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계시록 5:1-14
제목: 참된 예배의 회복: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기독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에도 통치하고 있으며 성도들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믿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5장의 핵심입니다.
| 계5: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To Him who sits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
요한계시록 5장의 천사가 선언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인간 역사의 주도권이 세상 권력자나 불의한 세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역사의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다는 사실입니다(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종들이 때때로 극심한 역경을 거치고 심지어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죽음의 위기에 직면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은 결코 무너지거나 변개되지 않습니다. 비참한 고난의 현실 속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박해와 순교의 현장이 통제 불능의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고 원대한 구속사적 계획 아래 철저히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환상 중에서 목격했던 천상의 궁정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5장에서 펼쳐지는 천상의 비전은 지상의 교회를 향해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위로와 소망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천상 보좌는 이 땅의 불의한 나라들과 폭군들이 휘두르는 권세가 얼마나 일시적이고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단번에 폭로합니다. 성도는 천상의 궁정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위협을 극복할 하늘의 신령한 담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6장부터 22장까지 묘사된 격렬한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보살핌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환난은 성도를 멸망시키기 위한 형벌이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마지막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시기 위해 세밀하게 예정된 하나님의 주권적 경륜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약속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끝까지 복종할 수 있습니다(롬8:39…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역사 경영과 구원의 계획이 담긴) 두루마리를 직접 취하여 인을 떼시는 분(계5:7)은 승리하신 왕이시지만, 그분의 외형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계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Spirits)이더라 |
이것은 현재 하늘의 지고한 영광 가운데서 성부와 함께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권능의 주님(성자)이 본질적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희생의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시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십자가에 의해 형성된 삶을 사는 것은 세상의 힘과 논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희생을 따르는 삶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검증하는 핵심 척도가 됩니다. 요한계시록이 선포하는 승리의 개념은 힘으로만 상대를 굴복시키고 지배하는 세상의 통상적인 정복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립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이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도의 신실한 증언, 그리고 죽기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는 철저한 순종을 통해 성취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어린양의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본받는 것(聖化)은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닮음과 성화의 패턴을 도외시하고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힘과 권력을 추구하기 시작한다면,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한 영적 능력은 순식간에 고갈될 것이며 십자가의 복음은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단순한 종교적 외식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이 진리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부나 박해하는 체제 아래 있는 교회로 하여금 복종이나 타협이 아닌, 묵묵한 인내와 신앙의 정절로써 세상을 이기도록 가르칩니다. 반대로 교회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국가에 속해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섬기기보다 세상의 권력을 이용해 교회의 사익을 채우거나 정치를 통해 복음을 강요하려는 세속적인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방부하는 소금과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신앙적 가치나 종교적 신념을 인간적인 권력으로 타인에게 강제하려는 태도 사이에서, 엄격한 진리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본보기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약자를 돌보고 평화를 도모하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함축합니다.
● 계시록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 앞에서 그 나라의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되었다고 명징하게 선포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신자들이 미래에 다가올 종말론적 천국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이 땅 위에서 개시된 천국의 신령한 권세와 통치 속에 진입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통치).
| 계5: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they will reign(통치하다, 군림하다) on the earth) 하더라 |
이 왕 노릇 하는 권세는 군사력이나 정치적 힘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오직 복음에 대한 순종과 거룩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행사되는 것입니다. 특히 천국의 권세를 이 땅에서 나타내는 행위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삶’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그리스도와의 연합). 성도가 세상의 불의에 대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의 사랑으로 품으며 인내할 때, 그리스도의 통치는 가장 강력하게 가시화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강력한 천사들의 손을 거쳐 향연이 되어 하나님 보좌 앞으로 드려지는 영적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성도의 기도는 지상의 무력한 신음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상 어전 회의에 상달되어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집행하게 만드는 우주적인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통치가 현재 이 세상 속에 이미 강력하게 침투해 있다는 사실은, 비록 교회가 눈으로 보기에는 연약하고 핍박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적으로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주관자들을 이기고 승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왕 되심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습니다.
● 계시록 5장 천상예배의 핵심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지상의 예배 역시도 인간의 위로나 필요가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구속의 은혜만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는 세속적 인본주의로 인해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참된 영적 경험을 제공하고 성경적 규범을 지키려면, 인간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하나님의 엄위한 임재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바로잡는 길은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고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피조물을 향한 무한한 자비의 근원이기에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지극히 의로운 본질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실존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중심에 자아라는 우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타인의 것을 빼앗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생명과 은혜를 값없이 베풀어 줍니다. 우리의 참된 기쁨은 오직 주님의 영광 안에만 있습니다. 아멘!
첫댓글 이번 묵상은 복음과 성경신학을 함께 담고 있으니 묵상과 공부의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초신자와 바쁜 분들은 묵상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여력이 되는 분만 아래 추가 설명을 읽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 계시록>
=== 인봉한 책 (요한 계시록 5:1-5)
지금까지 사도 요한은 만물의 통치자이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다만 보기만 하였다.
