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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숲에 던져진 아이 1 백설공주
옛이야기에는, 특히 옛이야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민담에는 주인공이 길 떠나는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특히 다 큰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길을 많이 떠나지요. 그 아이들은 때로는 아직 철이 들기도 전인 어린아이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막 철들 무렵의 아이들입니다. 세상과 본격적으로 대면하기 시작할 무렵의 아이들이지요. 그 아이들이 집을 나선다는 건 이제 비로소 자기 삶을 찾아 넓은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 길 떠남이 긴 준비를 거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뜻하지 않게 갑자기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스스로 결심하고서 훌쩍 길을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뜻과 상관없이 집을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갑작스럽게 낯설고 거친 세상으로 훌쩍 던져진다는 것은 당황스럽고 험난한 일이지만 그만큼 극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요.
그들이 집을 떠나서 다다르는 곳이 그동안 살아온 곳과 큰 차이가 없다면, 예컨대 다른 집이나 마을 같은 곳이라면 재미는 덜할 거예요. 그보다는 보고 듣는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새로운 장소에 이르러야 제격이지요. 옛이야기 주인공들이 현실 세계와 아주 다른 별세계로 접어드는 일이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면서도 집과 성격이 아주 다른 낯설고 신기한 세계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숲(또는 산)입니다. 그냥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다면 별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돌아갈 곳 없이 길도 없는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거기서 낮도 지내고 밤도 지내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건 낯설고 신기한, 아주 극적인 경험이 되지요.
여기 딱 보면 알 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지요.
옛날 어떤 왕비가 바느질을 하면서 창밖을 보다가 손가락을 찔려 눈 위에 붉은 피 세 방울을 흘렸다. 왕비는 그것을 보면서 자기한테 눈처럼 희고 피처럼 붉으며 숯처럼 검은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그 마음을 알았는지, 얼마 뒤 왕비는 소망대로 그런 딸을 낳았다. 눈처럼 흰 아이라서 '백설공주'라고 불렀다.
공주를 낳고 얼마 안 돼서 왕비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왕은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름답지만 아주 거만한 여자였다. 여자한테는 마법의 거울이 있었는데, 늘 거울을 보면서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거울은 어김없이 왕비가 제일 예쁘다고 답했다. 하지만 백설공주가 일곱 살이 됐을 때, 거울이 전하는 답이 달라졌다. 백설공주가 왕비보다 휠씬 더 예쁘다는 것이었 다. 몇 번을 물어도 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질투에 휠싸인 왕비는 공주를 죽이기로 했다. 한 사냥꾼한테 공주를 숲으로 데려가 죽이고 허파와 간을 꺼내 오라고 시켰다. 공주는 하릴없이 사냥꾼에 이끌려 숲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깊은 숲에 이르자 사냥꾼은 공주를 찌르려고 칼을 꺼내 들었다.
그래요. <백설공주>입니다. 약 200년 전에 독일 그림 형제 민담집에 실린 이후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야기지요. 원 제목은 'Schneewitchen'입니다. '눈처럼 흰 아이'라는 뜻이에요. 백설공주는 무척 어울리는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보듯이 백설공주는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숲으로 옮겨집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거친 숲으로요. 언제 그리됐는가 하면 일곱 살 때였어요. 이제 막 세상을 알아 가기 시작할 무렵이지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보면, 그전에는 마법의 거울이 백설공주 얘기를 하지 않잖아요? 그건 그가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왕비와 미모를 겨룰 만한 존재가 된 거예요. 그러니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는 대답이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저 귀엽고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이제 세상을 알기 시 작할 때, 세상과 대면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친 숲은 그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고이 돌봐 주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지요. 우리를 공격해서 힘들게 하는 것 투성이입니다. 공주를 죽이려는 왕비나 그 명령을 받아 칼을 빼 드는 사냥꾼은 그 단적인 예이지요. 어린아이가 거친 숲 속에 던져진다는 것은 이런 위태한 대면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이야기 요소가 됩니다. 누구라도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상황이지요. 문제는 그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공주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공주가 울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숲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했다. 사냥꾼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공주를 풀어 주고 멧돼지 새끼를 잡아서 그 허파와 간을 꺼내 왕비에게로 가지고 갔다. 어차피 아이는 짐승들한테 곧 잡아먹히게 될 터였다.
커다란 숲 속에 홀로 남겨진 공주는 겁이 나서 어쩔줄 몰랐다. 나뭇잎들이 다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아이는 달리고 또 달렸다. 뾰족한 돌에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덤불을 지나가기도 했다. 사나운 짐승들이 그 옆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소녀는 발이 움직일 수 있는 한 달렸다. 곧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존재가 스러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 그냥 속절없이 쓰러지는 대신 백설공주는 살아나기 위한 몸짓을 합니다. 울면서 사정하지요. 그 몸짓이 상황을 바꿉니다. 사냥꾼이 칼을 거두게 되지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차이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됩니다. 저 아이가 숲 속에서 처음 한 일이지요. 무척이나 커다란 일입니다.
이어진 장면은 숲 속이 어떤 곳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 작은 나뭇잎들마저 모두 자기를 노려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낯선 소리 하나만 슬쩍 들려와도 온몸이 덜덜 떨렸겠지요. 위험한 짐승이 득실대는 곳이 숲이니 말이에요. 이제 날까지 어두워지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됩니다.
