나와 이야기하며 내게 이르되, 이리 오라. 많은 물들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라.](계17:1).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와 17장에 나오는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를 비교해 봅시다.
우리는 언뜻 읽어 보아도 이 두 여자는 너무나 다릅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사탄에게서 나왔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해로 옷 입고 있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자주색 옷, 주홍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4). 12장의 한 여자는 발아래 달이 있었습니다. 달은 밤을 다스리는 광체입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발아래 땅의 왕들이 있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용에게 고통을 받습니다. 용은 그녀의 아들을 박해하고 삼키려 했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열 왕들에게 박해를 받습니다. 열 왕은 처음에 그녀를 지지했으나 돌아서서 그녀를 파멸시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깨끗하고 거룩합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더럽고 부정합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큰 날개를 받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용에게 권능을 받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머리 위에 열 두 개의 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을 지닌 관을 쓰고 있습니다. 12장의 한 여자는 천년 왕국 안으로 들어가서 삽니다. 17장의 다른 여자는 영원한 파멸 속으로 던져집니다.
“많은 물들 위에 앉아 있는 큰 음녀”(1)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신실한 도시가 어찌 창녀가 되었는가! 그곳은 판단의 공의가 충만하고 의가 그 안에 머물렀는데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니라.](사1:21). 성경은 우상을 숭배하고 배교한 예루살렘을 창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부부 관계로 비유해서 음행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만족하지 아니하여 아시리아 사람들과도 음녀 짓을 행하였도다. 참으로 네가 그들과 창녀 짓을 행하였으나 만족할 수 없었고 또 가나안 땅에서 네 음행을 크게 늘려 갈대아까지 이르게 하였으나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였느니라.](겔16:28-29).
대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음녀 짓을 했고 창녀 짓을 했으며 음행을 크게 늘렸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들은 배우자의 음행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따라 가며 음행을 저질렀음을 보여 주십니다.
[요시야 왕 시대에 {주}께서 또한 내게 이르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이 행한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녀가 모든 높은 산에 올라갔고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창녀 짓을 행하였도다.](렘3:6). 주님은 성경에서 이방인들이나 이교도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일컬어 음행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음행이나 창녀 짓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합니다.
2절입니다. [땅의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으며 땅의 거주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었도다, 하고](계17:2).
땅의 왕들이 큰 바빌론과 음행했습니다. 음행이란 부정하게 한 몸이 되는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땅의 왕들은 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큰 바빌론과 부정과 불법의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연합했고 경제적으로 연합했으며 종교적으로 연합했습니다. 오직 연합만이 살 길이란 정책을 썼는데 성경은 이를 일컬어 “땅의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고...” (2)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거룩해집니다. 크리스천들은 음란하고 악한 현 세대에서 불러냄을 받았으므로 철저히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과 친구가 되지 말라. 세상과 일치하지 말라. 세상에 동화되지 말라. 세상의 삶의 일에 얽매이지 말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하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라.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라(갈6:14).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대해 갖는 관점이며 취할 자세입니다. 땅의 왕들은 큰 바빌론과 음행했습니다. 땅의 거주하는 자들도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큰 바빌론의 종교, 문화는 온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 통합은 이 시대의 모든 종교에 요구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었도다.”(2). 용을 경배하고 짐승을 따르며 그 형상에게 경배하는 것이 바로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포도주에 취한 자들은 맑은 정신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땅의 왕들과 온 세상의 거주민들은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맑은 정신이나 판단력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포도주는 용들의 독이요, 독사들의 지독한 독이라고 말합니다. 땅의 왕들은 큰 음녀가 주는 음행의 잔을 마심으로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바빌론의 기원은 창세기 10장의 바벨까지 올라갑니다.
바벨은 사람들이 모여 정치와 종교의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바빌론 제국에서 느부갓네살은 모든 민족들, 언어들에서 자신을 신으로 섬기고 경배하도록 하며 정치와 종교의 통합을 선포합니다. 이런 바빌론의 체계를 가장 잘 답습하고 구현하는 종교 체계가 로마 캐톨릭입니다. 캐톨릭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대사를 파견하는 국가입니다. 바티칸 교회가 아니라 바티칸 공국이라고 부릅니다. 중세 암흑시대에 교황은 유럽의 어느 왕들보다 더 강력하고 큰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환란 때 짐승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여 중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권력을 여자에게 줄 것이며 그 여자를 성경은 “큰 바빌론”이라고 말합니다.
3절입니다. [이렇게 그가 영 안에서 나를 광야로 데려가니라. 내가 보니 한 여자가 신성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주홍색 짐승 위에 앉아 있더라.](계17:3).
일곱 병을 가졌던 천사는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가 한 여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영 안에서...”는 순간 이동의 방법입니다. 시, 공간을 초월해 순간 이동할 때 “영 안에서...” 이동합니다.