Ⅰ.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책에 기록된 대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을 볼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 책이 지금은 하나님의 손에 인봉된 채로 있다.
1. 교회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과 방법이 선포되고 확정되었다. 그것들은 그 책에 기록된 대로 결정되고 진행된다 위대하신 계획이 설정되고, 모든 분야는 조정되며, 모든 것은 결정되고 기록되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초안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정신의 금고 속에 보관해 둔 하나님의 명령에서 베낀 것이다. 그러나 성서 가운데 있는 특별한 예언적인 부분에는 우리가 알아야만 할 것들이 기록된 사본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예언은 특별한 것이다.
2. 하나님은 이 책의 권위를 나타내며, 그리고 그 책에 기록된 모든 내용대로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그 책을 그의 오른손에 들고 계신다.
3.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이 책은 닫혀지고, 인봉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책을
펴보도록 허락하시기까지는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창세로부터 그가 하신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나 그의 기쁘신 뜻대로 그 일들을 숨기시는 것은 그의 영광에 속한 것이다. 그것을 알려 줄 때와 시기는 오직 그의 손과 그의 권세에만 달려 있다.
4. 그 책은 "일곱 인으로 인봉되었다." 이처럼 그 책이 인봉된 사실은 그 책 속에 비밀로써 간직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둔감한 안목과 피조물들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길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하나님의 섭리는 일곱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각 부분은 그 부분에 해당하는 특별한 인으로 봉인되었다. 그리고 그 인이 개봉될 때는 독특한 사건이 나타난다. 이 일곱 부분은 한 번에 개봉되지 않는다. 점진적으로 개봉되면 하나의 광경이 끝나면 또 다른 광경이 나타나도록 개봉되면서,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은 이 세상의 종말과 함께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Ⅱ. 사도 요한은 인봉한 책에 관한 선언을 들었다.
1. 그 선언을 외치는 자는 "힘있는 천사"였다. 교회의 사자들간에는 약한 자들이 많이 있으나,
하늘에 있는 천사들 가운데는 약한 자들이 없다. 이 천사는 다만 외치는 자로서가 아니라 용사로서 누구든지 그들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를 개봉할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도전하기 위해 나선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용사와 같이 그는 모든 피조물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2. 그의 외침 혹은 도전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절) "어느 피조물들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가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며, 실천하기에 합당한 자라고 여겨지거든 앞으로 나와서 해보라."
3. 하늘이나 땅에 있는 자 중에서 아무도 그 도전을 받아들여서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비록 "하늘 위에" 있는 천사들이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며 그의 섭리를 위해 봉사하고 있지만 그 일을 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다. "땅 위에"도 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도 요술쟁이도 점쟁이도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자기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이상의 일은 할 수 없다. "땅 아래"에도 없다. 타락한 천사도 할 수 없고,
육체를 떠났던 인간의 영혼이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이 책을 열 수 없다. 사탄이 그의 술책을 다 써도 이 일을 할 수 없다. 피조물은 그 책을 펼 수 없으며, 보지도 못하며, 읽을 수도 없다. 하나님만이 오직 그 일을 하실 수 있다.
Ⅲ. 사도 요한은 그 문제를 두고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는 "크게 울었다" 그는 크게 실망을 느꼈다. 그는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고 그의 마음과 뜻을 좀더 알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소원이 성취될 수 없게 되자, 그는 슬픔에 잠기게 되고, 그의 눈에서는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1.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더욱 보기를 사모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본 자는 그의 뜻을 알기를 원하게 된다.
2.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보기를 매우 열심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3. 그러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슬픔과 비탄이 된다. "희망이 좌절되며 마음에 병이 생긴다."
Ⅳ. 하지만 사도 요한은 이 책이 개봉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게 되었다.
1. 그러한 암시를 사도 요한에게 준 사람은 "장로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의 교회에 나타내 보여주셨다. 만일 천사들이 교회로부터 배우기를 거절하지 않는다면, 교역자들은 가르쳐 주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교사들을 가르치며 알려 주게 할 수 있으실 것이다.
2. 그 일을 할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육체적인 본성에서 볼 때는, 야곱의 예언에 나타난 대로(창 49:10) "유다 지파의 사자"이시다. 그리고 신적인 본성에서 볼 때는, 그가 비록 육신상 다윗의 가지이면서도 "다윗의 뿌리"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며, 그 책의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뿌리와 유다의 후손"이라는 중보적인 지위와 자격으로 이를 행하신다. 그리고 그는 그의 백성들의 위로와 기쁨을 위해 이를 행하실 것이다.
=== 그리스도의 손으로 옮겨진 책 (요한 계시록 5:6-14)
Ⅰ. 인봉된 책이 그리스도의 의해 개봉되기 위해 그의 손으로 옮겨지는 것을 사도 요한은 보았다. 그러한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그리스도가 서 계신 위치는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이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교회의 목사들이나 장로들 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이에 계셨다. 사람이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지만,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는 하나님께 매우 가까이 계신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이다(골 2:9). 교역자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그리고 교역자와 사람들 사이에 계신다.
