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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무소부재’와 ‘임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무소부재는 ‘이 세상 어디든지 안 계신 곳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존재의 근원이시기에 그가 창조하신 만물 속에는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며, 스스로 창조하신 만물과 항상 함께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시기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나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 가지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들과 함께 계시며, 그것들을 보존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알고 신뢰 할 때,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어디를 가든지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때 공허감에서 해방을 받게 되며, 동시에 위로와 평안의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람은 아무리 나를 사랑하고,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나와 함께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무소부재 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시며, 그래서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시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얻게 되며, 동시에 하나님이 항상 눈동자와 같이 지켜보신다는 인식을 갖게 되기에 항상 경건하게 살게 되는 유익이 있다.
무소부재 하시는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잊지 않고, 언제나 그의 지켜보심을 인지하고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아름답고, 복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무소부재와 임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디에나 항상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신 이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와 인정하지 않는 자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을 인지하고, 그의 임재를 끊임없이 구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모르거나 구(求)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임재’를 순간순간 구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임재란 ‘나타내 보인다.’ ‘존재하여 함께한다.’는 뜻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때와 장소에 집중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이후에는 대부분 임재의 요청이 있는 곳에 나타나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환영하고, 사모하고, 갈망할 때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성화 ‘문 두드리는 손’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 문 밖에서 노크하고 계시는데 문에 문고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성화를 그리는 작가가 인격적인 하나님을 잘 묘사한 그림이다. 마음의 문은 밖에서 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열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환영하고 모셔 들일 때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기쁨으로 일 하신다.
항상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 찬양, 기도, 성경 공부의 모임은 아무런 역사를 기대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감정만 부풀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치 엘리 제사장이 살던 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 시대를 방불케 하는 영적인 침체와 타락과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임재’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가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분주하게 활동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인간들의 축제내지는 환심을 사기 위한 기호식품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이 반복되는 종교행위는 교회를 더욱 타락의 길로 몰아가게 되며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게 된다.무엇을 구하라는 말씀인가? 돌이켜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자신을 구하는 자들을 만나 주시고,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어떠한 위경(危境)에서도 건져 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잃어버린‘하나님의 임재’를 찾아야 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하게 구할 때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최상의 삶이며 성결에 이르게 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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