이런 숲의 모습 속에는 집에서 빗어난 뒤 대면해야 할 바깥세상의 속성이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아무 경험도 준비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는 건 마치 큰 숲 속에 혼자 던져지는 일과 비숫하지요. 모든 게 낯설고, 겁나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다 자기를 노리는 것만 같고....
그래요. 나뭇잎은 별게 아니라 하더라도 짐승들은 실제로 위험한 존재인 것처럼 실제 세상에도 우리를 노리는 위험한 것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겁나는 일이지요. 집에서야 누구나 다 공주이고 왕 자겠지만 숲 속의 야수 앞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상황에서 백설공주가 한 행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맥없이 쓰러져 있는 백설공주를 난쟁이들이 발견하고 구했다고 아는 듯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야기는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숲을 헤치며 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넘어지 고 긁히는 걸 무릅쓰면서요. 짐승들이 그를 해치지 않았던 것은, 공주가 예뻐서가 아니라 그가 이렇게 살려고 뛰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상황에 맞는 해석이 됩니다.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살길이 열리는 법이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그에 이어진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날이 어두워졌을 때 공주는 작은 집 한 채를 발견하고 한숨 돌리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집 안에는 일곱 개의 작은 침대가 놓여 있고 작은 식기들이 일곱 벌씩 갖취져 있었다. 배고프고 목말랐던 백설공주는 일곱 개 그릇에 담긴 음식을 골고루 꺼내 먹고, 일곱 개 병에 든 포도주도 한 방울씩 마셨다. 피곤했던 백설공주는 이 침대 저 침대에 차례로 누워 보고는 자기한테 꼭 맞는 일곱 번째 침대에 누워 모든 걸 신에게 맡기고서 잠이 들었다.
그가 들어간 저 집은 바로 난쟁이들이 사는 집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공주가 한 일, 조금 뜻밖 아닌가요? 숲 속의 낯선 외딴집. 들어가 보니 모든 게 낮설기만 합니다. 작은 침대에 작은 그릇들. "이건 뭐야? 이상해!" 이러면서 겁이 나 도망가거나 한구석에 꽁꽁 숨을 만한 상황이지요. 어린 소녀 입장에서 그랬을 것처럼 상상이 됩니다.
그런데 백설공주는 그리하지 않습니다. "어머, 이것 좀 봐. 귀여워!" 이렇게 말했다고 쓰여 있지는 않지만 꼭 그런 식입니다. 그릇에 들어있는 음식을 하나하나 꺼내서 맛보고 포도주 병을 하나씩 다 기울여서 한 방울씩 맛보는 저 아이의 모습. 어때요? 이거 좀 사랑스럽지 않나요? 금방 칼에 찔리거나 짐승한테 물려서 죽을 뻔한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철없고 황당한, 이른바 '민폐'를 끼치는 어이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런 천진한 순수함은 놀라움 속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장 배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겁이 나서 아무 일도 못 한다면, 그게 맞는 일일까요? 잠이 오는데 잠을 못 자고 구석에 숨어서 덜덜 떨고 있는 게 맞을까요? 모든 걸 신에게 맡기고서,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믿고서 저렇게 마음 가는 대로 솔직히 행동하는 저 모습이 더 맞는 게 아닐까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나는 공주의 저런 모습이 스스로를 살린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일곱 난쟁이는 처음에 깜짝 놀라지만 평화롭게 잠든 공주의 모습을 보면서 곧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지켜 주게 되지요. 공주는 그들을 위해 집안일을 하게 되고요. 이야기에서 저 공주가 '예뻤다'고 말하는 것은 그 이목구비가 깎은 듯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저렇게 맑고 순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해석입니다. 저 아이는 자기 안에서 넘쳐 나는 밝은 기운을 통해 난쟁이로 상징되는 숲 속의 힘을 자기편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뒤의 일에 대한 얘기는 길게 하지 않을게요. 다 아는 대로입니다. 할머니로 변한 왕비가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난쟁이의 집을 찾아 오지요. 백설공주는 그 꼬임에 거듭 넘어가 쓰러집니다. 하지만 왕비는 끝내 공주를 죽이지 못하지요. 마침내 공주는 되살아나서 세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술수가 진실을, 혼탁함이 순수함을 결코 누를 수 없었던 거지요. 그래요. 끝없이 비교하면서 '남의 삶'을 사는 저 왕비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을 사는 공주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흉측한 '마녀'가 되어서 뜨거운 쇠 신발을 신고 미친 춤을 추다가 자멸하는 것이 그의 정해진 운명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칠고 넓은 숲이라는 낯선 세상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하나의 인상적인 답을 말해 줍니다. 주저앉지 말고 길을 찾아 움직이라는 것, 이리저리 재거나 눈치를 보느라고 쩔쩔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을 살아 나가라는 것, 그런 것들이지요. 이거, 꽤 그럴싸하지 않나요?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중에서
신동흔 지음
첫댓글 오랫만에 동화이야기가 좋습니다~♡
일곱난쟁이들과 룰루랄라 춤추는 백설공주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아침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숲을 헤치며 달렸다..
*순수
*자기 삶
아침을 여는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 ^^
아는 이야기책이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어 있네요 오늘도 힘차게 달려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름답고 재밌는 동화로만 기억되는데~
작가의 깊은 의도를 깨달을수 있는 내용이군요.
감사합니다^^
감동젹인 글 이네요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