2. 그의 나타내신 모습을 보자. 전에는 그가 "사자"라고 일컬어졌다. 여기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사탄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시며,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기 위해서는 어린양이 되신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그의 일을 완성했다는 것을 보일 수 있도록 그가 고난받은 표적을 지니고 계신다. 그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어린 양으로 나타나셨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있는 온전한 능력과 그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온전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진 것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시고,
따라서 무한한 빛과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온 세상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가르치고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그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셨다.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셨다"(7절). 그는 폭력이나 속임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5절에 나와 있는 대로), 정정당당히 이를 극복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권위와 아버지의 지시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 하나님은 기쁘신 뜻대로 그리고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그의 영원하신 섭리를 담은 책을 그리스도의 손에 넘겨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타내 주며 또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 책을 그의 손으로 취하셨다.
Ⅱ. 그리스도께서 책을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온 하늘과 땅에 우주적인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손에서부터 이 책을 취하시자마자 천사와 사람들, 아니 "모든 피조물들"이 찬양과 경배를 그에게 돌렸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그의 온전하신 능력과 엄격하신 정의감으로 다루지 않으시고, 그의 중보자를 통해 은혜와 사랑의 방법으로 다루시는 것을 본다는 것은 온 세상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단순히 창조자와 율법 제수자로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과 구세주로서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 때문에 세상은 기뻐해야 한다. 이 때 어린양에게 바친 찬양의 노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일부는 교회의 찬양이며, 제 이부는 교회와 천사의 찬양이고, 제삼부는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이다.
1. 교회는 그 일에 직접 관계된 자로서 찬양한다(8절). 네 생물과 24장로들과 목사의 지도를 받는 성도들이 소리 높여 찬양한다.
(1) 그들의 경배의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어린양이시다. 모든 인간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듯 아들 되시는 예수님께도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다. 왜냐하면 아들도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2) 그들의 태도는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가장 엄숙한 경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3) 그들은 경배시에 "거문고와 대접"이라는 악기를 사용하였다. 거문고는 찬양의 도구요,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하는 향을 가득 담은 그릇이었다. 기도와 찬양은 언제나 같이 따른다.
(4) 그들의 노래의 내용은 교회의 새로운 상대, 즉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소개된 복음적인 상대와 어울리는 것이었다.
[1] 이 새 노래 가운데서 그들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풀어 밝히는 일을 하기에 참으로 합당하신 분이심을 밝히고 있다(9절).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라고 하며 그들은 그가 어느 모로 보든지 그 일을 하기에 합당한 분이시며, 그런 명예를 받으실 만한 분이심을 밝히고 있다.
[2] 그들은 그 합당한 근거와 이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주 예수의 하나님으로서의 위대하신 품위에 대해 이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서 그들은 주로 그들을 위해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의 업적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영혼으로 하여금 감사와 기쁨에 넘치게 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그의 고난에 대해 언급한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희생의 제물로서 피흘려 주셨도다."
둘째, 그들은 그의 고난의 열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죄와 허물과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여 주셨다.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도록 자유를 주셨다.
b. 그 열매는 그들이 존귀하게 됨이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10절). 세상에서는 노예가 속량을 받을 수는 있어도 존귀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자유가 회복된 것만으로 큰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세계 각 나라에서 죄와 사탄의 세력에 의해 노예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민들은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실 때는 그는 그들을 자유케 하실 뿐만 아니라, 존귀케 하여 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그들을 왕으로 삼으신다는 말은 그들 자신들의 영을 다스리며, 세상과 앙한 자를 정복하도록 하시는 것이며,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신다는 말은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 자유로이 나아오게 영적인 제사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신다는 말이다.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게" 하신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
2. 교회에서 부르기 시작한 송영을 천사들이 따라서 부르게 되었다. 천사들은 교회의 뒤를 이어 제 이부를 이끌어 간다(11절). 천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들은 보좌 가까이 있고, 교회의 보호자가 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천사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구세주가 필요 없지만, 그들은 죄인들의 구속을 기뻐한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주 예수의 무한하신 공덕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교회와 일치하고 있다.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찬양한다.
(1) 그는 그 일을 행하시기에 합당하도록, 커다란 능력과 지혜를 겸비한 권위와 크신 부요와 훌륭하심이 있어서 그들을 즉시로 해방시킬 수 없으신 분이시다.
(2) 그는 그 일을 충분히 행하실 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3. 교회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고, 천사들에 의해 계승되었던 이 송영이 이제는 모든 피조물들에 의해 호응을 받게 되었고 울려 퍼지게 되었다(13절). 온 하늘과 온 땅에 구속주를 높이 찬양하는 소리가 가득 차게 되었다. 모든 피조물들이 그리스도를 우러러 찬양한다.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으심을 입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감정과 언어가 있다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당하던 신음으로부터 그들을 구속해 주신 위대하신 구세주를 높이 찬양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들에 의한
세 번째 찬양은 다음의 두 대상을 향해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돌리는 노래이다.