요한은 영 안에서 하늘로 들림 받았고 하나님께서 계시하고자 하는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요한이 본 여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주홍색 짐승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짐승 위에 탄 여자”란 책이 있는데 이 말씀에서 제목을 뽑아 로마 캐톨릭의 정체를 밝혀 놓은 책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본 것이 로마 캐톨릭이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캐톨릭의 종교 체계는 철저히 바빌론 종교 체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로마 캐톨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로마 캐톨릭은 가장 큰 이교도 집단이지만 이 여자에게 속해 있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로마 캐톨릭이 있기 전에 이미 이 땅에는 이교도들이 있었고 구약 성경에는 음행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이런 많은 기록들은 캐톨릭 생성 이전이므로 로마 캐톨릭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종교는 마귀에게 희생물을 드리며 마귀들을 신으로 섬기고 경배합니다. 큰 바빌론은 수많은 종교를 낳았고 온 땅에 전파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민족 종교들이 있지만 그 뿌리는 모두 ‘큰 바빌론’입니다. 큰 바빌론의 멸망에 대해서는 이사야에 나옵니다.
[보소서, 사람들을 태운 병거가 두 기병과 함께 여기로 오나이다, 하매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그녀의 신들을 새긴 모든 형상들을 그분께서 부수어 땅바닥에 던지셨도다, 하더라.](사21:9).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이 이미 구약의 대언자들을 통해 선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란 구절을 로마 캐톨릭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은 이미 앞에서 그 정체를 확인했습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은 “큰 붉은 용”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늘에 다른 이적이 나타나니라. 보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이 있는데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개의 왕관이 있고](계12:3).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은 비슷해 보이나 붉은 용은 일곱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고 짐승은 열 뿔에 왕관이 있습니다.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는데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이 있더라.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 권능과 자기 자리와 큰 권위를 그에게 주었더라.](계13:1-2).
본문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여자가 타고 있는 짐승의 정체는 붉은 용이요, 사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고 한 여자는 마귀의 등에 타고 있습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주홍색 짐승”은 붉은 용임을 알 수 있듯이 짐승의 색깔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죄의 사람인데 죄의 색깔은 진홍색, 주홍색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고 했습니다. 죄들이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은 까닭에 죄의 사람이 주홍색 짐승이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주홍색 짐승 위에 올라탄 여자는 큰 바빌론입니다. 큰 바빌론은 신비요, 땅의 창녀들의 가증한 것의 어미입니다. 큰 바빌론은 마귀들의 처소가 되고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모든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입니다(18:2). 큰 바빌론은 막강한 도시입니다. 큰 바빌론은 종교와 정치와 상업 도시로서 큰 환란 때 온 세상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 여자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움이 가득 담긴 금잔을 자기 손에 가진 채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입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몄으며 ](계17:4).
이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 입고 있습니다.
오늘날 로카 캐톨릭에서 이를 모방해서 교황이 공식 행사에서 주로 입는 옷이 자주색과 주홍색입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은 금과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본문에 나오는 바빌론은 로마 캐톨릭으로 단정합니다. 캐톨릭은 바빌론의 모든 것을 계승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바빌론은 {주}의 손에 있는 금잔 곧 온 땅을 취하게 한 금잔이었는데 민족들이 그녀의 포도주를 마셨으므로 미쳤도다. 바빌론이 갑자기 넘어져 멸망하였으니 그녀를 위해 울부짖으라. 그녀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향유를 가져오라. 혹시 그녀가 나을 수도 있느니라.](렘51:7-8).
대언자 예레미야는 바빌론을 주의 손에 있는 금잔이요, 온 땅을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고 했는데 계시록에서는 “가증한 것들과 자기 음행의 더러움이 가득 담긴 금잔”이라고 말합니다. 온 땅의 왕들과 거주민들이 이 잔을 마시고 취했는데 이것을 대언자는 “미쳤도다.”라고 말합니다. 술에 취한 것은 미친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계17:5).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바빌론은 신비가 아닙니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바빌론이란 도시는 아주 작은 소규모의 도시였고 교회가 있었습니다.
[너희와 함께 선택 받은 바빌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 바빌론에 있는 교회란 말은 이 도시에 크리스천들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바빌론은 큰 바빌론입니다. 구약의 바빌론보다 더 큰 도시로서 바빌론이 재건되기 때문입니다.
“큰 바빌론이라.”(5). 로마는 바빌론이 아닙니다. 바빌론은 로마로 불린 적이 없습니다. 지역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릅니다.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5). 큰 바빌론이 어미입니다. 로마 캐톨릭은 큰 바빌론이란 어미에서 나온 자녀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이 큰 바빌론이란 어미에게서 난 자녀들입니다.