(1) 그것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돌리는 노래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제삼자의 첫째 위가 되시며, 우리를 구속하시는 경륜의 원동자이신 이에게 돌리는 것이다.
(2) "어린 양"에게 돌리는 노래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의 제 이위와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에게 돌리는 것이다. 어린양에게 돌리는 경배는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또는 못한 경배가 아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라고 한 것과 같이 똑같은 말로써 똑같은 영광과 존귀를 두 분에게 돌리고 있다. 그 경배의 본질은 조금도 다름없이 똑 같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데 있어서의 두 분의 역할이 다른 것과 같이 그들에게 돌리는 찬양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는 같은 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을 돌린다.
우리는 하늘에서 시작한 송가가 땅과 하늘의 합창으로 결합되어지고, "아멘"으로 끝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가서도 역시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본다. 이리하여 이 인봉된 책이 크신 위엄과
함께 창조주의 손에서 구속주의 손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다.
네, 좋은 설교 같습니다.
호크마 주석의 내용은 그레고리 빌 관련 이전 게시물에 있으므로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박윤선 주석: 계사록>
계 5:1
오른 손에 책.- 이것은, 세계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및 그것에 대한 그의 주재권(主宰權)을 표시한다. 하나님만이 세계의 장래를 아시고 이것을 주재하신다. 오른 손은 힘 있는 손이니, 잘 보관하고 또 주재하는 것을 상징한다.
안팎으로 썼고.- 이것은, 세계의 장래에 대한 그의 계획이 만전적(萬全的)으로 작정되어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것에 가감(加減) 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즈안(Zahn)은, 여기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한 엇구(語句)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으니, 곧, "안에 썼고 밖으로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하였다. 이 번역이 옳다면 그 뜻은, 그 책 내용의 비밀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래의 번역이 옳으니, 그 이유는, 겔 2:10에도 "안팎으로 쓴" 두루마리 책에 대한 말이 있고,
또 헬라 원문(* )의 문법도 재래역(在來驛)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인봉한 책을 오른 손에 가지신 이유는, 그 오묘를 그의 교회에 알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시려는 것을 그의 택한 백성에게 알리시기를 기뻐하신다.
그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고 하셨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일곱"수는 완전수를 의미하는 바, 일곱 인봉(印封)은, 계시의 일곱 내막(內幕)에 대한 엄중한 은익(隱慝)을 상징한다. 이 칠인 내막은 6장 이하에 하나씩 계현(啓現)된다. 혹설에, 여기 일곱 인봉은, 로마 나라에서 유언을 확정하기 위하여 일곱번 인봉하는 풍속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주시려는 기업(基業)에 대한 확보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학설을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누가 이것을 열수 있는가에 달렸다.
계 5:2
힘 있는 천사가.- 이렇게 "힘 있는 천사가" 나타나는 이유는, 큰 소리로 발성(發聲)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부르는 소리는 천상(天上), 지상(地上), 지하(地下)에 두루 미쳐야 할 것이었다. 일곱번 인봉한 그 책은 저 유력한 천사 자신에게도 미지(未知)의 것이었으므로, 저렇게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구속의 대사업은, 천사도 경이(驚異)와 흥미로
구경하려는 장관(壯觀)이다(벧전 1:12).
합당하냐.- 이것은 헬라 원어로 악시오스(* )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위의 일곱번 인봉한 책을 열 수 있는 의로운 자격을 의미한다(Greijdanus).
계:5:3
"하늘 위"- 는 천사들과 별세한 성도들이 있는 곳이고,
"땅 위"- 는 모든 인생들과 생물들이 있는 곳이고,
"땅 아래"- 는 승천하지 못한 영들이 있는 곳인 듯하다. 이 셋은, 우주와 및 우주 밖의 모든 경역(境域)을 총망라(總網羅)한다. 세계의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을, 죄 있는 인간이 알 수 없다. 또 다른 생물들도 알 수 없다(마 11:25-). 그 뿐 아니라, 구것을 알 수 있는 자 곧, 신인 간(神人間)에 중보자(仲保者)의 자격을 가지는 자는 천사들 중에도 없다. 이 자격자가 누구냐? 그것은 제 5절이 잘 알려 준다.
계 5:4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이 크게 운 이유는 무엇인가?
(1) 그가 애모하는 계시(책을 열어 보임)가 중지될 듯이 생각된 까닭임. 이것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보려는 그의 심령이 얼마나 간절하였던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2) 그가 크게 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일곱번 인봉한 책을 받아 열 자 없는 원인이, 인류의 죄악이었음을 알게 된 까닭이다. 천사의 부르짖는 소리에 온 우주는 고요하고 아무 대답이 없었으니, 우주는 죄악의 비참한 폐허(廢墟)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것을 느낄 줄 아는 예언자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3)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요한이 크게 운 이유는, 그가 기다리던 구원의 푸로그람(일곱번 인봉한 그 책은 성도 구원에 관한 종말적 푸로그람이라고 할 수 있음)을 받아서 성취시킬 자가 없음을 통탄한 까닭이라고도 한다.
이상에 말한 세 이유가 다 일리를 가지고 있다. "우니"란 말이, 헬라 원문(* )에서는, 과거 미완료 동사(過去未完了動詞)이므로 그것을 직역(直譯)하면 "우는 중에 있었으니"라고 하여, 울음을 계속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천사의 부르는 큰 소리에 대하여 전 우주(全宇宙)에 한 마디 대답이 없으니, 이는 할 수 없는 죄악 세상의 적막(寂寞)이었다. 이것을 느끼는 자는 큰 울음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곡성(哭聲)은 천성(天上), 지상(地上), 지하(地下)를 진동하리 만큼 호소력(呼訴力)을 가졌다.
전 인류의 죄와 자기의 죄를 통감(痛感)하는 회개의 울음 소리! 계시자와 구원을 애원하는 울음 소리! 이 울음 소리는 하나님의 보좌에 들리는 귀한 소리이다. 천사의 부르는 소리도 장대(壯大)했지만 요한의 곡성도 위대했다.
계 5:5
유대 지파의 사자.- 이것은 창 49:9,10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 쓴 말씀이다. 야곱은, "유대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실 것을 예언하여 말하되,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고 하였다. 이 예언이 성취되어 과연 예수는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히 7:14). "사자"는 이기는 자의 표상이요 이기는 것은 메시야의 특징이다. 창 3:15에 메시야에게 대하여 예언하기를, "여인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고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리라"고 하였다. "사단의 머리를 상함"은 곧, 메시야의 승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말하기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 상하게 하시리라"(롬 16:20)고 하였으니, 이것은 분명히 위의 창 3:15 말씀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창 3:15의 메시야 예언이 있은 후, 고래(古來)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기는 자 곧, 메시야를 대망하여 온 것이다. 예언자들은 메시야를 사자로 비유하기도 하였고(창 49:9,10), 혹은 왕이라고 하였다(미 5:2).
다윗의 뿌리.- 이는 다윗 왕통(王統)의 베어진 그루터기를 이름이다. 다윗 왕통이 오랫동안 끊어졌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계승된 것이다(명적으로). 사 11:1,10; 계 22:16; 롬 15:12 참조.
이기었으니.- 이것은 메시야의 특성이니(창 3:15), 곧,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승리하시고, 구속 사업을 성취하신 일이다(골 2:14,15). 그 승리는, 사단과 죄의 권세와 사망과 세상을 이긴 것이다. 눅 10:18; 요 14:30, 12:31; 계 1:18 참조. 이와같은 승리자, 곧, 메시야께서만 신인 간(神人間)의 중보자가 되시며 하나님의 비밀을 그의 택한 백성에게 계시하며, 또 계시 대로 구원을 완성하신다 함이 성경적 교훈이다. 히 7:26-28 참조.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리스도께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받아 여심은, 계시의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그 계시의 내용대로 집행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계시, 구원, 심판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일을 하실 수 있는 이는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다윗의 자손이 되사(人生이 되사) 우리의 짐을 맡아 지시고, 하나님 앞에 서신 자니만큼, 계시, 구원, 심판의 책임자이시다.
계 5:6
보좌...생물...장로.- 계 4:2, 4, 6의 해석 참조.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어린 양"께서 장로들의 밖에 서시지 않고 그들의 "사이에"(* )서신 것은, 그의 중보성(仲保性)을 보인다. "어린 양"은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먹은 것이니, 곧, 속죄 제물(贖罪祭物)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속죄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요 1:29,36; 사 53장 참조. 그런데 여기 "어린 양"이라는 말이, 요 1:29의 그것(* =암노스)과 다르게 아르니온(* )이라고 했으니, 이는 어학상 아형 명사(兒形名詞: Dimunitive)이다. 여기서 이 아형 명사가 사용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드러우심, 온유하심, 희생이 되심, 사랑이
충만하심을 역설하려는 것이다(Greijdanus,de idee van het teedere, zachte, overgegevene, liefdevolle, te accentueeren).