창세기 10,11장에서 바빌론의 기원이 나옵니다. 함의 후손인 니므롯이 바벨을 세웠는데 그 뜻은 “하나님의 문”입니다. 니므롯은 세미라미스와 결혼했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오늘날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에 나오는 비너스입니다. 땅의 모든 민족들에 퍼진 신화, 전설, 종교가 이곳 바벨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땅에는 짐승들이 급격히 불어났는데 니므롯은 유능한 사냥꾼으로서 이런 짐승들을 잡아서 사람들로부터 짐승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 준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구스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가 땅에서 강력한 자가 되기 시작하였더라. 그가 {주} 앞에서 강한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아무개는 {주} 앞에서 강력한 사냥꾼인 니므롯 같다, 하느니라.](창10:8-9)고 말합니다. 이는 니므롯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 줍니다. 대홍수 이후에 다시는 그와 같은 심판을 당하지 않도록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벨입니다. 바벨은 탑의 이름이 아니라 도시의 이름입니다. 바벨에 세워진 탑이 바벨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도시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또 이르되,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해 도시와 탑을 세우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며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 이로써 온 지면에 널리 흩어짐을 면하자”(창11:4)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란 말이 반복됩니다. 이 도시에서 모든 민족이 흩어졌기에 이 도시는 땅의 언어, 민족, 도시, 국가의 어미라 할 수 있습니다.
<세미라미스는 구스의 아내였는데 구스가 죽자 그의 아들 “니므롯”과 결혼했습니다. 니므롯은 바벨을 건설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과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니므롯 역시 죽었고 그의 아들이 ‘담무스’인데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부활했다고 담무스를 내세웁니다. 그리고 당시 잘 알려진 여자의 씨(창3:15)에 대한 주의 말씀에 따라 그녀의 남편은 “여자의 씨”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자의 씨(Zeor-Ashta)에서 조로아스터란 말이 나옵니다. 조로아스터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자발적인 죽음으로 희생물로 자신을 드렸다고 주장합니다. 세미라미스는 자신을 여신으로 높였고 ‘여자의 씨’를 낳은 어머니,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민족의 종교나 신화에서 나오는 여신 숭배의 기원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중동이나 유럽, 인도 등에 퍼진 여신 숭배 종교의 출처가 바벨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스다롯, 아스타르테, 아프로디테, 비너스, 다이아나, 성모 마리아는 모두 동일 인물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고 같은 종교입니다. 이집트, 바빌론,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등 어디에나 있는 하늘의 여왕, 여신 숭배는 모두 세미라미스가 그 출처입니다.
니므롯과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니므롯은 흑인이었던지라 형상을 만들 때 멋있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동상이 흑인의 용모임을 주목하십시오. 그래서 니므롯이 죽고 자기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통해 다시 태어났는데 멋있는 인물로 그 용모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세미라미스는 남편과 살다 그 남편을 다시 아이로 낳은 어미가 되었다는 것이 고대 바빌론 종교의 핵심입니다. “엄마와 아들”이 사탄이 만들어낸 종교 체계입니다.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면서 자신을 바빌론 종교 체계의 제도에 따라 초대 교황이 되었습니다. 황제와 제사장을 겸임한 것입니다. 후로 로마 황제가 교황이고 교황이 황제인 것이 정상적인 제도가 되었습니다. 바빌론의 모든 종교 체계, 교리, 풍습이 모두 로마 캐톨릭에 흡수되었고 로마 캐톨릭은 자신들이 바빌론의 모든 종교 체계를 공식적으로 계승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여자를 높이는 것입니다. 캐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로 알려진 여자는 사실 바빌론 종교에서 세미라미스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는 예수님이 아니라 담무스입니다(겔8:14). 로마는 땅의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나 뿌리가 아니라 자녀요 열매입니다.>(히스롭의 두 개의 바빌론에서 인용)
다시 5절입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계17:5).
큰 바빌론은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입니다. 로마 캐톨릭은 구약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대홍수가 끝난 후 바빌론은 마귀들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중동 민족들에 있던 인신 공양과 같은 사악한 종교 행위들은 모두 로마 캐톨릭이 있기 훨씬 전에 이미 이 땅에서 행해지던 일들입니다. 로마는 이전에 있던 것들을 따르는 자이지 그것의 창시자는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 여자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6) 라고 말합니다. 물론 로마가 많은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한 것은 로마가 아니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손에 죽은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는 로마 제국입니다. 그 다음은 로마 캐톨릭입니다.
무슬림들을 비롯한 이교도들 역시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했습니다. 얼마 안 된 일이지만 공산주의가 등장했을 때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6)란 말씀에 해당하는 민족들,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들이지만 성도들의 피를 흘립니다.
아벨로부터 성전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는 누가 흘렸습니까?(눅11:15). 구약의 히브리인들 역시 성도들의 피에 취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로마 캐톨릭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큰 바빌론과는 모두 연관되어 있습니다. 로마 캐톨릭은 큰 바빌론의 자식이요 추종자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마 캐톨릭에서 출판한 신약 성경(Confraternity Edition of NT, 1963 pg 337)에서 로마는 바빌론이라고 주장합니다. 로마 캐톨릭은 바빌론 종교 체계를 답습하고 여자(마리아)를 높이고 성경 신자들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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