예수를 사자로 지적하고 여기서 돌연히 "어린 양"으로 나타내는 계시는 의미 심장하다. 메시야는 사자 같은 승리자이시다. 그러나 그의 행동 원리는 사자 같지 않고 어린양 같았다. 그는 어린 양 같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희생으로 드리시고 십자가를 지신 고로, 사자 같이 승리자가 되신 것이다. 불신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사자 같이 이기는 행동 원리가 이 세상 권세를 잡은 자 같을 것이라고 그릇되이 알았으므로 실패했으나, 요한은, 이 사자 같은 승리자를 어린 양 같은 속죄적 희생자에게서 찾아 만난 것이다. 모든 기독 신자들은 다 사도식으로 메시야를 찾는 것이다. 메시야(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승리의 사업을 하실 때에 항상 어린 양 같으셨다. 마 12:18-21에 메시야에 대하여 말하기를,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리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였고, 행 8:32, 33에 메시야께 대하여 말하기를,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깍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낮을 때에 공번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라고 하였다. 혹설에, 여기 사용된 아형명사(兒形名詞) "어린 양(* )"은, "친애"(親愛)의 의미까지 포함하였다고 한다(Bengel).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던 것이니 만큼, 지금 천계(天界)에 계시면서도 우리에게 친애한 관계를 가지시는 자이시다.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 엇구는 그 윗말, "섰는데"를 형용한다. 곧, 어린 양께서 서 계시되 죽은 듯이 서서 계시더라는 말이다. 곧, 그가, 그의 몸에 전에 죽으셨던 표를 아직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다
말이다(Charles, * , i.e.as though slain in sacrifice and still retaining the appearance of death wounds on its body).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대속(代贖)의 공로(功勞)를 세우신 것이 하늘에서 영원토록 효과를 가진다는 상징적(象徵的)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하나님을 순종하여 속죄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공로는, 내세에서도 영원히 남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영원한 속죄요, 의요, 성결이요, 지혜가 되신다(고전 1:30).
일곱 뿔.-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그 얻으신 완전 무결하신 권세와 능력을 상징한다. 빌 2:9-11; 행 2:36, 마 11:27, 28:18 참조.
일곱 눈.- 슥 3:9, 4:10 참조. 이것은 이 아래 문구 대로 보아서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실 뿐 아니라, 역시 성자님과 동행하신다(사 11:2, 4:1). 성자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을 특수한 방식으로 보내시어(행 2장) 자기를 증거케 하셨으니,
본절의 이 말은 이 점을 가리킨다(요 14:26, 15:26, 16:8,13-15).
계 5:7
취하시니라. 이 말은 헬라 원어로 아이레-펜(* )이니, 현재분사(現在分詞)로서 그 취한 책을 영구히 가지고 계심을 이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참간 동안만 취급하시지 않고 영구히 맡아 가지고 계신다.
계 5:8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거문고"는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드리는 악기(樂器)요. "금대접"은 거기 담긴 향을 요점으로 한 것이니, "향"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상징이라고 본문이 밝힌다. 향을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으니, 하나님은 기도를 향취(香臭)와 같이 즐기심이 여기도 나타난다. 기도는 하나님에게만 향기처럼 귀여운 것이 아니고, 성도 자신에게도 그런 것이다. 참된 신자에게는 기도하는 때처럼 기쁘고 향기로운 것이 없고, 또 그가 남의 기도 소리를 듣는 때에도 그런 향기를 느낀다.
계 5:9
새 노래.- 이것은 구원의 새로운 체험으로 터지는 새로운 찬송이다.
"족속"- 은 혈족적(血族的) 유래 (由來)를 염두에 두었고,
"방언"- 은 종족과 종족의 원근(遠近)을 막론하고 단순히 언어가 같은 국민을 가리키고,
"백성"- 은 정치적으로 모인 인민의 집단이고,
"나라"- 는 생활 습성(習性)의 유사(類似)로 인한 집단이다(H. Cremer-J. Kogel, Worterbuch d. Neutest. Grazitat). 위의 정의(定義)가 정확 무오(正確無誤)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확신하기는, 이 네 가지 말이 전 인류를 망라(網羅)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되 어느 민족을 차별하시지 안으셨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은, 그가 인류 전체를 한 사람도 유루(遺漏)없이 다 구원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아랫말, "가운데서"- (* )란 것이 선택적 구원(選擇的救援)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께서 민족이나 인종은 차별하시지 아니 하셨으되 그의 기쁘신 뜻대로 구원할 자들을 선택하신 사실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든지 일률적으로 가르친다.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 말씀은, 복음의 골수(骨髓)이다. 참 신자는 하나님께서 거저 얻으신 습득물(拾得物)이 아니고, 그의 피로 사신 고가(高價)의 보배이다.
계 5:10
나라와 제사장.- 1:6의 해석 참조.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여기 "왕노릇하리로다"란 말은, 헬라 원어로 바실류-수-신(* )이니 미래 동사(未來動詞)로서 중요 사본(寫本)들의 사구(寫句)이다. 어떤 사본들(A.Q)에는, 이 말이 현재사(* )로 씌어져 있으나, 모팟트(Moffatt)는 첫째 것을 채택하였다. 우리가, 20:4의 내용(성도들이 말일에 부활한 후에 왕이 됨)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에, 현재사보다 미래사 바실류-수-신(왕 노릇하리로다)이 적당해 보인다. 촬스(R.H. Charles)는, 이것이 현재사인 경우에도 20:4의 종말관적(終末觀的) 군림(君臨)의 의미를 가리킬 수 있다고 하였다.
계 5:11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 여기 "천사"들의 위치가 천계에서 성도들을 대표한 장로를 둘러 싸고 움직인다. 그것은, 그들이 성도들의 수종자인 사실을 보인다. 천사의 존재에 대하여 성경의 증거가 많으니, 마 22:30, 24:36; 눅 1:13, 9:26, 15:10; 히 1:6; 벧전 1:12; 유 1:6, 9; 계 12:7, 14:10;
창 19:1; 삼하 14:20; 슥 1:9등의 성구들을 들 수 있다. 이 성구들에 의하면, 천사들은, 이성(理性)이 있고 도덕(道德)이 있고, 지능(知能)이 있는 자요, 격위(格位) 있는 자로서 행동하며, 혹 사랑하며, 기뻐하며, 다투며, 경배하며, 말하며, 왕래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천사의 성질은 그 피조성(被造性)이다. 천사가 언제 창조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확답하기 어려우나, 욥 38:7을 보면 천사가 하나님의 만물 창조에 참관(參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천사가 만물 창조 전에 창조됐다고까지 말할 근거는 못된다. 천사는 만물 창조와 동시에 창조된 듯하고(골 1:16; 느 9:6; 시 103:20,21, 148:23), 이성적(理性的), 도덕적(道德的), 불사적(不死的) 실존이다(엡 3:10; 벧전 1:12, 5:8). 천사의 종류는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으니,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마 8:10; 막 8:38; 눅 9:26, 20:36; 고후 11:14; 딤전 5:21; 벧후 2:4; 유 1:6; 계 14:10)라고 하는 도덕적 유별(類別)이 있고, 또 직별(職別)로서 몇 가지 이름이 있으니,
곧, 그룹들(창 3:24; 출 25:18; 삼하 22:11; 시 18:10, 99:1; 사 37:16; 히 9:5), 스랍들(사 6:2), 가브리엘과 미가엘(단 8:16, 9:21, 10:13, 21; 눅 1:19, 26; 유 1:9; 계 12:7)이다.
만만이요 천천-. 곧, 만의 만이고 천의 천이란 말이다(시 68:17; 단 7:1; 히 12:22 참조).
계5 :12
능력.- 헬라 원문에는, 이 첫말 바로 앞에 "그"라고 번역되는 관사(* ) 하나가 있다. 그것은, 본절에 있는 칠언 찬송(七言讚頌=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을 일속(一束)으로 하여 가리키는 공통 관사(共通冠詞)이다. 태양의 칠색(七色)이 일체화(一體化)하여 한개의 흰 빛을 나타내는 것처럼 여기 천사들의 칠언은 일체가 되어 한개의 완전한 찬송을 이룬다. 위에 말한것과 같이, 이 칠언이 한개의 공통 관사를 가졌으니 우리는 이 칠언, 마디 마디에 모두 다 "그" 라는 말을 붙여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 칠언에 관사가 붙은 이유는, 이 칠언에 각기 표시된 내용을 남김 없이 "어린 양"에게 전속(專屬)시키려는 까닭이다.
일례(一例)를 들어 설명하면, "그 능력"이란 말 뜻은, 무슨 능력이든지 다 "어린 양"께 속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능력(* )"은 천연계(天然界)의 일반적 능력과 및 초자연적(超自然的) 신능(神能)을 가리킨다.
"부"- 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부(聖父)에게 받으신 모든 것을 가리킨다(마 28:18; 엡3:8, 4:7-13; 대상 29:11,12 참조).
"지혜"- 는 신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지(靈智)이고(고전 1:30; 골 1:9),
"힘"- 은 그의 행사상 강력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능력에 비하여 무엇이 다른가? "능력"은 그의 행사의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방면이고, "힘"은 그것의 불가항적(不可抗的)인 방면을 생각케 한다. 이 귀절에 있어서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힘"을 가리켜 "그의 원하시는 대로 무엇이나 하시려면 하시는, 막을 수 없는 실행력"(Staat hier in verband met de openbaring van's Heeren mogend heid als onwederstandelijke
alles wat Hij wil, werkende kracht) 이라고 했다. 위의 네 가지 덕(능력, 부, 지혜, 힘)은, 그가 자기를 위함보다 교회에 구원을 베푸시려고 받으셨다. 그리고 나머지 세 마디 찬송은, 주님의 높으신 덕을 칭송(稱頌)하는 의미의 것이다.
존귀와 영광.- 4:9의 해석 참조. "존귀"는 주님의 본체의 고귀하심이고, "영광"은 그 고귀하신 본체가 밖으로 빛나는 장관(壯觀)이다.
"찬송"- 은 헬라 원어로 율로기아(* )이니 위의 "영광"이 천사와 성도들에게 인식되어 고백되는 것이다.
계 5:13
이 귀절은, 위의 천사의 칠언 찬송에 대한 만물의 사언 화답(四言和答)을 말한다. 그 화답은, 묘하게도 천사들의 노래의 종결어(終結語)인 "찬송"이란 말을 받아서, 그 찬송을 시작하였으니, 이는 화답의 성격을 잘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양자(兩者)가 함께 그리스도의 죽으셨다가 영광 얻으신 사실을 찬송한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라 하고, 만물은
"어린 양"- (희생이 되신 자)에게 찬송한다고 한다.
만물이 가로되.- 이것은,
만물이 영계(靈界)로 더불어 통화(通話)할 수 있다는, 물아 동체론 원리(物我同體論原理)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성경은, 엄연히 만물과 하나님과의 분별, 또는 만물과 인생과의 분별을 두고 행각한다. 창세기 3장에, 뱀이 인간으로 더불어 말한것은, 뱀 스스로 한 것이 아니고, 마귀가 그렇게 시킨 것이며, 민수기에 나귀가 말한 것도 그것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그렇게 하게 하신 것뿐이다. 한국 고담(古談)에, 백발 노인이 변하여 범, 여우가 된다든가 혹은 그런 동물이 인간으로 더불어 통화하였다는 것은, 물아 동체론 곧, 범신론(汎神論)에서 나온 사상이다. 성경 계시록에, 만물이 말한다 함은, 의인적(擬人的)표현법이다. 이것은, 만물이 무언 중에도 단지 그것이 속한 우주의 구속(救贖)에 호응(呼應)하여 움직이게 된다는 말씀이다.(롬 8:19).
요약히면:
오른손에 들린 안팎으로 쓴 책은 세계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만전적인 계획과 절대적인 주재권을 표시합니다.
일곱 인봉은 계시의 엄중한 은닉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시려는 기업에 대한 확실한 확보를 상징합니다.
힘 있는 천사의 부름에 온 우주가 침묵한 것은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책을 열 자가 없는 비참한 폐허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요한이 계속해서 크게 통곡한 울음소리는 전 인류와 자신의 죄를 통감하는 회개이자 구원을 애원하는 위대한 호소였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단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유일한 승리자이십니다.
보좌와 장로들 사이에 선 어린 양은 온유함과 사랑으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사 구원과 심판을 집행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어린 양의 몸에 남아 있는 죽임 당한 표시는 십자가 대속의 공로가 하늘에서 영원토록 효력을 가짐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일곱 뿔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완전무결한 권세를, 일곱 눈은 성자님과 동행하며 자기를 증거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노베 24장로가 가진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은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겁게 받으시는 성도들의 귀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새 노래의 구원은 인종의 차별 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피로 사서 드리신 선택적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복음의 골수입니다.
천사들의 칠언 찬송은 무슨 능력이든지 다 어린 양께 속하며 그분의 고귀한 본체와 영광을 남김없이 전속시키려는 고백입니다.
만물의 사언 화답은 우주의 구속에 호응하는 표현이며 천사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죽으셨다가 영광 얻으신 대속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노베 아멘!
계시록 5장의 천상예배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만전하신 계획과 십자가 대속의 영원한 효력을 깊이 있게 깨닫게 하시는 묵상에 깊이 공감합니다.
온 우주의 침묵 속에 울려 퍼진 요한의 애통한 눈물이 죄를 통감하는 회개이자 구원을 향한 간절한 호소였다는 지적이 마음에 무겁고도 은혜롭게 다가옵니다.
어린 양으로서 자신을 희생하사 사단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신인 간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자격을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향 가득한 금 대접으로 기쁘게 받으시며, 차별 없이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선택적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존귀하고 값진 것인지 고개가 숙여집니다.
완전무결한 권세의 일곱 뿔과 성령을 상징하는 일곱 눈을 가지신 주님만이 온 우주와 교회의 영원한 통치자이심을 엄숙히 고백하게 됩니다.
천사들의 칠언 찬송과 만물의 화답에 마음을 합하여, 오늘도 영원토록 오직 어린 양 예수님께만 모든 능력과 부와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인류의 비참한 폐허 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 속죄 제물로 보내사 구원과 심판의 중보자로 삼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요한이 드린 회개와 애통의 눈물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향 가득한 금 대접에 담길 성도의 기도를 날마다 기쁘게 채워가게 하옵소서.
부활 승천하사 완전한 권세와 성령의 눈으로 다스리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천상 예배의 찬송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죽임 당하신 어린 양과 같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낮아지심의 본을 친히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신자들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권력자들을 따라서 높아짐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길을 잘못 들어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도의 낮아짐 속에 하나님이 감추어 두신 복과 많은 능력들이 있음을 경험상으로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좇는 것은 십자가의 길과 배치되며 결코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이 아님을 잘 알아야겠습니다.
인간의 욕망,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순수하게 말씀과 진리를 추구하며 고난의 삶을 믿음과 인내와 순종으로 이겨나가는 것이 승리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칩니다. 수준 높은 통찰력 제공에 감사드립니다.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